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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의 판타지 모험담

백열등이 점멸하는 밤

웹소설 > 일반연재 > 중·단편, 드라마

Toary
작품등록일 :
2023.06.30 21:00
최근연재일 :
2024.04.05 00:43
연재수 :
6 회
조회수 :
58
추천수 :
0
글자수 :
20,083

작성
23.09.30 00:28
조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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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6쪽

정류장

DUMMY

A군과 B양은 같은 대학의 같은 과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관계였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었을까. 둘은 같은 곳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같은 동네에서,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두 남녀의 관계.


그 둘은 대학이라는 관련점 아래에서 관계가 성립되었다.


A군은 B양의 이름을 알았다.


B양이 A군의 이름을 알까 싶지만서도.


관심을 끊을 수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무얼할까 눈으로 좇게 되어버렸다.


늦게 오면 왜 늦게 오는 것일까 고민하게 되어버렸다.


정류장에 먼저 도착하면 오매불망 그녀를 기다리는 A군.


B양이 자신보다 일찍 도착하면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을 갖고 하루를 시작했다.


언제고 한번 말이나 붙여볼까 싶어 손을 꿈틀댔다.


같은 강의실에서도 그녀가 친구와 떠들 때면 귀를 세우기 바빴다.


하지만 A군에게 있어 자신의 이름이나 알까 싶은 B양에게 말이나 한번 붙여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일을 벌이기에는 A군은 적극성이 모자랐다.


이맘때 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듯, A군 또한 여전히 10대의 순정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


오히려 길었던 군생활이 그에게 남성성을 부여하기 보다도, 남여관계에 있어 큰 괴리감을 불러 일으켰다.


버스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고, 버스 문이 열릴 때면 A군 몇걸음 물러서 B양이 먼저 버스에 오를 수 있게 했다.


여름철, 습도 높은 거리의 한복판에서 A군은 B양의 뒷모습을 잠깐이나마 살필 수 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것은 A군 혼자만의 약속.


실제로 A군도, B양도 이에 관하여 약속따윈 나눈 적이 없지만, A군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약속이 되어버렸기에 매일 정해진 시각에 버스 정류장에 나섰다.


그러나 왜인걸.


B양은 버스 정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가 늘 탔던 그 버스가 지나갈 시간이 되어도 B양은 나타나지 않았다.


A군은 서둘러 B양이 왔었던 길 방향을 떠올렸다.


사고라도 난 것일까 걱정되어 길을 거슬러 올라가보길 10분.


더 지체했다가는 수업에 늦고 말 것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하루정돈 일찍 갈수도, 지각할 수도 있는거지.


A군은 생각했다.


그래서 버스를 탔다.


이미 늦어버린 수업시간에 뒤늦게라도 참여하기 위해서.


A군은 흩날려 지나치는 풍경들을 보며 머릿속을 비웠다.


다시 되뇌였다.


짝사랑인 거야 진즉에 알고 있지 않았느냐며.


유리창에 희미하게나마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봤다.


'흔하게 생겼네.'


어딜 보아도 매력같은 게 있을리 없는 판에 찍은 듯한 얼굴.


길거리에서 '야!' 하고 소리치면 되돌아 볼 얼굴 십 중 여덟이 이런 꼴이겠지.


A군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갈 좋아하는 것조차도 미련한 짓이 되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A군이 생각하는 것과 현실이라는 것은 바라는 것과는 크게 다른 법인지라, 이내 A군은 B양에 대하여 제멋대로 기대하고 제멋대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A군은 버스에서 불쾌함을 느꼈다.


더운 공기와 땀내가 뒤섞인 버스는 바깥보다야 한결 나았지만, 악취라는 부분에서 그는 인상을 구겨야 했다.


이런 공간을 B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탈만하다 생각하니, 생각만으로 웃음이 튀어나와 곧장 얼굴이 펴졌다.


학교에 도착한 A군은 교수님께 가볍게 목례를 거친다.


한 차례 앉을 곳을 찾아 강의실을 둘러본 A군은 어쩌다 보니 B양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 멈칫한 순간은 일순에 불과하였으나, 그 잠깐만으로도 A군은 현실을 맞닥뜨렸다.


어째서 다른 사람은 그리 흐릿하게 보이고 흐릿하게 기억되면서도,


좋아하는 사람만큼은 선명하게 보이고 선명하게 기억되는지.


A군은 표현 못할 박탈감을 느꼈다.


누군가는 이리 절절하건만,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관심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B양이 다른 남자와, 다른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B양은 A군에게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보고 머리로써 이해하게 된다.


A군이 배신감이라도 느꼈을까?


'우리'의 약속이라는 게 사실 '나' 혼자만의 약속이라는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기에?


A군은 가냘프고, 나름 해를 거쳐 이어온 이 자그마한 짝사랑을 접기로 했다.


치근덕대는 사람으로 B양에게 기억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A군은 깔끔해지기로 했다.


그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외면된 사랑 앞에서 그는 약간 졸렬해지는 면모를 보였다.


'어차피 1교시인 강의였는데 쿨하게 포기한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A군은 쿨하지 못했다.


그리고 실제로 포기하지도 못했다.


A군은 단순한 지각쟁이로 변모해갔다.


B양의 버스 시간에 맞출 이유가 사라졌다.


오히려 그것이 과하여 피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로 인해 절로 A군의 발길이 점차 느긋해져갔다.


잦은 지각, 매번 강의가 시작한 뒤에 강의실에 들어서는 A군은 저절로 이목을 끌었다.


B양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A군이 예전에 자신과 같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던 사람이란 것쯤은 기억하고 있었다.


A군이 사랑을 접었다.


B양은 그걸 알턱이 없다.


그러나 이 순간, 언제부터인가 눈에 밟히기 시작한 A군을 향한 B양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A군이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늦어버린 시각,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에.


그곳에 B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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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림공적(3) 24.04.02 4 0 10쪽
4 무림공적(2) 24.03.25 8 0 7쪽
3 무림공적 24.03.24 8 0 6쪽
» 정류장 23.09.30 14 0 6쪽
1 꿈-1 23.08.30 22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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