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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노을 님의 서재입니다.

욕망의 게임 (Game of Desir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옛노을
작품등록일 :
2020.10.12 19:01
최근연재일 :
2020.11.07 19:14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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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수 :
119,608

작성
20.10.1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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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새로운 세계 - 2 -

DUMMY

눈을 어지럽히는 수북한 수풀, 화려함을 뽐내는 꽃에서 풍기는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내 코에 도달했다.

그래, 여기가 천국이구나.


"머리 숙여요!"

"어, 으아!"


아, 우리 도망치던 중이었지?


연희 씨의 호통에 나는 바로 머리를 숙였다. 내 몸의 세 배는 될 덩치의 녹색 말벌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포수말벌'이라고 했었지?


"아직도 향기의 영향에서 못 벗어나셨네. 괜찮아요?"

"뭐가 어떻게 된 거죠오오? 기억이 잘...."


기억을 더듬어 보자. 라즈로에게 이끌려 몇 가지 물건을 사들였지. 상점 입구 옆에 놓인 포탈 생성기에서 연희 씨가 지정한 다른 포탈을 타고 여기로 넘어왔다.


"여기 이름이 뭐더라아아."

"아까 했던 얘기 또 하시네. '백만 향의 정원'이요! 다시 머리 숙여요!"


그런 이름이었지. 누가 이름 붙였는지 몰라도 잘 지었네. 아무튼, 여기로 넘어와서 몇 걸음 걸었더니 무언가 왱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스읍, 하아. 이런 향기는 처음 맡아봐.


"우와, 이런 향수를 내다 팔면 떼부자가 되겠죠?"

"그것도 아까 네 번은 말했... 혜성 씨, 술버릇도 이래요? 아니, 대답은 됐고 상태창 열어서 확인 좀 해봐요."

"상태애애애차아아앙."


어디 보자. 근데 뭘 봐야 하지? 어, '약화' 항목에 '기묘한 향냄새'라고 쓰여있다. 말벌을 피하다 건드린 꽃에서 맡은 냄새 때문에 생긴 상태 이상인가?

아, 그 옆에 쓰인 시간이 점차 줄어들었다.


"30초, 29초, 28초, 27초!"

"왜 거기서 신나는 건데요! 어쨌든 얼마 안 남았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하던 정신이 점차 또렷해진다. 내가 부린 추태도 점점 확실히 기억난다. 헛소리 엄청나게 해댔네!


"전 이제 멀쩡해요. 머리 조심!"


이번엔 오른쪽 덤불에서 미사일 탄두 같은 벌침이 연희 씨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나는 검을 들어 벌침을 쳐냈다. 손이 저릿하다 못해 잠시 감각이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얼마나 이러고 돌아다녔죠?"

"모르겠어요.


계속되는 거대 곤충과의 추격전에 앞뒤 분간을 할 수 없는 밀림이 주는 피로감으로 우리는 빠르게 지쳐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릴 태운 동물, '갸르'가 지치고 있었다.


늑대와 코뿔소를 합친 듯한 생김새. 이마에 비스듬히 뻗은 은빛 외뿔, 폭신폭신한 짙은 회색의 털, 길쭉하게 뻗은 네 다리. 폐허 약탈자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는 그 동물에게 연희 씨가 격려의 말을 보냈다.


"조금만 더 버텨요! 지도를 보면 이쪽으로 쭉 가면 도착하니까, 거기까지 가면 저 녀석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연희 씨가 언급한 장소는 상점에서 내게 말했던 퀘스트를 받은 장소였다. 그래, 우린 지금 게임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인 NPC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오늘은 편하게 지내나 했더니만!


"와, 저 자식 끈질기네. 저게 곤충이야? 날아다니는 대포지! 어, 또 쏜다!"

"혜성 씨, 한 번 더 튕겨내요!"


나는 다시 한번 벌침을 튕겨냈다. 손에 가해진 충격에 하마터면 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하나밖에 없는 무기인데 절대 잃어버릴 순 없지.


"저기가 목적지예요."


숲을 벗어난 우리 앞에 둥근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바위산이 보였다. 그 앞에서 우리가 타고 있는 갸르와 같은 녀석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옆으로 피하시오!"


우릴 태운 갸르가 경고를 듣고 좌측으로 급선회했다. 우리가 피하자마자 갸르 무리가 입에서 푸른 불덩이를 발사했다. 몇 대 얻어맞은 포수말벌은 멈칫하더니 숲속으로 사라졌다.


"다 끝나서 하는 말인데, 혜성 씨가 멀쩡했다면 눈을 부라리는 그 기술로 쉽게 잡았을 거예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니지, 연희 씨가 폭발했으면 단번에 해결되는 일 아닙니까?"

"그랬다가는 근처의 벌들이 떼로 몰려왔겠죠?"


한 마디를 안 지는구나. 무서운 여자 같으니.


"무사한 모습을 보니 기쁘군."

"여러분도 잘 지냈죠?"


다시 아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희 씨가 나서서 인사를 건네는데, 갸르밖에 안 보인다. 뭐야, 누구랑 말하는 거지? 사람은 안 보이는데.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연희 씨가 갸르 무리를 가리켰다.


"놀라지 마세요. 여기 갸르들과 대화하는 거니까."

"거기 인간도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네. 난 이 지역 갸르 무리의 수장인 '돌란'이네."


말한다. 그 입을 직접 움직여 말하고 있다. 세상에!

나는 우릴 구해준 갸르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우린 곧 그들의 안내를 받아 바위산의 동굴 안으로 초대받았다. 숲 안쪽과 달리 향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 숨쉬기 편안했다. 시원한 공기 덕에 정신도 말끔해지고 좋네.


돌란은 우릴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우리와 함께 왔던 갸르는 휴식하러 간다고 하여 도중에 헤어졌다.


"저 친구가 마침 포탈 근처를 정찰 중이어서 다행이야. 저 인간은 뭐에 당했었다고? '사카락스'였나?"

"네. 하필 그 꽃이 코앞에 있더라고요. 전 피했지만, 혜성 씨가 향을 맡아버려서 일이 커졌죠."


누군 맡고 싶어서 맡았나.

돌란이 껄껄 웃으며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으니 되었지."라며 감싸주었다.


"자, 거기 앉으시게. 머리 조심하고."


돌란의 방도 그렇고 다른 방 모두 인간이 서 있기엔 천장이 너무 낮아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굽혀 들어가야 했다. 앉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돌란도 바른 자세로 앉아 연희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부탁한 의뢰는 어찌 되었나?"

"저 멀리 있는 사막의 폐허 쪽에서 필요한 걸 구했으니 이제 해결하려고요."

"오, 그거 좋은 소식이군. 근데 둘이서 되겠나?"

"잠깐, 저는 아직 어떤 일인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상점에서 지금까지 퀘스트에 관한 정보를 나눌 시간이 없어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 왔다. 이렇게 된 거 연희 씨보다는 의뢰한 돌란에게 듣는 게 더 이해하기 쉽겠지.


"자네들을 쫓아온 시끄러운 벌이 문제네. '백만 향의 정원'은 저들이 오기 전엔 비교적 평화로운 곳이었네. 세력 다툼이야 조금씩 벌어지긴 했다만, 지금처럼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정원의 향기가 매우 진해지더니 몇몇 종족이 전쟁 수준의 세력 다툼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갸르 종족은 정원 외곽에 있는지라 향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점차 치열해지는 세력 다툼 속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포수말벌 종족이 급속도로 세력을 넓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이 이번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두 가지 일이 너무 잘 맞물려 일어났거든. 우리 정찰대가 며칠간 목숨을 걸고 정원을 수색했지만, 그들 외에는...."


다른 종족들은 세력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서로 치고받느라 그랬겠지. 그럼 정원의 향기가 짙어진 원인은?


"그건 모르네. 단지 제일 멀쩡한 말벌 놈들이 그 일도 저지른 것으로 추측할 뿐이야."

"그래서 말벌 퇴치에 효과적인 특효약을 가져왔죠."


연희 씨가 나섰다. 특효약이라. 설마 살충제는 아닐 테고. 잊힌 폐허 무덤에서 뭘 얻은 걸까. 애초에 거기서 멀쩡한 게 하나라도 있나?


"그게 뭔데요?"

"채굴더지가 판 지하 통로 기억나요?"


당연하지. 거기서 진짜 죽을 뻔했는데.


"거기보다 더 아래에 아주 비밀스러운 연구소가 하나 있거든요. 폐허처럼 아무도 없고 겉으로는 을씨년스러운 장소죠."

"그래서 거기에 찾던 특효약이란 게 있었다?"


내 말에 긍정한 연희 씨는 두 손을 가방에 넣어 조심스레 무언가를 꺼냈다. 빛을 발하는 둥근 유리구슬이었다. 작은 태양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그 구슬은 돌란의 방이 후덥지근할 정도로 뜨겁게 데웠다.


"이건 대체?"

"연구소에서 본 기록에 따르면 작지만, 고출력에 반영구적인 동력원을 개발하는 중이었다고 하더군요. 아쉽게도 그 목표는 무기 개발로 목적이 바뀌었어요."


그럼 이 쪼끄마한 구슬이 무기라고?


"폭탄... 인가요?"

"벌집을 다 태워버릴 아주 강력한 폭탄이죠."

"그런 걸 어떻게 찾았나? 대지 아래 깊숙한 곳이라면 위치를 알아내는 것도 힘든 일이 아닌가?"


돌란의 질문에 연희 씨는 비밀이라고 답하며 유리구슬을 도로 집어넣었다. 따로 정보통이 있는 거겠지? 발이 넓으시네.


문득 궁금했다. 강연희, 이 사람은 과연 이 게임에 얼마나 오랫동안 참가했을까?


"왜 그러세요?"

"그냥 연희 씨가 이 세상에서 지낸 시간이 제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지 않을까 궁금해서."

"더 친해진다면 얘기할 수도, 아닐 수도?"

"뭡니까, 그게."


하여간 파악하기 힘든 사람이다.

얘기가 딴 데로 샜군.


"하던 얘기 마저 하죠. 그래서 적의 본거지는 어딘가요?"

"그게 문제라네."

"네? 그사이에 다른 일이 있었어요?"


연희 씨도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보기에도 돌란은 상당히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인간 외의 동물이 짓는 표정을 내가 어찌 이해하겠냐마는, 일단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연희 양이 떠나있을 동안에 우리는 말벌집을 찾았다네. 내 장담하는데 그만큼 정교하게 지어진 벌집은 처음이야. 그렇게 많은 포수말벌이 모인 것도 처음 봤고."

"세력을 넓혔다고 했으니 본거지에 모인 벌의 수는 상상을 초월하겠죠. 그게 문제군요?"


돌란은 고개를 저었다.


"직접 보는 게 낫겠군. 이제 출발할 정찰대가 한 무리 있으니 같이 가지."



***



돌란과 정찰대와 함께 다시 정원 내부로 들어갔다. 나는 우릴 공격한 말벌이 아직 남아있을까 걱정했지만 누구의 기습 하나 없이 안전하게 이동했다.


정원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갈수록 계속해서 코를 어지럽히는 향기와 달리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정원이란 이름이 아깝네.


"날이 어두워지는군.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예!"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득하게 높이 솟은 나무 탓일까. 분명 밤이 되려면 멀었음에도 어둠이 빛을 몰아냈다. 나는 한껏 긴장하여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앞서 나가던 돌란이 달리기를 멈추자 정찰대는 그를 가운데에 두고 둥그렇게 모여 주변을 경계했다. 왜 멈췄지?


"무슨 일인가요?"


연희 씨가 돌란의 곁으로 가 말을 걸었다. 그러자 돌란은 주변을 쓱 훑더니 한숨을 쉬었다.


"도착했네."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이상하다. 이 게임에 참여한 순간부터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것 같은데. 왜 저 말이 이해하기 힘든 걸까?


"여긴 벌집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데요?"

"이전엔 이런 공터가 아니었지. 여기가 벌집으로 꽉 들어찼었으니까. 상상이 가나?"


이 넓은 공터가 전부 벌집이었다고? 축구장보다 더 큰데?

연희 씨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넋 놓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는다.

뭐야, 무섭게 왜 그래!


"어디로 숨었든 상관없죠! 결국, 정원 어딘가에 있긴 하니까, 다 불태워버리면!"

"안 돼요, 안 돼!"

"진정하게나, 연희 양!"


이 여자가 또!

돌란도 미친 연희 씨를 본 적이 있는지 네 발을 동동 구르며 말렸다. 지금 보니 은근히 귀엽네. 예전에 친구네 집에서 보던 삼색 고양이가 절로 생각났다.


"안 말리고 뭐 하나!"

"여기부터 날려볼까아아아!"

"연희 씨, 기술 쓰지 말아요! 여기서 폭발은 안 돼!"


갸르 정찰대 일부까지 합세해서 겨우 진정시켰다. 이 사람, 기술 때문이 아니더라도 폭탄이긴 하네. 어우, 심장 떨려.


"제 손 잡으세요. 절 따라 하세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고...."

"이제 됐어요. 덕분에 사고 안 쳤네요."

"낮에 제 머리를 지켜준 빚을 갚았다고 해두죠."


이제 의문을 해결할 시간이다. 그 수많은 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것도 벌집 하나 안 남긴 채로 말이다. 돌란의 말에 따르면, 고작 이틀 사이에 전부 사라졌다고 했다. 그런 대규모 이동을 쥐도 새도 모르게 한다는 게 가능한가?


그런 생각을 방해하려는 것인지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이제껏 맡은 적 없는 역겨운 냄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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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흑마술사의 도시, 데드사인 - 1 - 20.10.30 15 0 12쪽
17 하수도의 대장장이 - 4 - 20.10.29 15 0 13쪽
16 하수도의 대장장이 - 3 - 20.10.28 14 0 12쪽
15 하수도의 대장장이 - 2 - 20.10.26 15 0 12쪽
14 하수도의 대장장이 - 1 - 20.10.25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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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진범은 누구인가 - 4 - 20.10.23 14 0 13쪽
11 진범은 누구인가 - 3 - 20.10.22 19 0 12쪽
10 진범은 누구인가 - 2 - 20.10.21 1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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