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바다
39.
코인 대란 때 누가 가장 돈을 많이 벌었냐는 장영주의 말에 배아라가 눈을 흘겼다.
“그야 당연히 코인거래소지. 설마 아이템거래소라도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하하하. 그야 당연히 아니지. 아이템 시세 정도는 표기해주는 게 좋겠지만, 거래소를 하면 높은 확률로 망하지 않을까?”
“그렇겠지. 나도 거래소는 아니라고 봐.”
장배부부의 대화를 듣던 전예지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엥? 거래소 하면 안 돼? 난 되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업계 거품 끼면 수수료장사만큼 좋은 거 없지 않아?”
“아이템은 시세가 고평가된거지 거래 횟수 자체는 많지 않거든. 코인처럼 쪼개팔기도 안 되고 무엇보다 현물이 배송돼야 거래가 완료되니까.”
“아라 말대로야. 코인 하나가 100번 거래되면 매도자 매수자 양빵으로 200번의 수수료가 나가면서 모두가 손해보고 코인거래소만 돈 버는 구조지만, 아이템은 거래 수가 적으니까 거래소 입장에서 돈 벌기 쉽지 않지.”
“게다가 현물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도난이나 분실, 파손의 염려까지 있으니까 거래소 운영하면 손해 볼 확률이 높아. 명백한 하이리스크 로우리턴 사업이지.”
“하긴... 이미 아이템은 i-bay나 인터넷 소더비 같은 해외 경매사가 꽉 쥐고 있죠. 국내매물에 비해 해외매물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요.”
“아하! 근데 거래소 얘기는 왜 한 거야?”
“아. 마저 이야기하자면 코인 대란 때 가장 많이 번 곳은 거래소가 맞아. 그럼 진짜 문제. 두 번째로 많이 번 건 누구일까?”
“두 번째?”
가장 많이 번 게 거래소라는 건 답이 쉬운 질문이었다.
허나 두 번째로 많이 번 게 누구냐는 질문은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어... 권도현 아닐까? 그 사람 돈 많이 벌었잖아.”
“그 사람이 돈 가져간 걸 벌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유명한 스캠코인 사기꾼의 이름까지 언급되는 가운데, 곰곰이 고민하던 배아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픽카드 제작사... 이려나?”
“정답이야. 결국 코인 채굴을 위해선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니까. 실제로 코인 대란 때 1600억 달러까지 뛰었던 MVIDIA 시총은 코인 거품 빠진 이후 매물 안 팔리니까 800억까지 떨어졌어. 당시 환율로 무려 90조나 거품이 낄 만큼 수혜를 받았다는 거지. 뭐. 그것도 다 옛말이고 지금 시총은 1조 달러 넘었지만 말야. 하하하.”
“... 그래서?”
“중요한 건 이거지. 어떤 재화에 거품이 끼면 재화 생산을 위한 생산라인이 엄청난 수혜를 받는다. 실제로 코인 대란 때 그래픽카드 품귀현상 일어났지?”
“그렇지.”
“그럼 지금 아이템 시세 버블의 경우 생산라인은?”
“게이트죠.”
“그럼 게이트의 가치는 올라가겠지?”
“응응.”
“실제 우리 매물들 보면 게이트 가치 올라간 걸 볼 수 있어. 현상금이 줄었거든.”
“그치. 공략하고자 하는 사람은 늘었는데 게이트 수는 일정하니까.”
“맞아. 게다가 한게공 공식 매물로 가도 원래 1600~1800만원 사이에서 낙찰되던 D급 게이트는 현재 2500만원까지 시세가 올라갔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래픽카드 품귀현상 때랑 비슷하게 게이트 품귀현상이 일어날 거야. 우린 그걸 노릴 거고.”
게이트 품귀현상.
현재 상황을 보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예측이었다.
당장 우리 동네 용사 채널의 한 댓글 ‘현실쌀먹 드가자’ 좋아요가 3만 1000인건만 봐도 사람들의 한탕주의가 얼마나 열이 올랐는지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단순히 여기저기 세를 펼치고 있던 유해조수 뉴트리아가 웅담 성분이 있다고 밝혀진 이후 씨가 말랐다는 것만 봐도, 아이템 가진 게이트 속 몬스터들의 운명은 뻔했다.
허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 게이트 품귀현상이 왔을 때 어디서 게이트를 조달하시려고요?”
품귀현상이 오면 게이트 수가 줄 건데, 게이트를 대체 어디서 구해 가져올거냐는 질문!
단순하지만 본질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코인 대란은 곧 그래픽 카드 대란.
당시의 그래픽 카드 제조사들이 모든 생산라인을 풀가동했음에도 모든 수요를 맞출 수 없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누가 봐도 답이 없는 상황.
허나 장영주는 늘 그렇듯 싱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간단해. 바다야.”
“... 바다?”
“응. 우린 해양 게이트 쪽으로 시선을 돌릴 거야.”
“... 해양 게이트?”
“응. 잠깐 적어가며 이야기할까?”
그리 말한 장영주가 화이트보드를 꺼냈다.
“일단 해양 게이트를 논하기 전에 항공안전법의 2조 12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
- 12. "영공"(領空)이란 대한민국의 영토와 「영해 및 접속수역법」에 따른 내수 및 영해의 상공을 말한다.
“여기서 영토와 영해를 분리해서 말하지? 또 수상에서의 수색·구조 등에 관한 법률 22조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
- 22조(외국구조대의 영해진입 허가 등) ① 외국의 구조대가 신속한 수난구호활동을 위하여 우리나라와 체결한 조약에 따라 우리나라의 영해ㆍ영토 또는 그 상공에의 진입허가...
“마지막으로 게이트산업진흥법 3조는 이래.”
- 3조.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게이트는 한국게이트공사의...
장영주가 글을 써가는 와중에 배아라가 제지했다.
“그래서, 하고픈 말이 뭔데?”
“하하하. 별 거 아냐. 단지 법 조항들에서 영토, 영해는 별개라고 구분되어 있는데 게이트산업진흥법상 한게공 소유의 해양 게이트는 오로지 ‘영토’내라는 거지.”
“그렇다는 건...”
“맞아. 현재의 해양 게이트들은 BCD급이라 할지라도 법적으로 한게공 소유가 아냐. 영토 내의 게이트들과 달리 경매 없이 맘대로 공략해도 되는 거지. 심지어 형법에는 영토, 영해, 영공을 포함하는 영역이라는 법적 단어가 있어. 그런데도 영토라 적혀 있다는 건 영해의 게이트는 공짜로 공략해도 된다는 말 아닐까? 하하하.”
장영주의 말에 배전방 3인조가 핸드폰을 꺼내 팩트체크를 했다.
일말의 거짓 없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법령들이 영토와 영해를 구분하고 있는데 한국게이트진흥법에 적힌 게이트는 ‘영토’내의 것만 다루고 있다는 것조차 말이다.
“진짜 영주 형 말대로네요... 해상 게이트에 관한 법률 조항은 단 하나도 없어요.”
“하하하. 게이트산업진흥법이 워낙 급하게 만들어진 법이기도 하고, 예전에 해상 게이트는 존재하지도 않았잖아? 뭐. 암튼 아이템 대란이 오며 게이트 품귀현상이 오면 사람들은 게이트가 어딨냐 시선을 돌리겠지?”
“그으...렇겠징?”
“심지어 우동이나 양파나 비슷비슷하게 게이트앱 정보를 제공하면서 더더욱 게이트가 고파질 거야. 그 때 우동만 해양 게이트 정보를 제공한다면? 심지어 시세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D급 이상의 게이트까지 공짜라면?”
“게이트앱 업계에서 양파, 파파야 할 거 없이 경쟁자를 다 나가떨어뜨릴지도 모른다... 이 말이지?”
“바로 그거야. 거품이 왔을 때 이득 보는 건 항상 두 부류지. 운 좋은 놈, 또 거품이 꺼진 이후를 대비한 놈. 이 중 우리는 후자가 되는 거야.”
‘세상에... 역시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역시 영주 형이야! 믿고 있었다구!’
점차 깊어가는 전방듀오의 충성심!
한편 듣다가 고개를 몇 번 끄덕인 배아라가 물었다.
“그래서 해양 게이트 사업은 어떻게 진행할 건데? 일반인들과 해양 게이트를 연결시킬 방법이라도 있어?”
배아라의 질문에 장영주가 웃었다.
“하하하. 사실 없어. 아직 난 해양 게이트에 대해 잘 모르거든.”
“... 모른다고?”
“응. 뭐. 사업할 때 모든 걸 다 알고 할 순 없잖아? 대신 잘 아는 사람의 의견을 구하면 되지.”
“잘 아는 사람?”
“응. 뭐. 게이트 공략에서 이론 논할 때 오성 출신을 빼놓을 수 없잖아? 하물며 지금 자격증 사업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장영주가 모두에게 휴대폰 화면을 비쳤다.
[ 영미 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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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영덕의 한 게 전문집에선 J&B테크의 장배전방 4인조와 용사 아카데미의 장영미가 만나서 게 다리를 뜯고 있었다.
“냠냠. 아니. 우리 영주가 웬일로 누나보고 여행을 다 오자고 권하는 거지? 뭐. 누나야 좋다마는 너 원래 여행다니는 거 싫어하잖아.”
“하하하. 뭐. 살다 보면 이런 시기도 있는 건 아닐까?”
“흐음. 수상한데. 게다가 영주 너 새우나 게 같은 갑각류 별로 안 좋아하잖-”
“아. 말 끊어서 미안한데 누나. 나 부탁이 하나 있어.”
“부탁? 무슨 부탁? 누나한테 말만 해. 이번엔 진짜 할 수 있는 건 다 들어줄 테니까!”
아이템 대란 이후 용사 아카데미 수강신청이 10배 이상 늘어나며 기분 좋은 장영미!
심지어 이 떡상이 우리 동네 용사 채널에서 기인했으니, 안 그래도 사랑스럽던 막내동생 장영주가 이제는 이뻐 죽겠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하하하. 누나가 다 들어준다니까 안심하고 말할게. 누나 해양 게이트 알지?”
“해양 게이트? 알긴 알지. 근데 왜?”
“우리 이번에 그쪽으로 사업 확장 해보려 하거든. 혹시 도움 될 만한 정보 있을까?”
“어... 정보라 할 만한 건 없는데? 음하하하.”
장영미의 말에 게다리를 분쇄하던 장배장전 4인조의 입이 멈췄다.
“... 없다고?”
“웅. 오성에선 해양 게이트 공략한 적 없고 공략도 안 하거든. 법적으로 애매하다나, 뭐라나? 조던 필립슨 교수도 그거 관련해서 연구 낸 적 없고. 솔직히 해양 게이트 대해선 누나도 잘 몰라.”
원래는 장영미의 조언을 바탕으로 해양 게이트로 수익성을 내고자 했건만, 사업 시작 전 조사단계부터 무너진 J&B테크!
한편 그런 4인방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영미는 게다리 속 살을 스푼으로 긁어내며 말을 이었다.
“뭐. 세경에서는 제법 공략하는 것 같지만 말야.”
“세경에서?”
“응. 사실 내가 우리나라에서 게이트 공략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자부하지만, 부동의 넘버원은 지금 세경 하이텍스에 있거든. 그 사람이라면 해양 게이트에 대해 좀 알지 않을까?”
믿었던 장영미마저 해양 게이트에 대해선 잘 모르는 상황.
실제로 해양 게이트는 11월 발생한 반면 장영미의 오성 퇴사는 12월.
당시의 해양 게이트는 한국 영해(領海) 주변이 아니라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해(公海)에만 발생했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누나. 혹시 그 세경의 게이트 공략 일인자라는 사람이랑, 나 다리 좀 놔 줄 수 있어?”
“흐음. 다리야 놔 줄 수 있지만...”
말꼬리를 흐리는 장영미.
분명 1분 전에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준다 말했던 그녀가 배아라를 보며 음흉한 눈빛으로 말했다.
“뭐.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영주 말고 우리 올케가 얘기해준다면 들어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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