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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연재수 :
1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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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48,632

작성
21.09.2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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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2. 벌점 (1)

DUMMY

62.


그날 밤 10시. 매점 앞에 서 있으려니까, 어둠을 뚫고 누군가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어이! 꼬맹이 사감! 나왔네?”


“... 나와야지.”


매점에서의 딜은 결국 성립됐다. 뭐, 하루 더 있어야 한다면 봉사시간을 벌어가는 게 이득이니까.


“좋아. 그럼 약속대로 야식 스팟 돌러 가 볼까?”


약속이라 해 봐야 별거 없다. 먼저 에이미 루카가 ‘야식 스팟’들을 돌면서 안내해 주면, 그 이후에 내가 누나라 불러 주기로 한 게 전부니까. 물론 나는 약속을 그닥 잘 지키는 성격은 아니다.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은 깨는 게 신조인지라.


“그래, 그래! 일단 구교사 직원휴게실부터 가자. 내가 오면서 살짝 보고 왔는데, 거긴 벌써부터 치킨 냄새가 진동을 해. 아마 열 명은 있을걸?”


한편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서 쫄레쫄레 뛰어가는 에이미 루카. 나는 벌점매뉴얼을 챙긴 채, 그녀를 따라갔다.


---


에이미 루카가 안내한 ‘야식 스팟’은 구교사 직원휴게실, 구교사 화학실, 유도장, 운동장 비품준비실 옆의 그늘진 곳. 총 네 군데였다.


네 곳 모두 야식을 게걸스레 탐하던 여고생들 무리가 있었지만.


“아. 들켰네. 봉사하는 걔다.”

“쳇. 자. 벌점 카드.”


“...”


내가 나타났음에도 그녀들은 그저 자기 벌점 카드를 내밀고, 허겁지겁 야식을 자기 목구멍으로 넘기는 데만 집중할 뿐이었다. 에이미 말대로, 벌점이 내일 초기화돼서 그런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운동장 비품준비실 옆의 그늘진 곳을 마지막으로, 에이미 루카가 발설한 ‘야식 스팟’들을 모두 돌았다.


[ 정해진 시간 외에 음식을 주문하는 행위 - 벌점 5점 x 44 ]


이쯤 되면 약간 화가 난다. 내가 4일간 날밤 새가며 벌어댄 벌점이 고작 37점인데, 야식탐방 한 번 한 걸로 220점을 벌다니. 봉사시간으로 치면 2200분. 그러니까... 36시간이 조금 넘는다. 하루가 24시간인데 말이다.


“와. 오늘 애들 진짜 많이 시켜먹네. 한 40명은 잡지 않았어?”


한편 ‘야식 스팟’으로부터 적당히 떨어지자, 위치만 알려주고 눈에 띄지 않던 곳에 숨어 있던 에이미 루카가 나타난다.


“그 정도.”


“자 그럼... 이제 약속대로 누나라 해봐. 누. 나!”


“... 눈알.”


“어구어구! 잘했어! 이쁜 말 하니까 얼마나 귀여워!”


“...”


열심히 내 볼을 잡아당기는 에이미 루카. 이 여자 나를 열다섯 살이 아니라 무슨 다섯 살로 아는 것 같은데.


아무튼 서로 볼일은 다 끝났으니, 에이미 루카를 ‘원래 있어야 할’ 기숙사로 통금 전에 데려다 주는 길. 에이미 루카가 갑자기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묻는다.


“꼬맹이 사감. 너 그거 알아? 내가 왜 너한테 누나 소리 듣고 싶었는지?”


“아니.”


“궁금하지?”


“전혀.”


“이 누나가 말이야. 사실은 너 만한 동생이 있어. 딱 세 살 차이인.”


“...”


“근데 말이야. 나. 동생 본지 꽤나 오래됐어. 되게 말도 잘 듣고 착한 동생이었는데.”


“아. 예.”


“근데 나흘 전이었나, 닷새 전이었나? 아무튼 지나가다가 널 보는데, 딱 너가 내 동생이랑 너무 닮은 거야. 그래서 누나 소리 한 번 듣고 싶었어.”


그리 말한 에이미 루카는, 갑자기 한 발 멀리 떨어지더니.


“... 참고로! 내 동생이 너보다 훨씬 잘생겼고, 훠얼씬 말도 잘 듣고! 훠어어어얼씬 착했거든? 그건 알아야 돼!”


라 웃으며 말한다. 나 역시.


“... 그래서 어쩌라고.”


무심히 답한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니. 떽! 누나가 이쁜 말 쓰랬지? 아무튼 그러니까, 한 번만 더... 누나라 해 봐. 히히.”


“... 기숙사 다 왔다. 들어가기나 해.”


---


이튿날. 아니, 이튿날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시간이 조금 흘러 새벽 1시.


어제까지만 해도 이 시간의 나는 교문 앞에서 누구 무단 외출 하는 년 없나 감시하고 있었겠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돌아가서 누나 생각나면 연락해!”


“... 들어나 가.”


에이미 루카를 기숙사로 데려다 준 이후로, 나는 계속 여자기숙사 입구가 보이는 곳에서 잠복 중이니까.


“웃기고 있네. 뭐? 동생 생각이 나? 누굴 바보로 아나.”


벌점을 많이 번 건 좋은 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에이미 루카의 행동은 이상하다. 쌩판 모르는 내게 ‘야식 스팟’을 공개한 건, 엄밀히 말하면 자기 친구들 팔아가면서 적인 나한테 뭔가를 떠먹여 준 행위니까. 친구를 팔아 적을 도와준다는 건 단 하나.


“친구들 미끼로 쓰고 지가 뭘 하겠다는 의미지.”


원래 짐승으로부터 도망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옆에 있는 누군가를 밀어 넘어뜨리는 것이다. 짐승은 배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나서지 않으니까.


인간이라고 해서 짐승이랑 별반 다를 건 없다. 낮에 일부러 작게 져서 상대를 방심시키고 밤에 전력으로 야습하는 게 병법 중 하나인 것처럼, 뭔가 하나 달성하면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트로이의 목마도 비슷한 메커니즘이고.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에이미 루카는 지 친구들 팔아넘겨서 나를 방심케 하고, 오늘 밤에 뭔가 하려는 게 분명하다. 그런 의도가 없다면, 나한테 이런 이득을 가져다줄 이유는 하등 없으니까. 감성팔이를 좀 섞으면 속을 줄 알았나본데, 나는 그런 거 안 통한다.


“좋아. 에이미 루카 너 나가려는 거 잡고 150분 챙겨간다.”


물론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메시지, 전화, 영상통화 관련해 모든 알람을 꺼 놨다. 다 잡은 사냥감을 쓸데없는 울림으로 놓치는 건 사양인지라.


아무튼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 나는 눈에 쌍심지를 켠 채, 여자기숙사 입구를 노려본다.


---


얼마나 지났을까.


“...”


도끼눈으로 여자기숙사 출입구를 계속 노려봤지만, 에이미 루카는커녕 쥐새끼 하나 나오지 않았다. 이 여자... 꽤나 신중에 신중을 가하는 군. 하지만 인내심 싸움에선 지지 않는다.


“혹시... 설마 이 여자가 진짜로 내게, ‘이유 없는 호의’ 같은 걸 베푼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닐 거다. 아니어야만 한다. 나의 세계에선 ‘이유 없는 호의’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지금 몇 시지...


[ 현재시각 - AM 03 : 11 ]

[ 부재중 전화 9건 ]

[ 부재중 영상통화 4건 ]

[ 읽지 않은 메시지 139건 ]


어느덧 세 시가 넘었군. 그간 마나블렛에는 수많은 알림들이 쌓였다. 내용들은 뭐... 별 거 없다. 정명훈이랑 김석봉이 [레벌레이터 프로젝트] 관련해서 보낸 거 몇 건이랑.


[ 유링링 -> 권민성 : 선배 화나셨어요...? ]

[ 유링링 -> 권민성 :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


링링이 지 혼자 착각한 거.


[ 한겨울 -> 권민성 : 야! 뭐하는데 답장이 없냐! 너 혼자 뭐 먹고 있지! ]

[ 한겨울 -> 권민성 : 자냐? ]

[ 한겨울 -> 권민성 : 진짜 자? ]

[ 한겨울 -> 권민성 : 일어나면 연락해! 꼭! ]


한겨울이 자문자답하는 게 전부다.


원래라면 답장할 가치도 없는 메시지들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안 나오니, 일단 답장이라도-


부스럭.


순간 기숙사 쪽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작전’을 건 년이 주위를 두리번대고 있다. 그럼 그렇지.


---


사가각- 사가각-


“하아- 하아-”


에이미 루카는 잡초 무성한 성 에피토아의 뒷산을 달린다. 물론 그냥 미친년처럼 신나가지고 달리는 건 아니고 방향을 계속 확인하며 달리는 게, 명백한 목적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나는 그 뒤를 쫓고 있다.


스으으으-


어젯밤만 해도 요란하게 울어대던 개구리와 매미는 다 피서라도 갔는지 조용하다. 밤바람만이 숲속을 휘몰아친다.


바스락- 바스락-


힘겹게 산 위를 올라가는 에이미 루카. 나는 그런 그녀의 뒤를 쫓는다. 산 속이 조용한 만큼 나의 기척도 조금은 티가 나지만.


휙-!


“... 바람소리였나?”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한테 들킬 정도로 티가 나지는 않는다. 애초에 ‘저쪽 세계’에서의 내 주임무는 보통 잠입- 아니. 지난 일은 각설하자.


아무튼 산을 타고 있는 에이미 루카는 이미 성 에피토아의 부지 이외의 땅을 밟은 상태이기에, ‘무단 외출’을 범했다. 이것만으로도 벌점 15점. 지금 그녀를 붙잡아도 봉사시간 150분은 확보 가능하다. 하지만.


“하아- 하아-”


나는 숨이 가쁜 채로 달려가는 에이미를 딱히 잡지 않는다. 이유는 별 거 없다. ‘무단 외출’로 인한 15점 이상의 벌점을 받을 짓을 하진 않나 확인하기 위해서다.


“헉-! 헉-!”


숨차 죽으려는 에이미 루카. 사실 내가 잡역부나 다름없는 사감 업무를 시작하고 셋째날이었나, 저 여자가 운동장에서 볼 잡아당겨도 되냐고 하는 바람에 추격전을 벌인 적이 있다. 그 결과, 에이미 루카는 링링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체력을 가진 여자라는 게 확인됐지.


그런 에이미 루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산을 탄다는 건, 지금 저 여자의 목적이 새벽 운동은 아닐 거고, ‘평범한’ 무단 외출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꿀꺽.”


산을 타고 거의 30분 정도 지나서, 에이미 루카는 기어코 산을 넘었다. 그리고 그녀가 도착한 곳은 한 도로. 숨을 헐떡이는 에이미를, 내가 산 위에서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끼이이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10인승 정도 돼 보이는 중형차가 도로 저편에서 나타나, 에이미 앞에서 멈춘다.


덜커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중형차. 그곳에서 나온 것은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다. 그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안고, 에이미는 딱히 거부하지 않는다.


“에이미. 잘 지냈어? 2주 만이지?”


“예. 요꼬 아줌마.”


“그래. 얼렁 가자. 모두들 기다리고 있어.”


“... 네.”


뭐. 스킨십에 적극적인 사장이 운영하는 단골 중국집 정도면, 상호간에 저런 격한 포옹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만 확실히 지금 보이는 차는 중국집 차량은 아니다. 그 이유는.


“그럼 이제 에이미도 탔으니, 마지막이지? 멜슨.”


“좀만 쉬자고. 벌써 네 시간이나 운전했어.”


차에 운전수가 있다.


운전수가 있다는 것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아니라는 것. 저번 학기에 들었던 우주 개척의 역사와 이해에 따르면, 우주력 440년에 발표된 ‘자동주행 의무화 조례’에 의해 모든 탈것의 운전은 AI에게 맡기며, 인간은 운전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 말은 곧, 방금 에이미 루카가 탑승한 차는 불법적으로 개조된 차라는 거다. 일개 중국집에서 불법개조한 차를 쓰진... 않겠지.


“어허. 너의 고통은 나의 고통. 나의 고통은 너의 고통. 너만 힘든 거 아냐.”


“... 예이. 예. 가자고. 2주 만의 기도회인데, 이렇게 진 빠진 채로 하는 게 말이나 되는지.”


기도회?


“싱크로 떨어지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가자. 모두 기다리고 있어.”


“... 그래. 그래. 나야 뭐 늘 그런 역할이지.”


덜컥-! 부르르릉-!


비쩍 마른 아줌마, 에이미, 운전수 모두 차에 타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 시동이 걸린다. 무단 외출이 벌점 15점이고... ‘학생 신분에 맞지 않는 비이성적 행위’가 벌점 20점... 안 따라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발을 옮기던 찰나.


[ 마나를 되찾았습니다. ]

[ 마나량 : 6141 (-19062) -> 6241 (-18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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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6. 서큐버스. 스테이. 나이트 (5) +4 21.09.25 3,089 114 12쪽
57 55. 서큐버스. 스테이 나이트 (4) +10 21.09.25 3,105 124 9쪽
56 54. 서큐버스 스테이 나이트 (3) +6 21.09.24 3,120 99 11쪽
55 53. 서큐버스 스테이 나이트 (2) 21.09.24 3,205 105 12쪽
54 52. 서큐버스 스테이 나이트 +2 21.09.24 3,492 107 13쪽
53 51. 깊은 밤을 날아서 (2) +6 21.09.23 3,389 115 17쪽
52 50. 깊은 밤을 날아서 (1) +1 21.09.23 3,324 115 13쪽
51 49. 학기말평가 (6) +10 21.09.23 3,336 119 11쪽
50 48. 학기말평가 (5) +4 21.09.22 3,316 118 10쪽
49 47. 학기말평가 (4) +3 21.09.22 3,376 118 13쪽
48 46. 학기말평가 (3) +2 21.09.22 3,436 116 10쪽
47 45. 학기말평가 (2) +3 21.09.21 3,495 115 12쪽
46 외전 - 세르부스 +4 21.09.21 3,560 119 15쪽
45 44. 학기말평가 (1) +4 21.09.21 3,561 130 14쪽
44 43. 수작 (8) +7 21.09.21 3,548 118 13쪽
43 42. 수작 (7) +6 21.09.20 3,540 125 11쪽
42 41. 수작 (6) +4 21.09.20 3,559 120 14쪽
41 40. 수작 (5) +3 21.09.20 3,659 107 12쪽
40 39. 수작 (4) +4 21.09.19 3,687 116 15쪽
39 외전 - 교수회의 +6 21.09.19 3,745 120 15쪽
38 38. 수작 (2) +4 21.09.19 3,813 1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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