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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연재수 :
1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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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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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47
글자수 :
948,632

작성
21.09.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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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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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글자
11쪽

42. 수작 (7)

DUMMY

42.


도서관에서 마나과학동으로 가는 길엔 아직까지도 벚꽃 날린 흔적이 만연했다. 6월 말인데도 치워지지 않은 봄의 사정이 흩뿌려진 길에서, 나는 링링과 걷고 있다. 원래라면 멘토링 끝나고 헤여져야 할 사이지만, 링링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부탁’하는 바람에 때문에 말이다.


따라오고 싶다고 해 놓고 한 걸음 반 정도 거리를 둔 링링.


“링링. 근데 왜 날 따라오고 싶다 한 거야?”


“... 네? 네?”


“그야 링링은- 읍!”


주머니에서 소나가 튀어나오자마자, 녀석의 입을 틀어막는 링링. 뭐, 소나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과자 먹는 것과 헛소리뿐이니, 또 이상한 소리나 지껄이려 했던 게 분명했다.


“서... 선배. 소나가 막... 민폐를 끼치거나 그러진 않죠...?”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물어오는 링링에게, 나는 나긋나긋한 말투로 내 의사를 전한다.


“그 녀석이 민폐야 뭐 늘 끼치지. 아니, 그보다, 말 돌리지 말고. 왜 따라오고 싶다 한 거냐니까.”


“그... 그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슈마허의 두 딸(한 명은 양녀지만), 유아라와 링링은 말투로 사람 답답하게 하는 재주만큼은 인정해 줘야 한다. 그래. 언제까지 니가 말 안 하고 배기나 하는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링링은 고개를 푹 떨구며 중얼거리듯 실토한다.


“사... 사실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물어보고 싶은 거? 뭔데?”


“저... 그... 선배랑 한겨울 선배랑-”


띵디리딩딩- 딩딩딩딩~ 띵디리딩딩- 딩딩딩딩~


순간 울리는 마나블렛. 메시지와 다른 이 알림음은 영상통화다. 이니시움 입학 이후 영상통화 걸려온 전례가 없는데, 대체 어떤 새끼가 걸었나 하고 마나블렛을 꺼내자 떠오르는 창.


[ 영상통화가 왔습니다. ]

[ 발신자 : 한겨울 ]


그럼 그렇지. 한겨울 얘는 귀가 밝은 건지, 내 마나블렛을 해킹이라도 한 건지 자기 이름 석 자 튀어나오니까 곧바로 전화를 건다.


“링링. 잠깐 통화 좀 할게.”


“네...”


[ 연결되었습니다. ]


마나블렛에서 홀로그램이 팍 하고 튀어나오고, 그 안에 한겨울과 정명훈이 비친다. 그것도,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어깨동무를 한 채 말이다.


“... 니들 뭐 하냐?”


[ 야! 권민성! 학기말평가 조 봤... 어? 갠 1학년 유링링 아냐? 걔랑 왜 니가 같이 산책하고 있냐? ]


“말했잖아. 월요일엔 멘토링 한다고. 링링은 내 멘티야. 그리고 산책도 아니고.”


[ 오~ 권민성. 후배를 이름으로 부르네? ]


“됐고. 학기말평가 조는 봤냐?”


[ 아! 맞아. 그 얘기하려고 영통 걸었는데! 당연히 봤지! 봤으니까 이렇게 명훈이랑 춤추고 있지! ]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답하는 한겨울.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묻는다.


“니들은 뭐가 그리 신났냐?”


[ 뭐가 신나냐니? 우리들 너랑 같은 조잖아! 진급을 못할 수가 없게 됐는데 어떻게 안 신나겠냐? ]


“...”


[ 심지어 명훈이도 같은 조잖아? 명훈이 며칠 전만 하더라도 중간평가 때문에 진급 못한다고 우울해했는데, 권민성 너랑 같은 조면 명훈이도 진급 100%지! ]

[ 민성 군! 잘 부탁한다! ]


얘네 둘은 우리 조가 다른 조에 비해 월등히 높은 난이도의 과제를 받게 될 거란 걸 알고는 하는 말일까. 애초에 교수들이 학기말평가를 ‘팀 과제’로 낸 이유가, 나랑 정명훈을 숙청하기 위해서인데.


“이번 과제 빡셀걸.”


[ 괜찮아. 괜찮아! 우리 조엔 학년 수석님이 계신데! ]

[ 덧붙여 민성 군은 마윤재 안보부장님으로부터 직접 표창도 받은 몸 아니던가! ]


에휴. 그놈의 낙관, 낙관. 아주 낙관의 끝이다. 뭐 두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기도 하고, 근본 없는 비관보다는 차라리 낙관이 나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에 결과를 두고 생각해야 할 일. 나는 짐짓 화제를 돌린다.


“... 그나저나 김석봉은 어딨어?”


[ 석봉이? 아까까지만 해도 소파에서 누워 자다가, 세미나 늦었다면서 후다다닥 달려나가던데? ]


“뭐야. 그럼 나 가도 세명뿐이야?”


[ 그렇지? ]


이건 좀 큰일이다. 현재 마나과학동 G-411에서 매일같이 돌아가는 카드놀이, 티츄는 4인이 아니면 게임 자체가 성립을 안 한다. 마작에서 가장 어려운 게 4명 모으는 거란 말이 있듯, 티츄 또한 마찬가지. 이렇게 김석봉이 빠져버리면, 내가 가더라도 나, 정명훈, 한겨울 세 사람뿐. 그럼 게임이 안 돌아가는... 아니.


남은 한 자리를 보충해 줄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


“...”


그것도 바로 옆에서 엄지손가락을 꼼지락대면서 말이다. 나는 그런 링링에게 묻는다.


“링링. 나 마나과학동 갈 건데, 너 거기서 할 거 없지?”


“네? 네...”


“그럼 카드놀이라도 할래? 하는 법은 가르쳐 줄게.”


“카... 카드놀이요...? 아... 네! 꼭 하고 싶어요!”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뭔가 오늘의 링링은 적극적이다. 뭔가... 귀찮아질 것 같은데.


---


어느덧 7월의 첫째 주. [갤럭시넷]에 접속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뭐야. 유우키 텐카 이 여자, 부모 탓을 할 게 아니라 부모 덕을 본 여자였네.”


의외로 유우키 텐카는 꽤나, 아니 많이 예쁜 여자였나 보다.


[ (후방) 다 큰 처자가 한밤중에... ]


[페르소나]가 자극적인 제목으로 올린 게시글은 어느새, 온 우주에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들로 퍼져나가고 전문 크리에이터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영상을 만들어댈 정도였으니까.


거기다 처음부터 대자보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한 이틀 정도의 텀을 두고 세르부스의 독립을 울부짖는 대자보 내용을 첨부했고, 또 6시간 정도 뒤에 딥페이크로 만들어진 영상이라는 조작 의혹을 더했다.


물론 댓글창은, 난리가 났다.


- 익명 IA83HAFAF : 이게 왜 딥페이크임? 딥페이크 사용하면 [푸가토리움]에 수감되는 거 뻔히 알면서 억빠하는 거 개역겹네 ㅋㅋㅋㅋ 하여간 이쁜 여자들만 보면 실드치는 수컷들 종특 어디 안 가죠?

└ 나무발발이 : 이런 댓글 다는 사람 특) 못생김

└ ASTROL : 어디서 쿵쾅대는 소리가;;

└ 익명 IA83HAFAF : ㅋㅋㅋ 논리 후달리니까 인신공격하는 수준 ㅋㅋ 역겹다 진짜 ㅋㅋㅋ

└ 아몰랑파티 : 왜 꼭 익명만 이런 댓글을 다는 건지 아시는 분?

└ fja1103 : 범죄인건 맞는데 딥페이크 영상 1년에 못해도 수천 개는 만들어짐;; 아니라곤 할 수 없지

└ 유우땅다이스키 : 헤으응


참고로 저 익명의 댓글은 [페르소나]가 단 것이다. 내가 링링에게 부탁하면서 까지 [페르소나]를 동원한 이유는 유우키 텐카를 실드치는 사람들을 양산해 내는 것이니 말이다. 원래 의도하는 반대 진영 코스프레를 하며, 띠꺼운 댓글을 다는 것만큼 여론몰이에 효과적인 것도 없다. ‘저쪽 세계’ 링링 피셜으로 말이다.


아무튼 링링이 힘써준 덕분에, 어느새 유우키 텐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 우주에서 가장 유명한 여중생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 정예원 -> 권민성 : 너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니? ]

[ 정예원 -> 권민성 : 텐카한테 자꾸 이상한 메시지 온다는데? ]


그 부작용으로 유우키 텐카는 못생긴 여자들과 뇌가 하반신에 달린 남자들의 타겟이 된 것 같지만...


“뭐. 내 알 바 아니지.”


내가 유우키 텐카 부모도 아니고, 도와줬으면 뒤치닥거리는 지가 할 일이다. 원래 열여섯 살이면 알아서 할 나이니까.


조금 극단적이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유우키 텐카는 [학기말평가]의 탈을 쓴 숙청의 시간에 죽게 될 거란 걸 고려하면 싸게 먹힌 셈이다.


그리고 뭐 이런 논란이 한두 번 있었나. 어차피 사람들의 열기는 생각보다 더 빨리 식을 것이다. 지금 내가 링링을 시켜 논란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장작만 넣어 주는 이유도 그러하다.


아무튼 내가 자주 접속하지도 않는 [갤럭시넷]에 들어와 있는 이유는.


“언제 와? 이 빌어먹을 고양이 새끼.”


[헌터시험8수째]가 딥페이크 영상 원본을 복원했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석봉이도 같이 들어왔겠지만, 웬일로 황영수 교수가 석봉이를 부르는 바람에 지금은 나 혼자다.


“존나 안 오네. 나비탕 물을 올려야 정신을 차리...”


“왔다. 씨발놈아.”


때마침 등장하는 날아다니는 고양이. 입이 걸걸한 건 여전했다.


“그래서, 복원은 다 됐어?”


“그래. 역대급으로 재미있는 복원 작업이었다. 꽤나 골 때리던데? 푸하핳. 씨발.”


“골 때린다고?”


“영상 직접 보면 알아. 하.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씨발. 푸핳.”


그렇게 말하며 날아다니는 고양이, 그러니까 ‘헌터시험8수째’는 내게 영상 파일 하나를 건넸다.


“지금 봐봐. 존나 재밌을 걸.”


친절하게 ‘조작영상’, ‘원본’으로 구분되어 있는 영상. 조작영상이야 셀 수도 없이 보았으니, 나는 단번에 원본을 킨다.


그렇게 시작된 원본 영상 역시 조작된 영상과 배경은 동일하고, 대자보를 붙이는 뒷모습도 조금 바뀌긴 했지만 큰 차이는 없다.


“너 제대로 복원한 거 맞아?”


“야. 내가 그거 하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일단 닥치고 끝까지 봐봐. 씨발.”


그렇다면 결국 원래 대자보를 붙인 놈도 여자라는 건데... 어차피 보다 보면 정체는 드러날 일이니 난 계속해서 영상을 시청했다. 그리고 마지막 5초, 그러니까 영상 속 주인공이 CCTV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구간에 돌입했을 때, 내 입에서 절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이거 진짜 골 때리는 년이네.”


---


그 날 밤, 나는 수행관의 자유대련실로 누군가를 불러냈다. 좋은 대련실들 두고 후레한 자유 대련실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불만 꺼 놓으면 밀회를 즐기기엔 최적의 장소. 물론 밀회의 대상은 원본 영상 속 주인공이었다.


“어. 왔냐?”


“...”


범인을 불러내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원본 영상을 보내기만 하면 됐으니까.


“자유대련실 처음 와 봐? 하긴 귀하신 몸이 이런 데 와봤을 리가 없지. 여기에 CCTV같은 건 없어. 뭐, 있다 해도 조작하면 되는 거 아냐?”


“...”


사실 메시지 기능은 우주연합에게 감시당할 우려가 있지만,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온 우주에서 가장 유명한 여중생이 된 소감은 어때?”


어차피 원본 영상 속 주인공도 유우키 텐카였으니까.


“이 열등종자가...”


순간, 창가에 서린 달빛이 대련실 내를 은은하게 비췄다. 가면을 벗은 유우키 텐카의 얼굴은 ... 왜 사람들이 그간 불탔는지는 알겠네. 꽤나 볼만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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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6. 학기말평가 (3) +2 21.09.22 3,436 116 10쪽
47 45. 학기말평가 (2) +3 21.09.21 3,495 115 12쪽
46 외전 - 세르부스 +4 21.09.21 3,560 11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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