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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vezda 님의 서재입니다.

역천의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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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Mameloukor
작품등록일 :
2024.08.19 21:30
최근연재일 :
2024.09.19 12:20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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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
추천수 :
124
글자수 :
190,360

작성
24.09.10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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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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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8쪽

21. 만호 나리가 위험함둥.

DUMMY

설은 관아의 대문을 열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거리는 아수라장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할 정도였다.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고, 불꽃과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드문드문 조선군의 외침과 조총 쏘는 소리, 그리고 중국어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온성 전체가 전장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을 뒤로하고, 설은 바로 홍 만호의 처소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홍 만호가 화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튕겨내는 그 협객을 당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홍 만호가 죽기라도 한다면, 체탐군은 무너질 것이다. 설은 무의식적으로 보폭을 더 크게 하며 뛰었다.

그러나 설이 거리를 내달리려고 하니, 옆에서 도와달라며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도와주웁소!”


설은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했지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흘러나오는 아이의 울음과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발만 동동 구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비통하게 울부짖는 목소리는 설의 발목을 잡아채는 것이었다.


“염병!”


설은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 집으로 몸을 돌렸다. 다리가 불편한 아이의 어머니는 설을 보고는 집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아 안직 안에 있소!”(아이가 아직 안에 있소!)



그 말에 설은 조총과 죽관을 내려놓고는 불타오르는 초가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정주간에 들어오니 끔찍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열기가 설을 덮쳤다. 말 그대로 사방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설은 매캐한 연기 때문에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으며 입을 가렸다. 목구멍이 마른 가죽처럼 양쪽으로 달라붙는 기분이었다.

설은 우는 소리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기는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설은 아이를 안아 들고 바깥으로 몸을 돌렸다. 동시에 천장이 무너지며 설의 앞에 잔해가 우수수 떨어졌다.

설은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잔해는 점점 머리 위로 떨어지고, 가만히 있다가는 그대로 깔려 이름도 모르는 남의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고 말 것이었다. 설은 소매로 입을 틀어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깥으로 나가는 문은 이미 다 불이 붙어있었고, 정주간으로 나가는 길은 무너진 잔해에 막혀있었다. 이대로는 끝장이었다.


“이보오!”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그리고는 우지끈 소리와 함께 작은 문 하나가 뜯겨 나갔다. 평범한 남성 하나가 화상을 무릅쓰고 문을 뜯어낸 것이었다.


“나오오! 어시래!”


남자가 손짓했다. 설은 아직도 우는 아이를 가슴에 끌어안고는 그 창문을 향해 뛰었다.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설이 있던 자리에 잔해가 쏟아졌다. 설은 기합을 내지르며 그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창문으로 몸을 날린 설은 바닥에 등부터 쓰러졌다. 동시에 초가집은 폭삭 무너졌다. 간발의 차였다. 안도감에 힘이 풀렸다. 삼삼오오 모여들었던 온성 백성들은 먼저 설의 품에 안긴 아이를 어머니에게 되돌려주었고, 나머지는 설을 일으켜 세웠다.


“잘했소, 총각! 아주 큰일햇소!”


목숨을 구한 아이의 어머니는 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고맙다 외쳤고, 다른 사람들은 설의 어깨와 등을 털어주며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설은 그러나 그 인사를 받을 시간이 없었다. 그가 조총과 죽관을 찾자 남자 하나가 이를 건네주었다.


“고맙슴둥.”

“아이오, 내 고맙소.”


설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시 앞으로 뛰쳐나갔다. 차디찬 바람이 열을 받은 설의 몸을 순식간에 식혔다.

주변을 보니, 난리통에 백성들은 사방팔방으로 도망쳤고, 군졸들은 그들을 쫓아다니면서 도왔다. 그들은 설이 그랬듯이 위기에 빠진 이들을 돕고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가까이서 칼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중국어가 들려왔다. 설은 몸을 숨기고는 소리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림맹 협사 하나가 온성 주민 하나의 머리채를 붙잡고는 그의 등에다가 칼을 찔러넣었다. 등에서 가슴팍으로 칼날이 튀어나왔고, 그 불운한 남자는 피를 토하면서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칼을 뽑자 온성주민은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협객은 그 시신 위에 침을 뱉었다.

협객은 몸을 돌려 바로 옆의 집으로 향했다. 협사가 사립문을 발로 걷어차자 아낙네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 집은 다름 아닌 회령댁이, 그리고 살아남은 설의 마을 아낙네들이 있는 집이었다. 설은 순간적으로 숨을 삼켰다. 그 소리를 협객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멈춰라!”


설은 몸을 드러내며 조총을 겨누었다. 협사는 조총을 보자 반사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설은 방아쇠를 당겼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급하고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설은 자신이 장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바닥에 엎어졌던 협사는 총성이 없자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씩 웃으며 설에게 다가갔고, 설은 조총을 바닥에 두고 환도를 뽑아 들었다.

설은 파랑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자세를 다잡았다. 오른발은 앞으로, 왼발은 옆으로, 칼은 너무 강하게 쥐지 않고. 설은 한 가지를 더 되새겼다. 중요한 것은 기세.


“죽어!”


협사가 먼저 덤벼들었다. 요란한 몸짓으로 칼을 크게 돌리는 동작은 위협적이었다. 그가 크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설에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칼을 휘둘렀다. 설은 파랑에게 배운 그대로, 오른발을 내밀면서 칼자루를 높이 들어 자기 왼편을 막았다.

칼날이 부딪히며 날카롭게 울었다. 설은 곧바로 협사의 손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협사는 다시 칼날을 들어 내려베기를 막고 설의 머리를 향해 유엽도를 휘둘렀다. 설은 이번에는 반대 발을 내밀며 칼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막았다. 설은 이번에는 칼에 힘을 주어 상대의 유엽도를 옆으로 제치고는 가로로 휘둘렀다. 상대는 머리를 숙이며 공격을 피하더니 왼손으로 설의 오른손을 잡고는 자신의 오른손으로 설을 찌르려고 했다. 설은 바로 몸을 돌리며 상대를 뒤로 넘겼다.

협사는 바닥에 엎어지자 구르면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검이 바닥에 놓인 것을 본 협사는 주먹을 쥐면서 설에게 달려들었다. 설이 손목을 돌리며 상대를 베려고 했지만, 협사는 설의 허리를 몸으로 받으며 쓰러트렸다. 설이 바닥에 엎어지자 협사는 설의 몸에 올라탔다. 그리고 주먹을 날리려 했다.


“커헉!”


그 순간, 표창이 날아들어 협사의 어깨를 꿰뚫었다. 설이 협사를 밀어 쓰러트리고는 뒤를 돌아보자, 회령댁이 등패와 철퇴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협사는 어깨에 박힌 표창을 뽑아내고는 회령댁을 보았다. 회령댁은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협사가 주먹을 뻗자 회령댁은 등패를 휘둘러 손을 쳐내더니 그대로 상대의 허리춤을 철퇴로 후려쳤다. 협사의 몸이 반사적으로 접히자 회령댁은 멈추지 않고 그 등과 머리에 철퇴를 내리찍었다.


“죽어! 죽어! 죽어!”


회령댁은 협사의 몸을 마구 내려쳤다. 협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사방에 피를 뿜으며 절명했다.

회령댁이 뒤돌았을 때 설은 피투성이의 처참한 모습에 놀라 자빠질뻔했다. 회령댁은 무표정하게 설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뻗었다. 설은 그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 설이 바닥에 떨어진 환도를 줍는 동안 회령댁이 날숨을 뱉으며 말했다.


“일없소?”


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형수님, 만호 나리가 위험함둥. 같이 가압소.”


회령댁은 집을 돌아보았다. 마을 아낙들은 어디서 챙겼는지 모를 활을 들고는 설과 회령댁을 보았다. 그때 협객 하나가 골목에서 나타나더니 설과 회령댁을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회령댁은 그쪽을 향해 등패를 들고는 말했다.


“곧 따라가갯소.”


집에서 활을 든 아낙네들이 뛰쳐나오며 회령댁과 설을 호위했다. 회령댁은 설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은 하는 수없이 발길을 돌렸다.

설은 조총을 장전하며 홍 만호의 처소가 있는 거리로 향했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파랑이 기합을 내질렀고 칼날은 서로 부닥치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었다. 설은 빠르게 홍 만호의 집으로 달려갔다. 마당에는 시체가 둘 있었고, 살아있는 두 사람은 파랑을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만호 나리! 소 낭자!”


설이 목소리를 높이자 협객들은 설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가운 목소리에 파랑도 고개를 돌렸다. 면구에 얼굴이 가려져 있었지만, 그녀는 반가움에 미소짓고 있었다.

설은 곧바로 조총을 들어 겨누었다. 그리고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조총이 다시 불을 뿜었고 협객 하나는 목덜미에 총알을 맞고 뒤로 넘어갔다. 그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목덜미에서 피를 뿜었다.


“이 소협이 당했소!”

“이런 빌어먹을 조선놈들!”


남녀로 이루어진 두 협객은 욕을 내뱉었다. 파랑이 그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르자 남성은 막으며 물러섰고, 여성은 홍 만호의 집 툇마루로 올라섰다.

툇마루에 여협객의 발이 닿자마자, 뒤에서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가 방문을 걷어찼다. 하필 문 바로 앞에 있던 협객은 그 발길질에 날아가 흙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협객이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려는 그 순간 온몸을 두정갑과 간주식 투구로 완전무장한 홍 만호가 활을 쏘아 그녀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그녀의 단말마는 짧고 조용했다.


“아, 안돼!”


홀로 남은 협객이 죽은 동료에게 정신이 팔린 그 순간을 노리고 파랑은 왜검을 내질렀다. 협객이 고개를 돌려 겨우 피하자 이번에는 홍 만호가 다시 활을 쏘았다. 장전이 협객의 뺨을 관통했다. 동시에 파랑은 곧바로 목덜미에 칼을 휘둘렀다. 화살이 뺨과 입을 뚫고 반대쪽 뺨으로 튀어나온 머리가 바닥을 구르는 광경은 잔인하다 못해 생경했다. 그 광경을 보며 홍 만호는 차갑게 말했다.


“종간나새끼들.”


파랑은 왜검을 흔들어 피를 털어내고는 설을 보았다.


“박 공!”

“다 멀쩡하압구마!”


설이 마당으로 들어오자 파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 만호는 아까 전의 취기가 모두 사라진 듯 근엄한 모습이었다가, 설과 파랑이 서로 마주하며 웃는 모습을 보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디금 뭐 하는 거이네?”


이어서 홍 만호가 말했다.


“상황 보고하라.”

“무림맹주를 잡아 왔던 그놈들이 무림맹과 한패였습꾸마.”

“뭔가 이상하다 했디.”


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관아이가 공격당하구 있구, 종사관 나리와 청나라군이 무림맹에 맞서 싸우고 있습꾸마. 다른 놈들으느 읍내에서 불으르 지르구 있구······.”

“간나새끼들! 이럴 때가 아이야. 관아로 가디.”


그때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파랑은 다시 왜검을 들며 문을 향해 몸을 돌렸고, 설은 다시 조총을 장전했다. 홍 만호는 화살을 시위에 재며 말했다.


“우라질.”


곧이어 두 명의 협객이 벽을 타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문을 박차면서 월도를 든 협사, ‘호 대협’이라 불린 자가 나타났다.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짓는 그 모습은 혐오스러웠다.

홍 만호는 곧바로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그대로 가만히 있는 호 대협이라는 자에게 날아가 가슴팍에 박혔다. 아니, 박히지 않았다. 화살은 마치 성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튕겨 나갔다.


“뭐이야?”


놀라는 셋을 앞에 두고, 협객은 자기 차례라는 듯 월도를 한 번 돌렸다. 그는 툇마루 위의 홍 만호를 향해 달려갔고, 동시에 다른 협객들이 설과 파랑에게 덤벼들었다.


“박 공! 조총을!”

“아, 안직 장전 안 됏소!”


두 사람은 등을 맞대고 덤벼드는 상대를 맞섰다. 적들이 덤벼들어 칼을 휘두르자, 파랑은 강하게 검을 튕겨내며 반격했다. 설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며 총알을 넣었다. 그때 협객들이 동시에 가로로 검을 휘둘렀다.


“몸 숙여요!”


그렇게 말하며 파랑은 설의 등을 밀 듯이 눌렀다. 두 사람은 깊게 허리를 숙이며 공격을 피하고는 다시 몸을 들었다.

설은 총구 아래의 삭장을 뽑고는 총구에 집어넣었다. 그가 삭장을 쑤시며 앞을 보았을 때 상대가 그를 향해 기합을 내지르며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설은 반사적으로 총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는 삭장이 꽂힌 총구를 그대로 상대의 복부에 찔렀다. 삭장은 날카롭지 않아 아프기만 할뿐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설은 힘을 주며 상대를 그대로 밀쳤다. 상대는 설의 조총을 붙잡으며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설은 적을 벽에 몰아붙였다. 둘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 협사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설이 조총을 빼니 삭장은 그대로 적의 몸에 박힌 채 흔들리고 있었다. 협사는 손에서 칼을 놓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설은 떨어진 칼을 걷어차고는 뒤돌았다. 파랑은 상대의 팔을 붙잡고는 순식간에 비틀어 쓰러트리고는 그대로 칼을 내려쳐 끝장냈다. 둘은 다시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홍 만호를 돌아보았다.


“우라질 간나새끼!”


홍 만호는 편곤을 휘둘러 월도 든 협객과 맞섰다. 호 대협이라 불린 자는 월도를 무시무시한 힘과 속도로 휘둘러 홍 만호의 공격을 막아냈다. 편곤과 월도는 모두 허공을 가를 때마다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만호 나리!”


파랑이 접근하자 설은 바로 조총을 들어 겨누었다. 조총이 불을 뿜고 커다란 소리와 빛을 발하며 호 대협을 향해 총알을 날렸다. 그는 총알은 무서운지 몸을 크게 돌리며 피했다. 그 틈에 파랑이 달려들어 검을 휘두르자, 그는 월도를 휘둘러 그녀의 공격을 튕겨냈다. 왜검보다 훨씬 단단하고 파랑보다 강력한 완력에 파랑의 팔이 크게 꺾였다. 그는 동시에 창대로 파랑의 안면을 후려치고는 한 바퀴 돌며 팔꿈치로 파랑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머리를 가격했다.


“파랑!”


파랑이 앞으로 쓰러지자 홍 만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편곤을 휘둘렀다. 호 대협은 월도를 빙글 돌리며 편곤 머리와 창대 사이의 연결 부위에 날을 걸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편곤을 처박았다. 그리고는 발로 편곤의 창대를 밟아 부러트렸다.

홍 만호가 창대를 놓으며 환도를 뽑아 들었을 때, 호 대협은 이미 몸을 한번 돌리며 홍 만호의 가슴팍을 향해 월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홍 만호가 반사적으로 그 공격을 검으로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홍 만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며 그대로 디딤돌을 향해 날아갔다. 디딤돌에 등이 받힌 홍 만호는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리!”


설이 그 광경을 보며 외쳤다. 그 모습을 본 호 대협은 위압감 넘치는 자세로 설에게 다가갔다. 설은 협객의 몸에 박힌 삭장을 뽑으며 다시 장전하는 찰나, 어느새 다가온 호 대협이 그의 월도를 설에게로 던졌다.

월도의 창대 부분이 그대로 설의 얼굴을 가격했다. 설의 얼굴에 맞고 튕긴 월도는 다시 호 대협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날려 설의 가슴팍에 발차기를 날렸다. 설은 홍 만호가 그랬듯이 날아가며 벽에 부딪혔다.


“이 개자식!”


파랑은 욕을 뱉으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기합을 내지르며 호 대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호 대협은 기합을 내며 자세를 갖추었다.

팔을 때린 왜검은 간단히 튕겨 나갔다.


“아, 아니······.”


당황하는 파랑을 보며 호 대협은 크게 웃더니 팔을 휘둘러 파랑의 머리를 후려쳤다. 파랑이 바닥에 다시 엎어졌다. 호 대협은 그녀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면구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코와 이빨이 부러졌을 힘이었다.

호 대협은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대는 파랑의 목덜미를 잡으며 그녀를 들어 올렸다. 목이 졸린 파랑은 꺽꺽대며 버둥댔다. 호 대협은 파랑의 손을 치우고는 면구를 잡아 뜯었다.


“호오.”


파랑의 얼굴을 본 호 대협은 바로 그녀의 투구를 벗겼다. 말아 넣었던 댕기머리가 시나브로 풀렸다. 그러자 호 대협은 호탕하게 웃었다.


“뭐야, 계집이었냐? 하하하!”


호 대협의 손아귀에 더더욱 강하게 힘이 들어갔다. 파랑은 입술을 너무 강하게 깨문 나머지 피가 주르륵 흘렀다.


“이거, 이러면 죽이기가 아까운데 말이야!”


파랑은 점점 정신을 잃어갔다. 그녀의 눈이 조금씩 풀리고, 버둥대던 그녀의 팔다리도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칼잡이 왜구 계집이라니, 이거 재미 좀 볼 수 있겠군.”


파랑은 호 대협의 말을 듣지 못했다. 중국말을 알아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신이 흐릿해 어떤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해서였다.

그때,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누군가가 호 대협의 팔을 봉으로 강하게 내려쳤다. 순간적인 충격에 호 대협의 손에 힘이 풀리며 파랑은 바닥에 추락하듯 쓰러졌다.

호 대협이 팔을 어루만지며 그 누군가를 돌아보았다. 공선대사는 한 손으로 합장을 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공선 이 빌어먹을 땡중 놈!”


공선이 대답했다.


“호천목. 그대도 불도를 따르는 아미파의 제자였으면서, 그런 음사한 말을 지껄인단 말인가?”

“아미의 가르침 따위 이젠 아무 의미 없다.”

“그렇겠지. 아미파를 떠나고 불가의 가르침을 저버리기 전에 이미 ‘참수마’라는 별호를 얻었으니. 당연하겠지.”


호천목은 월도를 빙글빙글 돌리고는 자세를 잡았다.


“공선 네놈은 토번의 개가 되어 서장금강종에 고개를 조아리고 가르침을 청하지 않았나? 네가 감히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소림의 방장께서는 중원의 해묵은 원한을 청산하기 위해 사해의 무사들과 친목을 도모하려 하셨소. 이를 두고 머리를 조아렸다고 표현하다니. 과연, 청나라에 머리를 조아린 오랑캐의 개 다운 해석이구려.”

“이 개새끼가!”


공선은 석장을 두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아미타불. 부처의 가르침을 잊은 그대를 제도해주겠네.”

“네놈이나 저승 가서 부처 면상이나 실컷 봐라!”


호천목은 기합을 내지르며 월도를 휘둘렀고, 공선은 바람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으며 그 칼날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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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 절대 살려 보내지 말라우. 24.09.11 25 4 14쪽
» 21. 만호 나리가 위험함둥. 24.09.10 26 4 18쪽
20 20. 칼에는 눈이 없으니, 원망치 말지어다. 24.09.09 26 4 15쪽
19 19. 자기연민에 빠진 그 새끼들만의 감상 24.09.06 28 4 15쪽
18 18.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1 24.09.05 33 4 14쪽
17 17. 우리가 공을 믿을 수 있습니까? 24.09.04 28 5 13쪽
16 16. 다시, 다시 하세요. 다시. 24.09.03 29 5 14쪽
15 15. 깨어나셨네요. +1 24.09.02 34 5 14쪽
14 14. 저 하늘과도 같은 힘으로 24.08.30 32 5 14쪽
13 13. 최대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줘. 24.08.29 33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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