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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요리 배우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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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참새
작품등록일 :
2023.12.04 19:15
최근연재일 :
2023.12.15 23: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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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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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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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경합과 에피타이저, 그리고 TV출현?

DUMMY

9시가 넘어서 주방을 담당하는 인원 전체가 도착했다.


경력을 막 시작한 숙수들은 아침부터 가마솥을 달구고 밥을 짓거나 국을 위해 물을 끓이느라 분주하다. 반찬이 아무리 맛있어봐야 밥맛이 변하면 그 모든 것이 허사가 돼버리기에 비지땀을 흘리며 불 앞에 앉아 조절을 계속해 나갔다.


아래에만 열을 가해 물을 끓여 익히는 밥솥으로는 아직도 가마솥의 밥맛을 따라가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밥에 진심인 한국이나 옆나라 일본에서도 밥맛을 재현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글쎄.


불멍을 쬐며 가만히 있다 보면 사실 밥솥의 밥이 아무리 맛있게 나와도 그 '전통'을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인정할까 싶었다.


"고급 한정식집이면 가마솥 밥이 나와야 되는거 아니가?"


하시는 어르신들이 아직은 많았다. 과거의 밥맛을 찾아 헤매는 어르신들과 그래도 가마솥이 있어 보인다는 중년층의 수요가 만들어낸 합작품 같은 위치였다.


아직 요리를 건들지 못하는 신입생들은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은듯 보이는 기다림을 몰래 훔쳐 보면서 속으로 부러워했다. 밤새 걸어놔 말렸던 식기를 다시 헹구고 닦느라 아직 요리 근육이 안붙은 팔이 벌써 아픈건 적응이 안됐다.


"아프냐?"


"아닙니다."


"아니긴. 그러니까 팔이랑 다리 운동 열심히 해 둬. 우린 온종일 돌아다니고 칼질하고 물 옮기니까."


"야, 니들 세계적인 셰프중에 팔이랑 다리가 여리여리한 사람 봤냐? 해 두는게 아니고 그냥 필수야. 힘들다고 관절 쓰는 버릇 드는 순간 훅 가는 거라고."


선배들의 참견인듯 조언인듯한 말들을 흘려 듣지 않았다. 그들의 경험이 한가득 섞인 말이 타당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몸뚱아리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소리치는 도중이었다.


백가지 조언보다 한가지 경험이 더 값진 경우다.


"그런데 그 백 진이라 하는 분은 뭐하시는 분입니까? 저희보다 어려 보이면서 10년 이상 된 분만 입는 옷 입고 있던데."


"찐? 걔 전 사장님 외아들. 걘 주방에서만큼은 고작 몇 년 짜리가 이름 막 부르고 다닐 수 있는 사람 아니다."


"...아드님이라?"


"아니. 아들은 대의명분 같은거지. 걔가 계란말이 하나만 제대로 말아 내도 여기 식당 숙수들 요리 다 이길껄?"


"그 정도입니까? 지금 대부분의 메뉴가 전부 윗대서 부터 개발한 거라고 알고 있는데."


"뭔가를 구상하는 것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을 다르 잖냐. 저놈은 뭔가를 만들어 내는데 미친 실력을 가지고 있는거지."


"그런 것 치곤 저희 모임 같은 곳에서도 조용했잖아요."


기억속에 국내외 각종 대회나 시상식 같은 곳에서도 본적이 아예 없는 사람이었다. 그들끼리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서도 백 진이라는 이름은 한국에 손가락에 꼽히는 분의 아들이라는 것 말고는 생소하다는 말뿐이었다.


초임생에게는 선배의 말이 하늘 같아도 약간의 의심을 품기 충분했다. 그렇게 낭천에 들어온 사람들이 다 거쳐 가는 과정을 똑같이 밟아갔다.






대표, 혜영 고모의 부름에 따라 주방 사람들이 회의실에 전부 모였다.


학교 주방 실습장처럼 꾸며져 있는 회의실에서 열 명의 숙수들이 들어오니 금방 가득 찼다.


제각기 자리에 앉아 오랜만의 모임에 어떤일로 불렀는지 주변의 눈치를 보다 이내 무엇이 생각났는지 긴장의 빛을 흘렸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회의장에 고모와 비서가 같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정식으로 다들 모이는 거네요. 얼굴들이 좋아 보여요. 호호."


기분 좋게 웃으시는 고모의 말에 다들 얼굴이 갸웃했다. 당장 어젯밤에 불러모아 놓고 대작을 핑계로 대작을 한 통에 속이 살짝 안 좋은 사람이 태반이었다.


역시 내 쪽의 외가 못지않은 분이었다.


"오늘 모이고자 한 이유는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에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공식적으로 겨울 메뉴를 하나 런칭하기로 했습니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알맞은 따스한 요리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전격적으로 수용하려 하니, 개인적인 조언이나 하실 말이 있다면 언제든 오셔서 피력해 주세요. 자세한 안내문은 주방 칠판에 붙여 놓을게요."


고모의 말이 끝나자 올게 왔다는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생각해온 것들을 실현하고 직접 올릴 생각을 실현할 날이 직접 다가오자 절로 긴장이 되었다. 맛있고 인상 깊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 다였다면, 이제부터 실질적인 재료의 가격이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품 따위를 고려 해야했다.


그러다 슬금슬금 내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


"이건 전 직원에게 해당하는 사항이니 많이 퍼뜨려주고 알려 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두 번째. 이건 최고 주방장, 숙수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첫째 안내사항에 심드렁했던 두 명의 눈빛이 살아났다.


젊은날에 이곳에 들어와 평생토록 있었던 한 석균 숙수와, 그와 비슷한 백 광현 숙수. 식당 주인이야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니 물려받는 다고해도 그 식당 주방의 머리에 앉는다는 것은 의미가 큰 이야기였다.


받는 돈도 그렇고 수많은 명인 앞에 선다는 명예가 자연히 따라오는 자리.


"이번에 전 대령 숙수님이 은퇴했으니 빈자리는 빠르게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경우가 처음이어서 알아보니 전 숙수때엔 전임자의 추천으로 이루어졌다더군요. 그런데 이번에는 추천이 아닌 실력으로 뽑아 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흐음... 예상은 하고 있었다만."


백 숙수가 작게 중얼거렸다. 사사롭게는 삼촌이 되는 사람이라 자리에 대한 욕심에 실력으로만 따지라는 말이 조급 섭섭했어도 바로 식당의 발전을 위해서라고 이해했다.


이미 전 조선왕조의 궁내부 전선사에 속하거나 지나쳐 갔던 사람들과 상궁, 나인 등, 궁중 음식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격변기를 맞아 제각기 흩어지면서 수많은 음식점을 일으켰다. 성공적으로 '궁중음식'의 부흥을 일으킨 명인분들도 몇 있지만, 그 외엔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분들이 더 많다.


이러한 상황에 그래도 부끄럽게도 그 명맥을 이어가는 한식집이 핏줄 하나에 의지해 자격없는 이가 뒤를 받는다면, 식당소개와 역사에 당당하게 이름을 걸 자격이 없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요리에는 수많은 갈래가 있고 그 분야에 집중하기때문에 각자의 전문분야가 다 다르지요. 그래서 어디 음식 경연대회처럼 할 수도 없는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고민 끝에 전체적인 것으로 보기로 했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한 달 뒤, 우리 가게의 정기 휴일에 숙수님들을 무작위로 반반씩 나눠서 각자의 밑으로 들어가서 전체 요리를 만들거예요. 그리고 손님들을 몇 불러서 대접하는 거죠. 일종의 경합입니다."


답변을 들은 한 석균 숙수의 표정이 애매했다.


확실히 본인은 탕, 찜, 국 등의 국물요리 전문이고 백 숙수는 반찬이나 후식을 전문적으로 다뤘다. 전체 요리에 무엇이 더 중점을 두느냐는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른 일이라 심사위원이 더 중요해져 버렸다.


"일종의 심사군요. 그 손님들을 미리 알 수 있나요?"


"확답을 할 수 없는게, 아직 섭외 중입니다. 그래도 귀띔을 드리면, 저희 가게 VIP 분들입니다."


"진지하군요."


"진지할 수밖에요."


백 혜영이 싱긋 웃었다.


내부적인 일에 외부 인사를 끌고 온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외부의 개입이 심각하게 있다는 말과 동일했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오히려 외부인사가 더 정확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는 말도 된다. 후보 중 한명이 본인의 가족이니 어떻게 되든 나오는 말을 배제할 수 있다.


"그리고 진."


"네."


"이번 경합에서 빠져."


"왜요? 저도 이쪽 직원인데."


"대신 식전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거로 하나 만들어. 오는 손님들 대접해야지. 숙제야."


어떤 말이 들어가도 끄떡 없을 것 같은 분위기에 얌전히 꼬리를 내렸다. 손님에게 음식도 안 내주면서 감히! 인 표정에 더 이상의 불만을 접었다.


그래도 이런 재미있는 이벤트에 안끼면 조금 섭섭하다.


"뭘 그런 눈으로 보는거야? 너 대학 복학한다며. 이곳에 뼈를 묻은 것도 아닌데 출가외인이지."


"아니, 그런 식으로 말씀을..."


"내가 틀린 말 했어? 안그러면 네가 메뉴 하나 잡고 대접하던지."


계속 와서 칼을 잡으라는 것을 이런저런 핑계로 도망쳤더니 고모께서 날을 잡으신 모양이었다. 대표를 이어 받으시며 세상이 급변하고 미디어의 노출과 뒷받침 하는 실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하시더니 칼을 드셨다.


각종 셰프들이 나와 이야기하고 떠드는 각종 TV프로그램들이 유행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 막 전역하고 집에 돌아온 나에게 너 같은 놈은 TV에 나가 우리 식당을 알려야 한다고 취중 진담을 진하게 하셨다.


차라리 그쪽이 네가 바라는 꿈과 욕심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지 않겠느냐며. 당연히 거절했고.


"그건 그렇네요."


담백하게 수긍하자 예상외였는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조금 더 반박하고 달려 들어야 뭔가 교섭을 할 여지가 있기 마련.


"뭐 하고 싶으면 대학이라도 졸업해서 오세요. 식전에 먹을 간단한 음식 잘 생각하고. 그러고 보니 이게 네 첫등장이잖아. 힘 빡줘봐."


"첫 등장이라... 일단 알겠습니다."


에피타이저는 서양에서 돈 많은 사람들, 주로 어느 왕실이나 가문의 주인 같은 사람이 너넨 이런거 없지? 같은 느낌으로 당시 값비싼 향신료를 사정없이 때려 박아서 만들어진 음식과 입으로 들어가기 적당한 사치품 그 어딘가의 성격이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 여러 상황이나 사람들에게 정리되며 간단하게 위장에 신호를 주는 가벼운 포도주와 함께한 간이 강한 한입 요리가 되었다.


한식도 이런 서양의 것을 빌려 식전음식, 전채의 개념으로 들고왔다. 다만, 술과 함께 하기보다는 향미가 좋은 후식을 앞으로 당겨와 위장을 자극하는 그낌이 강했다. 자주 내는 것이 화채, 호두, 계란, 샐러드, 새우, 냉국 정도.


하지만 식당에서의 애피타이저라면 조금 고민된다.


우리같이 큰 한식당에는 비즈니스를 위해 온 사람이 태반인데 향이 강한걸 미리 주면 굳이 입에 넣어 입 냄새를 풍기고 싶을까는 위장의 자극, 입맛 타령하는건 다른 문제다. 분명 그때 오는 심사위원도 비슷할 터.


"진행할 일 두개는 미리 말씀드렸고 나머지 하나는 고민 중에 있는 사항에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잠시 각자의 생각에 빠졌던 사람들이 고모에게 집중 되었다.


"이번에 교육 방송 채널에서 요리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짧은 시간이라 전체적으로 다 하기엔 무리가 조금 있어서 한 분을 찍어서 촬영하고 싶다 하거든요. 어떻게, 하고 싶은 사람 있을까요? 만약 불편하시거나 사람이 없다면 바로 거절하겠습니다."


다큐에 나오는 사람은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상징을 가진 사람이 은퇴해 없는 지금 경력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약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 무엇보다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아래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래도 막상 하고픈 사람이 딱히 없었다. 굳이 다큐까지 나와서 욕먹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탓이다.


"아무도 없나요?"


재차 확인하듯 말하고 주변을 둘러봤으나 반응이 없다.


"없으면 거절하는 걸로..."


"저기!"


고모의 말이 무난하게 끝나려 할때 정 은지 숙수가 힘차게 손을 들었다. 주변의 심드렁했던 시선이 집중되자 장난스럽게 나를 보면서 입꼬리를 슬금슬금 올렸다.


"그거 진이 나가면 어떨까요?"


"제가요?"


저 누님이 대체 왜 나를 끌어당기실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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