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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요리 배우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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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참새
작품등록일 :
2023.12.04 19:15
최근연재일 :
2023.12.1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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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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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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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식당 낭천 2

DUMMY

식재료를 담당하는 이 동하 숙수가 새벽부터 한식당 낭천으로 나와 가게로 들어오는 식재료 트럭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


그의 뒤에서 또 새로운 수업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세 명의 신입이 공책과 볼펜을 들고서 중요 내용들을 열심히 필기하며 트럭 기사들과도 안면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손가락에 꼽히는 음식점에 물건을 대는 농가도 한국에서 알아주는 게 당연한거라 앞으로 자신만의 한식당을 열려면 그쪽 인맥도 중요한 법이었다. 대부분의 선임이 막 들어온 아이들이 어린애들도 아니고 알아서 살아남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주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숙수는 천사나 다름없었다.


말은 무심한 듯 툭툭 나오지만 말이다.


"야, 막내! 너 저기 가서 배추 확인하고 넌 저기 고추 확인해봐. 나중에 내가 확인할 테니까 제대로 하고."


"네!"


여기서 게으름 피우고 대충 봐 봐야 결국 나중에 돌아온다. 그것을 잘 아는 이들이라 조금 더 열정적으로 다가갔다. 혹시나 상한 부분이 있는지, 누름이 생기지 않았는지, 배추의 대가 굵고 쓴맛이 어느 정도로, 일관적으로 나는가와 같은 미세한 차이들이 맛을 결정하는 요소였다.


괜히 재료 담당 직원을 따로 두고 조금 더 좋은 재료를 생산해 내는 농장을 찾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 유명 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취업한 막내가 달려가 초록색 망에 담겨오는 배추를 하나 꺼내 식칼로 반으로 쪼갰다. 칼을 반 정도도 안되게 찔러 넣었는데도 그냥 반으로 가볍게 쩍하고 가볍게 갈라졌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당장 달려왔다.


"야! 배추! 당장 손때고 일어나!"


불같은 노성에 깜짝 놀라 손에든 것들을 바로 놓고 일어났고 트럭 기사들은 익숙한 소리에 오늘도 역시나여서 눈길도 주지 않고 제 할일을 계속했다.


"배추를 누가 그따구로 썰어? 학원에서 칼질도 제대로 안가르쳐 줬어!"


"아, 아닙니다!"


"배추 심지가 지 좆대로 잘렸잖아! 이거 니가 먹으려고 일부러 이런 거야?"


재료가 아주 좋아서 일어난 사고 아닌 사고였다.


후식으로 쓸 수박을 쪼갤 때도 칼을 넣자마자 자기 혼자 쪼개지는 순간 반듯하지 못한 면을 다시 새로 잘라 그만큼 버려야 해서 엄청난 손실이 된다. 만원짜리 통 수박이야 우스워도 그 수박이 한통에 십만원을 오고가는 순간 손이 떨리기 시작할 것이다.


확인차원에서 발생하는 작은 실수야 용납되지만, 그 일이 주방에서 일어나는 순간 바로 10분간 세워놓고 욕받이 신세가 돼버리는 것을 먼저 경험한 선임으로 하는 배려다.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다른 문제지만.


"똑바로 해. 팔에 힘이 없으면 기르란 말이야 알겠어?"


"네!"


"상태 말해봐."


좀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속에서 끓어 오르는 욕들을 꿀꺽 삼킨다. 바쁜 아침 시간에 한 놈만 잡아 댓거리를 치르는 것은 굉장한 시간 낭비였다.


"손으로 눌러봤을 때의 단단함, 반으로 갈랐을 때의 꽉 찬 정도,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손 한 뼘은 족히 넘는 것으로 봤을 때 수확시기가 늦은 배추의 느낌이 강해 창고에서 일주일 이상 저장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다른 건?"


"앞에 먼저 내려놓은 배추의 겉면에 묻어있는 물기 흔적이 조금 과합니다. 오늘 바로 써야 할 배추입니다."


"좋아. 우리 같은 식당은 바로바로 나가기 때문에 굳이 저장용 배추를 구하려고 품질을 낮출 필요는 없다. 산지에서 바로 가져오는 거라 굳이 플라스틱 통에서 건조 시간을 가질 필요성도 떨어지고. 손님 수나 식당규모에 따라 계속 달라지니 정말로 잘나가는 가게를 내고 싶거든 명심해라."


"네."


물론, 정말 작은 규모의 가게라면 산지에 가서 구하는 것보다 농수산물 마트에서 때오는게 가격이나 품질적으로나 훨씬 경제적이다.


손님들이 맛에 민감하기 시작한 순간에야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배추 확인 작업을 따로 마치고 고추 상자로 다가갔다. 고추야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대충 알아서 상관이 없다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격. 작년의 두배 정도 오른 가격에 머리가 살짝 아파졌다.


손해를 보고서 팔 수는 없고 가격을 올리자니 너무나 민감했다. 수입산을 쓰자니 맛이 미묘하게라도 달라지는 게 문제.


"이번에 가격이 많이 올랐네요."


"그런 말 마쇼. 올 여름에 비 땜시 노지에 심었던거 모조리 병 돌아서 한 해 농사 다 망쳐서 우리도 골치 아파요."


"아이구. 이거 큰일이네. 이번에 튀김한다고 고추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데. 어디 다른 농가 아시는 곳은 없어요?"


"글쎄 난 잘 모르것다? 내 아는 곳들도 주문 대주느라 빡빡하든데."


"그래도 남는 곳있으면 꼭 연락 주세요. 제가 바로 달려갈테니."


막내가 종이컵에 타온 커피를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농가는 많이 알지만, 부러 추천해 줄 수도 없는데 그도 이 자존감 높은 가게의 높은 커트라인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신뢰가 달려있는데 아무나 추천해서 직접 와보고 퇴짜를 놓는 순간 그 농장은 당분간 높은 수익은 고사하고 공판장 경매 신세다. 여기는 그만한 영향력이 있는 식당이라 구태여 소개해주고 욕먹기는 싫은 마음이 있다.


이 숙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금 더 발품을 팔아보겠지만, 본인의 영향력 밖이라면 낼 음식을 바꿔야 했다. 당장 고추 트럭이 나가고 달걀 트럭이 곧이어 들어오는 걸 보면서 생각을 멈췄지만 말이다.


대충 아침 8시가 조금 넘어서야 수많은 트럭이 물건들을 내려놓고 가 여유가 조금 생겼다. 트럭에서 내려 놓은 플라스틱 박스들을 주방에서 앉아 다듬을 생각 하니 언제나 막막하지만.


"안녕하십니까!"


신입들이 뻣뻣이 서서 입구를 바라보고 인사를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식당의 사장이자 대령숙수인 백 혜영 사장님이 걸어오고 있었다. 명칭은 대령숙수이지만 사업 쪽에 더 치중을 두고 있는 중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숙수, 가게의 2인자를 노리는 자릿싸움이 치열한 도중이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익숙한 얼굴에 막막했던 동하의 속이 살짝 풀리는 기분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찐! 이야, 이게 얼마 만이냐? 벌써 군대 전역했었어? 시간 금방이네."


"금방 전역하고 복학하려고 잠시 놀러 왔어요. 아저씨도 여전하시네요."


가슴 주머니 속에 꽂혀있는 낡은 수첩과 볼펜, 재료를 확인하기 위한 커다란 식칼을 하나 들고 있는 모습은 10년 전의 모습과 거진 바뀐 것 없이 꾸준했다.


이 곳, 낭천을 사업적으로 키운게 현 사장이라면 음식과 맛으로 키운 분이 전 사장. 그분의 아들인 백 진이 살짝 민망한 웃음을 지으면서 목장갑을 벗은 동하 숙수와 악수를 나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요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지 시간이 날 때마다 새벽부터 와서는 재료 손질을 도와줬다. 당시 신입인 동하 자신보다 손이 빨라서 올 때마다 굉장한 도움과 함께 주변 사람들의 놀림도 같이 가져온 애증이 있었다.


진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도착한 식재료를 하나씩 확인했다.


"오늘도 많네요. 도와 드려요?"


"됐어. 너가 붙으면 새로 온 애들이 뭘 배울 것도 없잖아."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그리고 네놈이 붙으면 내 밑에 애들이 뭐가 되냐. 지나가다 눈치보면서 슬쩍 붙을게 뻔하다."


"하하하."


계절이 바뀔때나 특별한 날에 있는 특수 메뉴를 구상하는데 그 맛을 우려내는 손은 본인의 아버지보다 더해 혀를 내둘렀다. 그런 이유로 그의 손맛을 끌어 들이기 위해 부단히 하는 노력 중 하나가 진이 재료를 손질하고 있으면 슬쩍 옆에 붙어 같이 도와주는 것이었다.


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도 있지만, 본인의 메뉴가 올라가면 그 수익의 일부를 가져가는 시스템이라 다들 눈에 불을 켰다.


백 혜영 대령 숙수가 해후를 나누는 둘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지나쳐서 식재료로 다가섰다. 언제나 매서운 이 동하 숙수가 그렇게 반가워하는 젊은 녀석이 누군인지 궁금한 얼굴을 하다 그녀가 다가가자 바짝 굳었다.


그녀가 관심이 있는 것은 막내들, 식재료보다는 장부.


가을은 수확의 시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꼭 필요한 것들은 가격이 솟아 올라있는 걸 보니 한숨이 푹 나온다.


"동하, 잠깐 와 봐 봐요."


살짝 찌푸린 표정을 보고 말이 길어 질 것이라 직감한 진은 불려 가는 동하에게 작별인사를 남기고 빠르게 주방이 있는 건물 안으로 훌쩍 들어갔다.



경력에 따라 숙수의 옷, 가지런한 전용 한복으로 갈아입고 혼자 주방으로 들어가자 막 청소를 하고 있던 낯선 사내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았다. 거진 2년만에 들어오니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면면이었다.


자신들 보다 젊은 나이처럼 보이는데 높은 경력을 나타내는 옷을 입고 있으니 차마 말을 함부러 붙일 수 없어 서로의 눈치만 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 십니까?"


그러다 진이 먼저 인사하자 어떨떨하게 인사를 받은, 그래도 가장 높아보이는 인물이 대표격으로 앞으로 나왔다.


"그런데, 혹시 누구... 신지?"


"아, 처음 뵙겠습니다. 숙수 백 진 이라고 합니다. 이래 봬도 전부터 일하다 최근에 군대에 다녀오는 바람에."


"아... 반갑습니다. 이번에 주방 숙수로 올라온 장 형식이라 합니다."


백 진이라는 이름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그래도 들어온지 2년 반 넘었는데, 그 과거에 자신보다 높은 직급의 사람 중에 있었나 하고 기억을 연신 더듬었으나 영 떠오른게 없었다.


진이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위치와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 여태껏 경력 낮은 사람만 아침에 나와 일을 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혹시나 싶어 인상이 살짝 굳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주방인이었다.


"오늘 담당은 누구인데 안보이는 겁니까?"


"아, 잠깐 화장실에 가신다고..."


"나다 이 자식아."


대답을 하기가 무섭게 뒤쪽에서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울렸다. 살짝 싸늘한 날씨임에도 반팔을 입고 팔근육을 자랑하시는 배 창수 숙수가 위에서 내려다본다.


다른 식당에서 별일 다 겪어본 이들도 약간은 움찔하게 할만한 외모나 막 군대를 다녀왔다는 청년에게는 별것 없는 요소다.


"담당자가 애들 다 버리고 어디로 빼셨습니까?"


"배탈 나서 화장실 쫌 다녀왔다."


"옛날엔 본인 몸관리도 돋받는 프로라면 잘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분이."


"니 고모가 붙잡고 같이 술 먹자 더니 혼자서 우리 다 쓸렸다. 오늘 이 시간에 나온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길 것이지. 니 고모 주량을 탓해."


"어우 고생하셨네요, 아저씨."


"다음엔 네가 상대해 줘라. 뭔 놈의 가족 전체가 말술이냐."


목소리가 높아지며 날카로운 고성이 더 올라갈것 같아 살짝 마음의 준비를 할 때 또 금방 식는 분위기.


실력있는 요리사일 수록 주방에 서면 정신이 이상해진다는 말이 있다. 지켜보던 이들은 아직 따라 갈 수 없음을 다시금 되새기며 얌전히 청소를 마저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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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한식당 낭천 2 23.12.08 12 2 12쪽
4 4. 한식당 낭천 23.12.07 13 2 11쪽
3 3. 도루묵 지짐과 더덕구이 23.12.06 10 1 11쪽
2 2. 홍천의 그 가게 23.12.05 1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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