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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거스 님의 서재입니다.

북부 전선의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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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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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전환 : 3일 남음

작성
24.05.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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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징벌병 유벨 그라움(2)

DUMMY

지금으로부터 1년 뒤,

그러니까 제국력 387년은 큰 의미를 가진 해였다.


스토리상 대침공이라는 재앙과 함께 게임의 본격적인 에피소드가 시작되는 시기였으니까.


[대침공]


야만족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제국을 습격하는 사건이자, 제국에 난세가 펼쳐지는 시발점이다.


대침공을 기점으로 제국은 서서히 몰락해 가며 바야흐로 각 지역의 영주들이 야망을 드러내는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지만,


‘그건 나중에 일어날 일이니 일단 미뤄두고,’


지금 중요한 건 대침공이다.

현재 내가 있는 북부 전선은 대침공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지역,


지휘관이고 사령관이고 모두 죽어나가는 판국에 징벌병인 내가 살아남을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내가 살아남을 확률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징벌병들에겐 공을 세우면 사면을 시켜주는 제도가 있으니, 그걸 이용해 어떻게든 대침공이 일어나기 전 공을 세워 전선을 벗어나면 된다.


‘지금으로선 사면을 받아 북부에서 탈출하는 게 답인가.’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나를, 아니 정확히는 5000시간 넘게 게임을 플레이하며 쌓아온 지식을 믿어보기로 했다.


앞으로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두 알고 있는데 무엇을 못할까?


다만, 그 전에 우선···


“어쭈? 허리가 내려가? 아주 그냥 눕지 그러냐?”


“죄,죄송합니다!”


“쓰러지는 놈은 오늘 밤까지 대가리 박는다. 알겠나?”


“··················”


“대답, 알겠냐?”


“예···”


일단 이 녀석들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다.





*****





그날 저녁,

베룬의 집무실,


“···해서 그런 소동이 있었습니다.”


베룬은 펠론의 보고를 듣고 실소를 흘렸다.


“대원들을 모두 때려눕혔다라, 최소한 병사관리 문제로 시끄러울 일은 없겠군.”


“예, 방법이 과격하긴 하나 그 정도면 며칠 안에 징벌병들을 모두 휘어잡을 수 있을 겁니다.”


징벌병들은 힘의 논리가 철저한 이들,

설령 상급자라 하더라도 자신보다 약한 자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십인대장들이 병력관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유벨은 이를 가볍게 해결해 버린 것이다.


“덩치만큼이나 무력도 출중한 것 같습니다.”


“흐음, 그래?”


그라움 가문과 유벨에 대한 소문은 얼핏 듣긴 했다.


계모가 심판관을 매수한 탓에 누명을 뒤집어 쓰고 이복동생에게 유산을 빼앗기게 된 비운의 사내.


다행히 귀족 신분은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가 복무를 마치고 가문에 돌아간다고 해도 자신의 권리를 돌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이대로 군에 몸 담고 있는 게 더 나을 수도···’


제대로 가르쳐준 적도 없는 경례를 자연스럽게 취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병사들이 경례하던 자세를 기억하고 그대로 따라한 것이겠지만,


징벌병으로 끌려와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상황에서 그걸 기억하고 또 실행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 자연스레 그에 대한 평가가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징벌병들을 단번에 휘어잡을 무력과 더불어 주변을 살필 수 있는 눈썰미까지 갖추고 있으니 지휘관으로서 제격이야.’


백인대장의 입장에서 유능한 십인대장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전입해 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이니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한동안은 자네가 직접 그를 살피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괜찮다 싶으면 바로 근무에 투입하고.”


“예.”


본래라면 한 달 정도의 적응 기간을 줄 생각이었으나,


유벨이라면 일주일 안에 완전히 부대에 적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베룬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유벨 십인대의 막사 내엔 냉랭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야. 막스 진짜 할거야?”


“그럼? 이대로 당하고만 있자고?”


“그건 그렇지만···”


모두가 잠들었을 시각,

십인대의 투고 마틴과 왕고인 막스는 유벨을 바라봤다.


그가 잠들어 있는 틈을 노려 낮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절대로···’


‘그냥 넘어가선 안돼.’


귀족이란 이유로 오자마자 십인대장이 된 것?


그래, 아니꼽긴 했으나 지금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가 뛰어난 실력을 가진 강자라는 것을 몸소 확인했으니까.


허나, 이렇게 두들겨 맞고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이대로 이놈한테 끌려다니면,’


‘복무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맞아 죽을 거야.’


그들은 최소한 사람으로서 대우받길 원했다. 고로 이건 그에게 해코지를 하는 게 아닌 처우 개선을 위한 최후의 발악이나 마찬가지.


“그럼···간다.”


끄덕!


신호를 보낸 두 사람은 밧줄과 몽둥이를 들고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유벨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거리가 가까워지던 그때,


팟!!


유벨이 덮고 있던 모포가 마틴의 얼굴을 감쌌다.


“억!?”


그는 당황할 틈도 없이 시야가 뒤집히며 바닥에 메쳐졌다.


“아악!”


“마틴?!”


막스는 기겁하며 그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어···?”


어느새 눈 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주먹을 보곤 짧은 외마디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





“어째 너희는 예상을 조금도 빗나가질 않냐?”


“끄으윽···”


바닥을 구르고 있는 막스와 마틴,

한밤중의 일어난 암살시도(?)에 막사 안에 있던 대원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눈을 굴렸다.


“왜? 자고 있을 때 덤비면 할 만할 줄 알았냐?”


“그,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새끼야.”


나름 생각을 가지고 벌인 일이겠지만 이놈들이 미처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


하나는 내가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 거란 걸 예상했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내가 밤잠에 예민하다는 것이다.


‘갑자기 옛날 생각 나네.’


군대에서 해외로 파병 나갔을 때.

새벽에 폭탄을 배송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얼마나 놀랐는지,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진 않았으나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잠귀가 예민해졌다.


‘에이 X발, 생각해 보니까 괜히 또 짜증나잖아?‘


퍽!!


“꿱!”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만든 죄로 한 차례 더 막스를 응징한 뒤, 옆에 쓰러져 있던 덩치에게 물었다.


“야, 너는 이름이 뭐냐?”


“마,마틴입니다.”


“그리고?”


“예?”


“자기 소개할 게 그거 밖에 없어?”


“시,십인대에서 막스 다음으로 오래 있었습니다.”


대충 투고라는 소리네.


이놈들 때문에 잠도 다 깼고,

이 참에 부대원들 신상파악이나 끝내기로 했다.


“다음, 거기 너희도 입대 순서대로 자기소개 해봐.”


“옙! 발터라고 합니다. 원래는 사냥꾼이었는데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던 지주의 아들을 두들겨 팼다가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라울입니다···발터 이놈이랑은 같은 시기에 입대했고 밖에 있을 땐 작은 상단의 일꾼으로 일했었습니다.”


“크람이라고 합니다.”


북부에선 보기 힘든 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는 걸로 보아 아마도 서부출신인 것 같았다.


“저는···잭슨이라고 합니다.”


“끝?”


“야,약초꾼 일을 배운 적이 있어 산길을 잘 찾습니다.”


오케이,

너는 척후병 당첨,


“전 마르코라고 합니다. 올해로 19살이 되었습니다.”


“잠깐 19살이라고?”


“그렇습니다.”


“근데 왜 머리가···”


“예?”


“아니···아무것도 아니야.”


마르코,

벌써부터 머리가 빛나고 있는 게 심히 걱정되는 병사였다.


’관심사병이 될 가능성 높음. 메모,‘


이제 마지막 한 명만이 남았다.


“저,저는 렌이라고 하고···바느질 같은 잡다한 일을 잘합니다.”


으음, 막내 겸 살림꾼 포지션이군.

좋아, 대충 다 파악했다.


대원들의 신상을 모두 머릿속에 저장하고 다시 막스와 마틴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제일 띨빵해 보이는 너희 둘이 최고참이었을 줄은···”


“························”


“쯧, 못났다 못났어.”


복수를 위해 흉계를 꾸민 건 이해한다.

사내 대장부가 어찌 맞고만 있겠는가?


오히려 줏대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면 더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임병이란 새끼들이 말이야. 할 거면 제대로 했어야지.”


“아악!”


막스의 머리를 쥐어박고 싸늘한 눈빛으로 좌중을 훑어봤다.


“이 두 녀석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다.”


“························”


“명심해라. 어중간한 각오는 스스로의 명줄을 재촉한다는 걸. 순간의 감정에 잡아먹혀 날뛰는 놈은 그저 목청만 큰 개X끼일 뿐이야.”


“그,그럼 저희더러 뭘 어떻게 하란 말씀이십니까?”


대원들 중 순둥순둥한 인상을 가진 렌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뭘 어떻게 하냐고?”


“···그렇습니다.”


“생각하고 판별해라.”


이는 단순히 군대에서 뿐만이 아닌 살아가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는 습관 중 하나다.


이런 간단한 것조차 하지 못한다?


‘그럼 그냥 뒤지는 거지 뭐.’


앞으로 제국엔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의 각오가 필요했다.


“상대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상대와 나 사이에 어느정도 격차가 있는지 끊임없이 분석하고 가늠해라.”


“························”


“만약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 대가리를 숙이고 바닥에 엎드린 채 이를 악물고 견뎌, 냉철한 늑대가 되지 못한다면 쥐새끼라도 되란 말이다. 세상은 무모한 개새끼보다 겁많은 쥐새끼가 더 오래 살아남는 법이니까.”


용감함과 무모함을 착각하면 안 된다.

되도 않는 일에 나서는 건 용감한 게 아닌 무모한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너희가 이를 제대로 분간하고 실천할 자신이 없다면, 그땐 생각하고 판별할 줄 아는 사람을 믿고 따라라.”


“유벨님같은 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부정하진 않으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타인을 따르는 것 역시 하나의 능력이었다.


‘홀로 짖어대는 개는 그저 광견 취급을 받을 뿐이지만,’


주인을 지키기 위해 짖는 개는 충견 취급을 받으며 귀한 대접을 받는다.


스스로 늑대가 될 자신이 없다면 하다못해 충견이라도 되는 게 현명한 일,


나는 지금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앞으로 펼쳐질 난세에서 발버둥 칠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내 말에 무언가 느낀 게 있는 것인지,

병사들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저,저 그럼···끄윽,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흠씬 두들겨 맞았던 막스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묻는다.


“저희는 모두 천하게 살아온 놈들입니다. 밖에선 유벨님 같은 귀족분들 말 한마디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그런 파리 목숨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점은 나를 어떻게 믿냐, 이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저희도 사람입니다. 유벨님을 믿고 따르면 이곳에서 고기방패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라, 솔직하게 말하지. 나를 따른다고 너희가 모두 살아남을 수 있을거란 장담은 할 수 없다.”


당장 내 목숨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 ‘나를 믿으면 너희는 모두 무사히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같은 근거 없는 허풍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이건 약속할 수 있지.”


“·····················”


“나를 따른다면 최소한 아무것도 못한 채 허망하게 죽을 일은 없을 거다.”


나 역시 충견이 될지,

늑대가 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었으나,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 할 생각이다.


“···그렇습니까.”


대답을 들은 대원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지금부터 유벨님을 대장으로 모시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한다.”


빙의 1일 차,

나는 대원들의 인정을 받으며 그들을 마음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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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천벌(2) +17 24.06.04 19,296 539 13쪽
40 천벌(1) +17 24.06.03 20,344 533 13쪽
39 후방군 구원 작전(2) +22 24.06.02 21,005 55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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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카밀라 요새 공방전(2) +15 24.05.30 22,226 530 12쪽
35 카밀라 요새 공방전(1) +25 24.05.29 22,633 56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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