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꽃구경에 대한 학생회의
- 13. 꽃구경에 대한 학생회의
벌떡. 긁적긁적.
놀이공원 다녀와서 몸은 피곤한데 반대로 두 눈이 말똥말똥하다. 머리맡의 자명종을 살짝 보니 밤 10시가 막 넘었다. 들어와서 샤워하고 잠옷 입고 누운 지 30분. 하지만 계속 눈만 계속 껌벅이고 있던 윌은 끝내 벌떡 일어나 목덜미를 살짝 덮은 머리카락을 북북 긁었다.
“으음~.”
“잠이 안 와?”
오른쪽에서 들리는 물음에 윌은 머리를 긁던 손을 내리지 않고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리유 역시 눈을 뜨고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 역시 자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리유는 가볍게 생각했다.
“응. 그리고.”
꼬르륵.
리유의 시선은 윌의 얼굴에서 그의 배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윌의 배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은 두 말 할 것 없다. 리유는 윌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대신 해줬다.
“배고프구나.”
“응.”
리유의 말은 여지없이 짧고 감정이 섞이지 않았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윌은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나와 책상 의자를 앞으로 빼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종이가방을 꺼냈다. 안에는 컵라면이 몇 개 있었다.
그 중 두 개를 꺼내어 하나의 봉지를 뜯으며 윌이 물었다.
“컵라면 사놓은 거 몇 개 있어! 먹을래?”
윌의 물음에 리유는 말없이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았다. 스프를 뜯어서 넣고 복도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은 뜨거운 컵라면 두 개를, 방으로 갖고 들어온 윌은 리유 앞에 하나를 놓고 자기 앞에도 하나를 놓고 앉았다.
1, 2, 3. 땡!
손을 뻗어 컵라면 뚜껑을 열려고 하는 리유의 손을 덥석 잡은 윌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먹어본 적이 없는 건가?
“아직 안 익었어! 리유, 컵라면 처음 먹어봐?”
“응? 응. 집에서만 쭉 있었으니까.”
이런 걸 먹어볼 여유조차 없었어, 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 했다. 그런 리유의 표정은 조금 더 굳어져 있었다. 라면이 다 익기를 기다린 윌은 잡고 있던 리유의 손을 놓고, 젓가락으로 고정을 시키고 있던 라면 뚜껑을 열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컵라면이었다.
“다 익었어! 먹자~”
“잘 먹을게.”
가볍고 간단한 인사와 함께 리유는 라면 한 젓가락을 후루룩 먹었다. 뜨끈뜨끈 컵라면을 잡지 않고 그냥 한 젓가락 입에 댔다. 그 직후.
“콜록! 아후, 뜨거워!”
마주 앉아서 라면을 후- 후- 불면서 식히던 윌은 리유의 행동에 머리를 갸우뚱 옆으로 기울였다. 처음 보는 행동이었다. 윌의 경우 어머니가 바쁘셔서 집에 늦게 들어올 때면 한 번씩 먹었던 컵라면이지만, 리유는 달랐다. 16년간 집을 감옥처럼 살았는데 라면을 먹어봤겠는가.
가만히 리유를 보던 윌은 멍하니 생각했다. 그럼 차갑겠냐? 뜨거운 물을 잔뜩 부었는데 당연하지.
그와 같은 시각, 보헤즈미들스쿨에 웬 남자가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작은 사건이 일어난 그 다음 날, 아침 후 조회시간.
“흠. 하필 주중에 ‘꽃구경’이 끼어 있어서 수업이 제대로 될 지가 의문이구나. 어쩌면 전체적으로 저녁식사 후에 보충수업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너희도 피곤하지만 수업을 가르치는 우리는 더 피곤하다는 걸, 염두에 두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않길 바란다.”
아침부터 줄줄 말 많은 남자 담임이시다. 담임의 말에 궁금증이 몰려든 1학년 S반 모두가 입을 모아 물었다.
“꽃구경이 뭐에요?”
“궁금하지?”
“네-!”
활기찬 대답이지만 담임은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간다.
“내일 오후까지만 참도록. 교직원측에서의 별 다른 지시 사항은 없고. 회장 리유와 급장 하나와 부급장 유미는, 오후에 있을 학생회에 늦지 않게 참가하도록. 아마 15일 수요일 ‘꽃구경’에 대해서 얘기가 있을 거다. 조회 끝.”
행동도 담 넘어가듯 넘어가며 교실을 바삐 나가는 담임이었다. 닫혀버린 교실 안의 남녀학생들은 이미 튀어버린 담임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선~ 생~ 님~!!”
물론 리유는 그 무리에 끼지 않았다. 그는 PT를 통해서 2학년 회장에게 담임이 남긴 의문의 사건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물론 짤막짤막한 문자였지만.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하지만 그 답장에 적힌 내용은 대답이 아닌 물음이었다.
-너희 담임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
-……. 레이 첸 선생님.
답에 대한 선배 회장의 답장은 상당히 길었다.
-작년에 2학년 B반 하신 선생님이시네. 꽃구경이 주중에 있다고 그러셨겠네. 뭐, 무리도 아니지. 우리 2학년이 작년에 1학년일 때, 꽃구경 때문에 하루 정도 빠졌던 수업을 오후에 보충수업으로 한다고 하셔서, 우리가 난리를 좀 피웠었거든. 덕분에 선생님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셨어. 그것 때문에 뭐라 하셨나보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선배들의 작은 과거였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리유는 어색한 미소를 띠우며 답장을 보냈다. 곧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리유는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수업 후 학생회의 시간 학생회의실. 1학년회장 리유를 포함한 하나와 유미, 그리고 A반의 부회장과 급장, 부급장들 모두 모였다. 1학년 후배들은 총회장과 총부회장이 앞문으로 들어오자마자 일제히 입을 모아 물었다.
“총회장님! 꽃구경이 뭐에요?”
“말 그대로 꽃구경이야.”
“…예?”
총회장의 덤덤한 대답에 1학년 후배들은 일제히 멍한 표정을 지었다. 리유만 빼고. 실눈을 뜬 그는 알게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단장을 양손으로 짚고 선 총회장은 톤을 조금 더 높인 채로 말문을 열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윌의 목청은 못 따라간다.
“꽃구경, 말 그대로 꽃을 구경하는 거야. 지금 꽃이 완연한 3월이잖아. 매년 3월 15일은 꽃을 구경하는 날로 지정을 하여, 전교생과 교직원들이 돗자리와 함께 식당에서 준비해준 도시락을 들고 교외로 구경을 가는 날이야. 1학년회장 리유는 잠깐 나올래?”
“저요?”
자리에서 일어난 리유는 마음속으로 또 서류 어쩌고 할 거라고 예상하며 총회장이 있는 앞쪽으로 향했다. 회장은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지시 사항을 내렸다.
“자. 알레르기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설문조사 질문지야. 학생들의 솔직한 답변을 듣기 위해서는 꽃구경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해야겠지? 그러므로 신체검사를 할 때 빠트렸던 거라고 ‘대충’ 둘러대면 된다. 뭐, 지금껏 의심을 받기는 했어도 그런대로 잘 넘겼던 둘러치기니까 올해도 그렇게 해서 넘기면 될 거야.”
지시사항은 계속 됐다.
1학년 회장은 설문조사지는 총 5장을 복사하고, 그것을 각 반 급장에게 나눠준다. 질문지를 받은 급장과 부급장은 내일 이 시간 학급회의 시간에, 칠판 앞에 선다. 급장은 조사지에 있는 질문을 얘기하고, 부급장은 질문 번호와 함께 손을 드는 학생의 수를 칠판에 표기한다. 모든 질문을 끝내고 나면 급장은 칠판에 적힌 수를 다시 질문지에 옮겨 적고, 그 위에 무슨 반이지도 같이 쓴다.
그리고 학급회의가 끝나면 리유에게 건네고, 리유는 6장을 걷어서 저녁식사가 끝나고 난 뒤부터 8시 전까지, 학생회장실에 올려놓으면 된다.
리유가 자리로 가서 앉고 난 뒤 총회장은 두 번째 안건으로 넘어갔다.
“보충수업으로 두 시간을 모두 채워야 할 정도로 수업을 못 따라가는 교실이 있나?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다시 한 번 상기를 시키도록 하겠다. 궁금한 게 있으면 즉각 즉각 질문을 하도록 한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니까 괜찮아. 그리고, 그게 바로 자율학습 시간에 편히 놀 수 있는 비결이라고. 보충수업을 안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 아닌가?”
‘이봐, 그런 걸 알려줘도 되냐?’
총회장의 논리 아닌 논리에 1학년 학생회 회원들은 모두 설득당하고 말았다.
“참고로 4월 첫 월요일은 기말고사가 있는 날이다. 중간고사 때와 마찬가지로 필기와 실기로 나눠지고, 결과는 이틀 안으로 나오지. 급장과 부급장은 학생들에게, 토요일 쪽지시험도 잘 보고 기말고사도 잘 볼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 잘 하도록 전해. 물론 설문조사도 말이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이상.”
오늘 안건을 모두 전한 총회장은 총부회장과 함께 앞문으로 학생회의실을 나왔고, 뒷문으로 남은 학생들 모두가 쏟아져 나왔다. 덕분에 리유는 설문지가 구겨지지 않게 잘 말아서 들고 있어야 했다. 구겨지면 복사가 제대로 안 될 테니까.
2월 13일. 크레아가 페이버를 멀리 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주일이 지났다.
“음?”
새로운 제작을 끝낸 프로그램을 가지고 늘 만나는 그곳으로 나온 젠은 가게 안에 어느 익숙한 얼굴의 누군가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60%입니다. 제 스스로 프로그램 만드는데 집중을 제대로 못 했거든요.”
“시험인 건 사장님도 잘 알고 계시니 양해를 해주실 겁니다. 70%라도 좋으니 프로그램을 좀 더 조절해보시는 게….”
사내의 말을 젠은 함부로 잘랐다.
“아닙니다. 쫓기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각서 안에도 60%라고 해두었습니다. 늘 하시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럼.”
젠은 언제나 그랬듯 먼저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커피 전문점을 나가지 않고 아까 봐두었던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그는 맞은편의 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아!”
그녀는 젠을 보고서 곧 손가락을 튕겼다.
“지난주에 고양이라는 동물을 데리고 왔던!”
“예. 젠 매리아입니다. 근데 왜 혼자세요? 페이버 형도 오늘은 쉬는 날인 것으로 아는데요?”
젠의 말에 크레아는 팔짱을 끼며 받아쳤다. 전에 없이 냉랭하고 싸늘한 태도다.
“그 인간 이름은 입에 올리지도 마세요.”
젠은 입을 살짝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헉! 진짜 무슨 일 있었구나.
“말 놓으셔도 됩니다. 제가 5살이나 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페이버 형이랑 동갑이시죠? 근데……. 형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
크레아는 묵묵히 가게 밖으로 시선을 돌렸고, 때문에 젠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 5분이라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으아아악~~~ 지금이 몇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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