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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현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삼국영웅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예서현
작품등록일 :
2022.05.11 23:23
최근연재일 :
2022.06.19 21:47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4,960
추천수 :
310
글자수 :
396,038

작성
22.05.12 00:04
조회
534
추천
40
글자
22쪽

도원결의(2)

DUMMY

  나라가 이렇게 어지럽고 뒤숭숭했지만, 유비의 생활은 전과 특별히 달라진 바가 없었다. 


  없는 살림에 노모와 유원기의 도움으로 명사 노식 문하에서 수학했으나, 이름없고 가난한 종실宗室 유비는 어느 누구에게도 천거薦擧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유비는 여전히 큰 뜻을 품어 호방하고 의협심 있는 젊은 사람들과 사귀며 어울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유비는 사람들과 어울림에 있어 말을 적게 하고 기쁨과 노여움을 내색하지 않았으며 특히 아랫사람을 매우 아끼니 나이 어린 청년들은 앞다투어 그를 따랐다.


  유비는 그를 따르는 청년 중 건장한 호걸들을 따로 모아 상인들을 호위하는 등의 일을 했는데 타 지역의 협객俠客 무리와는 달리 예의가 바르고 과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기에 상인들이 후하게 접대했다. 


  특히 탁군에서 말을 팔며 두루 돌아다니는 중산中山의 대상인 장세평張世平ㆍ소쌍蘇雙 등은 재물이 수 천금에 달했는데 유비를 남달리 여겨 많은 금과 재물을 주었고, 유비는 그 덕분에 무리를 늘리고 병장기兵仗器도 제법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유비가 이렇게 호협豪俠 활동을 하던 탁현에도 황제의 방이 내걸리게 되었다. 




  이 방문을 본 유비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깊고 길게 호흡하여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그는 이내 옆에 있던 측근 간옹簡雍에게 말했다.


  “헌화憲和(간옹의 자) 형, 급히 의논할 일이 있으니 마을 주막으로 익덕益德을 데려와 주시오.”


  유비보다 서너살 위인 탁군 사람 간옹은 몰락하기는 했으나 호족출신으로 성격이 다소 오만했다. 


  하지만 간옹은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보통사람이라면 허황된 꿈으로 치부할 유비의 큰 뜻을 좇아 어려서부터 유비와 친하게 지냈고 유비가 도당徒黨의 무리를 이끌기 시작하자 그를 수종하며 여러 잡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익덕이라는 사내는 유비가 5, 6년간 협객 생활을 하면서 모은 젊은이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이름이 장비張飛였다. 


  익덕은 장비의 자로 이 사내도 유비와 같은 탁군 사람으로 18세 때 양친 부모를 모두 병으로 잃자 가업을 하인들에게 맡기고 유비를 따랐다. 


  장비는 키가 8척에 체구가 매우 웅장했고, 호랑이 같은 두상에 부리부리한 고리눈, 제비턱에 이제 막 기르기 시작한 빳빳한 수염을 갖고 있었다. 


  목소리는 우레와 같이 우렁차고 기세는 거침없이 달리는 말과 같았는데, 이러한 범상치 않은 외모에 어릴 때부터 익힌 무술 솜씨까지 탁월하여 유비는 그를 매우 아꼈다. 


  장비는 나이가 어렸지만 일신의 용맹함을 과신하여 보통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술만 마시면 난폭한 행동을 일삼아 많은 이의 원한을 샀는데, 오직 유비만이 그를 포용하고 잘못을 덮어주니 장비 역시 유비를 섬기며 그의 수족과 같이 움직였다.




  유비가 혼자 술집에 앉아 가볍게 목을 축이고 있자 이내 간옹이 장비를 데리고 주점으로 들어왔다.


  “행수行首께서 무슨 일로 급히 나를 보자 하시오?”


  장비는 말을 마치며 자리에 앉자마자 큰 사발에 술을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이보시게 익덕, 최근에 도당에 왜 이리 발걸음이 뜸하신가?”


  “뭐...집안에 이런저런 일이 좀 있었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기래 그대가 말달리며 사냥하기를 마다하고 이리 두문불출 하신단 말인가?”


  “허허허, 내 나중에 자세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날 긴히 보자 하셨소?”


  “익덕, 저잣거리에 붙어있는 방을 보았소? 황건적이라는 도적떼들이 난을 일으켜 조정에서 의용병을 모집한다고 하오.”


  “의병이요? 우리가 관군이 되어 도적놈들을 때려잡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사내대장부로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하여 공을 세우고, 세상에 이름을 날릴 기회가 우리 눈앞에 왔소이다.”


  유비의 말에 장비 또한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꽃이 솟아올랐다.


  “이 좁은 탁현에서 수십 년을 갑갑하게 사느니 단 하루만이라도 이 한 몸으로 온 천하를 마주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내 그대는 그리 생각할 줄 알았소이다. 서둘러 병장기를 정비하고 도당의 무리를 모아 의용병에 응모하도록 하십시다.”


  “도적놈들을 쳐부수려면 용사가 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재산을 처분해서 병사들을 더 모아야 할 것이오.”


  “병사들이 아니라 의병을 이끌 대장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내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하여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우리 도당에서 군을 이끌만한 인물은 나와 그대뿐인 것 같소.”


  유비가 아쉬운 듯 이야기하자 장비가 바로 말을 받았다.


  “제가 몇 달 전에 사귀어 형님으로 모신 호걸이 한분 계신데 행수께서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익덕 그대가 형님으로 모신 호걸이 있단 말이오?”


  장비의 말에 유비는 굉장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익덕은 성격이 모질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강한데 이 사람이 의형으로 모실만한 호걸은 대체 어떤 인물이란 말인가?’


  “실은 최근에 도당에 자주 나가지 못한 이유도 제 의형 때문이었습니다.”


  “익덕, 그대의 의형이란 분은 어떤 사람이오?”


  유비의 질문에 장비는 다시 술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키며 의형이란 자와 만나게 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5, 6개월 전 장비와 거래하던 하간河間의 상인 송청宋淸이 가축과 소금을 싣고 오는 길에 태행산에서 산적을 만나 물건을 모두 강탈당했다 하며 빈손으로 나타난 일이 있었다. 


  장비는 산적들이 송청 일행의 물건만 취하고 목숨은 살려주었다는 것에 의아했으며, 직업무사 2~30명의 호위를 받으며 장삿길에 나서는 송청이 불과 십수명의 산적에게 속수무책으로 털렸다는 것 또한 쉽게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오랜 기간 장사를 해오면서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 없는 송청이 하는 말이었기에 장비는 물건을 제 때 납품받지 못해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그리고 장비는 송청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만약 그러한 산적이 실제 있다면 한번 겨뤄볼 요량으로 송청 일행을 데리고 급히 태행산으로 달려갔다.


  태행산에는 과연 송청의 말처럼 산채가 있었는데 그 곳의 산적들 대부분은 오합지졸이었고, 오직 두령인 듯한 사내만이 독보적인 무예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유비를 비롯해 인근의 호걸장사豪傑壯士들과 사귀며 마음 내키는 대로 지내왔음에도 넘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던 장비는 상대의 뛰어난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신이 나서 미친 듯이 날뛰며 달려들었다.


  양측의 어느 누구도 이 둘의 대결에 감히 끼어들 엄두를 못내는 가운데 장비와 산적두령은 수백 합을 겨루었으나 승부를 내지 못했다.


  병장기를 휘두르며 붙었다 떨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던 두 사람이 크게 한 번 붙은 후 서로에게 튕겨져나가자 잠깐의 틈이 생기게 되었다.


  이 짧은 순간을 이용해 장비는 상대에게 통성명을 제안했다.


  “나는 탁군의 장익덕이다. 네놈의 이름은 무엇이더냐?”


  “나는 하동의 관운장이다. 내가 수년을 강호江湖에서 떠돌았지만 너 같은 무용을 지닌 자는 처음 만나보는구나. 한숨 돌리고 다시 겨룬다 하더라도 승부를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쯤하고 물러나는 것이 어떻겠느냐?"


  장비는 애초에 송청이 빼앗긴 물건을 되찾거나 산적을 토벌할 목적이 아니라 2~30명의 직업 호위무사를 제압하고도 목숨을 살려줬다는 기이한 산적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태행산 원정에 나선 것이라 결판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대결을 멈출 마음이 없었다.


  “내 오늘 처음으로 네 놈과 같은 호적수를 만나 이렇게 원없이 싸울 수 있어 기쁘기가 그지없거늘 어찌하여 싸움을 멈추자고 하느냐?”


  “승패를 가르고자 한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인데, 이대로 내 손에 죽는다면 너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에게 얼마나 큰 불효이겠는가? 그리고 너도 죽고 죽이고자 하는 생각이 없으니 나와 통성명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이쯤에서 비무比武의 즐거움을 멈추도록 하라.”


  관운장의 외침에 장비도 흥분을 멈추고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크하하하하-, 두 분 부모님은 모두 이미 이 세상 분들이 아니시니 내가 불효할 일은 없겠소만, 당신을 죽인다면 한동안 대적할 맞수가 없어 내 심히 무료하고 적적해질까 그것이 걱정이외다.”


  장비가 호탕한 웃음을 내지르며 말하자 관운장이라는 사람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익덕이라고 했나? 그대가 진정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글쎄, 끝까지 해보지 않아 모르겠소이다만 내가 딱히 형님을 못 이길 것 같지는 않소.”


  “형님이라니? 그대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보아하니 나보다 나이는 많은 것 같고 당당한 풍채에 실력도 그만 하면 되었으니 제가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왜 이러는 것인가? 지금 무슨 수작을 하는 것이야?”


  “저 장익덕이 성격 급하고 술이 과하면 실수가 좀 있지만 호걸들을 흠모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이 관 아무개는 감히 영웅호걸을 칭할 생각이 없으니 괜한 헛수고 하지 마라.”


  “태행산에 오르기 전부터 산적이 상인 일행의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것에 의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도 상대를 배려하여 대결을 그만 멈추자고 하시니 그 넓은 마음 씀씀이에 감복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가? 녹림호객綠林豪客으로 부끄럽게 살아가는 이 사람한테 어울리지 않는 소리는 그만 하라.”


  “백성 죽이는 큰 도적놈들이 날뛰는 세상에 사람 목숨 생각해 주는 형님 같은 분이 도적 축에 끼기나 하겠습니까?”


  관운장이 의형제가 되는 것을 계속 사양하자, 장비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히 예를 갖추며 다시 한 번 청했다.


  장비가 공손하고 지극한 태도를 보이자, 그제야 관운장이 장비의 두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며 결의형제結義兄弟를 승낙했다.




  장비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대접전을 펼치고 의형제를 맺은 관운장이란 사내는 성명이 관우關羽이고, 운장雲長은 그의 자이다.


  관우는 사례주司隸州 하동군河東郡 해현解縣 사람인데, 18세 때 권세를 믿고 시람들을 괴롭히는 토호土豪를 때려죽이고 강호로 피신하였다.


  당시 관우는 혼인을 맺은지 채 몇 달이 되지 않았는데, 젊은 혈기에 불의를 참지 못한 대가로 세상의 눈을 피해 떠도는 길손이 된 것이었다.


  고향을 떠나 6, 7년간 정처없이 강호를 유랑하던 그는 지난 늦가을에 태행산을 지나다 산적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을 제압한 겨울을 나기 위해 그대로 산채에 눌러앉아 버렸다.


  애초에 관우는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산적을 모두 처단하려 했으나, 그들 또한 먹고살기 어려워 산으로 숨어든 양민임을 알고 수하로 거두어 도둑질을 금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 산채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먹을거리가 떨어지자 관우는 호족이나 장사꾼의 재물만 훔치는 것으로 방침을 변경했고, 이로 인해 송청이 습격을 받게 된 것이었다.


  관우나 장비와 같이 자존심이 강하고 혈기 왕성한 사내들은 쉽게 친해질 수 없는 법이었으나, 탁월한 실력을 갖춘 자를 우러러보는 장비의 성격과 자신에게 공손한 사람은 후하게 대접하는 관우의 성격이 우연히 맞아떨어져 이 두 호걸은 의형제를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참으로 기연이 아닐 수 없었다.




  관우와 만나게 된 자초지종을 들은 유비가 장비에게 물었다.


  “아니 익덕, 그만한 호걸을 집에 모셨으면서 어찌하여 도당에 한번 모시고 나오지를 않았소?”


  “제 의형이 고향에서 백성을 괴롭히는 불한당을 때려죽여 관군의 수배를 받고 있습니다. 조용히 숨어 지내야하기 때문에 쉽사리 바깥 활동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대의 의형이 죄를 지어 숨어 지내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이번 의병에 응해야 할 것이오. 방을 보니 황제폐하께서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재주가 있는 자를 천거하도록 하시었소. 우리가 함께 공을 세운다면 그도 떳떳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유비는 관우를 보기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익덕 어서 농장으로 건너가 그대의 의형과 함께 상의하도록 합시다.”




  유비와 장비가 급히 농장에 도착했을 때 관우는 뒤뜰에서 홀로 무예를 수련 중이었다.


  멀찍이서 유비가 바라본 관우는 9척의 장대한 체격에 나이답지 않은 긴 턱수염을 길렀고, 얼굴빛은 잘익은 대춧빛에 검붉은 입술, 봉황의 눈에 숱이 많은 누에 모양의 눈썹을 하고 있어 모습이 위엄있고 위풍당당했다.


  유비는 장비가 소개를 해주기도 전에 관우가 있는 쪽으로 건너가 본인을 소개하며 인사했다.


  “저는 중산정왕의 후손으로 성은 유, 이름은 비이며 자는 현덕이라 합니다. 오늘 익덕으로부터 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유비가 갑자기 다가와 자신을 소개하자 관우는 조금 당황했으나 유비는 장비와 함께 온 손님이었기 때문에 정중히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관우라 합니다. 자는 운장이고, 하동군 해현 사람입니다.”


  두 사람의 통성명이 끝나자 장비가 관우에게 말했다.


  “형님, 여기 유현덕공이 제가 평소에 말씀드리던 저희 도당의 행수되시는 분이오. 이번에 행수께서 황건적을 토벌하는 의병에 참여하고자 하시는데 저와 함께 행수를 도와 의용군을 이끕시다.”


  장비의 말이 끝나자 유비가 말했다.


  “익덕이 형님으로 모신 분이 계시다길래 대단한 호걸인줄은 알았으나 이처럼 위엄과 기품이 넘치는 분인지는 몰랐습니다. 저 유비가 반란을 일으킨 황건적을 토벌하여 백성을 구제하고자 하니 공께서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관우는 뜻밖에도 유비의 제안을 거절했다.


  “행수님의 큰 뜻은 알겠습니다만 저는 고향에서 죄를 지어 몸을 숨기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신세라 의병에 참여하기가 어렵습니다.”


  “형님, 이제 더 이상 숨어 지낼 필요가 없소. 난을 평정할 인재를 모으기 위해 천하에 대사면령이 내려졌소. 그러니 이제 사내대장부로 큰 뜻을 한번 펼쳐봅시다.”


  “익덕 아우, 어찌 먹고살기 힘들어 들고일어난 백성들을 토벌하는 일에 나설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세도가 놈들의 전횡을 참지 못해 여웅呂熊이란 놈을 때려죽이고 강호를 떠돌며 산적 노릇까지 한 사람일세.”


  관우가 의병에 참가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를 장비에게 말하자 유비가 말했다.


  “공의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우리가 공께 의용병을 함께 하자고 계속 강권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공께서 권세를 믿고 힘없는 백성을 괴롭힌 자를 죽인 것과 지금 황건적이 발호하는 것은 전혀 같지가 않습니다.”


  그러자 관우가 반박했다.


  “극결은 ‘예禮가 없으면 백성이 즐거워하지 않으니, 이것은 반란이 일어나게 되는 근원이다’라고 했습니다. 유행수께서 저의 행위와 황건적의 봉기가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친에게 춘추좌전春秋左傳을 배운 관우는 문공 7년 진나라 대부 극결이 조돈에게 한 말을 인용해 유비의 말을 반박했다.


  그러자 유비가 말했다.


  “사은史嚚이 말하길 ‘장차 나라가 흥하려면 백성의 의견을 좇고, 나라가 망하려면 신에게 의지한다’ 했는데, 황건적은 백성을 진정으로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기괴한 술법과 허무맹랑한 말로 백성을 기만하고 있을 뿐입니다. 도적들이 혹세무민할수록 백성은 더 불안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연명然明은 ‘백성을 자식같이 돌봐야 하고, 불인不仁한 자를 보면 주륙誅戮하는 것을 마치 매가 새를 쫓듯이 해야 한다’ 했는데 황건적은 세력을 얻게 되자 각지의 주군을 약탈하고 수많은 백성을 죽이는 끔찍한 일을 서슴없이 행하니 마땅히 토벌해야 할 것입니다.”


  유비는 말을 멈추어 관우가 자신의 말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잠시 준 후 마저 말을 이어갔다.


  “공께서 말씀하신대로 예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 백성은 횡포에 맞설 수 있지만, 그 행위가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이 또한 예가 아닙니다.


공은 함께 사는 마을의 백성을 위해 악한 자를 죽이고 무고한 생명을 죽이지 못하도록 산적들을 통제하였으나, 황건적에게는 중민重民의 마음이 없으니 기존의 토호나 탐관오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좌전에서는 예와 중민을 똑같이 중시하였으니 이 둘을 함께 놓고 세상의 이치를 논해야 할 것입니다.”


  관우는 대대로 농사짓던 집안의 자식으로 스승을 모시고 학문을 배운 것이 아니라 학식의 깊이가 부족하여 늘 자신의 행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런데 유비가 자신이 익숙한 춘추좌전을 통해 행동의 기준을 명확히 깨우쳐 주니 실타래처럼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행수님께서 주신 가르침에 진심으로 감복했습니다. 앞으로 행수님을 스승처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관우가 몸을 굽혀 읍하며 말하자 유비가 급히 관우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스승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저 유비가 하찮은 지식으로 어찌 공의 스승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의병을 일으키는데 대장으로 모실 분이 마땅치 않았는데 공이 이렇게 함께 하신다고 하니 공께서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유비의 제안에 관우는 강하게 사양했다.


  “당치도 않습니다. 행수님께서 오랫동안 힘써 모으고 기른 탁현의 장사들을 어찌 저에게 맡기신다 하십니까?”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장비는 유비의 학식과 인품을 더욱 더 흠모하게 되었다.


  ‘죽기살기로 싸워도 제압하기 어려운 호걸장사를 저리도 가볍게 말 몇 마디로 굴복시키다니 과연 유현덕 행수가 대단하긴 정말 대단하구나. 또한 스승처럼 섬기겠다는 운장 형님에게 의용군의 대장 자리를 양보하여 상대의 자존심을 한 번 더 배려해주는 배포 또한 감탄을 자아낼만 하고!’


  유비에게 탄복하던 장비는 불현듯 유비와도 의형제를 맺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와 협을 갖춘 형님이 한 분 계시니, 지와 덕을 겸비한 형님도 한 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저 양반들이 서로 윗자리를 사양하고 있으니 내가 관계를 정리해 줘야겠다.’


  “두 분은 그만들 하시오. 두 분이 연배가 비슷한 호걸들인데 사제師弟나 장졸將卒로 맺어지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제 전쟁터로 나가면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니 형제의 의를 맺어 한마음으로 협력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비와 관우가 이구동성으로 찬성했다.


  유비와 관우가 동의하자 장비가 말했다.


  “이 장원 뒤에 복숭아 동산이 있는데 마침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내일 그 동산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고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어 한마음으로 협력하기로 하시죠.”




  이튿날 세 사람은 복숭아 동산에서 검은 소와 흰 말을 잡고 여러 가지 재물을 준비하여 형제의 예를 맺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유비와 관우가 서로에게 맏형의 자리를 양보하려 해서 일이 진행되지 못했다.


  유비는 관우의 나이가 자신보다 한 살 많은 것을 이유로 관우에게 맏형의 자리를 양보했고, 관우는 유비가 황실의 종친이며 무리를 이끄는 행수이기 때문에 마땅이 유비가 맏형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격급한 장비가 이를 참지 못하고 다시 나섰다.


  “행수님, 정말 왜 그러시오? 어제 이미 서열정리는 다 끝난 것이 아니오? 운장 형님이 행수님을 못당하고 의병에 참여하기로 했으니 맏형은 당연히 행수님 차지 아니겠습니까. 자고로 ‘덕있는 자는 무력을 쓰지 않는다’ 했는데 운장 형님이나 저는 일개 무부들로서 무력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안되는 사람들이니, 덕이 있고 학식이 높은 행수님께서는 더 이상 맏형 자리를 양보하지 마십시오.”


  장비까지 이리 나서자 유비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었다.


  “저같이 부족한 사람이 두 분과 같은 호걸들을 아우로 두게 되어 정말 기쁘기 한량없소이다. 오늘부터 두 분과 같은 침상에서 자고 한상의 밥을 먹으며 생사고락을 함께 하겠습니다.”


  계속 자신들을 존대하는 유비에게 관우가 말했다.


  “한집안 식구간에 형님이 아우를 존대하는 법은 없습니다. 지금부터는 말씀을 편히 하시지요.”


  유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그렇게 함세.”


  서열이 정해지자 세 사람은 향을 피워 두 번 절하고 맹세했다.


  “유비ㆍ관우ㆍ장비가 성은 다르오나 의형제를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곤경에 빠진 자를 구하고 위기에 처한 이를 도우며,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옵니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오직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바랄 뿐입니다. 황천과 후토께서는 진실로 이 마음을 살피시어 누구든 의리를 배신하고 은혜를 잊는 자는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여주소서!”


  맹세를 마치고 제사가 끝나자 다시 소를 잡고 술자리를 마련하여 마을의 장정들을 불러 모았다.


  도당의 무리뿐만 아니라 다른 젊은이들까지 잠깐 동안에 5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곧바로 복사꽃이 만발한 도원에서 마음껏 술을 마시며 다 함께 취했다.


작가의말

아래의 정사로 추측하여 도원결의를 연의와 다르게 서술했습니다.


- 탁군 탁현 사람이다(유비전) / 탁군 탁현 사람이다(장비전) /  하동군 해현 사람인데 탁군으로 망명했다(관우전)


- 아랫사람들을 잘 대해주고 호협들과 교우맺는 것을 좋아하니 젊은이들이 앞다퉈 그를 따랐다(유비전) / 젊어서부터 관우와 함께 유비를 섬겼다(장비전) / 유비가 향리에서 무리를 모으자 장비와 함께 유비를 위해 적을 막아냈다(관우전)


- 관우가 몇 년 연장이어서 형으로 섬겼다(장비전) /  관우, 장비와 같은 침상을 쓰고 은혜가 형제와 같았다(유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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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2 딸꾹
    작성일
    22.06.02 05:57
    No. 1

    모야..귀큰놈이 쥔공이네..퉷~~!!!퇴각한다..관우랑 손잡고 칼 거꾸로 물고 뒈지면 복귀함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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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장안의 봄(2) 22.05.23 39 6 16쪽
26 장안의 봄(1) 22.05.23 46 4 14쪽
25 현룡재전(5) 22.05.22 42 3 15쪽
24 현룡재전(4) 22.05.22 40 4 13쪽
23 현룡재전(3) 22.05.21 35 4 15쪽
22 현룡재전(2) 22.05.21 42 3 14쪽
21 현룡재전(1) 22.05.20 49 3 15쪽
20 반동탁연합(6) 22.05.20 44 4 14쪽
19 반동탁연합(5) +2 22.05.19 43 4 17쪽
18 반동탁연합(4) 22.05.19 44 4 22쪽
17 반동탁연합(3) 22.05.18 64 4 17쪽
16 반동탁연합(2) +2 22.05.18 54 5 15쪽
15 반동탁연합(1) 22.05.17 60 6 16쪽
14 낭패위간(2) 22.05.17 62 6 14쪽
13 낭패위간(1) +2 22.05.16 70 7 13쪽
12 권력쟁패(2) 22.05.16 66 6 16쪽
11 권력쟁패(1) 22.05.15 74 4 14쪽
10 인연과 운명(2) +2 22.05.15 88 4 15쪽
9 인연과 운명(1) 22.05.14 71 4 13쪽
8 천하무도(4) 22.05.14 76 5 15쪽
7 천하무도(3) +2 22.05.13 98 6 20쪽
6 천하무도(2) 22.05.13 102 6 14쪽
5 천하무도(1) 22.05.12 136 7 13쪽
4 난세의 영웅들(2) 22.05.12 175 23 20쪽
3 난세의 영웅들(1) 22.05.12 274 28 17쪽
» 도원결의(2) +1 22.05.12 535 40 22쪽
1 도원결의(1) 22.05.11 1,337 5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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