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조회수 :
10,612
추천수 :
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2.08.15 21:45
조회
93
추천
5
글자
18쪽

두 라이칸스로프 (4)

DUMMY

킬레브의 작은 몸집은 은폐물이 많은 곳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바위나 나무, 수풀이 많은 숲이라면 킬레브를 위한 전장이라고 봐도 좋았다.


킬레브는 밤과 나무가 합작하여 만들어낸 그림자에 몸을 가렸다.


넓게 펼쳐진 발바닥에는 털이 수북히 덮여 있어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또한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몸 덕분에 빽빽이 들어선 나무 사이에도 무리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라이칸스로프의 예민한 감각에도 포착되기 힘들 정도로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킬레브는 나뭇잎이 수북한 나뭇가지에 몸을 숨겼다. 세 나무가 서로 맞물려 서 있는 덕분에 킬레브가 엎드려도 거뜬히 지탱할 수 있었다.


킬레브는 혀로 코와 입술을 핥았다.


먹잇감은 당황해 하고 있었다. 킬레브가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해 연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크기만 무식하게 큰 주제에 하는 짓은 영락없는 새끼 늑대였다. 킬레브는 저 겁에 질린 새끼 늑대를 놀래켜주고 싶었다.


몸을 잔뜩 웅크린 킬레브는 위로 뛰었다. 탄력이 뛰어난 움직임이었다.


킬레브가 순식간에 나무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숲의 경관이 킬레브의 눈에 들어왔다.


워낙 숲이 넓은 터라 전체적인 광경은 볼 수 없었지만 킬레브는 만족했다.


이제 긴장이 다 풀렸다. 아까는 당황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이젠 달랐다.


킬레브는 먹잇감을 어떻게 하면 요리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아래로 내려온 킬레브는 빠르게 옆으로 몸을 던졌다. 온 사방에 소리를 내어 혼란스럽게 할 작정이었다.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었다. 자그마한 소리에도 반응할 수 밖에 없다 보니 주의력이 흐트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킬레브는 일부러 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맴 돌았다. 그럴 때마다 아간은 귀를 쫑긋하며 킬레브가 이미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킬레브는 눈을 빛냈다. 마침내 상대가 틈을 보인 것이다.


소리 없이 이죽거린 킬레브는 네 발로 땅을 박찼다. 갈퀴로 파헤친 것처럼 흙이 좌우로 밀렸다.


킬레브가 아간의 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주둥이에 핏방울이 맺혔다. 진하고 끈적한 피였다.


킬레브가 노렸던 지점에 다섯 개의 손톱이 정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킬레브는 손톱을 핥으면서 맛을 음미했다. 먹잇감이 겁을 내고 있다는 게 피에서도 느껴졌다.


만약 킬레브가 의식을 갖고 있었다면 한동안 황홀감에 젖었을 것이다.


그러나 푸른 라이칸스로프는 아직 안심하지 않았다. 저 무식하게 덩치만 큰 녀석을 쓰러뜨리기엔 얕은 공격이었다.


더 확실하고 치명적인 공격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킬레브는 주의깊게 아간을 주시했다. 아간은 여전히 킬레브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아니, 알아도 늦었다. 킬레브는 계속해서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고 있었다.


소리가 나더라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훨씬 나았다.


킬레브는 연달아 공격을 시도했다. 비록 아간에겐 큰 상처가 아닌지라 여유가 있어보였지만 오래 가진 않을 것이다.


어찌 됐든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한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킬레브는 연속적으로 아간을 공격했고 아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반격을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간도 나름대로 킬레브를 잡아채려 했다.


하지만 항상 한 박자 뒤늦게 휘둘렀다. 그 바람에 킬레브의 그림자만 볼 뿐이었다.


유유히 아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킬레브는 이제 끝을 내려고 했다. 아간의 밑에는 피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흙은 아낌없이 피를 빨아마셨지만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간이 발로 바닥을 밟을 때마다 울컥거리며 피를 뱉어내는 걸 보면 확실했다.


킬레브는 마지막 도약을 준비했다. 목표는 아간의 목. 꿈틀거리는 동맥으로부터 피가 얼마나 솟구칠지 기대가 되었다.


완벽한 사각지대로 이동한 킬레브는 힘껏 날아올랐다. 그리고 사형 선고를 내리듯 승리의 포효를 질렀다.


촤악! 킬레브는 미소를 띄었다. 확실한 감촉이 느껴졌다. 아간의 목구멍을 후벼파는 감촉이.


킬레브는 따뜻한 피에 온몸을 적실 준비를 했다.


"커엉!"


난데없는 고통에 킬레브는 잠시 넋을 잃었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난 킬레브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아간이 뒷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킬레브가 땅에 착지하는 순간, 아간이 킬레브의 복부를 뒷다리로 후려찬 것이다.


킬레브는 당황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연타로 빠르게 얻어맞았다.


킬레브는 고개가 돌아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다. 정면 승부는 킬레브에게 불리했다. 다시 몸을 숨기고 공격하는 게 나았다.


그러나 아간은 킬레브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간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킬레브를 연신 가격하고 있었다.


할퀴고, 때리고, 박치고, 물어뜯고. 온몸이 흉기인 라이칸스로프이기에 가능한 공격이었다.


상대가 같은 라이칸스로프라고 해서 먹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무자비한 구타가 멈췄다. 킬레브는 피투성이인 아간보다 훨씬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기었다.


다리가 기형적으로 비틀려 있는 바람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킬레브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듯 으르렁거렸지만 기세는 아까보다 덜했다.


아간이 킬레브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뿐이었다. 아간은 미력하게나마 의식을 갖고 있었다.


킬레브의 동물적인 움직임이 빠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디에 안착할지 미리 예상할 수만 있다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간도 처음에는 분노에 휩싸여 모든 나무를 박살내고 싶었다. 녀석이 나무에 숨어 공격한다면 나무를 없애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건 체력만 빼는 일이었다. 나무가 박살난다 한들 킬레브는 어차피 다른 곳으로 숨으면 되는 일이었다.


아간이 만전의 상태라고 해도 도래솔 숲 전체를 벌목하는 건 불가능했다.


해서 킬레브가 약 올리는 공격을 해도 꿋꿋이 기회를 노렸다. 살이 깎이고 피가 튀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려도 인내한 아간은 마침내 그 결실을 이루고야 말았다.


이제 아간은 본능에 몸을 맡기고자 했다. 처음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이제 중요치 않았다.


모든 생물은 먹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일차원적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행동이었다.


아간은 입을 쩍 벌렸다. 킬레브는 끝까지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고 손톱을 세웠다.


쉴 새 없이 공격을 했음에도 손톱은 뭉툭해지기는커녕 여전히 예리한 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간이 발로 킬레브의 손목을 짓밟는 것으로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아간은 고개를 숙였다.


곧 육편이 뜯겨지는 소리가 울렸다.


킬레브의 목덜미에서 피가 솟구쳤다. 킬레브가 그토록 기다렸던 일이었다. 문제는 이 피가 자신의 목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아간의 입가에 살점과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검은 털에 붉은 피가 묻으니 흉악함이 배가 되었다.


아간은 다시 물어뜯으려고 했다. 그때 킬레브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킬레브는 눈동자를 크게 뜨더니 제 몸을 내려다봤다.


매끈하고 털이 없는 모습이 아닌 기괴한 푸른 털로 뒤덮인 모습이 보였다. 킬레브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소리를 내었다. 목소리가 나왔다.


라이칸스로프가 된 뒤 처음으로 의식을 찾은 셈이었다.


킬레브는 잠깐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는 듯했다. 앞에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라이칸스로프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몸이 빠르게 식어가는 걸 알게 되자, 그리고 그 원인이 바로 목에서 나오는 피라는 걸 알게 되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 안 돼. 잠깐만 기다려. 살려줘. 살려줘!"


킬레브는 왼손은 목을 붙잡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보이며 마구 휘저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검붉은 피가 왈칵하고 쏟아져 손을 물들였다.


킬레브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 드디어 의식이 생겼다! 그토록 바라왔던 일이 이제야 벌어진 것이다.


분명 기뻐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하필 죽을 때가 되고서야 정신이 돌아오다니.


킬레브는 이 어처구니 없는 운명에 좌절했다.


"아직은 나는, 아직은···."


킬레브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아간이 킬레브의 배에 코를 박고 있었다.


주둥이를 움직일 때마다 킬레브가 움찔움찔하고 떨었다.


이윽고 킬레브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희미한 빛이 서려 있던 눈동자가 곧 어두워졌다.


아간이 머리를 들었다. 번들거리는 창자가 입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손으로 창자를 쥐어뜯은 아간은 손바닥을 펼쳤다.


창자가 커다란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듯 움직이고 있었다. 새하얗게 빛나던 동공이 갑자기 흔들렸다.


아간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으윽···."


아간의 거대한 몸이 수축되었다. 사방팔방 뻗어 있던 그림자가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시간을 되감는 것 같았다.


킬레브처럼 몸이 줄어든 아간은 탈력감에 무릎을 꿇었다.


핏덩이가 몸 곳곳에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하반신도 만만찮았지만 상반신이 특히 더 심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아간은 몸서리쳤다. 분명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었지만 아간은 북방의 칼바람 못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간은 킬레브를 바라보았다. 배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먹다 남은 창자가 뱀처럼 꾸물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멍하니 보고 있던 아간은 침을 뱉었다. 선홍빛 색을 띄고 있었다.


왜 이런 색을 띄고 있는지는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간은 거칠게 입에 손가락을 넣어 쑤셨다. 가래 비슷한 침이 걸쭉하게 나왔다.


아간은 몸을 수그렸다. 속에 있는 모든 걸 다 쏟아부으려고 했다.


"승리의 포효라도 하고 있는 건가. 그런 것치곤 조금 더럽네만."


아간은 퀭한 눈으로 고개를 올렸다. 라자살라가 킬레브를 앞에 두고 서 있었다.


킬레브는 처참하다고 표현하는 게 부족할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벌어진 배와 목덜미에는 지독한 피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지간한 비위를 갖고 있지 않고서는 서 있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라자살라는 한 번 스윽 보기만 했을 뿐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고생했네. 재료 구하느라 많이 힘들었겠군. 수고의 의미로 나중에 원하는 부탁 있으면 하나 정도는 들어주겠네. 이런 일 흔치 않으니 잘 생각하고 내뱉는 게 좋을 게야."


라자살라는 은근히 반응을 기다렸다.


아간이 의심에 찬 눈초리로 쳐다보며 '그 말 진심입니까?' 라는 말만 했어도 라자살라는 흔쾌히 웃었을 것이다.


아간은 아무 말도 없었다. 괜히 머쓱해진 라자살라는 둘러대듯 말했다.


"돌아가는 길이 멀군. 내가 힘을 불어주도록 하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적어도 지쳐 쓰러질 일은 없을 게야."


"당신···."


아간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라자살라에게 다가가서 멱살을 잡고 싶었다.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지만.


라자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볼까봐 미리 말하겠네. 맞네. 내가 말했던 재료가 이 녀석이 맞아. 그러니 괜히 엄한 데에 힘 뺐다고 투덜거리지 않아도 좋아."


"맞다고?"


아간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전투에 온 힘을 쏟아서 그런지 자꾸만 눈이 감겼다. 그러나 아간은 어떻게든 라자살라를 노려보려고 했다.


"사람이, 재료라고?"


"사람이라니. 괴물이지. 구제불능한 괴물. 이건 비단 라이칸스로프의 면모만 보고 하는 말이 아닐세. 이 녀석은 진짜 괴물이었거든. 사람 목숨을 파리만도 못하게 다룬 놈이었어."


아간은 듣지 않았다. 혼잣말로 뭐라 중얼거렸는데 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라자살라는 별안간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만. 그만하게. 살인이니 뭐니 그딴 소리를 계속 지껄일 거면 확 버려두고 가는 수가 있어."


라자살라가 혐오감이 짙은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아간은 고개를 흔들고는 앞머리를 세게 움켜쥐었다.


"내가 사람을 또 죽였다고?"


"아간. 똑바로 보게."


라자살라가 발끝으로 푸른 라이칸스로프의 볼을 툭 쳤다. 주둥이 사이로 붉은 혀가 축 늘어져 있었다. 콧구멍에는 피거품이 아직도 보글거리고 있었다.


"정녕 이게 사람으로 보이는가?"


아간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넝마 쪼가리도 없이 알몸이 된 그는 자뭇 처량해보였다.


"라이칸스로프로 변하기 전에는, 그래. 사람으로 보이긴 했겠지. 하지만 겉모습만 그렇지 실상은 괴물이야. 그러니 되도 않는 죄책감에 빠져 울적해 있지 말게."


라자살라는 아간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간은 여전히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억지로 일으키려던 라자살라는 귀를 기울였다.


"뭐라고 했지?"


"그럼 나는. 나도 괴물인 거야?"


"아간."


라자살라는 잠시 말을 멈췄다. 언뜻 라자살라는 지루하다는 얼굴을 보였다. 아니면 난감하다는 얼굴이거나.


뭐가 됐든 할 말을 찾고 있는 건 분명했다.


"그래. 자네도 괴물 맞아. 하지만 이 놈하고는 많이 달라. 적어도 자넨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으니까. 그리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와 손을 잡기도 했고. 안 그런가?"


아간이 손을 밑으로 내렸다. 초췌한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라자살라는 아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잊지 말게. 이기지 않았다면 먹히는 건 자네였어. 그리고 저 녀석은 환희에 젖어 있었겠지. 먹히는 쪽을 선택할 텐가, 아니면 먹는 쪽을 선택할 텐가? 그리 어려운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아간은 조용히 읊조렸다.


"···저 라이칸스로프도 당신이 실험하고 있던 자였습니까?"


"물론."


"그럼 일부러 싸움을 붙인 거군요. 당신이 계획한 거였습니다."


아간이 몸을 날렸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라자살라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갔다. 아간은 라자살라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그렇다면 누구 하나 죽어도 상관없었다는 겁니까! 내가 죽었다면 당신은 저 사람한테 가서 수고했다고 말할 생각이었다는 겁니까!"


"그야 당연하지."


라자살라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화가 잔뜩 난 아간은 손에 힘을 주려 했다. 라자살라는 덤덤한 얼굴로 아간의 손에 손을 올렸다.


"너무 온건하게 생각한 거 아닌가, 아간? 설마 약물이나 들이켜면 알아서 나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렇게 해서 저주가 풀릴 거면 진작에 해결됐어."


"그렇다고 누군가를 죽이면서까지···."


"그게 아니야, 아간. 틀렸네. 누군가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낫는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지."


이번에는 아간이 뒤로 넘어갔다. 몸을 일으킨 라자살라는 누구와 달리 멱살을 잡지 않았다.


다만 매서운 눈초리로 밑을 쏘아보고 있었다.


"자넨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져 녀석은 완전한 라이칸스로프가 되고자 이 자리에 왔네. 서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곳에서 부딪치게 된 거지. 그리고 끝내 이긴 자네는 목표를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간 셈이 된 거고. 그게 전부야. 더 이상 이상한 의미를 부여해서 되도 않는 자책에 빠지지 말게. 무엇보다."


라자살라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어차피 커다란 천을 둘둘 말아 입은 터라 구겨질 일도 없었다. 밑을 잡고 당기기만 해도 쭉 펴졌다.


"이제 자네도 해소가 되었잖나. 그러면 된 거지."


"해소?"


"어떤가. 아직도 누군가를 찢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는가?"


아간은 멍한 얼굴로 라자살라를 쳐다보았다. 라자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한동안은 잠잠해지겠어. 그래도 마음 놓진 말아. 지랄병이 언제 도질지 모르니까. 새로 약을 만들기 전까지 아무쪼록 몸 사리고 있게."


말을 마친 라자살라는, 갑자기 머리를 돌렸다. 멀리서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대화 내용을 듣던 라자살라는 마을 사람들이 아간과 킬레브를 찾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정확히 말한다면 숲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원흉을 찾고 있었다.


원래라면 밤이 드리운 숲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지만 보통 사건이 아니다보니 직접 온 듯싶었다.


사실 이젠 밤도 아니었다. 새벽을 넘어 서서히 동녘이 떠오르고 있었다.


라자살라는 머잖아 이곳에 사람이 올 거라는 걸 알았다.


"저 사체는 내가 알아서 치우도록 하지. 일단 자네 먼저 떠나게."


아간은 일어나지 않았다. 말로 살살 달래주던 라자살라는 끝내 호통을 치고 말았다.


"멍청한 놈! 할 거 다 해놓고서는 여기서 일을 그르칠 생각이냐? 못난 놈 같으니. 퍼뜩 일어나지 못해!"


라자살라는 강제로 아간을 일으켰다. 아간은 제대로 걷기가 힘든지 자꾸만 넘어지려고 했다.


라자살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힘이 빠진 듯했다.


"이리 오게."


라자살라는 죽은 라이칸스로프의 몸에 왼손을, 아간의 팔에 오른손을 얹었다.


채 빠져나가지 않은 생의 기운이 라자살라를 다리 삼아 아간에게로 넘어갔다.


아간은 몸을 뒤덮고 있던 눅진한 피로가 조금 씻겨지는 걸 느꼈다.


아간은 눈가를 일그러뜨린 채 죽은 라이칸스로프를 바라보았다. 선홍색을 띄고 있던 혀가 어느새 보라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 잠깐만."


라자살라는 급히 겉옷을 벗어 건네주었다. 하마터면 알몸으로 내보낼 뻔했다.


아간은 옷을 받지 않고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라자살라는 억지로 옷을 입혀준 뒤 등을 밀었다.


떠나는 아간을 보며 라자살라는 한숨을 쉬었다.


"참 골치 아픈 녀석이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라이칸슬로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피 냄새 (1) 22.08.16 91 5 23쪽
» 두 라이칸스로프 (4) 22.08.15 94 5 18쪽
12 두 라이칸스로프 (3) 22.08.14 96 7 12쪽
11 두 라이칸스로프 (2) 22.08.13 96 7 12쪽
10 두 라이칸스로프 (1) 22.08.12 117 5 16쪽
9 때이른 한계 (4) 22.08.11 109 6 17쪽
8 때이른 한계 (3) 22.08.10 112 6 15쪽
7 때이른 한계 (2) 22.08.09 132 4 14쪽
6 때이른 한계 (1) 22.08.08 172 5 12쪽
5 무두장이 아간 (5) 22.08.05 181 7 17쪽
4 무두장이 아간 (4) 22.08.04 188 6 12쪽
3 무두장이 아간 (3) 22.08.03 220 6 12쪽
2 무두장이 아간 (2) 22.08.02 350 8 17쪽
1 무두장이 아간 (1) +1 22.08.01 1,324 10 2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