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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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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조회수 :
10,624
추천수 :
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2.08.14 21:40
조회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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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두 라이칸스로프 (3)

DUMMY

아간은 세계가 확장되는 걸 느꼈다. 아즈라이 들려왔던 소리와 흐릿하게 보였던 물체가 지금은 또렷이 다가왔다.


너무도 많은 시각적, 청각적 정보가 아간의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아간은 금방이라도 혼절해버릴 것 같았다.


"크, 쿠! 크아아!"


밑에 깔려 있던 킬레브가 연신 발버둥쳤다. 흙먼지가 새벽녘 숲에 깔리는 안개처럼 주변을 뒤덮었다.


아간은 킬레브를 바라보았다. 인간일 적에도 광기를 드러내었지만 라이칸스로프로 변한 지금은 더욱 미쳐 날뛰고 있었다.


변하는 순간, 이성의 껍데기를 허물처럼 훌훌 벗어던진 것 같았다.


아간은 콧잔등을 일그러뜨리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땅이 움푹 파이더니 킬레브의 몸이 아래로 쑥 꺼졌다.


킬레브는 아픔 섞인 비명을 지르며 아간을 노려보았다.


'죽일까?'


아간은 고민했다.


감각이 확장된 것과 달리 생각의 폭은 여전히 지극히도 좁았다. 오직 죽일지 말지 결정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폭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라이칸스로프 상태에서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라자살라가 한 실험이 마냥 쓸모가 없진 않았다는 걸 보여주었다.


아간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당장 물어뜯으라고 본능이 지시했다. 아간은 그 본능을 충실히 받아들이기 이전에 숙고했다.


물론 인간 관점에서 보면 강풍 앞에 놓인 작은 촛불처럼 빈약한 숙고였다. 그리고 강풍이 갑자기 멎지 않는 한 촛불은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허억."


그때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온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든 반응에 잔뜩 예민해져 있던 아간은 어려움 없이 포착했다.


아간의 머리가 휙 돌아갔다. 수풀 사이로 눈동자만 깜빡이고 있던 소년은 아간과 눈을 마주쳤다. 감당 못할 공포에 질린 소년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소년이 등을 보이며 도망쳤다. 아간은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사냥감이 누구건 등을 보이면 일단 쫓아가고 보는 것이 맹수의 본능이다.


하물며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라이칸스로프라면 그 본능에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간은 뛰쳐나가려는 야수와 막아서는 이성 때문에 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킬레브는 그런 아간의 선택을 도와주었다.


킬레브가 손톱을 세우더니 아간의 발목을 할퀴었다. 분명 움직임은 한 번이었다. 단지 팔을 위아래로 휘둘렀을 뿐인데 아간의 발목에 빨간 줄이 무수히 새겨졌다.


아간은 고통에 몸부림 치는 대신 킬레브 코앞에서 포효를 질렀다. 목을 붙잡힌 킬레브는 옆으로 내던져졌다.


거목이 몇 개 부러진 뒤에야 킬레브는 땅에 착지할 수 있었다.


고통이 온몸을 난자했지만 킬레브는 고통을 분노로 바꾸는 유용한 재주가 있었다. 킬레브는 피눈물이 나올 것 같은 새빨간 눈으로 아간을 뒤쫓아갔다.


"흐악, 흐악, 흐악."


소년은 혼신을 다해 달렸다. 한계를 넘어선 주파 끝에 다리가 박살이 나도, 폐가 더 이상 공기를 받아들이지 못해 터져도 소년은 무한히 달릴 생각이었다.


뒤에 밤과 달의 괴물이 쫓아오고 있었으므로.


소년은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돌아보지 않았다. 그 시간에 마을로 전력질주 하는 게 더 좋을 듯했다.


소년의 판단은 박수 받아 마땅했다.


실제로 검은 라이칸스로프는 벌목꾼이 보면 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다.


연약한 나무는 뿌리채 뽑혔다. 보다 강건한 나무는 라이칸스로프의 돌진에도 뒤로 넘어가지 않았다. 다만 무참하게 꺾일 뿐이었다.


실성한 얼굴로 달리는 소년의 뒤에는 잔뜩 부풀어오른 검은 라이칸스로프가 달빛을 그림자 삼아 쫓아오고 있었다.


나무가 부러지면서 달빛이 차례차례 내려앉고 있었다.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이런 소리는 안 날 것 같았다.


소리가 빠르게 소년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쯤 되니 소년도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딱 한 번 돌아보았고 소년은 후회했다. 바로 코앞에 검은 라이칸스로프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아아악!"


소년은 몸이 밑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의 순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다행히도 소년은 죽지 않았다. 대신 자그마한 벼랑에 몸이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다.


땅에 안착한 소년은 표정이 밝아졌다. 마을 울타리가 저 너머에 보였다. 일어나려던 소년은 풀썩 주저앉았다. 발목을 접질린 모양이었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올린 소년은 표정이 하얗게 굳었다. 달을 가린 구름처럼 검은 라이칸스로프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검은 구름은 정확히 소년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크아아!"


검은 구름이 푸른 바람에 씻겨졌다. 킬레브였다. 킬레브는 라이칸스로프가 되었어도 집념은 변하지 않았다.


한 번 목표를 삼은 대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이고 마는 집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소년을 구한 셈이 되었지만 킬레브는 당연히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반면, 소년은 저 푸른 라이칸스로프가 구원자처럼 보였다. 소년은 비록 바지에 오줌을 지렸지만 수치심은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다.


소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팔을 쭉 뻗었다.


"그래! 죽여! 죽여버려!"


킬레브가 고개를 휙 돌렸다. 무시무시한 눈초리에 소년은 변도 지리고 말았다.


아간이 킬레브를 밀었다. 킬레브는 몇 번 바닥을 굴렀지만 곧바로 균형을 되찾았다. 두 라이칸스로프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면서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간은 덩치가 큰 만큼 힘도 세고 체력도 뛰어났다. 킬레브는 체구가 작은 대신 민첩하고 교활했다. 서로가 가지지 못한 장점을 상대가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킬레브의 자아는 사라진 상태였지만 살인에 능숙하다는 점만은 여전했다. 그는 라이칸스로프가 아닐 때도 이미 괴물이었다.


어떻게 하면 먹잇감을 무력화시키고 죽일지에 뼛속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킬레브는 지형지물을 이용하기로 했다. 뒤를 힐끔 쳐다본 킬레브는 냅다 등을 보이며 도망쳤다. 불가해한 일에 소년은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 날 도와주러 온 거 아니었나. 도망치면 나는 어쩌라고..


그러나 아간의 목표는 이미 옮겨간지 오래였다. 아간은 콧김을 세게 뿜더니 킬레브를 쫓아갔다.


두 괴물이 만들어낸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주변을 휩쓸었다. 소년은 팔로 얼굴을 가렸다. 흙먼지와 나뭇잎이 빙글빙글 돌며 하늘로 솟구쳤다.


소란이 진정되자 소년은 눈을 슬쩍 떴다. 그리고 엉망진창이 된 공간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


"거 참."


손에 든 패를 유심히 보고 있던 망지기가 고개를 들었다. 주점 주인이 자꾸만 귓구멍을 후벼파고 있었다.


"그만해. 그러다 귓병 나."


"아니, 어디서 자꾸만 개 우는 소리가 들려서. 안 들려?"


"들려. 보나마나 저기 쟝 씨네 똥개겠지. 그 놈이 어디 한두 번 짖나."


"아냐. 그랬으면 더 명확하게 들렸겠지. 이건 멀리서 들리는데."


"그럼 늑대가 짖기라도 하나 보지."


"숲에 늑대도 사나?"


"왜 안 살아? 먹을 것도 많은데. 그보다 얼른 내기나 해. 아니면 기권하던가."


주점 주인은 이상하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망지기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저러다가 엉덩이 밑에 숨겨 놓은 패를 은근슬쩍 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마. 있는 그대로 정정당당하게 하란 말이야."


"뭔 소리야. 내가 안 그런 적 있었어?"


"많지. 많으니까 하는 소리지."


"허, 이 속 좁은 사람 보게. 그거 조금 했다고 아직도 삐져 있다니. 에이, 안 해."


"도망치는 거야?"


"뭘 도망쳐! 그쪽 일하라고 내보내는 거지. 망도 안 보고 놀음이나 하고 있고 말이야. 이러다 그 경우 없는 녀석들이 깽판이라도 어쩌려고?"


"그놈들도 상도덕은 있어. 적어도 밤에는 조용히 있는 편이라고. 그쪽이야말로 그런 놈들한테 술을 팔면서 뭔 소리하는 거야."


"아니. 그럼 장사하지 말고 굶어죽으라는 거야!"


"갑자기 왜 큰 소리야!"


두 사람의 언쟁은 그보다 더 큰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그들은 부숴질듯 벌컥 열리는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 소년이 문가에 서서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보는 사람이 절로 안쓰러움을 들게 할 정도로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점 주인은 소년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아까 전에 술을 사러 온 적이 있기에 일면식이 있는 게 당연했다.


주점 주인과 망지기는 소년을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어디서 또 이상한 짓거리를 하다 왔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어흐, 허억, 기, 그게, 괴.."


소년은 헐떡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팔짱을 끼고 바라보던 주점 주인은 곧 눈을 크게 떴다. 소년의 얼굴과 손에 피가 맺혀 있었다.


"너, 너 꼴이 왜 그러냐?"


같이 놀란 망지기는 소년의 곁으로 다가갔다. 피가 송골송골 맺혀 있긴 했지만 심한 건 아니었다. 아마 가시가 피부를 찔러서 생긴 상처로 보였다.


"뭐했길래 꽃씨가 덕지덕지 묻어 있어? 뒹굴기라도 했냐? 아니, 바지는 왜 또 젖어 있는 거야. 설마 너.."


주점 주인은 신경질을 내며 걸레를 갖고 왔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하도 술을 쏟아서 바닥에 냄새가 진동하는데 똥오줌까지 지리다니.


주점 주인은 가지가지한다고 중얼거리며 소년을 뒤로 밀쳐내려고 했다. 소년은 주점 주인의 손을 붙잡았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에요!"


"아잇. 똥 묻어, 저리가!"


"그게 아니라고요!"


"똥이 아니면. 오줌이냐?"


소년은 몸을 벌벌 떨면서 자꾸만 주점 주인에게 기대려고 했다. 주점 주인은 꺼림칙한 얼굴로 망지기와 마주보았다.


소년은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괴물이 나타났단 말이에요!"


******​


부수고, 뛰어넘고, 꺾고, 내달린다.


두 야수는 불이 숲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무도한 파괴력을 선보였다.


물론 도래솔 숲은 중부의 수많은 숲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울창하고 넓다. 이 정도 날뛴다고 해서 도래솔 숲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길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위에서 내려다 본다면 숲 귀퉁이에 가늘고 얇은 선이 실시간으로 생기는 걸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들에게 바위나 나무는 단지 귀찮고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인 듯했다.


단지 팔을 휘둘렀을 뿐인데 커다란 바위가 우당탕 하며 굴러내려갔다. 있는 힘껏 들이받으면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도 힘없이 쓰러지기 일쑤였다.


지진이나 태풍의 축소판이라 봐도 좋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아간이 뜀박질을 멈췄다. 널따란 광야를 내달리는 말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초월적인 속도를 선보인 직후였다.


헐레벌떡 뒤늦게 따라온 바람이 우두커니 서 있는 아간을 미처 보지 못했다. 강풍은 온몸으로 아간과 부딪쳤고, 그러자 덥수룩하게 덮인 털이 뒤에서 앞으로 뉘였다.


무너지고 쿵쿵 쓰러지는 소리가 아즈라이 들릴 무렵. 아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길에는 눈길 한 점주지 않았다. 앞에 울창히 자라난 나무와 그 너머를 쏘아보고 있었다.


놈은 어디로 간 걸까.


분명 등을 보며 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발을 잡아채는 요소가 너무 많은 데다가 몸집이 크다 보니 자연히 놓치고 말았다.


아까보다 흥분이 가라앉아서 그런 걸까. 주위에 뭐가 있는지 면밀히 느껴지지 않았다. 확장되었던 감각이 다소 줄어든 것 같았다.


그러나 아간은 킬레브가 이 근처에 있다고 확신했다.


작게 그르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아간은 느릿하게 발을 뗐다. 그 순간 기척이 느껴졌다. 아간은 큰 체구에 걸맞지 않는 속도로 팔을 휘둘렀다.


부웅! 고막이 떨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맴돌았다. 할퀴는 촉감을 기대한 아간은 문득 제 팔을 바라보았다.


킬레브의 손톱 자국이 팔뚝에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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