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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담의 이야기곳간입니다.

이세계 영웅들이 귀환하니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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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담
작품등록일 :
2024.09.13 17:19
최근연재일 :
2024.09.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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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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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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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1화. 권장호(3)

DUMMY

***



중간부터 다 들었다.

그러니까 권장호가 변명처럼 늘어놓은 말부터.


최빛나는 ‘똥 싸고 있네’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기억을 되찾고부터 반쪽짜리도 못 되는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신만만했다.

클랜의 수장인 이목사를 앞에 두고 반골기질을 드러내지 않나, 근거없는 자신감에 빠진 채 어떤 상황이든 헤쳐나갈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정작 위기상황에 직면하니 없는 능력을 아쉬워하며 안타까워 했고 말이다.

한 마디로 정작 똥을 싸고 있던 건 나였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라디카 외에 다른 소환수의 계약을 떠올릴 수 없는 지금, 새로운 힘을 얻을 기회가 바로 여기 있으니까.

더군다나 딱 필요한 능력이지 않은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주세요.”


아프긴 하겠지. 하지만 난 죽지 않는다.

게다가 아프긴 해도 최소한 서럽진 않잖아?

공시생일 때는 아프면 무척이나 서러웠다.

하나라도 더 공부하진 못할 망정 아파서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마음에 아플 자격도 없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건 아파도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다.

뒤처지는 것도, 제자리 걸음도 아닌 더 나은 나를 위한 진취적인 선택.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문제는 저 인간이 눈이 돌면 중간에 멈추지 않는다는 건데 최빛나, 저 여자라는 방법이 생겼으니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성민 씨, 이 지경이 됐으면서 하겠다고요?”

“네.”

“하...... 아무래도 머리를 잘못 맞아서 그런 거 같은데......”

“전 멀쩡합니다. 목이 잘려도 멀쩡한 거 봤잖아요.”


내 말에 최빛나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낮게 속삭였다.


“미쳤어요? 그러다 진짜 죽어요. 저 인간이 지금은 정상으로 보여도 무공전수만 하면 눈이 돈다고요.”

“그러면 방금 전처럼 말려주면 되잖아요?”

“......네?”

“그렇게 해주면 그때 카페에서 있었던 일은 없었던 걸로 할게요.”

“어머머?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또 나와요? 그건 도종수 그 새끼가 한 일이라고 말했잖아요. 나도 피해자라고요.”


하여튼 이 여자도 정상은 아니다.

어떻게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기가 피해자라고 하지?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뭔데요?”

“듣기로는 그쪽하고 그 자식이 모집조라면서요?”

“네. 그랬었죠.”


와, 굳이 과거형으로?

그렇게 엮이기 싫다 이건가?

그런데 어쩌지 나는 엮어야겠는데.


“그럼 연대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전에 미안하다고 사과한 것도 그래서 그런 거 아니었어요?”

“아니, 그건......”

“그때 각성 못 했으면 그대로 개죽음 당했을 텐데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고 넘어가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나는 그녀에게 말을 한 후 시선을 권장호에게 두었다.

가만히만 있지 말고 거들라는 뜻이었다.


“와, 빛나 너 그런 일이 있었으면서 입 싹 닦으려고 했어?”

“입 닦긴 누가 닦아요? 오빠는 모르면 가만히 좀 있어요.”

“그치? 내가 아는 너는 그럴 애가 아니지. 도종수 같은 양아치랑은 다르잖아.”


도종수와 비교한 탓일까.

최빛나의 인상이 일그러지며 반발이 튀어나오려 했다.

하지만 이 또한 권장호의 포석인 모양이었다.


“암, 엘프가 어떤 종족인데.”


뭔 소리지? 엘프? 저 여자가?

나는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후우, 좋아요. 단! 세 번만 도와줄게요.”


엥? 고작 세 번?

내가 권장호를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세 번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제스처였다.


“횟수는 너무 야박하다고 생각 안 해요?”

“싫으면 말아요. 나도 더 이상은 양보 못 하니까.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요?”


그러자 권장호가 다시 나섰다.


“건당 십.”

“오십.”


엉? 뭐하는 거야?


“이십.”

“삼십.”


나참, 협상하는 거야? 돈으로?

그것도 백, 이백도 아니고 십, 이십?


“십오만.”

“때려쳐, 안 해!”

“십삼만.”

“흥! 혜윤언니가 건수 하나 물어왔거든? 그게 얼만지나 알아요?”


하지만 권장호는 표정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십.”


응? 되려 더 강하게 나간다고?


“십오만에 해요. 내가 진짜 오빠니까 받아주는 줄 알아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팔......”

“꺅! 알았어요, 알았어! 씹! 콜! 십만 원에 콜하겠다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처음 제시했던 십만 원으로 협상을 이끌어낸 권장호의 수완에 놀란 게 아니었다.

협상의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저 여자에게 내 목숨값이 고작 돈 몇 푼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역시 사이코패스가 분명해.’


모르긴 몰라도 아까 끼어들어 구해준 것은 나름의 목적이 있지 않을까.

여기서 써먹지 않는 걸 보면 더더욱.


‘뭐 어떻게 보면 다행이긴 하지.’


그야 건당 십으로 협상이 됐잖아?

나중에 언급하면 십만 원 던져주고 퉁 치지 뭐.



***



하루에 무려 여섯 번.

오전, 오후, 저녁을 기준으로 매 두 번씩이다.

권장호는 그때마다 눈이 돌아간 상태로 나를 패고 또 팼고, 제정신을 차린 후에는 복기를 한다며 알아먹지 못할 말들을 늘어놓았다.


받아들이는 나는 답답했고, 권장호도 마찬가지였다.

때려박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니까.

지금 상황에서 희희낙낙한 건 매일 육십만 원씩 벌어대는 최빛나였고, 나중엔 하루에 열 번 채우는 게 어떠냐는 식으로 부추기기까지 했다.


“열 번은 무슨. 여섯 번도 힘들어 죽겠는데.”


각오가 되었다고 해도 죽기 직전까지 맞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불사재생 덕분에 신체는 회복되더라도 정신은 피폐해지더란 말이지.


“맞아. 열 번은 힘들어, 빛나야.”


권장호도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는 나처럼 힘들어서가 아닌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100분 충전해서 10분이라니. 효율 참......’


내 능력에 시간제한이 있는 것처럼 그에게도 리미트가 있는 것이다.

바로 저 무지막지한 힘의 원천인 내공.

그는 대략 1시간 40분 동안 운기조식을 하여 단전을 채우면 10분 가량을 싸울 수 있다.

권장호의 말에 따르면 무림과 달리 이곳은 기의 농도가 현저하게 낮기 때문이라나.


“그러니까 힘 조절 좀 하라고요, 오빠. 매번 눈이 돌아서 다 쏟아내버리니까 10분 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이상하게 그게 잘 안 된다니까? 내 생각엔 세계의 법칙? 그런 게 전수를 못 하도록 방해하는 것 같아.”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억측일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것 같은데? 아무리 세계의 법칙이 다르고 기의 농도가 다르다고 해도 클랜원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페널티를 안고 있는 게 말이 되는 걸까?”

“말 그대로 법칙, 차원계를 구성하는 근간이 다르니까 영향을 받는 거겠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나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의 말대로 근간이 다르기 때문에 페널티가 생긴다?

얼핏 듣기로는 그럴싸하지만 내 기준으로도 이상하기 때문이다.

법칙이 달라 소환이 안 되면 모를까 소환수의 능력만 소환된다? 그것도 시전자의 육체로?

결과만 보면 마치 초월적인 누군가가 소환의 작동원리를 꼬아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궁금하네요. 빛나 씨는 무슨 페널티가 있죠?”


그녀의 능력이 순간이동이라는 건 알고 있다.

순간적으로 발현되는 능력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며칠을 함께 보냈는데 페널티 같은 면이 전혀 안 보이는 걸까.


“어머, 숙녀의 예민한 부분은 질문하면 안 되는 거 몰라요?”


그래, 너도 숨기고 싶다는 거구나.

혹시 권장호는 아는지 싶어 그를 바라보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리 같은 클랜원들끼리라도 약점은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야. 성민이 너는 내 제자니까 알려준 거고.”


하긴 내가 진실을 숨긴 것처럼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기에 그런 불문율이 생겼을 것이다.

여기가 저쪽 세상이라면 약점을 드러내는 건 ‘나 좀 죽여주시오’ 하는 것과 진배없으니.


그런데 불문율을 알게 되니 그때의 면담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이목사는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의 법칙을 언급하며 자연스럽게 내 약점을 알아간 것이니 말이다.

비록 그것이 진실은 아니지만 원거리 공격이 불가하다는 것만큼은 사실 아니겠는가.

그러니 다음부터는 더욱 말을 함에 있어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이이잉.


그때 울리는 진동소리.

발원지는 최빛나의 스마트폰이었다.


“여보세요? 네, 네.”


그렇게 잠시간 통화하던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폰을 내려놓았다.


“저 잠깐 나갔다 올 게요. 아마 며칠 걸릴 거 같아요?”

“어딜? 또 빙의자 후보를 찾았대?”

“아뇨. 성민 씨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찾았겠어요. 혜윤언니 건수요.”


최빛나는 한켠에 벗어놓앗던 자신의 코트를 챙기며 말을 이었다.


“나 없을 때 사고 치지 말고 기본공이나 몇 가지 가르치고 있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하고.”


권장호는 그녀를 문밖까지 배웅해주었다.

이상하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순간이동을 사용해서 뿅하고 사라지면 될 텐데 왜 갈 때는 번거롭게 저러는 걸까.


“장호형.”

“응?”

“빛나 씨 말이에요. 왜 저쪽으로 나가죠? 그냥 능력쓰면 될 걸.”

“성민아, 말했잖아. 불문율이라고.”

“에이, 그래서 지금 물어보는 거잖아요. 당사자가 없으니까.”

“안 돼. 본인이 알려주던지 같이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면 몰라도 내 입으로는 말해줄 수 없어. 일문의 문주로서 체면이 있지.”


체면은 무슨.

그런 게 있는데 눈만 뒤집히면 제자야, 제자야 하면서 날 죽이려고 해?


“사부님.”


고작 며칠이었지만 이제 대충은 안다.

나사 빠진 인간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지면 그 나사만 끼워주면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된다는 걸.

그에게 있어 빠진 나사는......


“직전제자인 저에게도 숨겨야 하는 비밀이 있습니까?”


사문의 진전을 잇는 후계자였다.


“어...... 직전제자?”


이거 봐라.

금새 헤벌쭉하며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는가.


“그리고 제자가 스승을 통해 알게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그렇지?”

“그럼 어서 말씀해주세요. 제자, 너무 궁금합니다.”


권장호는 뒷머리를 긁적이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그게, 별 거 아니야. 나나 다른 동료들이 가지고 있는 페널티에 비하면 말이야.”

“그래서 그게 뭔데요?”

“일단 이동거리는 육안으로 확인이 되는 곳만 가능해.”


흠, 그 정도는 뭐 페널티도 아니네.


“그리고 누가 보고 있으면 능력을 못 써.”

“네?”

“그러니까 타인이 보고 있으면 이동을 못 한다고. 게다가 상시촬영이 되는 카메라가 찍고 있어도 못 하고.”


이상하네? 그때 길거리에서 사라졌었는데?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이내 수긍이 된다.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CCTV가 대한민국 길거리 전부를 커버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그거 능력에 비해 엄청 사소한 거야. 횟수나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시로만 빠져도 사용이 가능하니까.”


시야에는 중심시와 주변시, 두 가지가 있다.

중심시는 뚜렷이 지각하고 선명하게 보는 걸 말하며, 주변시는 말그대로 그 외 지각이 덜 한 부분인 것이다.

쉽게 말해 카메라 초점이 맞는 피사체와 흐릿한 배경의 차이.

최빛나는 중심시, 그리고 촬영되는 상황에서만 벗어나면 자유롭게 능력을 사용할 수 있으니 사소하다면 사소한 페널티였다.


‘반대로 봉쇄하려고 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말이네.’


그러니 그렇게 철벽을 치지.

그런데 손쉽게 하나가 해소되자 또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이 생긴다.

이번엔 그녀가 아닌 클랜에 대한 것.

정확히는 여기에 들어온 목적 중에 하나였다.


“문주님.”

“엉? 무, 문주님?”

“일원문의 소문주로서 한 가지 여쭤볼 게 하나 있습니다.”

“......”

“아무래도 문파가 부흥을 하려면 자금이 탄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턱을 긁적이는 권장호.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수긍을 하기에 그런 듯 하다.


“보아하니 클랜의 수입이 꽤 되는 것 같던데 그 중 하나를 저희가 얻는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흠......”

“문주님께서 보시기에 적당한 게 있을까요?”


그런데 그 순간 팔에 오소소 하고 소름이 돋았다.

이는 권장호가 눈이 돌아갈 때의 전조증상이었다.


“그런데 제자야. 본문의 소문주라고 자처하려면 비전절기 하나 정도는 익혀야 하지 않겠느냐?”


아, 씨발. 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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