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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마쟁투 님의 서재입니다.

만가서점 영웅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와캬퍄
작품등록일 :
2022.06.26 17:42
최근연재일 :
2022.10.0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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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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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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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3화

DUMMY

드디어 날이 밝았다.

오늘은 바로 만가 서점에서 일하기로 한 첫날이다.

긴장되는 마음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선혜성은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만가 서점으로 달려갔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어, 그래 일찍 왔구나. 오자마자 미안하지만 우선 이것 좀 안에 들여놔다오.”


서점 앞에는 한 대의 마차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책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선혜성은 그 많은 책들을 군소리 없이 묵묵히 옮겼다.

많은 권수의 책을 혼자서 들다 보니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요령을 피우지 않은 결과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수고했다. 마침 오늘이 책을 들여오는 날이었지 뭐냐. 네가 아니었으면 나 혼자 하루 종일 책만 옮겼을 거다.”

“아니에요. 근데 그냥 이렇게 놔두면 되나요?”

“어차피 너는 책장에 어떤 책이 들어가야 하는지 모를 테니 그냥 내버려 두거라. 내가 천천히 분류해서 정리하면 돼.”

“그래도······”

“오늘은 그냥 여기 앉아서 들어오는 손님을 상대하면서 책장에 어떤 책이 있는지 읽어 보거라.”


서점에 있는 책장에는 어떤 종류의 책이 있는지 적혀 있지 않았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이 불경인지 도경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 권을 읽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만 노인은 선혜성에게 급할 것 없으니 천천히 서점의 책들을 파악하라고 했다.


“서점의 직원으로서 무슨 책이 있고 내용은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있어야 하니 시간 날 때마다 책장에서 꺼내 읽거라.”

“예. 알겠습니다. 근데 어르신. 혹시 어제 그 아이는 잘 돌아갔나요?”


책을 읽기 전 서점을 청소해야겠다고 생각한 선혜성은 먼지가 닦여 있는 바닥을 보다 어제 그가 구했던 아이가 생각났다.

남궁 지산에게 심하게 맞아 의식을 잃었었는데 괜찮아졌을지 걱정되었다.


“아, 그 아이. 어제 그 아이는 아버지가 나타나 데려갔단다. 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더구나.”

“그래요. 몸은 좀 어떻던가요?”

“멍든 것은 많이 나아졌고 부운 곳도 가라앉았다. 아마 며칠 푹 쉬면 괜찮아질 거야.”

“다행이네요. 나중에 만나면 다 나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약을 썼으니 걱정할 것 없다. 다만 앞으로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예?”

“그 아이의 아버지가 말하길 곧 개봉을 떠날 거라고 하더구나. 무림맹 무인과 얽혔으니 큰 화를 보기 전에 피하려는 것이겠지.”


확실히 다른 곳도 아닌 개봉에서 사파 무인의 자식이 무림맹 맹도의 주머니를 노리고서도 멀쩡하게 다닐 수는 없다.

게다가 남궁지산은 무림맹에서도 꽤 높은 위치의 무인으로 보였다.

그때 남궁지산에게 굽신거리던 이명걸의 태도로 봤을 때 엄청 대단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런 그가 찍었으니 개봉에선 살 수 없을 것이다.


“너도 조심하거라. 남궁 놈에게 밉보였으니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그래, 네게 이것을 주마. 만약 무림맹 무인이 너를 괴롭히거든 이 금패를 보여주거라.”


만 노인은 어제 남궁지산을 쫓을 때 보여주었던 금패를 꺼냈다.

금패를 받은 선혜성은 화들짝 놀라 돌려주려고 했다.


“이렇게 귀한 물건을 받을 수는 없어요.”

“어허. 어른이 주면 그냥 받는 거야. 어차피 내게는 그리 중요한 물건이 아니다.”

“그래도 제가 어떻게 이걸 받아요.”

“괜찮다니까. 기껏 점원을 뽑았는데 무림맹에 잡혀가면 큰일이 아니냐. 그러니 그냥 받거라.”


만 노인은 선혜성의 손에 억지로 금패를 쥐여 주었다.


“그럼 난 이 책들을 분류하고 있을 테니 너는 저기 앉아 책을 보고 있거라. 손님이 오면 응대 잘 하고.”

“예. 알겠습니다.”


만 노인은 쌓여 있는 책들 중 몇 권을 집어 들고 사라졌다.

홀로 남은 선혜성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책장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은 민간에 떠도는 설화를 모아 엮은 것이었는데 제법 재미가 있었다.

책에 빠진 선혜성은 누가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책에 몰입하여 집중했다.

그는 만 노인이 책 정리를 끝내고 다시 나타났을 때까지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혜성아.”

“예, 예?”

“이런, 책에 너무 집중하느라 내가 왔는지도 몰랐구나. 그러면 안 돼.”

“죄, 죄송합니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데 너무 깊게 빠져들어 누가 오는지조차 몰라서는 안 된다. 항상 누가 들어오면 인사 잘 하고.”


만가 서점에서 취급하는 책은 불경이나 유학의 서적뿐만이 아니다.

삼류나 이류에 불과하기는 하나 무공 서적도 있었고 무림의 역사에 대해 쓰인 책도 있었다.

가끔가다 멀리서 무림맹을 구경이라도 해 보겠다고 개봉에 온 낭인들이 이류 무공을 구하고자 서점에 오기도 했다.

만 노인은 혹시라도 선혜성이 무인들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


“명심해라. 어떤 손님이 오더라도 웃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친절하게만 하면 아무 문제없을 거다. 만약 무림인이 위협하면 내가 준 금패를 보이고.”

“예.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난 소하상단에서 귀한 책을 들여왔다고 하니 갔다 오마. 너는 알아서 시간 되면 정리하고 들어가거라.”


한차례 잔소리를 늘어놓은 만 노인은 서점 밖으로 나갔다.

만 노인을 배웅한 선혜성은 다시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그러는 한편 밖에서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손님이 언제 서점을 방문할지 모르기에 그의 신경은 잔뜩 곤두세워져 있었다.

그렇게 선혜성이 긴장하며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


선혜성은 언제 손님이 올지 몰라 걱정이 되어 잔뜩 긴장한 채 책을 읽다 고개를 드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무색하게 한동안 만가 서점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 서점에 왔을 때 봤던 먼지가 괜히 생긴 것은 아니었다.

선혜성이 처음으로 손님을 맞이한 것은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쯤이었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무림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가 서점에 들어왔다.

두 사람 다 얼굴과 몸에 칼자국이 나 있어 인상이 험악했는데 그중 한 사람은 거구의 체격에 도를 들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마른 체형에 소매가 긴 장포를 입고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선혜성은 그들 얼굴을 보고 겁을 먹었으나 직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최대한 환하게 웃어 보이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어떤 책을 찾으시나요?”

“듣기로는 이곳에서 무공 비급도 취급한다고 하던데 맞나?”

“예. 저희 서점에는 온갖 책들이 있습니다.”

“어디 있지?”


책의 위치를 묻는 덩치 큰 남자의 말에 선혜성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무공 비급이 있는 책장의 위치를 몰랐기 때문이다.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뭐야? 서점 직원이 책이 어디 있는 지도 모르면 어쩌자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처음으로 서점에서 일하는 거라서요.”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우린 한시가 급하다고.”

덩치 큰 사내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짜증을 내자 옆에 있던 남자가 그를 달랬다.

“에헤이, 왜 애를 겁주고 그래? 일한 지 얼마 안 됐다잖아. 비급이 어디 있는지 모를 수도 있지.”

“무림맹 무사를 뽑는 날이 한 달도 채 안 남았어. 일각이 아쉬운 상황이야. 빨리 무공을 익혀야 한다고.”

“그렇게 조급해하면 될 일도 안 돼. 이봐 점원. 이놈은 내가 진정시킬 테니 어서 무공 비급이 있는 책장을 찾아보게.”

“예. 금방 찾겠습니다.”


마른 사내가 덩치 큰 사내를 말리고 있는 동안 선혜성은 다급하게 책장을 뒤졌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사내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선혜성은 식은땀을 흘리며 움직였다.


“이래서 언제 무공을 익히냐고.”

“그렇게 재촉한다고 뭐가 변해? 우리 같은 삼류 낭인이 이류 무공을 구할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젠장. 그냥 익히던 무공이나 더 수련할걸. 괜히 야차도 선배 말을 들어서.”


듣자 하니 두 사람은 전에 만가 서점에서 비급을 산 야차도라는 사람의 말을 듣고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가 이곳에서 이류 무공이 적힌 비급을 구해 익힌 뒤 무림맹의 시험에 응시했고 합격하여 하급무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무림맹의 시험을 치르자니 삼류인 그들의 실력으로는 합격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여 비급을 찾는 것 같았다.


“이제 낭인이라고 무시당하는 것도 지긋지긋해. 이번 시험에 합격해서 무림맹 무사가 되면 지금보다는 대우가 달라지겠지.”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어차피 하급 무사를 뽑는 시험은 대부분 삼류 무사들이 지원하니 여기서 이류 무공 비급을 구해 익히면 합격은 문제없을 거야.”

“그런데 비급만 있으면 뭐해. 익힐 시간이 있어야지. 야차도 선배는 서점 주인한테 물어서 금방 비급을 찾았다는데 이게 뭐야? 어이, 점원. 아직 멀었냐!”

“예. 빨리 찾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거참. 성질 하고는. 정 그리 못 기다리겠거든 너도 찾아보던가. 이봐 점원. 우리도 찾는 것을 도와주마.”


담담한 척하기는 했으나 마른 사내 또한 초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서점의 책이 워낙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차라리 함께 비급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른 사내의 제안은 선혜성도 바라던 바였다.


“예. 감사합니다.”

“아이씨, 나 글자 안 좋아하는데.”

“시끄러 인마. 그러면 점원이 책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던가.”


마른 사내도 다른 책장을 뒤지며 비급을 찾기 시작했다.

덩치 큰 사내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책을 꺼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썅! 이딴 걸 서점에 놔두다니 제정신이야? 점원, 점원!”


갑자기 덩치 큰 사내가 흥분하여 일고 있던 책을 내던지고 선혜성을 찾았다.

드디어 무공 비급이 꽃인 책장을 찾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선혜성은 사내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딸꾹질을 하며 달려갔다.


“딸꾹. 부, 부르셨··· 딸꾹···습니까?”

“감히 무림맹의 코앞에서 이런 불온서적을 판매해? 여기 서점 주인은 목숨이 여럿 되는 모양이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다시 시작된 덩치 큰 사내의 행패에 짜증이 난 마른 사내가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워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그 또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입만 뻥긋거렸다.


“이, 이런······”

“이제 내가 왜 이러는지 알겠지? 내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라니까.”

“믿을 수 없군. 개봉에서 금서를 보게 될 줄은 몰랐어.”


그렇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마른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덩치 큰 사내처럼 책을 집어던지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혜성을 쳐다봤다.


“이봐, 이 책은 당장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아니 태워 버리는 것이 더 났겠군. 아무튼 무림맹에서 알기 전에 처리해. 그것이 자네 목숨을 구하는 일이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리고 우린 오늘 이곳에 온 적이 없었던 거야. 만약 우리가 이 서점에 들렀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이 꼴이 될 것이네.”


마른 사내는 검을 뽑아 선혜성이 앉아 있었던 의자를 향해 휘둘렀다.

선혜성은 산산조각 난 의자를 보며 침을 삼켰다.

그에게 경고를 한 마른 사내는 덩치 큰 사내를 데리고 서점을 떠나고자 했다.


“응? 그냥 갈 거야? 안 잡아가고? 여기 서점 놈들 잡아서 맹에 넘기면 상을 받지 않겠어?”

"아니야. 이런 일은 연관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야. 금서와 관계된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몰라서 그래?”


금서란 무림맹에서 지정한 불온한 내용을 담은 책을 말한다.

주로 마도천하 시기에 있었던 일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으며 맹주나 무림맹에 대한 비방이 적힌 책 또한 금서에 포함되었다.

무림맹은 금서에 관한 일이라면 엄중하게 대응했는데 쓴 사람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내용을 읽은 사람은 모두 잡아갔다.

그리고 잡혀간 사람들 중 무림맹에서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른 사내는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금서는 봤어도 못 본 척 넘어가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린 무림맹의 연무장이 아닌 지하 감옥에 들어가게 될 걸?”

“듣고 보니 그렇군. 이봐 꼬마야. 이 녀석 말대로 우린 이 서점에 온 적이 없는 거다. 만약 누군가 우리가 서점에 들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 알겠냐?”

“예. 딸꾹!”


간신히 멈췄던 딸꾹질이 다시 새어 나왔다.

선혜성은 두 사내의 기세에 벌벌 떨었다.

덩치 큰 사내는 그 모습에 피식 웃더니 다시 한번 눈빛으로 경고를 하고는 등을 돌렸다.


“에이, 이류 무공이나 얻으려고 했는데 재수 옴 붙었네. 나중에 야차도 선배를 만나면 전에 줬던 돈은 돌려받아야겠어.”

“일단 술이나 먹으러 가지. 금서 때문에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아.”

“그래. 그러자고.”


사내들이 떠나고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선혜성은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의 눈에 낭인들이 읽던 책이 보였다.

도대체 책의 내용이 어떻기에 사내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했다.

그는 서점 일이 끝나면 읽어 보기 위해 문제의 서적을 들고 품속에 넣었다.


***


어느덧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하늘이 노을로 붉어졌고 드디어 서점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선혜성은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텅 빈 서점에서 여기저기 흩어진 책을 주워 정리했다.


“후··· 아무래도 내일은 조금 일찍 와서 책을 읽어야겠어. 아직도 어느 책장에 무슨 책이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낮에 온 무인 둘 외에도 만가 서점을 찾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유학 서적을 찾는 학사도 있었고 의서를 보러 온 의원도 있었으며 심지어 춘화를 구매하겠다는 한량도 서점을 찾았다.

그때마다 선혜성은 그들이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해 진땀을 흘리며 뛰어다녔다.

지금 바닥에 여기저기 내팽개쳐진 책들이 선혜성의 하루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모든 책을 제자리에 꽃은 선혜성은 품속에 넣어 두었던 문제의 책을 꺼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아까 그 사람들이 그렇게 화를 낸 거지?”


어머니가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계실 테지만 낮에 문제가 되었던 책의 내용이 궁금했다.

만약 책의 내용이 정말 불온한 것이라면 만 노인에게 알려야만 했다.

처음 얻은 직장이 무너지는 꼴을 볼 수는 없으니.

선혜성은 묘한 사명감과 함께 서점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 책을 펼쳤다.


“어?”


책장을 넘기는 선혜성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

책의 내용이 재미있다거나 흥미로워서가 아니다.

너무도 경악스럽고 당혹스러워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어느덧 마지막 장이 넘어가고 선혜성은 손에 든 책을 집어던졌다.


“이, 이럴 수가······ 왜 어르신은 이런 책을 서점에 두신 거지?”


책의 제목은 영웅록(英雄錄).

내용은 한 영웅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었는데 그가 어떻게 무림의 암흑기인 마도천하에서 살아남았으며 사악한 마교의 교주로부터 세상을 구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영웅소설에 불과한 이 책을 보고 선혜성이 소스라치게 놀란 까닭은 주인공 때문이었다.

무림을 장악한 마도를 몰아내고 마교 교주를 죽여 천하의 해방을 이뤄낸 영웅.

책에서는 그 영웅의 이름을 무림맹주 남궁위가 아닌 그 시절 사파를 이끌었던 무의시랑(無義侍郞) 선우진(鮮于辰)이라 써 놓았다.

뿐만 아니라 남궁위는 무의시랑과 수많은 전투를 함께한 전우였는데 최후의 순간 그를 배신했다고 적혀있었다.


“어르신도 이런 책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신 것이 분명해. 이 넓은 서점 안에 무슨 책이 있는지 어떻게 다 아시겠어. 그래서 실수로 들이신 걸 거야. 어르신께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없애 버려야겠어.”


선혜성은 두 손을 떨며 집어던졌던 책을 다시 주웠다.

책을 담은 그의 눈동자는 공포에 젖어 있었다.

혹여 서점에 이런 금서가 있다는 사실이 이명걸의 귀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며칠 전 남궁지산에게 맞고 있던 아이를 구한 일로 단단히 눈밖에 나 있을 텐데 책의 존재를 알면 뇌옥에 끌려갈지도 모를 일이다.

영웅록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선혜성의 눈에 밝게 타오르고 있는 등불이 보였다.


“그래 태워버리자. 아무도 이 책이 서점에 있었다는 것을 모르게 태워버리는 거야.”


버리는 것만으로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혹시라도 누가 주웠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차라리 이 책을 태워버려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선혜성이 책을 태우기 위해 등불을 쥐려던 순간 갑자기 바람이 일며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그 책을 태우려는 거야?”


선혜성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도깨비 가면을 쓴 남자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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