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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마쟁투 님의 서재입니다.

만가서점 영웅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와캬퍄
작품등록일 :
2022.06.26 17:42
최근연재일 :
2022.10.01 12:09
연재수 :
2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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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27,852

작성
22.06.2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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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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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화

DUMMY

“끄헉!”

“남궁 대협!”


한창 매 타작에 집중하던 남궁지산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땅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남궁지산의 일행인 세 사람은 깜짝 놀라 황급히 그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켰다.


“괜찮으십니까?”

“나, 난 괜찮소.”


남궁지산의 얼굴에는 적잖이 당황했다는 것이 그대로 나타났다.

아무리 그가 매 타작에 집중하고 있었다 해도 그는 남궁세가에서도 수위에 드는 무위를 지닌 무인이다.

그런 그가 노인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밀려 땅바닥을 굴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궁지산이 충격에 빠져있자 이명걸은 그를 밀친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이 늙은이가 미쳤나. 이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몸뚱이를 날려!”


갑작스럽게 나타나 몸을 던져 두 아이들을 구한 사람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아이들 앞을 막아서고 말했다.


“이놈들아. 정파란 놈들이 어디 할 짓이 없어서 힘없는 애들을 괴롭혀.”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훈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훈계? 세상 어느 훈계가 사람을 잡는다더냐?”

“이놈들은 마도시대에 마인들에게 빌붙었던 사파의 자식들이다. 놈들이 자기들의 부모처럼 삿된 길로 가지 않게 하려면 교육이 필요해.”

“허허, 모든 사파가 마교 놈들과 붙어먹었는 줄 아느냐? 웃기지도 않는 놈들. 어디 감히 거짓말을 해.”

“지금 사파를 옹호하는 것인가? 이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말이군. 이 대협 아무리 봐도 수상한 노인이 분명하니 척사단에서 처리하시오.”

“예. 대협. 제가 직접 맹으로 압송하겠습니다.”


주위에서는 사파인의 자식들을 감싸는 노인에게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절 마인보다 무서웠던 것이 사파였다.

사파는 마인들에게 빌붙어 사람들을 괴롭히던 놈들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두 아이를 지키고 남궁지산에게 역정 내는 노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명걸은 주변에서 응원하는 소리를 들으며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이명걸이 포승줄을 꺼내 다가오고 있음에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보게. 잠깐 이것을 보겠나?”

“뭔데?”


노인은 허리를 내밀어 남궁지산 등에게 금빛으로 빛나는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얼핏 본 이명걸은 비싼 노리개라도 보여주나 했지만 남궁지산은 그 패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경악했다.


“그, 그것은 천공금패(天功金牌)? 어떻게 당신이 그것을······”

“마도천하를 끝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너희 무림인들 만이 아니었느니라.”


천공금패.

그것은 천하의 암흑기인 마도시대에 마도연합과 싸워 공을 세운 자들에게 준 공로패였다.

이 패를 지닌 사람은 맹의 장로와 동일한 대우를 받으며 맹도들은 패의 주인을 대함에 있어 예를 다해야 했다.


“말도 안 돼.”

“이놈아 말이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내가 왕년에는 맹주와 술잔을 기울이던 사이였어.”


남궁지산은 눈앞에 번쩍이는 금패가 보임에도 저 별 볼일 없는 노인이 그것의 주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런 그의 반응은 다른 금패의 주인들을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아낌없이 무림맹을 지원해 줬던 만금상단의 상단주, 뛰어난 무위로 혁혁한 공을 세운 무림맹의 무상, 전 무림맹 맹주 등 마도시대에 무림을 위해 큰 공헌을 했던 열한 명의 사람들에게 내린 것이 천공금패였다.

그들 중 대부분은 마도와 싸우다 목숨을 잃었으며 살아있는 자는 만금상단 상단주 유량과 무상 팽도후, 신승 공보 대사 셋뿐이었다.


“난 맹에서 무공도 익히지 못한 노인에게 금패를 내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어디 감히 가짜를 가져와 나를 속이려 드느냐!”

“이것은 분명 맹주에게 받은 금패가 맞다. 정 의심이 들거든 맹주에게 가서 물어보거라. 열두 번째 금패를 누구에게 줬느냐고 말이야.”


남궁지산은 끝까지 노인을 의심했으나 너무도 당당한 노인의 태도에 그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패가 진짜라면 그는 맹의 장로나 다름없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의심하느냐? 정 의심이 된다면 나중에 확인해 보고 날 찾아오거라. 난 저기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만가(家)라 한다.”

“좋소. 만약 당신의 말이 거짓일 경우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패가 가짜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남궁지산은 노인에게 더 이상 무례하게 굴 수 없었다.

잔뜩 이에 힘을 준 남궁지산은 아이들을 노려보더니 일행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사라지고 노인은 혀를 차며 선혜성을 부축했다.


“쯧쯧. 아주 떡을 만들어 놨구나. 이 녀석아. 일어날 수 있겠느냐?”

“예. 구,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다. 그보다 많이 다쳤구나. 아이를 업고 나를 따라오거라. 내가 의원은 아니지만 의술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으니 간단한 치료 정도는 해주마.”

“정말 감사합니다.”


선혜성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이를 어깨에 들쳐 업고 노인을 따라갔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후들거렸으나 아이를 놓치지 않게 조심하며 만 노인의 서점에 들어갔다.


***


“들어오거라. 이곳이 내가 운영하고 있는 서점이다.”


만 노인은 삐걱거리는 문을 열었다.

그는 초에 불을 켜고 향로에 무언가를 넣으며 선혜성과 아이를 맞이했다.

서점 안은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먼지가 굴러다니고 천장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안에서 풍기는 쿰쿰한 냄새는 왜 만 노인이 향을 피웠는지 알 것만 같았다.

선혜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바닥의 먼지를 대충 닦아내고 조심스럽게 아이를 내려놓았다.


“약을 가져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 보거라. 그동안 서점 구경이라도 하고 있거라.”

“예. 알겠습니다.”


만 노인이 약을 찾기 위해 사라지고 선혜성은 그를 기다리는 동안 서점을 돌아다녔다.

서점 안은 밖에서 봤던 것과는 다르게 꽤 넓었다.


“우와, 책 진짜 많다.”


수십 개가 넘는 책장에는 수많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불경, 도경, 유학의 서적은 물론 시, 소설 심지어 무공 비급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허름해 보였던 서점이 갑자기 고풍스러운 멋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선혜성이 책 한 권을 꺼내 읽고 있을 때 만 노인이 약을 들고 돌아왔다.


“글을 읽을 줄 아느냐?”

“예. 어머니께서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법이라며 가르쳐 주셨어요.”

“그거 참 훌륭하신 분이구나.”


만 노인이 묘한 눈빛으로 선혜성을 쳐다보았다.

선혜성은 그저 빈가의 아이가 글을 배웠다는 것이 신기해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약도 가져왔으니 아이를 봐 보자꾸나. 잠깐 도와주겠니?”

“예. 무엇을 하면 될까요?”

“아이의 옷을 벗기고 몸을 받쳐다오.”


선혜성이 아이의 웃옷을 벗기고 상체를 들어 올리자 만 노인은 상처 부위에 약을 발랐다.


“쯧쯧. 독한 놈들. 하여간 정파란 놈들은 성질이 더럽고 고약하다니까.”


만 노인은 아이의 몸을 보며 혀를 찼다.

아이의 그 작은 몸에 시꺼먼 멍이 한가득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구나. 아주 생각 없는 놈은 아닌 모양이야.”


아이는 정신을 잃고 가쁜 숨을 내쉬었지만 피멍이 든 것 외에는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팔이라도 부러졌다면 의원을 찾아가야만 했는데 다행이었다.


“자, 이제 네 차례다. 이리 오거라.”


약 바르는 것을 끝낸 만 노인은 선혜성에게 손짓했다.

선혜성도 아이를 감싸 안고 대신 맞은 탓에 여기저기 멀쩡한 곳이 없었다.

만 노인은 세심하게 선혜성이 다친 곳을 살피며 물었다.


“근데 저 아이와 아는 사이더냐?”

“오늘 처음 봅니다.”

“그런데 왜 몸을 던졌느냐? 남궁가의 머저리가 검을 휘둘렀으면 어쩌려고. 설마 정파인이라 무공을 익히지 않은 널 베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야?”

“그건 아니에요. 그냥 저 아이가 저를 보는 것 같아서요.”


아이의 모든 것은 선혜성의 어릴 때와 닮아 있었다.

선혜성도 가난과 굶주림을 못 이겨 음식을 훔쳤던 적이 있었고 아비가 사파라는 이유로 온갖 괄시와 차별을 받아왔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사파라는 이유로 아이가 얻어맞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주변의 반응을 참기 어려웠다.


“뭔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구나. 약을 바르는 동안 한 번 얘기해 보거라. 가슴에 한이 쌓이면 뱉어 내야 하는 법이거든.”


만 노인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자상했다.

마치 친할아버지와 같은 만 노인의 말에 선혜성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얘기를 늘어 놓았다.


“어머니 혼자서 절 키운다고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게다가 사파인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무시당하며 힘겹게 일하시는데요. 그래서 저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일할 곳을 알아보고 있는데 아무도 써 주질 않아요.”

“허허, 힘들었겠구나. 그래 네 아버지가 원망스러우냐?”

“원망스럽죠. 왜 하필 아버지가 사파인가 싶기도 하고요.”


코 끝으로 전해지는 향에 선혜성은 점점 나른해졌다.

기분 좋은 향과 안마를 하듯 몸을 주무르는 만 노인의 손길에 낯선 곳, 처음 보는 사람과 있음에도 편안함을 느꼈다.


“그랬구나. 근데 네 몸이 제법 단단하구나. 혹시 무공을 익혔니?”

“무공이요? 아니요. 그냥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무공을 익혀야 한다며 어머니께서 검을 휘두르게 시키셨어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이 검과 비급이었거든요.”

“그래? 그래도 매일 검을 휘둘렀다면 힘은 좀 쓰겠구나.”

“헤헤, 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제법 힘이 셉니다.”

“좋다. 정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면 내일부터 서점에서 일하지 않겠느냐?”

“예···예?”


만 노인의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든 선혜성은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저, 정말이세요?”

“그래. 안 그래도 사람을 구할까 생각 중이었다. 보다시피 책이 많아 늙은이 혼자서는 조금 힘들거든. 어떠냐, 우리 서점에서 일하겠느냐?”

“예. 당연하지요. 하고 말고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고 내일부터 나오거라. 아이는 내가 돌보다 정신이 들면 보내마.”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만 노인을 향해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 선혜성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점을 나섰다.

그의 몸은 남궁지산에게 두드려 맞아 멍이 가득했으나 일자리를 구했다는 기쁨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신이 나서 돌아가는 선혜성의 뒷모습을 만 노인이 기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맹주님은 안에 계시느냐?”

“예. 안에 기별을······”

“됐다. 비켜라.”


잔뜩 흥분한 남궁지산이 맹주전 입구를 지키는 무사를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책을 보고 있던 맹주 남궁위는 갑작스럽게 벌컥 문이 열렸음에도 평온한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예정보다 조금 늦었구나.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리 늦었느냐?”

“백부님, 아무래도 제가 사기를 당한 것 같습니다. 어서 무인들을 보내 그 늙은이를 잡아오라 하십시오.”

“네가 사기를 당했다고?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얘기해 보거라.”

“백부님, 제가 아까 거리에서 꼬마에게 훈계를 내리고 있었는데 웬 늙은이가 가짜 천공금패를 꺼내며 절 막지 뭡니까. 그 노인네 때문에 사파 꼬맹이도 놓아주고 사람들에게 망신을 톡톡히 당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만씨라고 했던 노인이 보였던 금패는 거짓이 분명했다.

그는 남궁세가의 무인으로 천공금패가 어떤 물건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천공금패는 사실 마도로부터 무림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그에 준하는 것을 희생한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만든 공로패였다.

패의 주인인 만금 상단주는 전 재산을 기부했으며 무상 팽도후는 왼팔을 잃어가며 마교 장로의 목을 베었다.

촌로에 불과한 만 노인이 다른 패주들과 비슷한 희생을 치렀을 리가 없었다.

그땐 금패가 나타났다는 것에 당황하여 넘어갔지만 노인을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땐 제가 정신이 없었습니다. 참내, 분명 금패는 열한 개뿐인데 열두 번째 금패는 무슨. 숙부님, 어서 사람을 보내 그 노인을 잡아오라 하시지요.”

“지금 뭐라 했나? 열두 번째 금패?”

“예. 왜 그러십니까?”

“패를 가졌다는 자의 이름은 들었나?”

“이름은 모르지만 성은 만씨인 모양입니다. 자신을 만가라고 했거든요.”


남궁위의 여유롭던 표정이 갑작스레 굳어버렸다.

은근히 흉흉한 기세마저 뿜는 그의 모습에 남궁 지산 또한 절로 긴장이 되어 침을 삼켰다.


“만씨라······ 혹시 그자의 손에 까마귀 깃털로 만든 부채가 들려 있지는 않았느냐?”

“아니요. 없었습니다. 그 노인은 지팡이조차 들지 않았어요.”

“그래? 그렇다면 그놈은 아니란 말이군. 아니지, 놈은 환술의 대가이니 변장한 것일지도 몰라.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그 마을 출신의 노인이란 말인가?”


남궁위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분명 무림맹에서 만든 금패의 수는 공식적으로 열한 개가 맞았다.

다만 마지막 비공식적인 금패 하나는 누군가를 달래기 위해 만든 것이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남궁지산은 그의 표정에 자신이 사기당했음을 확신했다.


“숙부님, 왜 그러십니까? 역시 그 늙은이가 수상한 놈이 맞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무인도 아닌 노인이 맹의 금패를 갖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립니까?”

“아니, 너는 모르겠지만 원래 금패는 열두 개가 맞다. 다만 그 패는 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됐다. 넌 알 거 없다. 그 노인은 내가 따로 개방에 일러 감시하도록 하마. 그보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느냐?”

“아, 예. 척마단 단주와 가문에 사파를 보는 족족 잡아오라고 말을 해 놨습니다. 분명 놈들 중에는 회천단(回天團)에 대해 아는 자가 있을 겁니다.”

“좀 더 서두르거라. 마도에게서 무림을 되찾은지도 벌써 십 년이다. 아직도 회천단 놈들을 정리하지 못해서야 어쩌자는 것이야. 황실에서도 우릴 돕는데 왜 이리 늦어?”

“죄송합니다. 놈들이 워낙 꽁꽁 숨어 찾기 어렵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사파 놈들이란 그 태생이 비천하여 숨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히다는 것을.”


변명을 늘어놓는 남궁지산의 모습에 남궁위는 혀를 찼다.

마도에게 무림을 되찾은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모든 전투가 끝나고 평화를 되찾은 시기였건만 남궁을 비롯한 몇몇 정도 문파들은 아직도 그때의 진실을 숨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잘 통제해 왔지만 언제 이상한 소문이 돌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서둘러라.”

“예. 알겠습니다.”

“명심해라. 마도에게서 천하를 보호하고 무림을 되찾은 것은 오로지 우리 정파만의 위업이어야만 한다. 거기에 사파 놈들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야.”


무림의 주인은 언제나 명문 정파였다.

암흑에 잠겼던 그때 그 시절을 이겨낸 것은 오직 정파의 힘으로만 이뤄낸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 오점이 남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때 남궁지산은 거리에서 봤던 단심휘의 아들을 떠올렸다.


“참, 맹주님 회천단의 소재를 알 수도 있는 놈을 찾은 것 같습니다.”

“정말이냐?”

“예 숙부님. 아시죠? 좀도둑 단심휘 말입니다. 그놈의 아들 놈이 개봉에 있더군요. 서점 노인이 데려갔으니 그 늙은이를 족치면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잠깐. 그 서점은 건들지 말거라.”

“예? 아니 어째서요?”

“네가 말한 노인이 내가 생각하는 그자가 맞다면 내가 빗진 것이 있어서 그런다. 그 노인은 건드리지 말고 넌 사람들을 데리고 단심휘를 찾아.”

“아니 그래도······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절대 놈들의 흔적을 놓쳐서는 안 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단심휘를 잡아 회천단이 숨은 곳을 알아내라. 반드시!”

“예. 숙부님. 그럼 가 보겠습니다.”


남궁지산이 맹주전을 나서고 혼자 남은 남궁위는 복잡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천공금패를 가지고 있다던 노인이 신경 쓰이긴 했으나 중요한 것은 아니다.

노인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남아있지 않을 테니.

다만 아직도 회천단을 잡지 못했다는 것이 걱정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회천단 간부인 담심휘의 행적을 발견했으니 곧 해결될 것이다.


“이제 네놈의 흔적을 강호에서 완전히 지우는 날도 머지않았다. 약속대로 네 가족은 건들지 않겠으나 네놈의 회천단은 모조리 잡아 무림에서 지워버리고 말겠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드디어 과거의 망령을 완벽히 정리할 때가 왔다.

‘마도로부터 무림을 구해낸 영웅은 창천검제(蒼天劍帝) 남궁위만의 공이다’ 라는 것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었는가.

이를 위해 한때는 한 몸과 같았던 자들을 베었고 수많은 진실을 왜곡했다.

그 시절을 노래하던 광대나 이야기꾼은 모조리 잡아들였고 한 줄이라도 마도시대에 대한 얘기가 쓰인 책은 금서로 지정하여 태워버렸다.

그 결과 진짜 영웅을 무림에서 지울 수 있었고 남궁위, 그만이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되었다.


“하늘에서 지켜보거라. 네가 지워지고 모든 일이 나의 업적이 되는 모습을 말이야.”


맹주의 웃음소리가 맹주전을 가득 매웠다.

그러나 어쩐지 그 웃음은 공허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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