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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flas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가 가족이 된 이유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studioflas
작품등록일 :
2023.02.25 13:03
최근연재일 :
2023.10.22 14:15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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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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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93,824

작성
23.06.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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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전자기 유도의 법칙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DUMMY

나는 눈 앞의 존재를 어디까지 선호라고 인정해야만 할까?


배아 복제된 존재를 동일한 인격으로 취급하지 않는데는 기본적으로 삶을 살아오며 확립한 정체성이 없다는데서 기인할 것이다.


하지만 눈 앞의 이 존재는 유전자 복제와 정반대. 인공의 육체에 선호의 모든 기억과 성격을 담았다.


일찌기 이런 존재를 본적도 없었고,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온 존재이기에 어떤 대처를 해야할지 곤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선호가 읊고있는 과거의 기억에 감동하고, 공감하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저 눈물은 진짜 눈물이 아니겠지.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 본인은 알까?


시냅스의 전기반응이 아무리 유사해도 호르몬이 아닌 정보처리장치의 계산으로 움직이는 거 아닐까?


그런데도 어떻게 내 마음은 이토록 아려오는 걸까?


분명 이성은 눈 앞의 존재를 판단하고, 의심하며 팽팽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걸 뛰어넘은 감성이 내 판단을 흐리게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머리를 식힌 뒤, 이성적인 판단을 이어가자 곧 무엇이 가장 중요한 쟁점인지 알게 되었다.


“네가 오빠의 곁에 있었다면 왜 오빠의 죽음을 막지 못한 거야?”


그래, 눈 앞에 있는 게 선호든 아니든 아이월드를 가지고 있는 이상, 오빠의 죽음을 미리 예상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막으려고 해봤어. 에지오가 죽게되는 원인부터 막아 보려 했지만 어떤 형태로든 에지오에게 죽음은 다가와 버렸어. 네 오빠의 죽음은 내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설마..”


“그래, 네 오빠의 죽음은 이 세계의 흐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블레이크나 황제 같은 이들만이 막을 수 있는 운명이었어.”


“뭐라고? 오빠의 죽음이.. 필연적인 죽음이라고?”


대체 오빠가 얼마나 큰 잘못이 있기에 그 죽음이 이 세상에 필연적이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선호의 추측은 내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론일 뿐이야. 난 지난 800년 동안 양자 우주 시뮬레이터의 알고리즘을 계속해서 연구해왔어. 그래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지. 시뮬레이터의 수복기능은 변수를 제한하여 초기의 계산결과를 실현하는데 집중되어 있어. 그리고 에지오 처럼 죽음이 필연적인 존재라면 어떤 형태로든 결과를 만드려고 할거야. 만약 에지오가 블레이크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수복기능은 반드시 다시 에지오를 죽이려 들었겠지.”


“잠깐 그렇다면···”


“그래, 이미 수복기능은 널 중요한 변수로 타겟팅 했을 수 있어. 널 일반적인 방법을 죽일 수 없다고 인정한 거지. 그래서 널 죽일 방법을 찾기 위해, 에지오를 선택한 것일지도 몰라.”


“뭐..?”


“최근 블레이크가 카이사르 가에 의탁해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이야기는 소문으로 들었어. 그거 네 생각이지? 혹시 카이사르 가에 접근해 복수라도 할 생각인 거야?”


단번에 내 의중을 파악한 선호의 발언에 당황해서 시치미를 떼려던 나는··· 어느 순간 체념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난 선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고, 내 오만과 이기가 오빠를 죽게 만든 원인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원래 반드시 이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야 했던 건 프레야 폴크방 서머윈드.


나의 죽음은 양자 우주 시뮬레이터가 계산한 결말에 다다르는데 반드시 필요한 함수였다.


그런데 내가 블레이크의 힘을 빌려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에서 벗어나자, 시뮬레이터의 수복기능이 이 변수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날 죽을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 치닫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죽음을 유도하기 위해, 내가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될 계기를 만들기 위해 오빠를 죽임으로서 복수심을 불태우게 만든 것이었다.


지금까지 날 위태롭게 만드는 건 코번트리 대공의 마수와 혈족들이라고 생각해왔건만, 오히려 카이사르가에 대한 복수심이 나를 위험하게 만든다니.


마치 역기전력처럼··· 나의 전압이 거세게 몰아친 만큼 기전력이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오빠가 죽은 거라는 거지···?”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나연아. 나도 에지오의 죽음이 안타깝고 힘들었지만, 이기적으로 생각해보면 나연이 너에겐 어차피 타인···”


“타인이라니!”


난 버럭 소리를 지르며 테이블을 탕 쳤다. 그리고 내 반응에 선호는 잠깐 움찔하다가 애처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이해해. 프레야의 기억 때문에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지금은 냉정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렸다가 네가 더 위험해질 수 있다니까?”


나를 이해하는 척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선호가 위하고 있는 건 은나연 하나였다. 나의 또 다른 면에 대해서는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 말투였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뭐가..? 에지오에게 차가운 거? 어쩔 수 없잖아. 정말 중요한 친구였지만 지금은 널 지켜야지. 네가 에지오 때문에 복수심을 불태우다 죽음을 맞이하는 건 정말 보고싶지 않다고.”


“그럼.. 또 블레이크가 날 구해줄 거야.”


그리고 그 대답에 선호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잠시 후.. 고개 숙인 선호의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온다.


“잠깐 그 사람에게 널 부탁한 건.. 당장은 널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블레이크 뿐이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나연아.. 계속해서 블레이크에게 의지하다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가진 아이월드의 기능이 점점 작아질지도 몰라. 눈치 챘겠지만.. 네가 세상을 계속해서 바꾼 덕분에 엔트로피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했어.”


계속 된 변수를 때문에 바람에 양자 우주 시뮬레이터도 원래 계산했던 우주의 형태와 크게 달라졌다. 그래서 양자 우주 시뮬레이터는 세상을 수복하기 위해 더 복잡한 계산을 진행했고, 속도도 더뎌졌다. 그래서 아이월드가 가까운 미래밖에 예측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내가 계속 변수를 생산하여 혼란도가 가증되면 점점 아이월드로 볼 수 있는 미래의 기록도 점점 짧아지겠지.


분명 내가 여기서 카이사르가에 대한 복수를 멈춘다면 잠시 동안 내 안전은 지켜질지도 모르고, 비선형적 혼란도도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이월드의 성능도 유지시킬 수 있을테고, 앞으로도 미래예측을 계속할 수 있겠지.


“나와 함께 가자, 나연아. 전황도 전보다 나아졌고, 네가 마음만 먹어준다면 나도 탈영할 계획이 다 있으니까, 널 황제에게 데려다 줄게. 황제에게 협력한다면 블레이크보다 더 널 잘 지켜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널 만난 건 다행이야, 선호야. 네가 얼마나 힘들게 날 기다려 왔는지, 나는 가늠할 수도 없어.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자. 사실 널 만나기 전까지 무척 고민했었고, 걱정했었어. 난 너와 헤어지고 나서 끔찍할 정도로 괴로운 시간을 후회하며 살아왔었거든.”


“나도 네가 너무 그리웠어. 지하 도시에서 널 지키지 못한 걸 괴로워 하고 있을 때, 네가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그 무더운 갱도들이 아름답게까지 느껴졌어.”


“그랬구나.. 그래.. 그런데 말야, 선호야. 네가 아는 은나연은 죽은 게 맞아. 그래, 그날 지하도시에서 죽은게 은나연이야. 난 그 사람의 카피일 뿐이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나연이의 카피라서.. 나연이가 아니라고 하고 싶은거야? 하지만 넌 나와의 모든 추억과 기억을 가지고 있고, 네 정체성도···”


“아니.”


그리고 나는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


“넌 날 이해하지 못했어. 난 프레야 플랑. 은나연과 프레야의 인격으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사람이야.”


“그렇다고 해도 네가 나연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


“맞아. 마찬가지로 프레야로서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 난 나연으로서 널 사랑했지만, 프레야로서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어. 지금까지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그 집념, 그 노력.. 무엇 때문에 이뤄온 건지 알 것 같아. 하지만 난 그 마음을 받을 수 없어.”


그래, 선호가 지금까지 길고 긴 여정을 설명해온 것도.. 그리고 그 여정에서 느껴진 선호의 마음도 모두 잘 알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내게 미련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고민했었어. 널 만나기 직전까지.. 은나연의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나, 흔들리진 않을까하고 말이야. 그런데··· 응, 기우였던 거 같아. 널 만난건 너무 기쁘고, 행복하지만.. 블레이크를 떠나, 너와 함께 해야하자는 거··· 그건 아니야.”


그리고 내 말에 선호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마치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도 못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온전히 은나연이었다면.. 그래, 널 따라 나섰을지도 몰라. 하지만 널 만나고 나니까 알 것 같아.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나연의 기억과 성격일 뿐이란 걸 말야.”


“그게 무슨 소리야.. 인간이 누구냐는 결국 정체성이 결정 짓는···”


“내겐 프레야로서의 기억과 성격도 남아있어. 뿐만 아니라, 몸 역시 프레야의 것이지. 나연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난 육체의 소유주인 프레야라는 실감이 훨씬 강해. 그리고 프레야는 블레이크를 사랑하고 있어.”


“...아니야.”


그리고 선호가 그림자 드리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흔든다. 그의 모습에 이기심, 아니..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 착각하고 있는 거야, 나연아. 네가 틀에 박힌 여자애의 정체성을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


마치 자기 마음대로 나를 해석하는 듯한 태도. 나는 선호의 모습에서 전에 없던 오만과 집착을 느끼게 되었다.


“아니, 난 네가 생각하는 은나연이···”


그리고 그 순간 불쑥 다가온 선호의 손이 내 손을 콱 붙잡는다.


난 급히 손을 떼려고 했지만 선호의 손은 쉽게 뿌리쳐지지 않았다. 요정이 된 이후, 난 평범한 인간의 힘에 몇 배를 손에 넣었고, 누구의 손이든 쉽게 뿌리칠 수 있었다.


그런데 올가미처럼 단단하게 붙든 선호의 손은 얼음처럼 굳어 움직이지 조차 않았다. 블레이크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힘이 센 사람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안드로이드라서 일까? 요정도 혈족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존재가 이런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는게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이거.. 놔···”


“왜? 네 안에 있는 나연이도 그렇게 생각해? 나연이도 날 거부하는 거야?”


초점이 흐려진 선호의 눈동자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꾸만 내게서 은나연을 분리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15억년.. 비록 동면에서 깬 뒤에는 800년 정도라곤 하지만 그 긴 시간을 나 하나만 바라보고 기다렸다는게 더 이상 로맨틱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 긴 세월이.. 내가 기억하고 있던 선호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거칠게 저항했고, 잡아당긴 손에 커피잔이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지선호에게 프레야를 안내하는게 난 무척 못마땅했다. 하지만 프레야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었다.


배우자의 과거에 대해 신경쓰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렇지만 내색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국 상대의 신뢰를 얻는다.


누가 가르쳐준 건 아니었지만 내가 보고 느낀 바가 그랬다.


과거의 이야기를 꺼낸다는게 유쾌하지도 않을 뿐더러, 상대에게 신뢰를 주지 못할 것만 같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내가 평범한 남녀의 사랑은 아니었지만 한번 결혼을 했었다는 게, 프레야 앞에서 나를 작아지게 만들고 소극적이게 만들었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중차대한 문제를 숨기고 프레야를 사랑할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우리 관계에 로맨스가 없었다는 걸 밝힐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강조하고 강조했던 건.. 괜한 질투나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내 과거를 밝힌다는 건, 그 그림자로 사랑하는 사람을 작아지게 가려버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차마 프레야의 과거에 대해서 물을 수 없었다. 하지만 프레야가 결국 지선호에 대해 알게되고, 그녀가 진실을 털어놓자··· 곧 내 안에 걱정의 파도가 밀려들었다.


겉으론 아닌 척하고 있지만.. 그 과거에 가려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 필사적인 상황조차도 구차하고, 자조적으로만 느껴졌다.


비록 그게 프레야의 기억이 아닐지언정, 프레야가 빙의된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짜증과 불안을 만들고 있었다.


프레야가 카페로 들어간지 30분.


두 사람의 대화는 길어지는 모양이었고, 그 동안 나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뒹구는 낙엽을 질끈 밟아 빻는 일만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무슨 일인 걸까? 대화중 갑자기 언성이 높아지는 것 같더니, 곧 쨍그랑하는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히 몸을 움직여 카페의 문 앞으로 다가갔고, 그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희미하게 언성을 높인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놔, 지선호!”


“나연아! 나와 같이 가자. 내가 우리가 마지막을 함께했던 지하도시로 널 데려가 줄게. 우리 그곳에서 황제의 가호나 받으며, 하고 싶은 연구나 하면서 숨어살자. 응? 그곳이라면 수복 기능도 널 건들지 못해. 난 오직 널 만나겠단 일념으로 은하도 초월할 시간을 기다려 왔어.”


“난 프레야 플랑이야! 착각하지마. 네가 알던 사람은 이미 죽었다고!”


다급하게 소리치는 프레야의 목소리에 내 몸은 반사적으로 카페의 문을 열어젖혔고, 그 순간 지선호의 손이 프레야의 손을 붙잡고 잡아당기고 있는 모습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손 놔!!”


난 미친듯이 지선호에게 달려들었고, 프레야의 손을 낚아챈 그의 손목을 콱 붙잡았다. 손에 힘이 얼마나 들어갔던 걸까? 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목이 부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뭔가 이상하다. 부러진다는 느낌보다, 찌그러지고 휘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느낌이든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나는 온힘을 다해 그의 팔을 꺾었고, 손목이 부러지며, 팔이 꺾인 그는 결국 프레야의 손을 놓고 말았다.


무언가 끼익-끼익 대는 소리와 함께 그의 팔이 꺾였다. 그런데 보통 정상적인 사람의 뼈라면 부러지는게 당연했고, 부러진 뼈가 살을 파고 튀어나오는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팔은 이상하게도 엿가락처럼 휘어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가장 이상한 건 지선호는 비명 한번 지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장면으로 보자, 오히려 머리가 점점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지선호 병장···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하지만 지선호는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만 볼 뿐, 어떤 대답도 해오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기분 나쁜 건 그 살벌한 눈빛 아래에서 웃고있는 입을 발견했을 때 였다.


나는 그 표정이 기분 나빠 거칠게 밀쳐냈고, 지선호는 비틀비틀 거리다가 카페 바에 기댄다. 하지만 여전히 그 기분 나쁜 표정은 지우지 않은 채, 자신의 휘어진 팔을 흘깃 거렸다.


“프레야, 괜찮아..?”


나는 급히 프레야 앞을 막아서며 지선호를 경계했고, 빨갛게 자국이 남은 프레야의 손목을 보며 가슴이 찌릿찌릿 아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난.. 괜찮아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저 사람, 평범한 인간이 아니지?”


“네.”


내 눈에 피부위로 튀어나온 지선호의 뼈들이 보였다. 인간의 뼈가 아니었고, 은빛으로 된 금속과 정체를 알 수 없이 가득한 선들이었다.


“안드로이드··· 기계인간이예요.”


“기계인간?”


“으응.. 강철기사가···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되겠어요?”


“...귀신들린 갑옷같은 건가?”


“뭐, 그런 셈이라고 쳐요.”


“그럼, 위험하니까 박살내버려도···”


“그건 안 돼요!”


“왜..?”


난 프레야의 대답에 바로 반문했지만 꾹 다문 그 입술에 더 이상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그저 그녀를 이해해주는 척 고개를 끄덕이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지선호. 그거 수리 할 수 있어?”


수리라···


지선호가 사람의 형상을 한 고철이란 걸 알게 된 이후로 불쾌함은 더 커졌다.


처음 그를 봤을 때 부터 묘한 인상이라곤 생각했지만 인간이 아니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왜냐면 저자에게선 심장박동도 느껴지고 있었고, 따뜻한 체온도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사람이 생명체가 아니라고?


이런 걸 인지부조화라고 해야할까? 살아있는 것만 같은 고철덩어리의 모습에 짜증이 확 밀려왔다.


“재료만 구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그런데 이렇게 다칠 거라는 건 생각치도 못해서 수중엔 재료가 없네.”


“어쩔 생각이야. 그 모습으로 밖으로 나갔다가 사람들이 보면 혼란을 빚을 거야.”


“당분간 숨어지내야지. 뭐.. 들켜서 꼭 해코지를 당하리란 법도 없고.”


난 프레야의 얼굴에서 갈등의 그림자를 봤다. 차마 내 앞에서 꺼내기 힘든 것 같은 고민 가득한 표정.


결국 아내가 꺼내기 힘든 마음을 내가 대신 입에 담았다.


“휴가길에 병사 몇을 하이네스에 데려가기로 했다. 지선호 병장, 자네가 따라오도록.”


그리고 난 제복의 망토를 벗어 그에게 던져준다.


“그 볼품없는 상처도 가리고.”


지선호는 그렇게 망토를 받아들고는 짜증날 정도로 밝은 미소로 대답했다.


“네, 중대장님.”







블레이크가 그런 말을 선뜻 꺼낸 것이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방금전까지 내 손목을 붙잡은채, 내게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모습을 보고도 어떻게 하이네스로 가자는 말을 할수 있었던 걸까?


나 역시 선호의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를 믿어줘서?


얼마나 나를 믿으면 그렇게 단호한 판단을 하는 걸까?


아니, 정말 온전히 날 믿기에 그렇게 말한 걸까, 아니면 자존심을 지키려고 너그러워 진 건가?


아무튼 그런 블레이크의 제안에 선호는 흔쾌히 수락했고, 망토로 자신의 상처를 가린 채, 하이네스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했다.


“짐은 모두 챙겼고, 다른 사람도 다 준비 된 거지?”


마지막 짐을 차량에 실은 블레이크가 주변을 둘러본다. 숙소 건물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짐들은 어느새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네. 당신은요?”


“휴가 보고를 하고, 병사들과 함께 군용 차량으로 뒤따를 게.”


“그럼 전 영애와 백작님께 인사를 하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 다녀오지.”


블레이크는 그렇게 말하며 병영을 향했고, 그가 자리를 뜨자 기다렸다는 듯 스텔라가 내게 다가왔다.


“분위기가 이상하네. 외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행복해 보이던 표정이 갑자기 싹 굳어있네.”


스텔라가 단순히 내 표정만 읽고 그런 확신을 가진 건 아닐 것이다. 아마 내 감정을 일부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스텔라는 이 불안의 원흉을 알아차렸다.


“그 지선호인가 하는 드라고니안 때문이야? 왜? 이유가 뭔데. 네가 그 남자를 볼 때 마다 가슴이 아리고, 동시에 불안해 한다는 게 느껴져.”


“그래? 제대로 느꼈네. 사실이야···”


“그런데 왜 하이네스로 데려가려는 건데?”


“우선은.. 날 찾아서 15억년이나 기다려온 그 마음을 냉정하게 잘라내기 힘들어서?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건. 쟤.. 나랑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


“같은 능력? 무슨 능력? 아.. 혹시··· 미래를 예견하는?”


“응.”


그리고 스텔라는 ‘호오-’하며 작게 감탄사를 내뱉다가 곧 나와 같은 발상을 중얼 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잘만 구슬리면 네가 직접 표면에 나서서 목숨을 걸 필요가 없어지겠는데?”




많은 관심과 의견 바랍니다. 항상 좋은 일 가득하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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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26 8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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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18 8 0 19쪽
84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12 7 0 17쪽
83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09 7 0 18쪽
82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05 8 0 16쪽
81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6.29 7 0 20쪽
80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6.26 9 0 17쪽
79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22 12 0 17쪽
»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19 10 0 20쪽
77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14 11 0 16쪽
76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12 10 0 17쪽
75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08 12 0 21쪽
74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06 11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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