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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flas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가 가족이 된 이유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studioflas
작품등록일 :
2023.02.25 13:03
최근연재일 :
2023.10.22 14:15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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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9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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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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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전자기 유도의 법칙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DUMMY

카이사르 변경백은 날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고, 모든 사람을 물린 뒤 독대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 되었다.


백작은 내게 직접 차를 따라주었고, 상쾌한 허브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난 긴장 속에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처음으로 들어온 변경백의 집무실. 그리고 집무실은 사람의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와서 변경백이 어떤 사람인 줄 모른다고 하면 거짓이다.


뼛속부터 군인이란 것도 확인했고, 가치가 없는 상대와는 말조차 섞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다. 말 그대로 금속 같은 사람이었다. 금속 처럼 단단한 사람이었고, 차가운 사람이었으며, 끊고 맺음이 깔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나는 변경백의 성향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 싶었고, 그걸 파악하기 위해서는 집무실의 환경을 살필 필요가 있었다.


역시 군인이 아니랄까봐, 집무실에도 칼과 방패, 갑주와 총포류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난 아이월드를 켜 진열품들의 로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흔히 저런 장식품들은 골동품이나 값비싼 보물들이 진열되는게 보통인데 비해, 이곳에 있는 것들은 만들어진지 10년이 채 안된, 그것도 꽤나 자주 관리받고 있는 무기들이었다. 당장도 꺼내서 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보란듯이 전시한게 아니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듯한 모습이었다.


난 시선을 옮겨 이번엔 책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주로 읽는 책들은 대부분 병법서와 무술에 관련된 내용들이거나 마물과 혈족을 상대하는 법등에 대한 것들이었다.


예상했던 내용들이었고, 오히려 당연할 것 같은 내용들.


책들 일부는 내가 툴리에 있을 때 읽어본 적 있는 것들이었는데 떠올려 보면 상당히 전문성 있는 학술지들도 있었다.


특히 저 레피도 택틱스라는 저서는 황제의 왼팔이자, 첫째 황자 클레마티스 레기오스 프로스트 카 도미네이터가 29개의 나라를 정복한 후, 그들과 치른 200여건의 전투를 기록한 것이었고, 당시에 사용했던 레기오스 황자의 병법들을 학자들의 주석과 함께 분석한 내용들이었다.


수학의 언어로 쓰여진 책이 아니면 어린애들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만큼 책의 전문성은 대단했고, 나도 그 책을 읽다가 머리가 아픈 느낌까지 받았었다.


어쩌면 수학처럼 명쾌한 세상이 아닌, 비선형적인 세상을 군사학이란 언어로 풀고 있는 다른 형태의 카오스이론 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저런 책 조차 닳은 흔적이 보인다는 건, 그가 얼마나 병법 공부에 노력을 해왔는지 알 수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그 어려운 병법서나 절대 무적의 검술이 적힌 무예지가 아니었다.


기억력 감퇴를 막는 법, 클래스 체커 입문, 지혜로운 인간.


첫번째는 말 그대로 노인들의 기억력 감퇴를 예방하는 운동이나 놀이 방법, 취미에 대해 적혀 있는 것들이었고, 둘째는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기는 체스와 카드의 복합형태의 게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혜로운 인간은 사고방식의 변화를 통해 기발한 발상을 유도하는 생활 자세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셋 모두 기억력이나 두뇌회전과 관련된 것들이었고, 비교적 최근에 구매한 것들이었다.


아무래도 변경백은 자신의 기억력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곧 변경백의 기록을 살피다가 그럴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몇해 전. 전방을 돌며 순찰하고 있던 변경백이 혈족들의 야습에 공격을 당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머리를 다쳤던 모양이다.


다행이 혈족의 공격이라고 하더라도 마도갑주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은 구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충격이 후유증으로 남아 이따금 어지러움증을 호소하기도 했고, 기억력도 점점 감퇴되어 가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그래서 저 정정한 육체에도 일찍 딸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려 한 것이었고 말이다.


“다 둘러보셨소?”


“아.. 죄송합니다, 이렇게 책이 많은 곳은 처음 와봤거든요.”


사실 툴리의 대사관저 도서관이 책이 더 많았지만 굳이 변경백에게 내 뒷배가 로렐린이란 걸 알리고 싶진 않았다.


“훗.. 겸손할 것 없소. 그대처럼 박식한 자라면 저 정도 권수는 이미 모두 읽어보고도 남았겠지.”


나는 다시 한번 겸손한 태도로 입을 열뻔 하다가, 그냥 조용히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나저나 구체적인 방안을 듣고 싶소. 어떻게 그대가 마력석을 충전할 마력량을 충당한단 말이오.”


역시.. 그게 제일 궁금하겠지.


그런데 금단의 지식에 대해서는 카이사르 변경백도 알고 있을까?


내가 라이언에게 금단의 지식에 대해 들었을 때, 가장 의아했던 것은 카이사르 영애가 이 내용에 대해서 처음듣는 듯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카이사르 영애라고 하면 내가 알고 있는 이 블레임의 사람들 중 가장 박식한 인물이었고, 그 지식 수준은 나에 비해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금단의 지식을 모른다는 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지식에 대해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단 얘기였다.


나만 해도 그랬다. 나연과 융합되기 전에도 프레야는 책을 품에 끼고 살다시피 했던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 내용에 대해 몰랐고, 뒤늦게 아이월드를 통해 기록을 검색한 뒤에서야 관련 사항을 확인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쩌면 백작님도 모를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도박을 하기로 했고, 전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늘어놓았다.


“전 하이네스를 마력이 없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지역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마력이 없어도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는 지역? 그게 무슨 말이오.”


“인간은 주변의 도구를 이용할 때,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마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에 따라 하루 동안 소비하는 마력량도 다를 뿐더러, 모을 수 있는 한계 마력량도 차이가 있습니다. 마법에 대한 소양이 적은 평민과 빈민층들은 오히려 귀족들 보다 소비하는 마력석의 양이 많지요.”


“확실히.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빈민층은 자연 회복으로 얻을 수 있는 마력량이 현저히 떨어지긴 하지. 그런데 어떻게 마력이 필요없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오?”


“전기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전기? 번개와 같은 그 전기? 그 또한 마력이 있어야 만드는 것 아니오?”


“네, 그 전기입니다.”


이곳에서 전기란 자연현상이나, 마법으로 만들어낸 뜨거운 빛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정확히 전자기력이지만 에너지원으로서의 이해력이 부족한 백작에게는 전기를 이렇게 설명하는 편이 빠를 것 같았다.


“흔히 전기라고 하면 마력이 아니고서는 통제가 불가능한 빛의 불꽃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전기는 그 자체로 마력과 같은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기껏 해봐야 열 에너지를 조금 이용하는 정도의 역학수준 밖에 안된다.


하지만 전자기력은 이 시대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뿌리깊은 우주의 4대 힘이다.


강핵력 다음으로 강한 이 힘은 수 많은 화학 반응부터 세포분열등을 일으키는 원인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열역학 자체도 사실은 전자기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움직일 수 있는 것 또한 전자기력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이 힘을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로 문명의 척도를 구분지을 수 있다.


오히려 마력같이 어디서 튀어나온건지도 모를 근본도 모르는 이 힘과 비교했을 때, 더 위대한 가치의 힘이란 소리다.


내가 살던 시대는 전기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하면 전기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두고 수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수소차나 핵융합기술 역시 궁극적으로 전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마력 이전의 마력이고, 우리가 위대한 힘이라 일컫는 빛까지도 이 힘 때문이죠.”


“그럴수가··· 아니, 이해가 되질 않는 군. 그런 힘이 존재한다면 여지껏 그 수많은 마법사들이 이 힘을 이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건···”


“좀더 자세히 이야기 드리자면 우리가 아는 전기는 그저 이 에너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상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아니죠.”


“그럼 부인이 말씀하신 그 힘이 정말 마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단 말이시오?”


“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고 당장은 어렵습니다만 수년 안에 성과를 내고, 하이네스는 마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지역이 될겁니다.”


마력으로부터 해방되는 삶. 어쩌면 이것이 체제의 붕괴를 가지고 올지도 모른다. 귀족들이 마법을 독점해온 역사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과연 이 이야기에 카이사르 변경백이 혹할까는 또 다른 문제였다.


변경백은 귀족중의 귀족이다. 아무리 성품이 고귀하다 한들 누려온 부귀를 흔들 이 연구를 환영할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양심에 도박수를 걸었다. 귀족이라면 당연히 저야 할 명예의무를 가장 숭고하게 실천하고 있는 사람 역시 변경백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지원이 필요하시오?”


그리고 그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나는 구체적인 대답을 이어갔다.


“텅스텐과 철의 양은 많은 양이 필요치는 않습니다 다만 구리의 양이 많이 필요하고, 희토류가 필요한데 여기에는 란타넘이나..”


나는 발전기에 쓰일 광물들과 영구자석의 재료들을 요청했고, 빙결마법이 걸린 마도구도 요청했다.


처음엔 그저 하이네스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재료수량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아온 제안은 의외였다.


“좋소. 그럼 내가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하고 싶소.”


“어떤 제안이죠?”


“부인이 요청한 재료와 연구비의 10배를 주겠소. 하이네스의 전기 보급이 완료되면 데마리우스로도 전기를 보급할 방도를 연구해주시오.”


“데마리우스에도요..?”


예견하지 못했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곳에서 제안받을 내용은 아니었다.


적어도 제대로 된 성과물을 보고, 마을이 전기로 인해 얼마나 윤택해지는 지를 확인한 다음에 내게 제안을 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현대의 마력 가치는 화폐에 필적하는 수단이 되어오고 있소. 심지어 귀족들은 교육으로서의 마법을 독점해, 부를 대물림하고 있는 셈이오. 그리고 그런 점들이 오늘날 블레임을 병들게 만들었지. 가장 마법사가 필요한 곳에 명예의무를 행할 귀족들이 오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귀족들이 명예의무를 실천하고자 이런 전방지역으로 입대를 하진 않겠지. 그러다보니 부족한 병력을 메우기 위해, 무리한 징병을 할 수 밖에 없고, 결국 군대의 질적 수준이 한참이나 떨어져 버린 것이다.


“적어도 귀족과 평민이 마력에서 해방되어 같은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삶을 영위한다면 자연스레 평민들에 대한 마법 교육의 문도 열릴 것이오.”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경백께서는 무리하게 제안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내 개인적인 바램이니, 더 이상 묻지 마시오.”


왜 이렇게 성급한 걸까? 전장에 뼈가 굵은 카이사르 변경백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 판단은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었다.


연구자인 나 자신도 몇 년안에 전기를 공급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데 말이다. 그리고 나는 곧 그런 그의 성급함의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1년 뒤, 카이사르 변경백은 공식적으로 모든 업무에서 은퇴한다. 아이월드는 그런 미래를 로그로 알려주고 있었고, 나는 분명 변경백의 신변에 변고가 생긴단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모든 단서들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변경백이 겪고 있는 기억력 감퇴가 심상치 않은 것임을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1년 뒤 부터 그의 기록이 끊긴다는 것이다.


분명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날 때는 반드시 죽음이란 기록이 남아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수십, 수백번에 걸쳐 죽음의 기록을 봐 왔었다. 그리고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그 죽음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변경백에겐 그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분명 전에도 몇 번이나 겪은 일이긴 하다.


지금까지 아이월드는 2년 뒤 정도까지의 기록을 보여줬었기 때문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처음 아이월드를 사용했을 때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보였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2년 뒤의 미래까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작 1년 뒤의 미래도 확신하기 힘든 상태였다.


난 처음에 이것이 단순한 오류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다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점점 예측 가능 시간이 짧아진다는 건, 그 만큼 다양한 변수가 세상에 작용해서 연산하기가 힘들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아마도 블레이크가 활약을 하여 세상의 비선형적 함수들이 증가할 수록 우주 시뮬레이터는 원하는 값을 도출하기 위한 상수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것이다.


그 상수가 증가하면 증가할 수록 결과값 도출에 걸리는 시간도 증가하는 것이고, 예측이라는 관점에서는 점점 미래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혹시 내가 양자 우주 시뮬레이터가 적용하고 있는 상수를 찾아내면 어떨까? 비선형적인 함수들이 늘어날 때 마다, 도출되는 미래의 모습을 수학적으로 기술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결국 위상수학으로서 범우주적 도출밖에 안되겠지만 해답을 도출해낸다면 분류법이야 어떻게든 찾아낼 수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좋습니다, 변경백님. 저도 제 연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으면 기쁘겠네요. 그런데 이건 개인적인 부탁인데, 한가지만 절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무엇이오?”


“선금이 조금 필요합니다.”


“연구에 필요한 투자비용이오?”


“제 개인에게 투자하시는거라 생각해주세요.”


“흐음..”


과욕을 부린 걸까? 오히려 변경백은 내 연구를 이야기할 때 보다 더 고민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시오. 뭐, 그로스비너 후작부인의 소개도 있었으니.”


후작부인의 소개개..?


나는 변경백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공식적으로 나와 후작부인은 이 연회에서 처음 만난 사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굳이 변경백에게 내 소개를 해서 이런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단 한가지 가능성을 고려하면..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 후작부인이 내 정체를 눈치챘다면 말이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후작 부인께서 입이 닳도록 칭찬하셨소. 그리고 내게 부탁하셨지. 플랑 부인을 꼭 만나보고, 그대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나, 그대가 부탁하고 싶은 일을 도와달라고 말이오.”


눈치챘어.. 분명히 대모님은 눈치채신 거야.


나는 후작부인이 내 정체를 눈치챘다는 걸 알자마자, 당장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고, 속였던 점을 사과하고 싶었다. 그리고 절친인 엄마의 소식도 꼭 전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중요한 거래를 앞두고 함부로 자리를 일어나는 건 예의가 아니었던지라, 나는 결국 자리를 지켜야 했고, 우리의 모든 대화가 끝났을 땐 이미 연회를 끝난 뒤였다.







“프레야,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 연회는 끝났어.”


마중 나와 있던 블레이크를 떼어놓고 연회장으로 가려 하자, 그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만류해왔다.


하지만 난 오늘 꼭 그로스비너 부인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아주 잘 지내고 있단 이야기만 내 입으로 전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프레야. 혹시 그 부인 때문이야?”


“응..? 블레이크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실은 네가 변경백과 독대를 하러 간 사이에 그 사람이 날 찾았어.”


“아···”


“너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더군. 하마터면 입을 막으려고···”


“무슨 짓 한거 아니죠?!”


“음. 아니야. 널 잘 아는 것 같더군. 잘 부탁한다고 했어.”


대모님···


“어떻게 후작 부인이나 되는 분를 알고 있지? 게다가 널 한번에 알아채고···”


“그야 내 대모님이시니까. 내 샤프롱이 되어 주신다고 했는데···”


따지고보면 후작부인 덕분에 카이사르 변경백과 이야기가 잘 풀린 점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부인이 나와의 약속을 지켜줬다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 그런데 당신은 다른 얘기 들은 거 없어요?”


“나?”


“응, 대모님이 플랑 백작님의 친우시래요. 여보 어린 시절도 기억하시던데···”


내 이야기에 블레이크는 조금 어두워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 말도 없으셨고, 이미 가 버리셨어. 내일 스케쥴이 바쁘시다더군.”


“아···”


아쉬움이 드는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불끈 쥔 블레이크의 두 주먹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평소에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어서 그가 가문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을 보면 내게 드러내지 않은 애착이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애착보다 깊었던 블레이크의 배려와 희생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부모님에 대해 많이 궁금하죠?”


“···”


“아닌 척 말아요. 이렇게 어두운 얼굴인데 내가 모를 것 같아요? 그러게 왜 검과 총은 팔아가지고···”


“그건 걱정하지마 내가 어떻게든···”


“어떻게든 뭐요? 이미 며칠뒤면 팔려가고 없을텐데.”


“뭐?”


“기한이 만료 된대요. 아니, 애초에 그 전당포 주인.. 당신 물건을 몇배값으로 부풀려서 팔려고 했었어요. 돈도 전부 집에다 붙였으면서 뭘 되찾는단 거예요?”


“···”


“3천만 블렘.. 카이사르 변경백께서 내어 주시기로 했어요.”


“어, 어떻게?”


“어떻게긴요. 내가 쓸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했죠. 사실 발전기 문제는 카이사르 영애와 이야기를 풀어갈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장물을 교환할 개인자금은 빌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다른 핑계거리는···”


“3천만 블렘을 핑계로 빌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심지어 하이네스는 벨의 군것질거리 하나 제대로 사기 힘든 곳인데.”


“하긴..”


“게다가 카이사르 영애에게 당신이 검과 총을 팔았다고 이야기하면 분명 뒷조사를 했을 거예요. 그 사람은 나와 당신이 이런 사치를 부릴 사람이 아니란 걸 아니까.”


“부채감도 지우고?”


“맞아요. 거래라는 명목으로 함께 행동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영애가 손해보는 거래를 해오고 있어요. 가뜩이나 도움받은 구석이 많은데, 더 이상 부채감을 늘리다가 복수의 방해요소가 되면 안되니까요.”


“하지만 결국 카이사르 변경백에게도 도움을 받은 것 아닌가?”


“개별적으로 보자구요. 영애나 백작이나 도움받은 구석이 있어서 각각 부채감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게 그들의 죄를 모두 덜어낼 수 있을 수준은 아니면 돼요.”


감정의 깊이를 수치화하는 것도 참 편협하고, 옹졸한 행동이라 생각했지만 그렇게해서라도 복수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게 내 진심이었다.


“미안해, 내 괜한 행동이 널 더 곤란하게 만들었군.”


“더 곤란하게 만들었다뇨?”


난 나무같이 커다란 블레이크의 품에 폭 안기며 조용히 속삭였다.


“당신이 가보보다 오빠의 장례식을 택한 걸 알았을때, 정말 행복했어요. 나에 대한 당신 마음이 오빠에게 이어졌다는게 우리가 이제 진짜 한가족이란 걸 느끼게 해줬으니까.”


“난 늘 너에게 감사하고 있어. 처음 만났던 날, 네가 날 붙잡으 그 이상한 소릴 하지 않았다면 나와 리즈벨은 지금쯤···”


“나쁜 생각말구, 고마우면 나 여보라고 불러줘요.”


“뭐?”


살짝 상기된 블레이크의 표정에 닦달하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얼른. 예전에도 이렇게 불러주기로 해놓고선 결국 안 불러줬잖아.”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럼요? 프레야, 플랑부인은 엄마도 아빠도 옆집 이웃들도 다 불러주는 호칭이지만 여보는 나에게 당신만이 불러주는 호칭이잖아요.”


그리고 블레이크는 잠깐 고민하다가 떨리는 입술로 중얼거렸다.


“여, 여보.”


“으···”


그리고 직접 블레이크의 육성으로 그렇게 불리자, 정작 요구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너무 달콤해서 온몸이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아버릴 것만 같다.


아, 안되겠다. 이거···


“여보, 오늘 밤새 그렇게 불러줄 수 있죠?”


“밤새···? 아, 물론.”


그리고 목에 매달리는 날, 블레이크가 번쩍 들어 안았다.


숙소로 향하는 블레이크의 심장이 쿵쿵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느새 꿈꾸는 아기처럼 새액새액 숨만 몰아 쉬었다.




많은 관심과 의견 바랍니다. 항상 좋은 일 가득하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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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9.11 7 0 17쪽
93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9.01 6 0 16쪽
92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8.23 8 1 18쪽
91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8.16 6 0 17쪽
90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8.13 8 0 24쪽
89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8.07 7 0 19쪽
88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31 7 0 17쪽
87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26 8 0 17쪽
86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23 7 0 16쪽
85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18 9 0 19쪽
84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12 7 0 17쪽
83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09 7 0 18쪽
82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7.05 8 0 16쪽
81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6.29 7 0 20쪽
80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 23.06.26 9 0 17쪽
79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22 12 0 17쪽
78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19 10 0 20쪽
77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14 11 0 16쪽
76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12 10 0 17쪽
»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08 13 0 21쪽
74 전자기 유도의 법칙 23.06.06 11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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