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공기재단사님의 서재입니다.

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최근연재일 :
2023.06.13 18:3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182,352
추천수 :
3,622
글자수 :
957,680

작성
23.03.02 18:30
조회
985
추천
23
글자
13쪽

키헨 재건(2)

DUMMY

키헨은 고지에 있어서 험한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조심해!”


수시로 낙석이 떨어지는 좁은 비탈길을 수레를 밀며 올라가는 것은 노련한 병사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해는 금방 졌고, 밤이 되면 차갑고 습한 공기에 추위가 뼈를 파고들었다. 아슬라프는 병사들이 추위에 떨다 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용히 직접 막사를 살피고 다녔다.


모닥불 주위에 몰려든 병사들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뜨거운 죽으로 몸을 녹였다.


“이런 험한 곳에 요새를 짓는 건 너무 무리한 일 아냐?”


한 병사가 투덜거렸다.


“올라가다가 기운 다 빠지겠네.”


그때 다른 병사가 말했다.


“그렇긴 한데, 일단 지어놓으면 위에서 방어하긴 쉽지.”


그는 전투 지식이 많은지 능숙하게 지형지물을 분석했다.


“적이 쳐들어오면 행군해서 올라오다가 지쳐서 허덕일 테니 시간도 벌 수 있고.”


“하긴 그렇네.”


“매복했다가 기습할 곳도 많아. 주위를 봐. 우리가 몸을 숨기고 공격한다고 가정하면 숨을 데가 엄청 많아.”


그 병사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 다른 병사들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 바위, 산, 계곡 등 어디서 적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지형이었다. 길도 좁고 꼬불꼬불해서 후퇴하기도 쉽지 않았다.


“저기 위에서 불화살을 쏘면 우린 죽은 목숨이야. 반대로 적이 쳐들어오면 우리가 저기 숨어서 쏘면 돼.”


동료들에게 조리있게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병사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슬라프는 그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소리도 낯설지 않았다.


‘토마스 경?’


알렉세이1세가 거느리고 있던 기사들 가운데 토마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토마스는 죽었는데.’


그는 끝까지 알렉세이1세의 곁을 지키며 싸우다 전사했다. 그것이 20년 전의 일인데, 이 병사는 30대의 나이로 보였다.


‘혹시 토마스의 아들인가?’


토마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아슬라프도 그들이 어렸을 적에 본 적이 있었다. 아주르 성에 와서 공부하기도 했고, 토마스는 두 아들이 기사가 될 수 있도록 직접 검술을 가르치곤 했다.


아슬라프는 병사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모닥불 주위에 누워있던 병사들은 어둠속에서 아슬라프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아, 백작님.”


“괜찮네. 다들 자리에 앉게.”


아슬라프는 병사들과 같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는 데이빗이라고 합니다.”


병사는 자신의 이름을 댔다.


“전투에 대해서 지식이 많군. 어디서 배웠는가?”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아버지 존함은?”


“저...”


병사는 머뭇거리며 이름을 대기를 망설였다. 그러더니 동료들의 얼굴을 보고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토마스 경입니다.”


그의 말에 병사들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토마스 경?”

“알렉세이1세의 기사단장?”


데이빗은 얼굴이 굳어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가 이렇게 표정이 어두워진 이유가 있었다.

동료 병사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수근거렸다.


“그럼 아버지가 키헨 학살에 가담한 거 아냐?”

“그렇겠지. 알렉세이1세가 키헨을 쓸어버렸으니 당연히 기사단장으로서 앞장서서 학살을 저질렀겠지.”


데이빗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토마스 경의 아들이었나.”


아슬라프는 데이빗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기사가 되지 않고 병사가 되었나?”


“아버지께서 전사하신 후로 가세가 기울어서 무술 수련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기사라고 하면 시종이나 견습생으로 받아줄 기사들이 있었을 텐데?”


“아버지가 알렉세이1세의 기사단장이었다고 하면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아...”


아슬라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그리드와 게오르그는 알렉세이1세와 관련된 자들은 모두 탄압하고 관직에서 내쫓았다. 게다가, 자식들마저도 출세길을 모두 막아버린 것이다.


‘악랄한 놈들.’


자신을 따랐던 기사의 후손마저도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무리 전생에 연연해서 복수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아슬라프였지만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기사가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학살에 가담한 자의 아들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며 살아왔을 데이빗을 보니 안타까웠다.


“토마스 경에게는 아들이 둘이었다던데. 동생도 있지 않나?”


“예. 디투앙이라는 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생과는 어렸을 적에 헤어져서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데이빗은 보병으로 일하다가 공병부대로 소속을 옮겨서 복무하고 있었다. 비록 무술 수련을 꾸준히 하지 못해서 기사는 되지 못했지만, 아버지에게 배운 지식은 전투에도 도움이 되었고 진지를 구축하거나 공병 전술을 세울 때도 쓸모가 있었다.


“키헨에 가게 되어서 기분이 좋지 않겠군.”


아슬라프는 데이빗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학살을 저지른 곳에 간다는 게 아들로서 견디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닙니다.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는데, 이번에 가서 열심히 재건사업에 참여해서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갚을 생각입니다.”


데이빗은 씩씩하게 말했지만, 그의 표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픈 기색을 띠고 있었다.


‘그래. 나도 그 기분 알지.’


아슬라프 자신도 키헨에 가면서 심경이 복잡한데 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키헨에 도착했다. 사람의 흔적은 없고 유령도시와 같은 무너져가는 건물의 잔해 뿐이었다. 20년간 비바람을 맞아 형체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자, 우선 청소부터 하자.”


아슬라프는 무너진 건물 자재를 치우고 도로를 쓸어 환경을 정비하도록 지시했다.


흙먼지를 제거하자, 조금씩 참상이 드러났다. 뼈에 칼자국이 있는 백골들이 모습을 보였다. 어른만이 아니라, 작은 아이들의 해골도 많았다.


‘내가 이런 짓을 했다고?’


아슬라프는 고개를 저었다. 알렉세이1세때의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이런 학살을 저지른 기억은 없었다.

당시에 국경 서쪽에서 게오르그를 맞아 싸우느라 키헨같은 동쪽 끝 외진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키헨에 와보면 뭔가 떠오를 줄 알았는데 학살에 관한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병사들은 참극의 현장을 보고 분개해서 중얼거렸다.


“알렉세이1세는 진짜 잔인한 군주였네. 이렇게 많은 주민을 다 죽이다니. 무섭네.”


백골을 수습하던 병사 한 명이 말하자, 다른 병사들도 동의했다.


“인간도 아니야.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그러니까 아주르 공국이 망했지.”


다른 병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이 학살을 알렉세이1세가 저질렀다고 믿었지만, 아슬라프는 수긍할 수 없었다.


“잘 망했네. 알렉세이1세도 잘 죽었어. 그가 살아있었다면 내 고향도 그 사람의 지배를 받았을 거거든.”


“천벌을 받은 거네.”


병사들의 말에 아슬라프는 답답했지만, 키헨 학살이 알렉세이1세가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증거로 내세울 게 자신의 전생의 기억뿐이고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 병사가 누군가를 끌고왔다. 머리를 산발한 노인이었다.


“수상한 자가 있습니다. 뭔가를 숨기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빈집에서 혼자 거주하는 사람을 발견했다고 했다. 곳곳에 시신이 있는 공동묘지나 다름없는 이곳에 혼자 서성거릴 이유가 없었다.


“넌 누구냐?”


아슬라프는 끌려온 노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상티누스?’


그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아주르 공국의 전 총리였다.

키헨 학살을 알렉세이1세가 저지른 게 아니라고 주장해서 감옥에서 갇혔다가 풀려난 후 행방불명되었다던 상티누스였다.


더러운 옷을 입고 수염이 길고 나이를 먹고 노쇠해졌지만, 사물을 꿰뚫어보는 현명한 눈빛은 오히려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상티누스.”


아슬라프는 자기도 모르게 반가워서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꽉 잡았다. 그러나 상티누스는 그가 때리려는 줄 알고 겁에 질려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쳤다.


‘아, 나를 모르지.’


상티누스가 아슬라프가 알렉세이1세인 걸 알 턱이 없었다. 아슬라프는 그에게서 손을 거두고 물러났다.


“이걸 감추려고 했습니다.”


병사가 그가 숨기려던 물건을 아슬라프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여러 권의 책이었다. 아슬라프는 책장을 넘겼다.


‘이것은?’


아슬라프는 가슴이 저릿해오는 걸 느꼈다.


[

알렉세이1세는 1320년 아주르 성에서 줄리어스 아주르 백작과 헬레나 아주르 백작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


첫 장에 알렉세이1세의 출생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대를 따라가면서 알렉세이1세의 성장과 아주르 공국의 건국, 발전을 차례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그 책들은 모두 알렉세이1세와 아주르 공국의 역사에 관한 책이었다.


책의 기록은 키헨 학살에 관한 내용에서 멈춰져 있었다.


“네가 쓴 책인가?”


아슬라프는 상티누스에게 물었다. 그는 대답 없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상티누스는 키헨 학살이 알렉세이1세가 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십여 년의 감옥살이를 했다.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어떤 말을 했다가 또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었다.


아슬라프는 그를 자신의 막사로 데려갔다. 주위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 단둘이 마주 앉았다.


“이젠 아무도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라.”


그는 상티누스가 안심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고 감옥에 넣는 군주는 아니다, 상티누스.”


아슬라프의 말에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떨구고 있던 그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어, 어떻게 제 이름을 아십니까?”


“아주르 공국의 이야기를 이렇게 상세하고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자라면, 총리의 자리에 있던 상티누스 말고 또 누가 있겠나? 그대 덕분에 아주르 공국이 기초를 다지고 단단한 반석에 올라갈 수 있었지.”


자신의 전생을 밝힐 수 없는 아슬라프가 이렇게 둘러댔지만, 상티누스는 자신을 알아보고 공적을 인정해주는 그 말에 감동받은 듯이 한층 밝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왜 여기서 혼자 책을 쓰고 있나?”


“...”


그는 다시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말을 할 듯 말 듯 입술을 떨었다.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으니 글이라도 써서 남길 생각이었습니다.”


상티누스는 알렉세이1세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꼿꼿한 성품이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핍박하자, 지그리드의 감시망을 피해서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서, 혼자 몰래 기록을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내가 들어줄 테니, 나한테 말해보아라.”


아슬라프는 진지하게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알리고싶었느냐?”


상티누스는 아슬라프가 자신의 말을 경청하자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지난 20년간 제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그간의 설움이 북받치는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모두 제가 말하면 겁에 질려 피하고,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손가락질하고 감옥에 가뒀습니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쥐어뜯던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꼈다.


“하지만, 저는 알렉세이1세의 업적과 아주르 공국의 찬란한 역사가 이대로 거짓에 묻히도록 놔둘 수 없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요.”


그는 감옥에 투옥된 동안, 그리고 감옥에서 나와서도 자료를 모아 알렉세이1세와 아주르 공국에 관한 역사서를 저술했다.

하지만, 책을 출판하는 건 고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도 없었다. 지그리드가 알렉세이1세를 칭찬하는 사람은 모두 잡아 가두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세이1세는 훌륭한 성군이셨습니다. 저에게도 늘 따듯하셨고 백성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알렉세이1세를 도와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죽임을 당하고 나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학살자 폭군이라고 매도당하는 걸 차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상티누스는 아무도 그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알렉세이1세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남은 일생을 바쳐서 기록을 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알렉세이1세는 절대로 학살을 저지를 분이 아닙니다. 아주르 군대는 키헨 학살 당시 여기서 한참 떨어진 서쪽에 있었습니다.”


상티누스는 키헨 학살이 누구에 의해 자행되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키헨에 와서 직접 현장 발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밝혀낸 게 있나?”


아슬라프의 물음에 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1 용병대장 헬리오스(2) 23.03.16 824 21 12쪽
80 용병대장 헬리오스 23.03.15 881 22 12쪽
79 알렉세이1세의 비밀금고(2) 23.03.14 927 22 12쪽
78 알렉세이1세의 비밀금고 23.03.13 930 23 12쪽
77 집시 황제 피졸트(3) +1 23.03.12 889 25 12쪽
76 집시 황제 피졸트(2) 23.03.11 923 21 13쪽
75 집시 황제 피졸트 23.03.10 941 19 12쪽
74 편가르기 23.03.09 938 24 13쪽
73 불스타운 공방(2) 23.03.08 950 23 13쪽
72 불스타운 공방 23.03.07 979 25 13쪽
71 블라디의 최후 23.03.06 973 24 12쪽
70 학살자 블라디(3) 23.03.05 957 22 12쪽
69 학살자 블라디(2) 23.03.04 962 23 13쪽
68 학살자 블라디 23.03.03 999 23 12쪽
» 키헨 재건(2) 23.03.02 986 23 13쪽
66 키헨 재건 +1 23.03.01 1,054 23 13쪽
65 기욤의 전생(3) 23.02.28 1,029 23 13쪽
64 기욤의 전생(2) 23.02.27 1,012 22 12쪽
63 기욤의 전생 23.02.26 1,041 23 12쪽
62 둠킨 자작의 침공(2) 23.02.25 1,059 23 13쪽
61 둠킨 자작의 침공 23.02.24 1,066 24 13쪽
60 자연교와 인과교(2) 23.02.23 1,074 21 12쪽
59 자연교와 인과교 23.02.22 1,117 23 12쪽
58 아주르 성을 얻다(2) 23.02.21 1,138 25 12쪽
57 아주르 성을 얻다 23.02.20 1,156 25 12쪽
56 우트만의 몰락 23.02.19 1,134 23 13쪽
55 포르디스의 반란(3) 23.02.18 1,123 22 12쪽
54 포르디스의 반란(2) 23.02.17 1,131 23 13쪽
53 포르디스의 반란 +1 23.02.16 1,175 21 12쪽
52 은행가 우트만(2) 23.02.15 1,177 2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