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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재단사님의 서재입니다.

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최근연재일 :
2023.06.13 18: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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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7,680

작성
23.02.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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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
12쪽

기욤의 전생

DUMMY

기욤과 가스팔이 공통점이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기욤에 대해서도, 가스팔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전생에서 서로 잘 모르고 인연이 깊지 않았으니, 이번 생에서도 그런 건지도 모른다.


‘악연이 반복되는 건 아니겠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지만, 어쨌든 전생에 자신으로 인해서 목숨을 잃었던 자의 환생을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만약 악연이 반복된다면 이번에도 아슬라프가 그를 죽이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슬라프는 이미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전생에서 그의 목숨을 빼앗았던 것과는 반대의 행동을 했다.


의사가 기욤의 치료를 마치고 일어섰다.


“어떤가?”


조급하게 묻는 아슬라프에게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박상뿐이고 뼈도 멀쩡하고 큰 상처는 없습니다. 천만다행이네요.”


충신인 요빅에게 아들의 전사를 알리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 아슬라프는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전생에는 결투로 그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이번 생에는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악연은 소멸한 거나 다름없었다.


아슬라프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려는 의사에게 더 심한 부상자를 먼저 보라고 지시했다.


“좀 긁혔을 뿐이야. 다른 부상자 먼저 치료하게.”


그리고 붕대를 당겨서 매듭지었다. 혼자 매다 보니 아무래도 탄탄하게 묶어지지 않았다.


“이리 줘봐.”


아슬라프에게서 붕대를 뺏은 은쿤이 그에게 붕대를 감아주었다.


“제대로 안 감으면 피가 안 멎어.”


덩치에 안 어울리게 손재주가 섬세한 은쿤은 두툼한 손가락으로도 야무지게 붕대를 감았다.


“기욤을 구하려고 무모하게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드냐?”

“그러는 너도 나를 구하려고 성문을 열고 뛰어나왔잖아.”

“그랬나? 아니, 난 새 도끼 좀 시험해보려고 그런 거지.”


은쿤은 농담을 하며 붕대를 동여맸다.

전생의 아내였던 스칼렛과는 가까워지려고 노력해도 늘 어렵고 삐걱거리는 사이였는데, 은쿤과는 별다른 노력 없이 친한 친구가 되었다.


‘스칼렛과도 그냥 친구였다면 더 잘 지냈을지도 모르지.’


그녀와 부부가 아니라, 이웃 영주나 군신관계로 만났다면 더 사이가 좋았을 것 같았다. 성격은 불같아도 지혜롭고 공정하고 무엇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같았으니까.


전생에는 티격태격했지만, 지금은 은쿤과 사이가 좋아진 것처럼 기욤과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기욤은 며칠 후에 몸이 회복되었다.

다시 전선에 복귀하겠다고 자청한 그는 말을 가지러 마구간에 갔다가 아는 얼굴을 마주쳤다. 연족 여인 유리였다.


“기욤 님. 저 여쭤볼 게 있는데요.”


그녀는 손에 쥔 수건을 초조하게 잡아 비틀며 그에게 물었다.


“둠킨 자작님이 에셀부르를 공격하는 게 저 때문이라는데 사실인가요?”


그녀는 고작 평범한 노예였던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전쟁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무나 큰 사건이 벌어져서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저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싸우는 건가요?”


그녀는 감정이 벅차오르는 듯이 울먹거렸다.


“저는 진짜로 제 몸값을 갚았어요. 둠킨 자작님이 뭔가 오해하신 것 같아요. 어쩌면 좋아요.”


기욤은 울음을 터뜨린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둠킨 자작은 에셀부르를 손에 넣으려고 당신 핑계를 대는 겁니다.”


“하지만...”


“아슬라프 렌케 자작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영지에 있는 자는 누구든 보호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다. 제국인인든 연족이든 민족과 종교에 상관없다’라고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굳게 먹으세요.”


기욤의 확신에 찬 말을 들은 유리는 잠시 흐느끼며 생각에 잠겼다가 눈물을 닦았다.


“네. 기욤 님 말씀대로 마음을 굳게 먹을게요.”


그녀의 품에서 흥분한 말이 날뛸 때 진정시키는 약초를 싼 수건을 꺼내서 기욤에게 주었다.


“기욤 님도 부디 다치지 마세요.”


그녀는 기욤의 싸우다 멍든 얼굴을 보더니 입술을 달싹거리며 무슨 말을 할 듯하다가 고개를 움츠리고 돌아갔다.

기욤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아슬라프는 은쿤으로부터 에셀부르 성의 병력 상황을 보고받았다.


“기병 200명 보명 1500명 공병 300명이라. 이 정도로는 수비밖에 못 하겠군.”


아슬라프의 병력은 베덴 성과 아주르 성, 에셀부르 성에 흩어져 있었다. 어느 곳도 방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성이었다.


그에 비해서 둠킨은 자신이 수십 년간 키운 병력을 모조리 이끌고 와 있었다. 아무리 수비하는 쪽이 유리하다곤 하지만, 병력의 규모에서 다섯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성에서 버티면서 조금씩 적의 병력을 소모시키면, 긴 시간 후에는 이길 수는 있겠지만, 에셀부르의 피해도 클 것이다.


‘둠킨 녀석 때문에 장사도 못 하고 이게 뭐람.’


기껏 상업과 문화의 도시로 부활시켜놓은 에셀부르에 전쟁이 길어지면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 허사가 된다. 이제 막 세금이 늘어나고 인구가 불어나기 시작했는데, 긴 전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전쟁을 빨리 끝낼까?’


둠킨이 성벽을 넘으려고 병력을 들이부으면 그들이 머리를 들이미는 족족 깨부수면서 천천히 말려죽이는 것이 가장 아군의 소모를 줄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는 전쟁을 끝내는 주도권이 둠킨의 손에 있게 된다.


‘기병이 조금만 더 있으면 단번에 격파시킬 수 있는데.’


둠킨의 병력은 거의 보병 위주라, 기병이 천 명, 아니 오백 명 정도만 더 있으면 성 밖으로 나가서 회전을 벌여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푸른 달 부족을 통해서 용병을 요청해볼까.’


연족 용병을 모집해서 기병 병력을 보강한 다음 결전을 벌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요빅에게 연락해서 푸른 달 부족장을 통해 기병을 모집해 보내달라고 해야겠군.’


아슬라프는 요빅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그때 기욤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화살 보급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왔던 그는 아슬라프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다는 걸 알고 무슨 내용인지 여쭤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연족 기병을 최대한 빨리 몇백 명 모집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하려고 하네. 천명 이상 되면 더 좋고.”


아슬라프는 기병을 더 보충해서 성 밖에서 일시에 적을 격퇴하려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우리가 주도해서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거야.”


그러자, 기욤이 자기가 직접 사막에 가서 병사를 모집해오겠다고 나섰다.


“아버지에게 요청하면 다른 전령을 푸른 달 부족에게 보내고, 푸른 달 부족이 병사를 모집해서 아주르 성으로 올 텐데, 그러면 시간이 늦습니다. 아주르 성과 푸른 달 부족에게 들를 필요 없이, 제가 바로 사막으로 가서 연족 기병을 모집해 오겠습니다.”


아슬라프는 기욤이 사막의 여러 연족 젊은이들과 친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보수집을 위해서 다양한 부족의 교류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아슬라프는 잠시 기욤을 보고 확답을 주지 않았다.

기욤의 전생을 알게 되니 어쩐지 일을 맡기기가 망설여졌다. 알렉세이1세와 가스팔의 악연을 생각하면 기욤에게 이런 중대한 일을 맡기는 게 좋을지 확신이 없었다. 물론 기욤은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지만.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저도 제 몫을 하고 싶습니다.”


기욤은 열성을 다해 말했다.


“참전할 연족 젊은이는 아버지보다 제가 더 많이 압니다.”


‘기욤을 믿어도 좋을까?’


전생만이 아니라 현생에서도 기욤은 좋은 인연은 아니었다. 처음에 아슬라프를 반대하고 연족 분리독립을 주장했던 자였다.


하지만, 기욤도 생각이 변했고, 아슬라프가 그의 목숨을 구해주기까지 했으니, 이제는 그를 믿어도 좋았다. 그 점에는 의심이 없었다.


다만,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악연이 어떻게 불길하게 작용할지 모른다는 점이 아슬라프를 망설이게 했다.


“저를 못 믿으시겠습니까?”


대답하지 않는 아슬라프를 보고 기욤이 다소 힘 빠지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연족이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달라졌습니다. 연족을 위한 최선의 길이 아슬라프님을 따르고 에셀부르를 지키는 거라고 믿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아니야. 자네를 믿네.”


아슬라프는 고개를 저었다. 전생에 연연하지 않고 전생의 악연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근거없이 기욤을 의심하는 것은 과거에 끌려다니는 일이었다.


“가서 연족 용병을 모집해오게.”


아슬라프는 요빅에게 보내려고 써놓은 편지를 찢어버리고 기욤에게 신임장을 써주었다.


“목숨을 걸고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기욤은 비밀통로를 통해서 성을 빠져나갔다.


“기욤에게 용병 모집을 맡겼어?”


은쿤이 의아한 표정으로 아슬라프를 보았다.


“연족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자라며?”


“이젠 생각이 바뀌었어.”


“그래? 진짜? 믿을 수 있어?”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 바뀔 수 있잖아.”


“그야 그렇지. 하지만, 생각이 바뀌는 건 쉬운 일은 아니야.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기욤한테 맡겼냐.”


은쿤은 턱을 쓸며 눈을 가늘게 뜨고 기욤이 사라진 곳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아슬라프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 했다.


“뭐 너도 처음엔 나를 마음에 안 들어했잖아.”


아슬라프의 말에 은쿤이 쑥스러운 듯이 껄껄 웃으며 솥뚜껑같은 두꺼운 손으로 그의 어깨를 쳤다.


“하긴 그렇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슬라프는 입이 바짝바짝 마를 정도로 긴장하며 매일같이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열흘은 더 걸리겠지? 보름? 왕복 시간에 모집하는 시간도 있어야 하니까. 아무리 말을 빨리 달려도 그 정도는 잡아야지.’


느긋하게 마음먹으려고 해도 자꾸만 성벽에 올라가서 동쪽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둠킨 자작은 매일같이 성을 공격했다.

아슬라프의 군대는 성벽을 올라오는 적을 베고 화살을 쏘아 해자를 건너는 다리를 설치하는 공병을 공격하며 시간을 벌었다.


‘기병 오백 명만 더 있으면 저것들은 금방 쓸어버리는데.’


아슬라프는 적의 숫자를 헤아리며 한숨을 쉬었다.


‘기욤이 혹시 딴마음을 먹는다면?’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슬라프는 문득문득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기욤이 연족 기병을 데려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정도만 해도 다행이다. 어쩌면 붉은 뱀 부족과 연합해서 수비병력이 줄어든 베덴 성과 아주르 성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할 때면 아슬라프는 고개를 저었다.


‘전생은 전생이고. 현생의 관계는 내가 바꿨잖아.’


쓸데없는 불안감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전생과 현생의 인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신만이 아는 일이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한 아슬라프 자신의 행동과 판단을 믿을 뿐이었다.


여느 날처럼 아슬라프가 전투가 끝나고 부상자를 살핀 후에, 성벽 위에 올라가서 지는 노을을 보았다. 붉고 예쁜 노을이 지는 서쪽이 아니라 어두운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때, 누군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아슬라프님.”


연족 여인 유리였다.


“저 때문에 전쟁을 하게 되어서 죄송해요.”


“네가 미안할 일이 아니야.”


부드러운 아슬라프의 말에 그녀는 수줍은 듯이 말했다.


“기욤 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고맙습니다.”


그녀는 아슬라프가 기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는 듯이 밝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기욤 님은 꼭 열흘 안에 돌아오실 거예요.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고 가셨어요.”


그녀의 말을 들으니 기욤이 연족 용병을 모집해오는 임무를 성실하게 잘 수행할지 의심하던 마음이 가시며 다소 편안해졌다.


“너한테 그렇게 말했어?”


“네.”


그녀는 기욤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 듯이 맑은 눈을 깜박였다.

기욤이 전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평범한 여인에게까지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에게 그렇게 말한 걸 보면, 기욤이 최선을 다해 용병을 모집해서 돌아올 거라는 걸 믿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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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집시 황제 피졸트(2) 23.03.11 923 2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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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편가르기 23.03.09 938 24 13쪽
73 불스타운 공방(2) 23.03.08 950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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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기욤의 전생(2) 23.02.27 1,012 22 12쪽
» 기욤의 전생 23.02.26 1,041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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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둠킨 자작의 침공 23.02.24 1,066 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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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자연교와 인과교 23.02.22 1,117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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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포르디스의 반란(2) 23.02.17 1,131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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