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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렘팩토리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한 블랙요원이 딸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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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촌지
작품등록일 :
2024.09.23 10:27
최근연재일 :
2024.09.2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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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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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화 –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DUMMY

4화 –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그래서 짱구분식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선배님.”


상구의 ‘헤드 헌팅’이 있고 잠시 뒤.

역모죄라도 지은 표정으로, 진웅이 손을 덜덜 떨며 상사에게 보고를 올렸다.

-

- 그러니까, 진웅이 네가 짱구분식에서 일을 한다고? 상구 그 놈 아래에서 떡볶이를 볶는다, 이런 소리냐 지금?

“예, 예예. 일단은 그렇게 됐는데 말이죠.”


솔직히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위험 인물 감시하라고 보내놓은 신삥 요원이 갑자기 그 놈과 일을 한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심지어 국정원 실장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고는 퇴사한 전적이 있던 상구 앞에서, 그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야말로 진퇴양난. 앞에는 늑대가, 뒤에는 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내는 꼴이 아닌가.


‘분명히 난리도 아주 쌩 난리가 날텐데. 경질? 징계? 혹시 봉고차 타서 끌려가나? 흐으윽, 엄마 미안해요······’


진웅은 진심으로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말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으니.


- 정체를 들킨 거냐?

“아, 아니요. 안 들켰습니다. 예.”

- 하긴, 그건 그렇지. 들켰으면 상구 성격에 네가 살아서 나한테 전화를 걸 수가 없었을 테니까. 그럼 아까 급하게 전화 끊은 건 뭐였고?

“그건 이제······”

- 됐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 아무튼, 그러니까 정체 안 들켰고. 특이사항 없고. 짱구분식 내부자로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이거네?

“내부자, 잠입······? 어, 예! 예 맞습니다!”

- 이야, 우리 진웅이 그냥 얼라인줄만 알았더니 완전 물건이었네, 이거. 적과의 동침! 크으, 이것만큼 의심을 없애고 잘 녹아들 수 있는 법이 없잖냐.


당연히 길길이 날뛰며 자신을 배신자로 오해하고 화를 낼 줄로만 알았는데.

오히려 휴대폰 너머의 상사에게서는 뜻밖의 극찬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 상구 그 놈이 눈치가 되게 좋을텐데, 용케 잘 속아넘겼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실력 좋은 다른 요원들 보내는 것보다, 오히려 진웅이 너처럼 민간인 티 팍팍 나는 신입 보내는게 훨씬 낫다니까? 이거 봐봐. 벌써 대어를 하나 낚아왔잖아, 으하하!

“아······ 예. 감사합니다.”


낚인 대어는 아무래도 상구가 아니라 당신들인 것 같긴 했다만.

아무래도 잘 넘어가다 못해 일이 아주 야물딱지게 풀려버린 것 같았다.


- 아무튼 그럼 앞으로 열심히 해 보고.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말고 전부 보고하는 것 잊지 말고. 우리 진웅 요원, 내가 기대가 아주 많아요. 알겠지?

- “예,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이번 건수만 잘 해내면 내가 4급, 아니. 3급 이상으로 자리 하나 봐줄게. 무조건 성공시켜! 잘만 하면 네 백이랑 줄은 내가 댈 테니까!


뚜우- 뚜우- 뚜우---


끝까지 칭찬만 들으며 끊어져버린 전화.

진웅은 얼떨떨한 마음에 진즉 끊어진 전화기를 붙잡고 잠시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

물론 상구 입장에서는 그런 후배가 그저 귀여울 뿐이었으니.


“어때, 내가 잘될 거라고 했지?”

“아니 이게요, 선배님. 딱 봐도 수상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설적인 블랙요원 이상구랑 같이 일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근데 이걸 왜 그냥······ 뭐 의심도 안했잖아요, 지금.”

“네가 방금 말한 게 이유야.”

“예?”

“난 회사에 있을 때, 지금처럼 감시나 프락치를 발견하면 절대로 그냥 두는 법이 없었다.”

“······예?”

“윗쪽에서는 그런 내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네가 멀쩡히 살아서 이런 보고를 올렸으니, 당연히 믿는거지. 뭐, 네가 바다 한 가운데에서 실종되거나. 구강 구조가 바뀌어서 말을 못 하게 되었다거나 하지도 않았고.”

“······”

“이해했지?”

“예, 이해했습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쫄기는.”

“히이이익!”


상구가 진웅의 등을 툭 치자, 녀석이 갓 수조에서 꺼낸 광어마냥 펄쩍 뛰어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놈이 요원으로 넘어온건지는 모르겠다만, 오히려 행운이 아니겠는가.

간단한 이치였다. 윈윈이라고 해도 좋았다.

상구는 국정원의 프락치를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 다룰 수 있었고, 국정원 입장에서도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 생각할 이유가 생긴 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선배님은 지금······ 전화 한 통으로 대한민국 국정원을 속여넘기다 못해 이용하고 계신거네요?”

“그렇게 되려나.”


물론 상구의 생각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긴 했다.


‘국정원 입장에서도, 적당히 일 하는 척만 하면 될테니까. 골칫덩이 하나 처리했다- 생각하면 그쪽도 얻어가는게 있을 테고. 결국에는 윈 윈이라는 건가.’


사실은 지금 상구의 상황 자체가 너무 심각한 이레귤러였고, 흔히 말하는 높으신 분들의 머릿속을 훤히 꿰뚫고 있던 덕이긴 했다만.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넌 괜찮아?”

“저는 왜요?”

“너도 지금 대한민국 국정원을 배신하고 적에게 설득당한 거 아니냐. 안 그래? 재수 없이 엮이면, 꽤나 큰 죄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 그건······”


이번만큼은 조금 진지하게 물었다.

지금 진웅이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어쩌면 앞으로 상구의 행동 또한 많이 달라질 수 있었으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진웅이 천천히, 그러나 처음으로 상구의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음?”


유명한 표어였다.

국정원이라는 단체의 이념 그 자체였으니까.

상구 또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던 문장이었고.

하지만 녀석은 왜 지금, 구태여 이 표어를 인용하는가.


“물론 저는 많이 부족하고, 경험도 없는 초짜입니다만. 제가 넘겨받은 선배님의 자료와,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볼 때. 선배님이 음지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러니 앞으로 선배님이 음지에 서게 되시는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함께 양지에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선배님도, 그걸 지키고 싶으셨던 거잖아요?”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소희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아까 점심에 과식을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금세 졸리다며 소파에 누운 채, 코까지 골고 낮잠을 자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지키고 싶은 거라.”


평생을 음지에서만 살았다.

양지를 지향했지만 그곳에 설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양지에서 일하며, 소희라는 소중한 딸아이의 멋진 아버지를 지향한다는 목표가 생겼으니까.


‘그냥 어리숙한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건 조금 높게 쳐줄 수 있겠는걸.’


상구가 씩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진웅 또한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틀렸다, 이 후배놈아.”

“예에? 아니, 왜요. 나름 멋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님이 아니라 앞으로는 사장님이라고 불러라. 무슨 소리인지 알지?”

“아······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국정원 역사상 최정예 요원과 이제 막 취업한 햇병아리의 합작.

동대문구의 자그마한 분식집에서, 세상 터무니없는 일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조금은 외람된 말일 수 있지만, 상구는 모아둔 돈이 꽤 많았다.

국정원에서 근무한 기간이 총 12년.

쉬는 날도 거의 없이 한국과 북한을 넘나들며 일을 했고, 거기서 나온 돈 대부분을 전부 저축해두었다.

블랙요원이 받는 기본급부터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는데.

거기에 파견수당, 작전수당, 생명수당에 포상금 등등을 더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동대문구에 정착하며 건물 하나를 통으로 샀다.

1층에는 짱구분식을 두었고, 2층은 전체를 집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러고 난 뒤에도 평생 먹고살기에 충분한 돈이 통장에 남아있었다.

국정원에서 일할 때에는 돈을 쓸 일도 없었고, 딱히 먹여 살릴 가족도 없었으니까.

물론 소희와 살게 된 지금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자아, 우리 공주님. 치카치카 다 했지?”

“네에. 잠옷도 다 입었어요.”

“이불 덮어줄게. 잘 자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아빠 부르고. 알겠지? 좋은 밤 보내.”

“아빠도 잘 주무세요.”


귀여운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잠옷을 입은 소희가 침대 위에서 잘 자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 상구 또한 자신의 침대에 누웠지만. 아무래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하아. 매일 이러면 안 되는데.’


결국 오늘도 조용히 밖으로 나와 맥주 한 캔을 깠다.

거실에 홀로 앉아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마시며 생각했다.


‘앞으로 소희 학교 입학 시키고······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당장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 있었다.

하루하루 목숨을 내놓은 채, 매일같이 생사에 갈림길에 서는 위험한 임무만을 12년 동안 수행했다.

정체가 발각된다면 바로 모진 고문과 총살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알았기에. 잠도 쉽게 들 수 없어 항상 배게 아래에 총을 숨겨두고 눈을 감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안전한 서울에서, 내 집에서, 딸아이와 함께 자그마한 분식집을 하며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불안한 것도. 죽을 걱정도 무엇도 없었다.

하지만 상구에게는 오히려 지금의 평화로운 일상이 신기루나 꿈처럼 느껴졌다.

PTSD라는 걸까. 북에서 보냈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잠에 들려 눈을 감을 때마다, 차마 표현하기도 싫은 것들이 유령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너무나도 생생히 느껴져서.

상구는 서울에 정착한 지금도 쉽사리 잠이 들 수 없었던 거다.


“그래도 소희라도 잘 자니까 됐다.”


하지만 괜찮았다.

내가 못 자는 건 이미 익숙한데 뭐.

소희가, 내 새끼가 고롱고롱 코 골면서 잘 자기만 하면 그걸로 된 것 아니겠는가.


“아빠아······ 안 주무세요?”

“소희야. 자다 깼어? 너무 시끄러웠나, 내가.”


그러나 오늘 밤, 잠을 쉽사리 이루지 못하는 건 비단 상구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잠에 든지 얼마나 됐다고. 소희가 안방에서 비적비적 걸어나왔으니까.


“아니 그런데 소희 너.”


처음에는 맥주 마시는 소리에 깼나 싶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두 눈이 빨갛게 부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마 울었니?”

“아빠도 혹시 악몽 꿨어요?”

“아······”


아이는 악몽을 꾸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도’ 꾸었냐고 물었다.

무섭고 두려운 채로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났음에도, 아빠를 바로 찾거나 보채지도 않고 혼자서 눈물부터 삭혔다. 그런 다음에 상구의 눈치를 잔뜩 보며 조용히 거실로 나왔던 거다.

상구는 소희가 꾼 악몽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응. 아빠도 악몽을 꿔버렸네. 소희랑 비슷한 거. 엄마 나오는 꿈.”

“아빠도 그랬구나아.”


자신도 같은 악몽을 꾸었다는 말에, 소희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같은 아픔을 공유한다는 그 한 마디가 아이에게는 위로가 되었던 것일까.

소희를 번쩍 안아들어 무릎 위에 올렸다. 진정을 시킬 생각이었는데, 소희는 오히려 상구의 어깨를 자그마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아빠도 이제 다 괜찮아요.”

“소희야······”

“아빠도 나 악몽 꾸면 이렇게 해주니까. 나도 아빠한테 해주고 싶었어요.”


어머니가 나오는 꿈.

이제는 세상에서 없어진 그리운 사람이 나오는 꿈을 상구도 꾸었을까봐, 아이는 스스로보다 먼저 아빠를 위로해주고 있었던 거다.

순간 소희의 물기 젖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아빠도 엄마 보고싶어요?”

“나는. 아니, 아빠는. 그러니까.”


쉽사리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저는 괜찮아요. 엄마는 엄청 보고싶지만, 그래도 아빠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아요.”

“······그렇구나.”

“네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소희가 그렇게 말해주었으니까.


“꺄아!”


수 많은 감정이 휘몰아쳐서, 상구는 소희를 부서질 듯이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기분이 많이 풀린 소희에게 다시금 물었다.


“잠도 다 깬 것 같은데. 우리 야식 먹을까? 라면 어때.”

“와아, 라면! 좋아요, 짱 좋아요!!”


지금은 새벽 1시 15분.

라면 먹기 제일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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