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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슈퍼 님의 서재입니다.

사기학개론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금곡슈퍼
작품등록일 :
2022.10.29 14:53
최근연재일 :
2022.12.04 18:35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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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2
추천수 :
850
글자수 :
183,014

작성
22.12.0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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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추천
8
글자
18쪽

폭탄 투하.

DUMMY

[마지막 회동인데 이렇게 끝내게 돼서 아쉽군요.]

[이렇게라도 서로 얼굴 보는 거로 만족합시다.]

[그건 그렇고 다들 준비는 잘 하셨는지?]

[전 그냥 국내에 남을까 합니다. 어차피 제 자금은 추적될 일도 없고 아직 손대야 할 사업장들이 여럿 있어서.]

[허허! 사람 일이란 건 모르는 건데 배짱도 좋소. 그나저나 자금이란 자금은 몽땅 여기다 때려 부었을 텐데 사업장 운영할 돈이 아직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모르는 소리. 다 빚으로 돌려막고 있소. 뭔 놈의 세금이 그리도 많이 나오는지···. 우리 같은 경영인들이 다 서민들 먹여 살리는 건데, 사업을 하면 할수록 나만 손해 본다는 느낌이 여실할 따름이지요.]

[다 우리 같은 선각자들이 짊어져야 할 짐 아니겠소. 무지몽매한 백성들에게 베푼다 생각하고 살아야지요. 그래서 전···.]


점점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흐르자, 천수연은 멤버들의 마이크를 전부 묵음으로 돌린 후 자신의 화면을 메인으로 띄웠다.


“자, 어르신들. 뒷수습이나 신세 한탄은 각자 알아서들 하시고,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이제 D-day가 하루밖에 안 남았어요. 내일 저희 쪽 선수가 투자자들 앞에 서면, 전 지부에 동시다발적으로 설명회 영상이 송출될 겁니다. 지부장 역할을 맡으신 분들은 각 지역 체육관 섭외 이상 없는지 다시 한번 체크해 주시고,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설명회장에 참석할 수 있도록 지역 투자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문자 한 번씩 돌려주세요.”


화면 속 모두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천수연은 다시 말을 이었다.


“명심하세요. 설명회가 끝나면 엄청난 자금이 몰려들 겁니다. 계좌를 열어두는 건, 단 일주일간입니다. 그 일주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다들 평소처럼 행동하시고 해외로 도피를 하든 잠적을 하든 뒷수습은 일주일 뒤에 하셔야 합니다. 누구 하나라도 튀는 행동을 하면 우린 다 죽습니다. 제 뒤에 누가 계신지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부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천수연의 마지막 말에 멤버들은 그 어느 때보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누나. 누나는 어떤 사람이야?”


30대 초반으로 접어든 진아 누나는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모는 여전했다. 오히려 화려하기만 했던 그때보다 성숙함까지 더해져 분위기가 한층 농염해졌다랄까?


“바쁜 사람 불러놓고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래?”


한참 동안 텅 빈 카페를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내 물음에 생뚱맞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종구 형이 뽑아온 카페라테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는 곧바로 세상 썩어들어가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우웩! 이거··· 무슨 라떼가 이렇게 텁텁해?”


저 멀리 카운터에 있던 종구 형이 괜스레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한다. 주문 올 곳도 없을 텐데 저러는 걸 보면 방금 진아 누나가 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난 적응 돼서 괜찮아. 아무튼, 누나는 어떤 사람이야?”

“아···! 진짜 분위기 적응 안 되게 왜 이러지 애가? 내 입으로 말해줘? 나쁜 년이라는 거? 그게 듣고 싶었던 거야?”

“사실 난, 누나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 항상 말만 그렇게 했지 직접 보여준 적은 없잖아.”

“우와! 갑자기 자존심 팍 상하네? 그 능구렁이 같은 영감들, 누가 다 끌고 왔다고 생각해? 넌 모르겠지만, 그 인간들이 언니 곁에 4년 동안 붙어 있었던 이유. 그게 다 이 몸이 물밑에서 작업을 친 덕분이라구!”


격하게 열변을 토해내던 누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사적으로 라떼를 들이켰다. 그리고는 또다시 썩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에잇···! 씨이··· 깜빡했네.”


카운터에 있던 종구형은 이제 주방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새로 주문한 것도 없는데 굳이 주방으로 자취를 감춘 걸 보면, 또 진아 누나의 반응을 들은 게 분명해 보인다.


“누나. 다 그 여자가 시켜서 한 짓이란 거 알아.”


냅킨으로 입술을 닦던 누나는 내 입에서 ‘그 여자’란 표현이 나오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긴, 지금껏 누나 앞에서 새엄마를 그렇게 불렀던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이른데···.


난 누나 쪽으로 핸드폰을 내민 후, 준비해 뒀던 영상을 틀었다. 그녀는 액정에 비친 영상을 보고 입술을 닦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듯했다.


“이 영상, 이미 광수 아저씨한테도 전해졌어. 누나도 알지? 오랫동안 그 여자 뒤를 캤던 형사라는 거. 내일 마지막 사업설명회가 시작되면, 전 지역 사업장에 경찰들이 들이닥칠 거야.”

“윤빈이 너···. 너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누나가 지금 무슨 걱정을 하는지 다 알아. 사업이 물거품 됐다는 것 보다, 그 여자가 누나 동생들을 어떻게 할까 봐 그게 두려운 거잖아.”


나는 폐가 마지막 서랍에서 구한 보육원 사진을 누나에게 건네줬다. 다이어리 후반부엔 진아 누나에 관한 이야기도 적혀있었었다.


화염으로 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됐을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엄마와 천수연은 보육시설로 넘겨졌다.

그곳에서 만난 진아 누나와 누나의 동생들.


“그 여자가 그동안 누나 동생들을 볼모로 협박했다는 거, 다 알아. 하지만 이제 걱정할 필요 없어. 내일 이 시간이 되면, 그 여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핸드폰을 들어 저장해뒀던 번호로 통화를 걸었다.


“아저씨. 들어오세요.”


통화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한 남자가 카페로 들어왔다.


오성 삼촌이었다.


누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떡하고 벌린 채, 나와 한때 그 여자의 경호원이었던 오성 삼촌을 번갈아 봤다.


나는 그런 누나를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제 걱정하지 말고 도망쳐요. 누나.”



***



무대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윤건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멀었습니까?”

[이제 마지막 계좌까지 끝내고 마침 통화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다 해서 총 1,280억 원. 휘우!]


수화기 너머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간지러움에 반사적으로 핸드폰에서 고개를 떨어트린 나는 노트북으로 다가가 계좌내역을 확인해 봤다.


윤건 아저씨가 만들어준 차명계좌 스무 개에게 각각 64억 원. 모두 합쳐 1,280억 원이 맞다.

이는 초기 투자금액이다. 천수연과 그 일당 27명이 끌어다 모은 자금.


이제 각 지부 계좌에 남은 건, 순수 일반 투자자들의 돈이다. 남았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초기 투자금 1,280억 원을 빼고도 여전히 2조 원에 가까운 돈이다.


“좋습니다. 방금 확인했습니다. 이제 제가 넘겨드렸던 계좌 리스트, 본청 지능범죄수사팀 장광수 형사에게 넘겨드리세요.”


그간 수사망을 피해가기 위해 잘게 쪼개졌던 법인과 그에 해당하는 계좌 리스트. 그리고 천수연 및 그 일당들이 만들어 놓은 페이퍼 컴퍼니 및 국외로 빼돌린 자금 리스트. 그 모든 자료가 경찰로 넘어가는 순간, 전국 각 지부에 퍼졌던 투자 계좌는 일제히 동결될 것이다.


8만 7천 명에 달하는 투자자 리스트 또한 일주일 전에 넘겼으니, 피해자들에겐 투자했던 원금이 되돌아갈 것이고···.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아마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어쩔 수 없다. 원금이라도 챙겼으니 그들에겐 그게 어딘가?


[자, 이제 수수료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

“이야기 끝난 거 아닌가요? 0.5%로?”

[윤빈 씨는 모르겠지만, 저희 업계 기본 수수료가 10%입니다. 0.5%로 일 처리 해준 거 소문나면, 저희 어디 가서 얼굴도 못 내밀고 다녀요.]

“0.5%만 해도 6억 4천입니다. 솔직히 첫 물꼬는 현민이가 다 뚫어 놓은 거 아닌가요? 그쪽은 다 차려진 밥상에 밑에 직원들 시켜서 계좌이체만 했을 뿐이고요. 이 정도 금액이면 인건비는 충분히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1,280억 원에서 10%가 빠지든, 0.5%가 빠지든 어차피 내겐 큰돈이다.

하지만 새엄마가 사라지고 나면, 채령 누나와 현민이는 물론 아직 중학생인 수혁이 수민이가 당장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 그간 돌아가는 꼴을 보면, 종구 형도 카페로 자립하기엔 일찌감치 그른 것 같고···.


이들을 내가 굳이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길바닥이나 다른 시설로 옮겨지게 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내 책임이 맞다.


[뭐, 예상은 했지만, 역시 얄짤없네요. 그럼 1%는 안 될까요?]

“안됩니다.”

[알겠습니다. 대신 어디 가서 이 금액으로 해줬단 소린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럼 앞으로도 좋은 관계 기대하겠습니다. 이상!]


전화가 끊겼다.

저 멀리, 한창 무대에서 바람을 잡고 있던 사회자의 멘트를 들어보니, 이제 곧 내가 나갈 차례가 당도한듯하다.


나는 살며시 대기실 문틈으로 실내 체육관에 모인 관중들을 살펴봤다.

추가로 배치한 간이 의자까지 꽉꽉 들어찬 걸 보면, 12,000명은 족히 넘는 인원이다.


지금 이 시각, 다른 지부에서도 이곳 영상이 송출되고 있겠지.


나는 관중석에서 시선을 틀어 사회자 뒤편에 마련된 대형 LED 스크린을 바라봤다.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저 큰 화면에 고급 리조트 및 요트 임대사업과 같은 장밋빛 미래가 펼쳐졌을 것이다. 그 화면에 동화된 투자자들은 주어진 일주일 동안 모든 자금을 끌어들였을 것이고.


“윤빈 씨! 지금 나가시면 됩니다.”


마침 큐사인이 떨어졌다.

단상에 오르자 역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와아!!!”


저 멀리 VIP석에 앉은 천수연과 그 뒤편 뒷짐을 지고 선 오성이 삼촌이 보인다.


함성이 어느 정도 잦아든 것을 확인한 나는 들고 있던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여러분. 한때 투자의 귀재라고 불렸던 신윤빈입니다.”

“와아!!!”


한때라는 말을 붙였음에도 여전히 여기저기서 박수가 쏟아져 나온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 보시게 될 영상은 여러분들이 꿈꾸셨던 장밋빛 미래의 실체입니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 역시 내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내가 사전에 건네준 영상을 대형스크린에 띄웠다.


“뭐야?”

“뭐야 저게?”


스크린에는 천수연과 그 멤버들이 화상회의로 주고받았던 영상이 고스란히 펼쳐졌다.


[이거 조짐이 안 좋은데, 그냥 이쯤해서 빠지는 게 낫지 않겠소?]

[······현재 회원 수 8만7천 명. 그들에게 수익금을 지급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4개월이에요. 지금 중단하면 초기 투자금에 절반도 못 건져요. 반면, 4개월만 버티면 수익금의 자릿수가 달라져요.······]

······

······

[다들 명심하세요. 다가오는 2월 8일. 우리가 철수하는 날은 오직 그때뿐이에요. 그때까지 자금이란 자금은 전부 들이부으세요. 투자자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해주는 것. 그게 여러분들이 남은 4개월 동안 할 일이에요.]

[좋습니다.]

[그때쯤이면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곡소리 좀 나겠군요. 허허!]

[으하하하!]


순간, 실내 체육관 전체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조용해졌다.

나는 VIP석 오성 삼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엇보다 신경 썼던 부분.

그건 바로 천수연의 신변 보호였다.

내 계획이 실현되기 전까진 그녀는 경찰에 붙잡혀서도, 투자자들에게 몰매를 맞아도 안 되니까.


내 신호를 받아들였는지, 오성 삼촌이 한껏 당황한듯한 천수연에게 다가가 살며시 귓속말을 속삭인다. 그를 듣자마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 날 노려볼 틈도 없이 곧장 VIP석을 빠져나가는 걸 보니, 도주까지는 문제없어 보인다.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얼어붙은 관중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4년 동안 여러분들을 속여왔던 이들의 실체가. 아직도 여전히 못 믿으시는 눈친데, 그렇다면 증거 영상을 하나 더 보여드리죠.”


스크린에는 리조트 담당자의 인터뷰에 이어 특정 서류를 클로즈업한 영상이 펼쳐졌다.


“마지막 투자처로 소개했던 리조트 담당자입니다. 서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계열사 인수합병은커녕 담당자는 이쪽 법인 이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요트 임대사업으로 거론됐던 법인은 존재조차 없는 유령회사였습니다.”


드디어 여기저기서 비명과 욕설이 튀어나왔다. 개중 몇몇은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어 내게로 달려오는 이도 있었다.

거리가 조금 있긴 했지만, 내 안위를 위해서라도 화살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만약 여러분들이 오늘 사업설명회를 끝으로, 그간 벌어들였던 수익금과 다른 종잣돈까지 끌어모아 이곳에 투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나는 손가락 끝을 VIP석으로 향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저기 보이시는 저분들에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순간, 모든 인원이 욕설을 내뿜으며 VIP석으로 달려들었다. 한때 피라미드 정점에 속했던 자칭 그 선각자들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앞다퉈 VIP석을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쳤지만, 문을 박차고 밀려든 투자자들에게 가로막혀 멱살이 잡히거나 바닥에 깔려 머리를 쥐어 뜯겨야만 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든 게이트가 일제히 열리며 경찰들이 체육관 안으로 물밀 듯 들이닥쳤다.


“서울청 지능범죄수사팀 장광수 경위입니다! 현 시간부로 이곳을 모두 폐쇄합니다.”



***



급하게 자리를 빠져나온 천수연은 운전을 현오성에 맡긴 후 곧장 핸드폰으로 계좌부터 살폈다.


[신고 접수된 계좌로 지급이 정지됐습니다.]

[신고 접수된 계좌로 지급이 정지됐습니다.]

······

······


법인 계좌뿐만이 아니었다. 개인 계좌, 국외 법인 계좌, 심지어 자금 세탁용으로 만들어 놓았던 차명계좌까지 모두 동결된 상태였다.


“씨바‒ 알!!!!”


순간, 믿었던 놈에게 당했다는 분노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지금 당장 급한 건 돈이었다. 밀항은 물론, 해외로 무사히 빠져나갔다 치더라도 당장 숨어지낼 자금이 급했으니까.

천수연은 곧장 미술품 브로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사장. 그때 처분하고 남은 미술품 20여 점 있지? 그거 지금 바로 처분 좀 해 줘. 수수료는 박 사장이 알아서 떼고 남는 금액만 5만 원권 전액 현금화해서 직접 배달 좀 해줘. 주소는 지금 바로 문자로 보낼게”


분기별로 꾸준히 팔아치운 덕분에 2층 창고에 남은 미술품은 이제 고작 20여 점. 처분하는 족족 모두 국외 계좌로 돌려놨는데, 계좌가 동결되는 바람에 그동안 헛짓한 꼴이 돼버렸다. 하지만 남은 20여 점만 팔아치워도 대략 15억쯤. 그 정도면 당분간 도피자금으로 충분하다.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박 사장의 목소리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말씀이냐니? 박 사장이야말로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이사장님께서 어제 남은 거 다 처분하라고 하셔서, 제가 직접 업자들까지 데리고 덱까지 방문했잖습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그랬는데!”

[뭐, 물론 이사장님을 직접 뵌 건 아니지만, 아드님이 그렇게 전달받았다고 하니까, 전 그런가 보다 했죠. 게다가 처분한 금액도 원래 거래했던 계좌 그대로 보내달라고 하니, 당연히 이사장님이 시키신 일인지 알았죠.]


“야 이···. 멍청한 새끼야!!!”


천수연은 핸드폰에 대고 할 수 있는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렇게 태안군 본가로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봤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결국 10원짜리 한 장 건질 수가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이사장님.”


현오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수연은 곧장 대문을 박차고 구두를 신은 그대로 툇마루에 올라섰다.


도피자금은 물 건너갔지만, 일단 밀항은 해야 한다. 숨겨둔 달러 뭉치가 몇 장 있으니,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급하게 방문을 열고 첫 번째 서랍장을 연 순간, 천수연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두 번째 세 번째 서랍장도 마찬가지···. 모든 서랍이 텅텅 비어있었다.


“하···! 하하. 하하하!”


지금 이 모든 상황이 꿈인 것 같다.

윤빈이에게 감겼다는 사실은 이미 차 속에서 깨달았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녀석이 이곳을 어떻게 알았을까?”


눈앞이 캄캄해지려는 순간, 등 뒤에 현오성이 다가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천수연 씨.”


갑자기 둔탁한 무언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그렇게 천수연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천수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아···.”


창호지 틈으로 달빛이 은은하게 깔려 시야가 어두웠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경찰서가 아닌 자신이 기절하기 전 그 장소 그대로였으니까.


하지만 온몸이 묶였는지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오른쪽 팔만이 매듭에서 자유로웠는데, 팔을 더듬어 보니 바닥에 웬 나무로 된 둥근 밥상이 놓여있었다.


그때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온 누군가.


“이제 일어나셨군요.”


달빛을 등지고 선 이는 신윤빈이었다.


“너 이 개새끼!”


한차례 욕설을 퍼부으려던 순간 목 언저리에서 뭔가 싸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깨어났을 때부터 자신의 뒤에 현오성이 서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가 지금 자신의 목 언저리에 의료용 메스를 겨누고 있다.


“쉬!”


현오성이 검지 하나를 세워 입언저리에 가져다 대는 동안, 윤빈이 다가왔다.


그렇게 밥상을 마주 보고 앉은 둘.


녀석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밥상 위에 펼쳤다.

일반 카드보단 조금 큰 사이즈. 그런 카드 78장이 밥상 위에 호를 그리듯 곱게 펼쳐졌다.


그리고 달빛을 등진 그가 자신을 향해 차갑게 입을 열었다.


“골라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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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동해보복의 원칙. +1 22.12.04 99 9 12쪽
» 폭탄 투하. 22.12.03 102 8 18쪽
30 마녀와 악마. 22.12.02 113 7 13쪽
29 위험한 승부수. 22.12.01 112 8 11쪽
28 위기를 기회로. 22.11.30 114 9 13쪽
27 계획에 없던 부분. 22.11.29 112 9 12쪽
26 폭탄은 돌고 돈다. 22.11.28 126 10 11쪽
25 정점 위의 정점. +4 22.11.26 153 13 12쪽
24 복제된 카드. +3 22.11.25 152 13 13쪽
23 완벽한 계획. +2 22.11.24 159 11 15쪽
22 황 교수. +6 22.11.23 177 20 14쪽
21 시간은 벚꽃잎처럼. +2 22.11.22 169 14 12쪽
20 사기의 꽃. +5 22.11.21 168 19 13쪽
19 피아노 거리(2). +1 22.11.19 190 23 14쪽
18 피아노 거리(1). 22.11.18 191 21 11쪽
17 밝혀진 의문. 22.11.17 193 21 13쪽
16 익숙한 목소리. +3 22.11.16 204 24 12쪽
15 사기학 1강. +1 22.11.15 209 22 12쪽
14 해소하지 못한 충동. +1 22.11.14 198 19 12쪽
13 다큐는 다큐로. +1 22.11.12 213 14 11쪽
12 다섯 명의 아이들. 22.11.11 227 11 12쪽
11 게임. 22.11.10 241 17 14쪽
10 새 식구. 22.11.09 253 17 12쪽
9 그녀. +1 22.11.08 275 20 11쪽
8 함정. 22.11.07 266 22 13쪽
7 흔적. 22.11.06 272 27 12쪽
6 만복 아재 +2 22.11.05 294 23 12쪽
5 수상한 손님(2) +2 22.11.04 302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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