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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나스의 서재입니다.

EX급 은여우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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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나스
작품등록일 :
2019.06.13 10:48
최근연재일 :
2024.04.01 23:1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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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7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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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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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6화

DUMMY

당사자의 각오도 없이 시작된 첫 성묘를 마친 은찬은 곧장 이동했다. 마치 낯설고 부담스런 묘에서 도망치듯 길드 본사로 돌아온 은찬이 변명하는 것처럼 혼잣말을 내뱉었다.


“한창 바쁠 때 빠져버렸는데, 나린은 잘 하고 있으려나? 어차피 그 부분은 다 나린이 맡기로 한 일이기는 하지만······.”

“캬아아아웅.”


정수리 위에서 토하는 매구의 긴 하품소리가 책망처럼 들린다. 은찬은 싱숭생숭한 한숨을 뱉으며 입을 닫고 바로 길드에 진입하려했다.


“응?”


근처 빌라 옥상에서 본사 건물에 쌍안경을 힐끔대는 수상한 이들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면 말이다.


“···신경 쓰이네.”


평소라면 저게 단순히 호기심어린 구경꾼이든, 타 길드에서 보내온 염탐꾼이든 상관하지 않았으리라. 그런 방면으로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테러리스트에게 선전포고를 날린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 은찬은 본사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의 눈을 피해 재빠르게 빌라로 진입했다.


“저희 길드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흐엑!”


그리고 뒤를 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2분 남짓. 유령처럼 나타나서 어깨를 짚는 손길에 망원경을 쥐고 있던 용의자들이 펄쩍 뛰었다.


“누, 누구세요?”

“그건 제가 할 말 아닙니까······.”


지극히 선량한 반응에 은찬이 짜게 식어버린 얼굴로 용의자들을 살폈다. 대략 중년으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는 은찬의 큼지막한 방패에 겁먹은 듯 연신 힐끔거리며 움찔댔다.


‘테러범은 아닌가. 날 알아보는 것 같지도 않고.’


만약 연기라면 속아주는 쪽이 예의일 수준의 솜씨다. 은찬은 너무 예민했나, 하고 내심 읊조리며 조금은 누그러진 투로 말했다.


“단순한 구경이라면 그만두시기를 권합니다. 길드 건물은 엄연히 기업사유지예요. 수상쩍게 엿보는 것만으로 산업스파이 혐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기실 실제로 법적처벌이 되는지는 은찬도 모른다. 그냥 되는대로 늘어놓은 허세였으니까. 적당한 법적지식을 지녔다면 코웃음을 쳤을 수작이었지만······.


“아, 아닙니다! 이거 허락 받고 하는 거예요!”


대체로 문외한이 많은 일반인에게는 꽤나 잘 먹혀드는 수였다. 은찬은 이 협박법을 가르쳐준 부길드장 교육담당 길드원을 떠올리며 잠시 감탄하곤 이내 대화에 집중했다.


“허락이요?”

“그래요. 여기 출입증도 있다고요.”


은찬은 여자 쪽이 허겁지겁 내미는 출입증을 살폈다. 확실히 본사의 출입증이 맞았다. 그것도 일반방문자용이 아닌, 주요시설이나 훈련장 따위의 위험시설까지도 방문이 가능한 VIP용 출입증이었다.


“···진짜군요. 그런데 왜 들어가시지 않고?”

“크흠.”

“으, 으흠. 그게······.”


두 사람이 동시에 헛기침하며 은찬을 힐끔거렸다. 무슨 사연인지 밝히길 많이 부담스러워하는 남녀를 안심시키듯 은찬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저는 류하 길드의 부길드장, 이은찬입니다. 저희 길드와 관련된 일이라면 저한테 말한다고 문제될 소지는 없으니 안심하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앗. 이은찬이라고요?”

“당신이?”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남녀의 시선이 확 바뀌었다. 단순히 거물, 혹은 유명인을 만났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점수를 매기는 듯한 태도랄까.


“저기요?”


불쾌해야 마땅할 시선이나 기실 그리 불쾌하진 않다. 굳이 따지자면 뭔가 어색하고 부담스럽다는 느낌이다. 그건 분명히 은찬의 육감이 먼저 이후의 전개를 알아챈 탓이겠지.


“어, 어흠. 죄송합니다. 흠흠. 말로만 듣던 분을 뵀더니 그만. 여보. 당신도 이제 진정해.”

“네? 아, 네. 미안해요. 딸아이······가 늘 신세진다는 분이 어떤 분인가 싶어서 잠시 무례를.”

“딸······?”


황급히 그의 눈치를 보며 사과하는 부부였지만, 정작 은찬의 귀에 남은 건 사과가 아니었다. 눈을 둥그렇게 뜬 은찬이 황당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설마 두 분, 나린의 부모님이십니까?”


부부는 그 물음에 나린을 딸이라고 호칭하던 때처럼 미지근한 태도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어색할 수밖에 없는 만남을 가져버린 은찬이 우선 심호흡하며 제안했다.


“후우. 일단··· 이런데서 계속 얘기하긴 좀 그렇군요. 잠시 들어가시죠. 차라도 대접해드릴 테니.”

“아, 그게. 들어가는 건······.”


나름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한 말이지만, 부부는 껄끄러운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야 사실은 은찬의 실수에 가깝다. 애당초 출입증을 갖고도 밖에서 몰래 보고 있던 상황이 아닌가.

당연히 들어가자고 해봤자 냉큼 받아들일 턱이 없다. 외려 분위기를 풀어보자는 의도와는 달리 부담감만 잔뜩 준 셈.


“아, 앗.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그 결과는 뻔하다. 뒷걸음질 치던 부부는 결국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너무나 어색한 변명을 남긴 채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대충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용케 안 잡고 그냥 보내주셨네요.”


녹차를 홀짝이는 류하의 말에 은찬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본래 그의 성격대로면 잡았어야 정상이다. 부부의 결백은 부차적인 문제고, 궁금한 게 많았으니까.

그럼에도 순순히 보내준 건 지금은 그의 정수리에서 똬리를 틀고 잠든 매구가 방해한 탓이었다. 류하는 대충 알겠다는 듯 매구를 힐끗 보며 웃었다.


“잘하셨어요. 사정이 꼬여서 억지로 데려왔으면 골치 아파졌을 거거든요.”

“꼬여요?”

“네. 아주 거하게 꼬였죠······.”


류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회상했다.


“저러고 계시게 된지는 상당히 오래됐어요. 나린양의 신원을 파악하고 접촉한 후부터 계속··· 그랬으니까요. 두 사람은 딸과의 만남을 거부했어요. 그 이유는 단순하죠. 신뢰.”

“신뢰?”

“믿을 수가 없는 거죠. 지금의 나린양이 자신들의 딸이라는 것을······.”


은찬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로서는 상상치 못한 이유였으니까. 부모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소리란 말인가.


“예상하진 못했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그게 말이 됩니까?”


허나 류하는 오히려 나린의 부모를 옹호했다. 은찬이 답지 않게 살짝 흥분한 투로 따지자, 류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되지요. 은찬씨. 잘 기억해보세요. 나린양이 본래 어떤 상태였는지. 은찬씨가 던전에서 발견하기도 전, 실종되기 이전에 그녀는 어땠죠?”

“······.”


그것은 심리적인 맹점이었다. 은찬··· 혹은 나린을 아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이나린’은 현재의 나린을 의미한다. 실종되기 이전의 그녀는 누구도 그리 관심을 가질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사람의 형상이라 믿기 힘든 비참한 육체. 그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전신마비. 얼굴을 뒤덮은 중증의 화상. 그를 두고서 지금의 나린양을 연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반대로··· 현재의 나린양을 보면서 그 형상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요?”


있을 리가 없다. 두 존재를 동일인물이라 할 수 있을 존재는 기껏해야 각성자를 이끄는 시스템 정도이리라. 혹은 천상의 신이거나.


“지문이나 유전자검식도 할 수 없어요. 지금 저 육체는 진짜 몸이 아니라 오라구현체니까. 샤펠 길드가 가진 자료도 단지 가설의 하나에요. 증거로 사용할 정도로 정립되진 못했죠.”

“그, 본인에게 물어보면······.”

“물론 해봤죠. 의미는 없었어요. 생각해보면 미리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애당초 은찬씨의 말을 잠깐 듣는 정도로 한국어를 익힌 나린양이잖아요? 그런 그녀가 왜 은찬씨와 만나던 순간까지 말을 몰랐는가, 생각해봤어야 했죠.”

“···어?”


은찬이 멍청한 소리를 흘렸다. 류하는 그의 모습에서 처음 사실을 알았을 때의 자신을 떠올리며 말했다.


“나린양의 장애는 전신마비나 신체결손만이 아니었어요. 외부로 표출하는 기관들의 장애가 극히 심각한 터라 스스로 알리지도, 타인이 의심하지도 못했지만······ 그녀는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오감마저 망가진 상태였던 거예요. 전부는 아니지만요.”


나린에게 없는 감각은 정확히 오감 중 3개. 시각, 후각, 청각. 그녀에겐 오로지 어둠만이 펼쳐졌고, 호흡은 항상 공허하였으며, 소리는 음운을 구분할 수 없는 진동에 불과하다.

마치 하늘에서 실수로 내린 재능을 봉인하기라도 한 것처럼 철저한 봉쇄. 그로 인해 나린은 과거에 자신을 보살핀 이들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른다.

부모는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식은 처음부터 부모를 알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제는 증명해서 상봉해도 문제죠.”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나린양이 너무 유명해졌으니까요.”


현재 나린의 명성은 가히 톱스타라 칭함에 부족함이 없다. 세계최강이라는 칭호에 인상적인 데뷔··· 더해서 조각상을 살린 듯 아름다운 미소녀이기까지 하니 과장 좀 보태서 TV 있는 국가면 다 아는 수준.

당연히 증거도 없는 사람들이 부모랍시고 튀어나온다면 사기꾼 취급을 면치 못하리라. 단순히 가족애로 극복해야할 시선 이상의 실질적인 피해도 당연히 발생하겠지.

제대로 꼬였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요, 길드장님.”

“네. 말씀하세요.”

“이렇게 중대한 사안을 저는 왜 이제 안 거죠?”


나름 부길드장이고, 나린의 보호잔데. 은찬의 어리둥절한 물음에 류하의 이마 위로 핏대가 올랐다. 명백히 분노가 엿보이는 모습으로 류하는 되려 웃었다.


“후후. 후후후후. 으후후후후. 그러게요. 왜 모르셨을까요? 은찬씨. 분명히 이거, 당시부터 새 정보 추가될 때마다 계속 보고서가 올라온 사안인데?”

“엑.”

“은찬씨······. 서류라는 건 말이에요.”


아마도 처음이지 않을까. 그녀가 은찬에게 이리 대하는 것은. 상황에 어울리진 않지만 뭔가 친밀감마저 느끼는 은찬이 방심한 사이, 분노가 폭발했다.


“싸인하고 치우라고 있는 게 아니라 읽고 검토하라고 있는 거라고욧! 다른 건 열심히 잘 배웠으면서 서류작업은 왜 항상 이런 꼴인가요!”

“캥?! 캐애애앵!”

“다, 다음부턴 조심하겠습니다!”


책상을 탕탕 내려치며 쏟아내는 류하의 고함에 곤히 자던 매구까지 벌떡 일어났다. 은찬은 곧장 분노의 설교를 추가하려는 류하에게 황급히 사과의 말만 던져둔 채 본능에 몸을 맡겨 도망쳤다.



물론 뭘 했는지는 몰라도 쌓인 업무가 어마어마하던 류하는 은찬을 쫓아오지 못했다. 어차피 못 쫓아올 걸 알면서도 뒤를 힐끔거리던 은찬의 귀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라서 각성자의 최우선은 이능을 일찍 다루기 시작했다는 이점을 살려서 연마하는 거예요. 그를 위해 마나의 효율적인 운용법을 가르쳐드릴게요.”

“오. 진행중인가보구나.”


나린의 목소리였다. 은찬이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미리 재혁 파티를 모조리 불러뒀던지라 벌써 프로젝트가 시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슬쩍 강의실을 엿보니 재혁 파티에다 몇몇 길드원들까지 보인다. 그야 헌터 최강자가 직접 해주는 강의니 당연히 관계가 없더라도 들어보고 싶겠지.

그리고 그건 당연히 은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애초에 그의 실력은 정기 수집으로 인해 생겨난 주입식. 이능의 이해도는 무력이 비슷한 나린은커녕 감히 류하에게도 비비기 어려운 수준이니까.

모두가 두근거리는 얼굴로 열리는 나린의 입을 주시했다.


“마나는 새에요. 날갯짓은 적색도, 청색도 괜찮아요. 자색은 위험해요. 분홍색이 되면 안 돼요. 모을 땐 비구름이 춤추듯이. 내보낼 땐 꺼진 불꽃이 꺼진 순간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정제할 땐 베개를 채우듯이.”

“······.”

“······.”

‘이게 뭔 개소리여?’


그리고 소리없는 아우성만이 남았다.


작가의말

저번보다 조금은 줄였습니다. 헤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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