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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나스의 서재입니다.

EX급 은여우의 아빠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엘라나스
작품등록일 :
2019.06.13 10:48
최근연재일 :
2024.04.01 23:19
연재수 :
1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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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70,957

작성
19.06.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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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prologue

DUMMY

은찬은 동태마냥 빛깔을 잃어버린 눈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마치 세상의 빛이란 빛은 모두 사라진 듯한 공허한 감각의 사이에서 그의 뇌는 망가진 라디오처럼 끊임없이 같은 목소리를 되풀이했다.

[쿨럭쿨럭. 은찬아. 은하야!]

[아파. 아파아아······.]

갑작스런 교통사고에 피를 토하면서도 자식들의 상태부터 걱정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호러영화에 나오는 유령같이 피를 줄줄 흘리면서 괴로워하던 누나의 목소리가.

[아빠! 누나! 정신 차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소중한 가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끝없이, 끝없이 맴돈다.

자신에게 저 유명한 각성자들처럼 특별한 능력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마치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위기의 순간에 ‘각성의 메시지’를 받아서 그 힘으로 가족들을 구할 수 있었다면.

하지만 운명은 은찬이 꿈꾸던 것처럼 상냥하지 않았다. 그는 어떠한 힘도 얻지 못했고,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건 은찬뿐이었다.

본래라면 그가 삶의 의욕을 되찾는 건, 그 정신의 상처를 스스로 극복해낸 후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운명은, 아니··· 저 운명을 넘어선 곳에서 다시 한 번 그를 향해 장난을 쳐왔다.

콰앙- 콰과과과과광!

시체처럼 앉아있던 은찬에게로 강렬한 폭음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가 채 자신을 덮친 폭음의 존재를 인지하기도 전에 순백의 섬광이 눈앞을 뒤덮었다.

“나도 죽는 건가.”

새하얗게 물든 시야의 끝에서 천둥이 달려옴을 들으며 문득 정신을 차린 은찬이 읊조렸다. 이미 꺼져버린 불꽃처럼 천둥에 파묻힌 목소리와 함께 은찬의 의식이 심연으로 잠들었다.


* * *


“으··· 음······.”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의식을 잃었던 은찬이 신음하며 눈을 떴다. 그러자 캄캄하던 그의 시야로 마치 지옥도와 같은 풍경이 들어왔다.

은찬의 주변부터 시작해서 눈에 보이는 범위의 모든 것들이 불타고 있었다. 산도, 나무도, 대지도, 그가 앉아있던 집의 잔해도······.

몇몇 은찬이 있는 곳처럼 불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곳들은 매우 좁고,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길도 나지 않아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다.

빠져나갈 길 없이 피어오르는 연기에 서서히 질식하며 고통 받는 감옥. 그런 감상을 품으며 은찬이 공허한 미소를 짓는 순간이었다.

[dkwlrdms··· dkwlrdms wnrdmf tn djqtsmsep···!]

하늘의 저편에서 아름다운, 그러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은찬의 눈앞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추락했다.

콰아아앙-!

마치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굉음이 울리면서 흙먼지가 불길을 뒤덮었다. 은찬은 흙먼지와 함께 화염의 여파가 섞여 뜨겁게 몰아치는 후폭풍을 견뎌내며 눈앞에 추락한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코끼리조차 새끼동물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여우였다. 은빛의 털을 지닌 육중한 거체는 본래의 빛깔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한 상처로 뒤덮였고, 일반적인 여우와 달리 7개나 돋아있는 꼬리 중 3개가 중간부터 잘려나가 있었다.

[dks eho······.]

아까의 괴성은 이 여우의 것이었던가. 여우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읊조리며 부러진 앞발을 버둥댔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보려는 발악이었지만, 그 버둥거림은 허망하게 허공만을 갈랐다.

[dkrkakszmadms······. rmdldml dkrkakszmadms tkffudigksmsep······.]

상처 입은 괴물의 발악. 일반적으로는 곧장 내빼거나 확인사살을 해야 할 모습이건만. 은찬은 이해하지 못할 말을 쏟아내며 허공에 발을 휘적대는 여우를 문득 애처롭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으리라. 부러져서 덜렁대더라도 인간의 연약한 몸쯤은 가볍게 부숴버릴 괴물의 앞발을 향해 몸을 일으켜 걸음을 내딛은 것은.

[dk?]

유독 크게 들린 걸음소리에 여우의 발버둥이 멎었다. 그리고 곳곳에 참혹히도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4개의 꼬리가 무언가를 탐색하듯 바짝 솟아올랐다.

[tkfdmlrk djqtdj······? wjrdl dksldi?]

꼬리를 통해 무언가를 알아냈음인가. 아까와는 달라진 어조로 읊조린 여우가 낮은 울림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었다. 사경을 헤매며 흐릿해진 푸른 눈망울이 은찬의 빛을 잃은 눈과 마주쳤다.

[dkdk. duqh. dlTdjTdjdy. wjrdl dksls tkfkadl.]

여우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거대한 이빨이 날카롭게 드러난다. 마치 위협하는 듯한 모양새. 하지만 은찬은 어째선지 그것이 자신을 위협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dlfmaeh ahfmsms qns······. rmdldml··· dkdlfmf tkffuwntpdy······.]

여우의 목소리가 점점 약해진다. 사경을 헤매던 몸이 한계를 맞았는지 점점 생기를 잃고 굳어가는 여우를 향해 은찬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rhakdnjdy.]

하지만 그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은찬의 행동을 무어라 받아들였는지 이빨을 드러내며 뭐라 읊조린 여우의 머리가 쓰러졌기 때문이다.

모든 기력이 쇠한 듯, 가까스로 서있던 꼬리마저 늘어뜨린 여우는 푸른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마치 잠이 들 듯 천천히 눈을 감으며······ 은찬에게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dkdk. duqh···. wnrsmsekaus ekdtlsdml ruxdptj wnrrh tlvdjTsmsep.]

여우의 몸이 점점 싸늘해진다. 이미 두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은찬은 그것이 무슨 현상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dirthr, aht wlzuTdjdy. aldksgody.]

그저 멍하니 그는 낯선 생명체의 최후를 바라보았다. 어째서일까. 사람도, 무엇도 아닌 괴물이 죽었을 따름인데. 공허하던 가슴에 새로운 구멍이 뚫린 것처럼 은찬의 마음이 흐려졌다.

“······앙!”

“어······?”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자그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멍하니 여우의 주검을 바라보던 은찬은 멍청한 신음을 토해내며 소리가 들려온 진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죽어버린 여우.

그 거체의 중심. 어째선지 온몸이 상처로 뒤덮여있음에도 부자연스럽게 깨끗한 부분. 분명히 여우는 죽었음에도 자그맣게 꿈틀거리는 배를.

“설마······?!”

은찬은 자기도 모르게 시체의 하복부로 달려갔다. 그러자 마치 그의 움직임을 따르듯, 배의 꿈틀거림이 점점 아래쪽을 향해 내려왔다.

틀림없다. 그제야 저 애처로운 여우가 자신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짐작한 은찬이 여우의 꼬리 앞에 도착하는 순간,

“캬아앙-!”

사체의 골반아래를 열어젖히면서 한 마리의 새끼여우가 기세 좋은 울음소리를 토하면서 튀어나왔다. 죽어가던 여우의 더러워진 몸과 달리 깨끗한 은빛의 털을 마음껏 뽐내는 자그마한 새끼여우.

거대한 여우는 놀랍게도 새끼를 임신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은찬은 어미와 똑같은 청색의 눈을 지닌 새끼여우와 눈을 마주쳤다.

“컁!”

세상에 나오고 처음 본 은찬을 부모라 여긴 것일까? 새끼여우는 자기가 나온 어미의 배를 뒤로하며 은찬의 곁으로 총총거리며 다가왔다.

“···그렇구나. 너도 혼자로구나.”

아비가 누군지는 모르고, 어미는 방금 여읜 새끼여우를 보며 은찬은 문득 읊조렸다. 그래. 이 여우도 혼자다.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가 된 그와 같이.

“캬아앙~ 컁!”

여우에게 부탁을 받았다고 생각했음인가, 아니면 둘 모두 혼자라는 사실이 공감을 불러일으켰음인가. 은찬은 자신의 다리에 고개를 부비며 애교부리는 새끼여우를 보며 무언가 새로운 마음이 차오름을 느꼈다.

그것은 가슴에 구멍을 뚫던 공허감을 채우는 것.

이별의 아픔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행복.

“그래, 아가야. 이제 내가 네 아빠다.”

인연. 은찬은 조심히 손을 내밀어 다리에 붙은 여우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머리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자그마한 새끼여우와 눈을 마주치며 중얼거렸다.

“···아아. 맞아. 이름이 필요하겠네.”

“컁!”

이름이 필요하다. 언제까지고 여우를 새끼여우나 아가야, 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리 읊조리는 은찬을 향해 새끼여우가 동의하듯 힘차게 짖었다.

“무슨 뜻인지 알고나 짖는 거야?”

“컁?”

고개를 갸웃하는 새끼여우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는 은찬의 머릿속으로 여러 이름 후보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었기에 은찬은 으음, 하고 신음했다.

[언젠가 동물을 키운다면 이름은 ‘매구’라고 짓고 싶어. 아니, 메구 말고 매구. 일본어 아니라니까. 한국어야, 한국어.]

고민하던 은찬의 뇌리로 문득 한 목소리가 스쳐갔다. 그것은 언제였던가, 그의 누나가 했던 실없는 소리다. 결국 작별하는 순간까지 이루지 못한 작은 소망을 담은 말.

가족을 잃은 이후로 처음이다. 교통사고 때의 목소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말을 떠올린 것은. 은찬은 이제는 떠올려도 공허감이 아니라 그리움이 느껴지는 누나의 말을 곱씹으며 새끼여우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래. 네 이름은 매구. 매구다.”

“컁? 컁!”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말이 됨을 느낀 걸까. 새끼여우, 매구는 잠시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가 이내 은찬의 손에 머리를 비비며 힘찬 울음으로 답했다.

“그래. 매구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

띠링-

“···어?”

매구의 이름이 정해진 순간, 귓가에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은찬의 눈앞으로 마치 SF영화에서 볼법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재능······ 확인되었습니다.』

『오라의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직업, 군단의 심장(Legion Heart)을 획득했습니다.』

『전용스킬, 정기 수집을 획득했습니다.』

『직업, 군단의 심장은 정기를 수집함으로서 성장합니다. 많은 정기를 수집하십시오. 정기를 수집할수록 직업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것은 세간에선 유명한 각성의 메시지.

가족들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스스로의 목숨이 사라질 위기에도 얻지 못했던 힘이었다.


작가의말

문피아 공모전에 참가하려다 잠시 탈선하고온 못난놈입니다.


체험결과 아무래도 공모전은 이 게으른 성격에 영 맞지 않는듯합니다.. 쩝.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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