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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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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라원
작품등록일 :
2024.01.05 20:01
최근연재일 :
2024.01.18 18:05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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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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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글자수 :
85,801

작성
24.01.1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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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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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9화

DUMMY

‘음, 이대로 바로 출발하면 시간이 애매하게 뜨는걸.’


요하네스의 집무실을 나선 뒤.

날짜를 계산해본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2회차 때야 설레는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출발해서 도착할 때쯤이면... 아직 구덩이에 갇혀있으려나?’


첫 회차에서야 초행길이었으니 조금씩 헤맨 탓에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다만 2회차에서는 에이만스 남작이라는 자가 보낸 수하와 맞닥트렸는데, 내 장비와 순결(?)까지 탐낸 탓에 시비가 붙었고 결국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괜히 일찍 갔다가 괜한 원한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루이스의 말에 따르면 에이만스 남작이라는 자는 단순한 사채업자가 아닌 듯했다.

같은 하르만 가문의 누이가 뒤를 봐주는 자라 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유적이 벼락에 의해 강제 개방되는 것은 그로부터도 더 며칠 뒤의 일.

이번만큼은 여유 있게 일정을 잡기로 했을 때였다.


짤랑-


“....”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나는 잠시 침음성을 흘렸다.

동전 몇 개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제야 나는 직전 생의 내가 어째서 미련 없이 의뢰지까지 내달렸는지 다시 한번 상기했다.

이곳에 있어도 허름한 숙소에서 뒹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으음.. 그러고 보면 그랬지.’


이 시절의 나는 이렇다 할 의뢰를 맡지 못해, 여기저기서 허드렛일하던 때였다. 당연하게도 풍족하게 먹고 마실 돈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참 거지 같이 살긴 했군..’


오랜만에 마주한 과거의 모자란 내 모습에 골머리를 앓으며 좁은 골목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휙-!


어디선가 날아온 주먹이 날아오는 것 아니겠는가?

반쯤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그를 회피한 나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뭐하냐?”


그곳엔 눈에 익은 놈들이 서 있었다. 바로 어제 훈련 교관 자칼에게 함께 얼차려를 받았던 용병들이었다.


“큭큭큭, 하랄, 이 모지리 같은 새끼야! 얼마나 물주먹이면 바이언이 피하냐?”

“제기랄! 닥쳐, 새끼야. 딱 보면 모르냐? 우리가 여기서 기다릴 거 알고 있다 피한 거잖아.”


무리 중 눈이 쫙 째진 놈이 비웃자, 하랄이라 불린 놈이 얼굴을 붉힌 채로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이 개 같은 자식. 이틀 전에, 어째서 집결지에 나오지 않았지?”

“...집결지?”

“라스만 새끼들을 조지기로 한 날 말이다!”


하하-

내 입에서 가볍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 시절의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남부용병연합 소속들이 자리 잡은 포트란, 반면 늑대용병회 소속 용병들이 활동하는 라스만!

이 둘은 서로 만나기라도 하면 서로 기싸움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이런 식으로 패싸움을 벌이기도 할 만큼 앙숙지간에 가까웠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서로 소속은 다른데, 의뢰 지역이 겹치는 경우는 많으니 이익 다툼이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A지역의 영주가 남부용병연합을 고용하면, B지역의 영주는 그에 대항하여 늑대용병회를 고용하는 식이었다.

이틀 전도 사건도 이런 식의 맥락이었다.

운송 건으로 포트란을 찾은 늑대용병회 소속 용병들이 선술집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눈꼴 시렸던 남부용병연합이 기습을 가했던 것!

하지만 그날 내가 나가지 못했던 것은-


‘네놈들 때문이 아니냐!’


아드득-


그때를 떠올리자 절로 이가 갈려왔다.

장비 수선 같은 말단 용병들이 해야 할 허드렛일을 몽땅 나에게 떠맡겨놓고, 신나듯이 우르르 몰려 나간 놈들이 뭐라고?

하여간, 요하네스도 그렇고, 저놈들도 그렇고.

왜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란 말인가?

짜증이 솟구친 나는 최대한 비웃음을 섞은 어조로 비아냥거렸다.


“아아- 기억났다. 너희들, 라스만 놈들한테 역으로 처맞고 그 탓에 자칼 교관한테도 처맞았지?”

“...닥쳐, 이 새끼야!”


내 비아냥에 하랄이 대뜸 주먹을 휘둘러왔다.

기세가 위협적이긴 했지만, 전장에서 개싸움에 단련된 나에게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그를 한 끗 차이로 피한 나는 역으로 놈에게 스트레이트 두 방을 먹여주고는, 놈이 비틀거리며 물러나자 그대로 고환을 차올려버렸다.


“케엑-!”

“하, 하랄!”

“이 개 같은 자식이! 비겁하게 남자의 급소를!”


쓰러지는 하랄을 제치며 덤벼드는 다음 놈!

오늘 나를 제대로 족치겠다고 작정했던 모양인지, 그 손에는 목검까지 들려있었다.


“병신... 우르르 몰려와서는 좁은 골목에서 뭐하냐?”


하지만 그러면 뭐 하겠는가?

이런 골목에서는 저런 장병기로 낼 수 있는 궤적이란 뻔한 것을.


“죽어, 새끼야!”


목검이 살벌한 소리를 내며 내려쳐 진다.

잘못 맞으면 뼈가 나갈만한 일격!


“비융신- 자칼이 거리 재고 휘두르라고 안 가르치든?”


그를 한 발짝 뒤로 몸을 뺀다. 목검이 코앞을 스쳐 갔다. 반면, 목검을 휘두른 놈은 설마 내가 피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는지 제가 휘두른 기세에 휘둘려 기우뚱 무게중심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나는 그런 놈의 머리채를 잡고는 그대로 바닥으로 찍어 내려버렸다.


퍼어억-!


골목 안에서 살벌한 소리가 퍼져나간다.

나는 놈이 단번에 기절했음을 확인하고 바닥에 떨어진 목검을 쥐며 일어났다.


“자, 그럼 마지막 한..”

“이, 이 새끼! 두고 보자아아!”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놈은 삼류 악당 같은 소리나 남기며 어느새 저 멀리 도망가는 것 아니겠는가?


“....으음, 저놈은 크게 될 놈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고로 용병이란 판이 돌아가는 상황을 읽을 줄 알고 과감히 몸을 빼낼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군.’


그때였다.


“음?”


어느새 허공에 스르르 나타난 글러트니가 쓰러진 놈들 위를 유령처럼 배회하며 말했다.


-제물... 바쳐..


“이놈들을?”


머리를 긁적인 나는 곤란한 듯 반문했다.

아무리 질이 좋지 않은 놈들이라 해도 그렇지.

여기서 대놓고 피를 보게 되면 일이 커진다.

나는 전쟁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었지, 살인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잠깐-”


그때 무엇인가 생각이 닿은 나는 놈들 중 한 명의 품속을 뒤져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육포 조각이 딸려 나왔다.

용병지부 앞 가게에서 파는 육포는 싸고 맛이 좋아 언제 의뢰를 나갈지 모르는 용병들의 필수지참 물건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들며 물었다.


“사람은 좀 그렇고. 혹시 이런 것도 되냐?”


-....


“아, 안 되나?”


-...병..신..


잠시 침묵하더니 한 마디만을 남긴 채 스르르 사라진 글러트니.


“...이거 맛있는건데..”


괜히 뻘쭘해진 내가 육포를 물고 이번에는 하랄이라는 놈의 품속이나 뒤지고 있을 때였다.


“응? 이건-”


탁-!


손끝에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이 걸린 순간.

이제껏 기절해있는 척하던 놈이 내 손목을 잡는 것 아니겠는가.


“...놔라.”

“이, 이것만은 안돼!”

“진짜 안돼?”

“...으응! 아, 안돼!”

“친구야. 이 세상에 안 되는 게 있다면, 그건 덜 맞은 탓이 아닐까 한 번 생각 보는 게 어떨까?”


그제야 하랄은 시무룩한 기색으로 손을 풀었다.

피식- 웃은 나는 그제야 놈의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읽어보았다.


“어라? 뭐야 이거-”


그 내용을 확인한 나는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롤랑 남작가 의뢰잖아?’


전생에서 자칼의 추천을 받고 요하네스에게 건네받은 3개의 의뢰 중 하나!

그 의뢰서가 하랄의 품속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더욱이 의뢰서 하단에는 지부장의 서명은 적혀있는데, 정작 의뢰를 맡을 이의 서명칸은 공란이다.

이곳에 서명을 적어놓은 놈이 의뢰의 주인이 된다는 소리였다.


“야.”

“...왜.”

“왜? 너도 저렇게 만들어줄까?”

“왜, 왜요?”


바닥에 얼굴을 처박혀 꿈틀거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 다른 놈을 가리키자, 하랄이 질색하며 대답했다.


“이게 왜 너한테 있냐? 혹시 훔쳤냐?”

“아, 아닙니다! 이건 이안 님이 저희 중 한 명이 맡아 처리하라고 주신 겁니다!”

“이안이? 설마 추천권을 썼나?”


나는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포트란 용병 지부에서 의뢰를 배분을 하는 것은 지부장만의 독점권한!

그것을 제외하고서 이런 식으로 다른 용병들에게 무기명 의뢰서를 나눠준다는 것은, 자칼의 추천을 받은 것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그놈, 생각보다 개눈깔이군. 다른 좋은 것도 많은데 이런 걸 고르다니.”


그중에서도 나이트 제이만의 축성의식(祝聖儀式)이 메리트는 다른 의뢰에 비해 압도적이다.

축복받은 무기 하나만 있어도 생존율과 용병으로서 처리할 수 있는 의뢰의 종류가 대폭 늘어나니까 말이다.

다른 놈들도 아니고, 설마 중급 용병을 코앞에 둔 이안이 이런 의뢰를 고르다니.

심지어는 그 의뢰서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넣는 것이 아니라, 나눠줬다고 한다.


‘그놈, 무슨 생각이지?’


나는 갸웃거리면서도 의뢰서를 품속에 넣었다.

롤랑 남작가의 창고라면 유적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 정도의 난이도 의뢰라면 별다른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도, 부족한 주머니를 풍족히 만들 수 있었다.


“이건 내가 가져가지.”

“한 번만 더 재고를... 컥!”


귀찮게 달라붙는 하랄을 그대로 기절시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바빠지게 생겼군.’


루이스의 의뢰에도 제때 합류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바삐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루 뒤.

나는 인근 도시인 라스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뢰인인 롤랑 남작을 먼저 만나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이 그 늑대용병회가 있는 라스만이로군.’


나는 그곳을 신기하게 둘러보았다.

이전 삶에서는 외부에서 포트만으로 흘러들어와 허드렛일이나 하느라 바빴고, 그 이후에는 요하네스와 하르만 가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곳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지방에 정착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포트만에서 온 것을 알아본 용병이 있을까 하면 바짝 긴장했지만, 이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리 없지..’


의뢰를 다녔던 것도 아니고, 허드렛일이나 하던 말단 용병을 단번에 알아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 용병이라고? 어디서 나온 용병인가? 남부? 늑대?”

“...남부용병연합 포트만 지부에서 나온 바이언이라 합니다, 롤랑 남작님.”


잠시 뒤 만난 롤랑 남작은 라스만 중심가의 한 저택에서 머물고 있었다.

쭉 찢어진 눈과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 화려한 채색이 들어간 옷을 입은 양반이었는데, 전체적으로 옹졸한 인상의 사내였다.


“으음.. 늑대 쪽은 의뢰를 넣은지 언젠데 묵묵부답인지. 그나저나 자네 나이가 너무 어려보이는데. 설마 하급 용병인가?”

“..네, 그렇습니다.”

“쯧! 하급 용병들은 대체로 멍청하다던데.”


나는 당신이 건 보수로는 중급 용병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화를 꾹 참았다.

애시당초 저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발끈했다면 이 바닥에서 어떻게 십수 년이 넘도록 버텨냈겠는가.


“..일단 자세한 사정부터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말도 말게! 내 영지에는 대대로 물려받은 창고 하나가 있는데, 어느 날 보니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고 물건은 아무것도 없지 뭔가?”

“그게 고블린 짓이라는 건 어떻게 아신 거고요?”

“자네 용병 맞나? 무슨 그런 멍청한 소릴! 땅을 파고 보물을 훔쳐 가면 당연히 고블린이지!”


인간은 땅굴도 못 파고, 물건도 못 훔치나 보지?

나는 황당한 남작의 주장을 애써 무시하며 물었다.


“훔쳐 간 물건은 어떻게 됩니까?”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조각상들이네. 제기랄, 하루빨리 그것들을 되찾아주게! 그게 없으면 난 영지로 못 돌아가!”

“..왜 못 돌아갑니까? 그냥 가시면 될걸.”

“...그건 몰라도 되네. 아무튼 빨리 찾아올수록 추가 보수도 줄 의향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그를 끝으로 나는 내쫓기듯 저택에서 쫓겨났다.

나는 문 앞에 침을 퉷- 뱉으며 중얼거렸다.


“추가 보수는 무슨. 주기로 약속한 보수도 안 주게 생겼구먼.”


그렇다고 느릿느릿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저 재수 없는 양반의 의뢰만 해결하면, 곧장 루이스에게로 달려가야 했으니까.

나는 곧바로 라스만 시장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쯤이겠구만.’


그러곤 곧, 고블린 사육장이 있을 만한 장소를 특정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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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13화 24.01.18 233 9 14쪽
13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12화 24.01.17 335 11 13쪽
12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11화 +1 24.01.16 403 15 15쪽
11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10화 24.01.15 500 15 19쪽
»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9화 24.01.14 634 18 13쪽
9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8화 24.01.13 679 14 13쪽
8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7화 24.01.12 630 16 18쪽
7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6화 24.01.11 667 18 17쪽
6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5화 24.01.10 701 17 14쪽
5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4화 24.01.09 766 19 14쪽
4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3화 24.01.08 799 18 13쪽
3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2화 +3 24.01.07 898 18 15쪽
2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1화 +2 24.01.07 1,091 20 11쪽
1 말단 용병이 뒤늦게 깨달음 0화 24.01.07 1,223 29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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