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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le Paradise

할아버지의 육아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최화린
작품등록일 :
2023.06.05 11:12
최근연재일 :
2023.06.0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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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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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음식이 무엇인고?

DUMMY

중림동 주민센터 서기보, 은서는 화장실로 들어와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쩌자고 그랬니? 사람이 길냥이도 아니고!’


그녀가 직장으로 복귀한 직후 화장실에 틀어박힌 이유는 하나였다.

그랬다. 노인과 아기를 자기 집에 임시로 머물게 해준 결정에 대한 후회였다.

아무리 빈방이 있다지만, 젊은 여자 혼자 사는 집에, 그것도 노숙자나 다름없는 신원미상의 사람을 들인 건 너무나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내가 잠깐 미친 거지. 도대체 왜 안 하던 짓을 했을까······.’


은서는 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 두어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찬찬히 떠올렸다.


발단은 아기의 온순한 눈빛이었다.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죽을 아기새처럼 받아먹는 모습이 볼수록 예쁘게 보였던 탓이다. 마주 앉은 처지에 뭐라도 말을 걸어야겠다 싶어 시작한 대화가 화근이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했다.

아니다. 모두 변명이고 핑계다. 진짜 원수는 끝을 모르고 자라나는 호기심이다. 미지의 대상을 이해할 때까지 탐구하고 또 탐구하는 바로 그 호기심!

할아버지가 언젠가 나더러 호기심이 넘치니, 자제하는 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실수할 거라더니, 그 저주가 눈덩이처럼 굴러왔다.


“식사는 입에 맞으세요?”


현대문명을 처음 접하는 것처럼 보이던 노인이었다. 평범한 스테인리스 수저를 드는 것조차 황송하다는 표정에, 죽 한술 떠먹고는 벌어진 입을 어찌나 다물지 못하는지. 고소한 냄새에 아기가 보채지 않았다면 숨넘어갈 때까지 그러고 있었을 거다.


“대체······.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오?”


덜덜 떨리는 젓가락으로 겨우 집어 든 건 오징어젓갈이었다. 아무래도 어린애도 먹을 수 있는 걸 시키다 보니, 어른이 먹기엔 입이 조금 심심할 것 같아 권해드린 밑반찬이었다.


“내, 팔도를 누비며 산해진미를 섭렵해왔다고 자부하거늘, 오징어로 매운맛을 낸 건 금시초문이오. 이런 독특한 식감이라니······.”

“다른 반찬도 같이 드셔보세요. 죽이랑 같이 먹으면 맛있어요.”

“그러리다.”


하지만 대답과는 다르게, 노인은 자신의 수저를 내려놓았다.

독이 들었나 확인이라도 한 걸까? 이제야 안심한 얼굴로 손녀를 먹이는 모습이었다. 굶주린 손녀가 놀랄세라 후후 불어주는 정성이 지극했다.

이빨도 안 난 아기는 작은 몸으로 신나게 먹었다. 제대로 씹지 못해 흘리는 양이 제법 많았지만, 연신 방긋방긋 웃으며 배를 채웠다.


‘정말 봐도 봐도 계속 귀엽네. 아아, 힐링 된다.’


노인은 손녀가 입을 꾹 다물고 도리질을 할 때가 되어서야 제 수저를 들었다. 이미 그릇이 다 식어버린 후였다.

아기를 품에 안고 식사를 이어가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지만, 은서는 더 참견하진 않았다. 필요 없다고 하는 이에게 재차 권유하는 건 배려가 아니라 간섭이었으니까.


“별천지는 매우 풍요로운 곳인가 보구려. 고기 절임조차 이리 달고 맛있다니······.”


잠깐 딴청을 부릴 틈이 없었다. 노인은 무엇을 먹든 놀라워했고, 어떤 걸 보든 신기해했다. 그것을 일일이 설명해주는 것조차 바빴다.

노인은 그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나 순진무구하여, 아기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반응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조손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갈수록, 은서는 의심이 점차 커졌다. 그녀가 아니라 누구라도, 노인과 말을 섞다 보면 의아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살던 땅엔 이런 걸 파는 가게가 없었네. 기껏해야 탁주와 시래깃국을 파는 게 전부였지. 어쩌다 죽이 나오더라도 밤새 불은 누룽지가 고작이었으니, 대관절 왕궁의 숙수가 아니라면 어찌 산해 재료가 가득 찬 죽을 만들 생각을 해보았겠는가.”

“처자도 분명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일진데, 괜찮겠는가? 대역죄인의 몸으로 귀양살이 중인 내게 이리도 호사로운 끼니를 제공했다는 게 상서성에 알려진다면, 지금은 괜찮더라도 차후에 문책을 당할 수도 있음이야.”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건 노인의 천하관이었다.


“문으로 부를 쌓아 강을 이뤘다는 송이라면 이토록 풍요로울 수 있을까.”

“예?”

“내, 오면서 보니,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의 모습이 형형하며, 요란한 기물이 오가는데도 일상이 평화롭기 그지없는 걸 보았다오. 칼을 찬 이가 하나도 없으니 오히려 안전한 세상이라······. 이런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실로 범상찮은 명군이겠지?”

“어··· 음······. 별로 명군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요.”

“그렇다면 선대의 치적이거나 매우 유능한 신하들을 두고 있겠구려. 허허, 우리 고려도 어서 빨리 태평성대를 이루어야 할 터인데······.”


포만감에 품에서 잠든 아기를 안은 자세로, 숟가락을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으며 조용히 내뱉은 말이었다. 어느새 노인의 그릇은 싹 비어 있었다.


‘으응? 고려?’


도저히 흘려듣기 어려운 단어에, 은서는 에이, 설마?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상식은 하나도 모르면서, 한자나 옛날 지식엔 해박할 수가 있을까? 불가능해. 겉모습뿐만 아니라, 쓰는 어휘가 너무 차이나. 극한의 컨셉충이나 치매 노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멀쩡한 아기가 걸려. 부모는 모르지만, 적어도 남의 애는 절대 아니야. 구걸하러 다니는 노인과 아기라니······. 말이 돼? 이게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이야?’


그 엉뚱한 의심은 점점 꼬리를 물고 커지며 하나의 가설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말이 모두 사실일 경우에는 논리에 허점이 없어. 이 사람이 정말 그가 맞다면······.’


은서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그의 옆모습에서, 뺨을 가로지르는 두 줄의 커다란 흉터를 가만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녀는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처음엔 그저 흉터가 많다고 여겼던 노인의 피부가, 어쩐지 칼자국이 아문 상처로 가득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평생토록 전장을 전전한 노장의 그것처럼.

그래서였을까? 저도 모르게 노인이 언급했던 이름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척준경······.”


노인의 허옇게 센 눈썹이 한쪽만 힐끔 올라갔다.


“늙은이의 이름을 면전에다 대고 불러대는 것은, 존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오. 처자가 아무리 관록을 받고 있고, 또 은혜를 베풀었다고 한들······.”


노인이 혀를 차건 말건, 자신에게 닥쳐온 놀라운 사건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은서는 다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그 이름을 검색했다.

척준경··· 척준경··· 여진과의 전쟁에서 큰 전공을 세웠고, 역모를 저질렀으나, 다시 회유되어 역적을 소탕한 장수······.

은서는 인터넷에 나열된 정보를 재빨리 훑으며 자기도 모르게 드문드문 읊조렸다. 매우 작은 목소리라 들릴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노인은 똑똑히 듣고, 그 눈빛이 조심스러워졌다.


“과연··· 내 공과가 모두 명부에 적히었는가······. 혹여 별세계의 법도가 다르다면 내, 사과하리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정리인 세상이라면, 그리하도록 하시게.”


????????????????????????????????????????????????????????????????????????????

은서의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무슨 말인지 순간 못 알아들은 탓이다.


“허허, 이제 와 귀가 먹기라도 하였는가.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가.”

“어르신이 정말··· 그러니까··· 여진과 싸운 고려의 장수, 척준경이라는 거죠?”

“고려에 그 이름을 가진 이가 나 이외에 달리 없긴 하지, 허허.”


!!!!!!!!!!!!!!!!!!!!!!!!!!!!!!!!!!!!!!!!!!!!!!!!!!!!!!!!!!!!!!!!!!!!!!!!!!!!!!!!!!!!!!!!!!!!

맙소사! 정말 척준경이었다!

계속 아기 쪽에만 시선이 가다 보니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그간의 발언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나니, 부리부리한 눈빛과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노인답지 않게 떡 벌어진 어깨며, 곰 발바닥 같은 손바닥, 온몸에 가득한 흉터, 그 외 모든 것이 확연히 드러나 보였다.

거기다 아기까지 안고 다니니, 이래서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사연 많은 조폭 두목이 아닌가! 마주친 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그 사연을 궁금해할 만한! 실상은 고려의 척준경이지만······!


“헐! 미친! 차원이동!”


자기가 외쳐놓고도 깜짝 놀란 은서는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홀에 앉아있던 가게 사장과 눈이 마주쳤는데,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게 아닌가? 다른 손님이 하나도 없는 시간이라 그런지, 딴청을 부리면서도 이쪽을 연신 곁눈질하는 시선이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어쩌지? 어떡하지? 에라이!


“어르신! 식사 다하셨으면 얼른 나가죠!”

“그러세. 내, 공사다망한 사람을 한가롭게 붙잡고 있었군그래.”

“여기 계산이요!”


진짜 차원이동이 맞다면,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에 어떻게든 숨겨야 했다. 여태껏 읽어온 차원이동 소설 모두가 그랬다. 주인공이 이에 무지하다면 옆에서 도와주는 조연이 필수였다. 그것이 클리셰였다.

조바심이 난 은서는 계산을 마치자마자 도망치듯이 가게를 나섰다. 아니, 나서고자 했다. 평범한 유리문도 못 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기 전까진.

신나게 두근거리던 심장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노인의 넓지만 굽은 등이 그 순간만큼은 몹시도 초라하게 느껴진 탓이다.

잠시 착각하고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되었다는 착각.

전생에 제아무리 용맹한 장수였어도, 지금은 단지 낯선 땅에 떨어져 갈 곳을 잃은 노인에 불과했다. 그것도 아기까지 달고서.

남몰래 한숨을 삼킨 은서는, 문을 대신 열어주며 설명했다. 가게 주인이 듣지 못하게 목소릴 최대한 낮춘 채였다.


“제가 방금 누른 게 문을 열어주는 장치에요. 누르기만 하면 그냥 열리는 구조니까, 어르신도 쉽게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은 아까 들어올 때 보고서 짐작했다오.”

“어라, 그러면 왜 가만히 서 계셨어요?”

“그것이, 내가 만지면 때가 탈까 싶어······.”

“아이고······.”

정말 곡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야기였다.

이상한 쪽에서 순박함을 자랑하는 노인네는 여전히 아기를 안은 채였다. 자신의 품에서 잠든 손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은 겨울의 햇살처럼 따듯했다.

노인의 모습을 오도카니 지켜보던 은서는 잊고 살았던 감정이 치밀었다. 오늘따라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르신. 가실 곳은 있어요?”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내뱉고 만 것은.


“따로 찾아가실 곳이 없다면 우선은 저희 집으로 가실래요?”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 성격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당할 두 사람을 딱하게 여길지언정 내 삶의 중심에 두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 당연한 스침이 오늘따라 힘들었다. 노인의 정체를 떠나서, 아이를 도와주고 싶었다. 잠든 아기에겐 죄가 없었다.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 축복을 받아 마땅한 존재였다. 그런 은서의 감정이 두 눈에 고스란히 담겨 쏟아졌다.

노인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내, 발 닿는 데로 가볼 참이네. 이곳 별세계에서 살아가려면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많은 듯하니.”


하지만 은서는 그날따라 달랐다. 재차 권유했다. 노인을 설득할 때까지.


“어르신께 낯선 곳이라 혼자 적응하긴 힘드실 거예요. 제가 알려드릴 수 있어요.”

“혼자인 건 익숙하다네. 낯선 땅에서 적응하는 것이야말로 내 특기지.”

“그러지 마시고 저희 집으로 가요. 찬바람 오래 맞으면, 아기한테 안 좋잖아요.”

“고향 땅에 비하면 이 정도는 춘풍이라네. 우리 순이도 끄떡없을 걸세.”

“당장 먹을 걸 못 구해서 주민센터에 오셨던 거잖아요. 매일 밥 차려드릴게요, 밥.”

“천지가 개벽한 마당에 끼니가 대수겠는가. 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니, 하늘이 명을 허락해줄 때 행할 수밖에 없음이야.”

“아씨! 어르신이 죽으면 다 끝나요?! 혼자 남겨질 애는 어떡하고요! 죽더라도 애가 혼자서도 잘살 수 있게 해주고 떠나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어른이 할 일이잖아!”


할아버지도 그때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살 수 있으셨을까.

할아버지도 지금 나 같은 심정으로 나를 돌보겠다 마음먹으셨을까.

감정이 북받친 은서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과거를 억지로 헤집으며, 자신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호기심과 연민, 그리고 동질감이 뒤얽힌 그녀의 표정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그걸 제가 도와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어르신.”


목소리가 너무 컸던 걸까. 아기가 인상을 쓰고 몸을 뒤척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던 노인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폐를 끼치겠구려.”

“아시면 됐어요.”

“허허, 당돌한 처자로고.”

“집이 가까우니 얼른 가요. 알려드릴 게 많아요.”


···분명 그런 사정으로 집에 들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씻으라고 욕조에 따듯한 물 받아줄 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지금은 왜 자꾸만 실수한 것 같고, 후회하는 마음이 드는 걸까.


‘가스 밸브 안 잠궜나? 냉장고 문 계속 열어두면 안 되는데······.’


은서의 걱정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현실이 되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작가의말

어르신. 아기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순이. 순할 순자를 써. 내가 지어줬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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