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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張譚) 의 이야기 세상

천검제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장담(張譚)
작품등록일 :
2011.10.18 20:09
최근연재일 :
2011.09.14 14:44
연재수 :
4 회
조회수 :
51,549
추천수 :
123
글자수 :
14,131

작성
11.09.09 17:59
조회
12,409
추천
36
글자
8쪽

천검제-2 악중경

DUMMY

***


아침 해가 동산 너머에 둥실 떠오른 진시(辰時:오전7시~9시) 무렵.

푸른 대나무가 가득한 청죽원 안에서 한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손을 뻗고, 거두고, 휘둘러서 내지르고 있었다.

동작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도, 아이는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고 천하에서 제일가는 장법이라도 펼치는 듯 신중한 표정으로 초식을 펼쳤다.

바위에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중년인은 아이가 어려운 동작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자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흠, 제법인데?’

스물아홉에 부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며 얻은 아들, 악초영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아홉 살치고는 조금 유약해 보이지만 그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아들의 모습이 유약하게 보이는 것은 가문이 지닌 저주 아닌 저주 때문이었다. 일 년 정도 흐르면 정상을 되찾을 것이고, 그때부터는 남보다 빠른 발전이 있을 것이었다.

‘초영이만큼은 가문의 업보에서 자유롭기를 바랐는데…….’

그가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는 동안 악초영은 며칠 전부터 익히기 시작한 구절장법(九折掌法) 아홉 초식을 끝까지 펼치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장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 어때요?”

“잘하면 강아지는 잡을 수 있겠다.”

악초영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장한은 빙그레 웃으며 아들을 위로했다.

“그래도 투로는 완벽했다. 적시적소에 힘만 제대로 실리면 호랑이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제야 악초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투로가 완벽했다는 것. 그거야말로 그가 바란 것이었다.

자신이 펼친 초식에 힘이 실리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력을 발출하지 않고 장법을 펼쳤으니까. 더구나 제대로 힘을 싣게 되려면 아직 몇 달은 더 수련해야 했다.

“정말이죠?”

“지금 이 아비의 판단을 의심하는 거냐?”

“그럴 리가요. 제가 어찌 천검성 최고의 검사이신 용천신검(龍天神劍)님의 판단에 의심을 품겠어요? 그럼 천벌 받기 전에 아버지의 손바닥이 먼저 엉덩이로 날아들 걸요?”

“하하하하.”

장한, 악중경의 입에서 밝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도 잠시. 악중경은 갑작스럽게 들리는 외침에 입가의 웃음을 지우고 고개를 돌렸다.

“단주우우우!”

청죽원으로 뛰어 들어오는 커다란 덩치의 장한이 보였다.

그는 악중경이 이끄는 천위단의 부단주 단리청이었는데, 평소의 그답지 않게 다급한 모습이었다.

창백한 얼굴에 격렬하게 흔들린 눈빛. 마치 세상이 뒤집어지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

불길함을 느낀 악중경도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일인데 그리 다급한 표정인가?”

“조금 전 정문을 지나가다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선 천검호령대원을 만났는데……, 성주님이……, 성주님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단주!”

악중경은 벌떡 일어나서 눈을 부릅떴다.

“그, 그게 무슨 소린가? 대형이 돌아가시다니?”

악중경은 단리청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단리청은 자신에 절대 거짓보고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어서 격동을 최대한 가라앉혔다.

“자세히, 자세히 말해보게. 왜 천검호령대가 밖에서 달려와 그 소식을 전한단 말인가?”

“성주께서 어젯밤 마차를 타고 성을 몰래 나가셨는데, 그만……,”

“뭐야? 그럼 대형께서 밖으로 나가셨다가 돌아가셨단 말인가?”

“예, 단주.”

“어디서?”

“마차가 미산호(微山湖) 옆 언덕 위에서 발견되었다 합니다.”



***



천위단원을 이끌고 천검성을 나선 악중경은 즉시 마차가 발견되었다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 시진 후.

갈색 피풍의를 두른 일백 명의 천위단원이 마차로 접근하자 천근만근 무거운 침묵이 일대를 내리눌렀다.

마차 앞에선 악중경은 이를 악물고 마차를 노려보았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아우 왔는가!’하며 환하게 웃는 모용천승의 얼굴이 보일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마차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을…… 열어라.”

악중경의 명이 나직이 떨어지자, 단리청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신중한 태도로 마차 문을 천천히 열었다.

악중경은 느릿하니 걸음을 옮겨 마차 문 앞에 섰다.

순간 마차 안의 광경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악중경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오오오, 맙소사!’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천검성의 성주가 젊은 여인과 함께 죽어서 핏물 속에 쓰러져 있다니.

두 주먹을 움켜쥔 그의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돌개바람이 일고, 그 속에서 만장 지저의 용암이 끓어오르는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형…….”

의형이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 대형을 끌어안고 통곡을 한다한들 누가 뭐라 할 건가!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그가 잘 알았다. 자칫하면 단서가 지워질지 모르는 일.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감정을 억누른 그는 터져 나오려는 통곡마저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강호를 종횡하며 시산혈해를 건너온 그였다.

동료의 피에 발을 담그고 싸운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침착해라, 악중경! 침착해!’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냉정함을 되찾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눈물을 보이며 슬퍼할 때가 아니다. 그러기보단 누가, 왜 대형을 살해했는지 진상을 밝혀내는 게 먼저다.

'모든 걸 밝혀낸 후 열흘 밤낮을 울자꾸나, 악중경!'


한참 동안 마음을 다스린 그는 북해의 한풍처럼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동효.”

한쪽에 서있던 동효가 허리를 숙였다.

“예, 단주.”

“마차를 발견했을 당시의 일을 말해보게.”

동효는 자신이 마차를 발견한 새벽의 일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악중경은 묵묵히 서서 동효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마차를 조사해 보았나?”

“성주님의 생사만 확인하고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일대에 대한 조사는?”

“보고를 위해서 두 사람을 성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주위를 이 잡듯이 뒤져보았습니다만, 아쉽게도 수상한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마차가 사라진 시간을 전후로 수상한 일이 있었는가?”

“별 다른 일은……. 성주님이 보이지 않아서 찾아보던 중에 마차가 성을 빠져나갔다는 말을 듣고 급히 뒤쫓아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 시진 만에 찾아냈는데 그만…….”

악중경은 동효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천검호령대가 왜 성주님의 곁에 있지 않았지?”

“성주님께서 혼자 계시고 싶다고 하셔서…….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단주! 죽여주십시오! 크흐흑!”

동효는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악중경은 이를 악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최근 들어와서 모용천승은 혼자 있는 일이 잦았다. 그가 성주의 거처인 천검전에 새로 들어온 시비를 좋아한다는 말이 들려온 직후부터였다.

아마 시비와 염문이 나는 걸 싫어해서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한 듯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잦아지다보니, 모두들 모용천승이 시비와 잠시 사라져도 별 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그러려니 했다. 곧 돌아오시겠지, 하면서

그것은 천검호령대 뿐만이 아니었다. 악중경 자신조차 그렇게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천검성의 모든 간부들도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모용천승이 사라졌다고 하면 웃으며 그냥 넘겼다.

‘늦바람이 무섭긴 무섭군.’ 그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형님께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거늘.’

눈을 질끈 감은 악중경은 자책감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때였다. 언덕 저 너머에서 공력이 실린 일성이 들려왔다.

“모두 마차에서 물러나라!”

악중경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수백 명의 무사들이 언덕을 넘어오는 게 보였는데, 선두에서 달려오는 사람은 그의 둘째 의형인 사공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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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검제-1전조 +22 11.09.08 17,417 3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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