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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가 님의 서재입니다.

그랑크뤼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신가
작품등록일 :
2010.09.02 17:00
최근연재일 :
2010.09.02 17:00
연재수 :
4 회
조회수 :
6,819
추천수 :
35
글자수 :
10,238

작성
10.08.27 15:56
조회
1,358
추천
7
글자
6쪽

그랑크뤼 1장. 다시 찾은 삶(3)

DUMMY

샤인펠터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갑작스런 이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죽어가던 자신이 뜬금없이 이곳에 와 있고 사부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그 때 샤인펠터는 자신이 공중에 들리는 것을 느꼈다.

돌아보니 누군가가 그의 뒷덜미를 잡아들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의 노인이었다.

샤인펠터는 두 눈을 흡떴다.

“사부...”

가늘게 떨려 나오는 목소리.

분노한 얼굴로 자신을 들고 있는 이는 너무나 정정한 모습의 사부였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모습보다 훨씬 정정한 모습이다.

“허. 대체 네 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마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오우거의 간이라도 삶아 먹었느냐?”

샤인펠터는 입을 열지 못했다. 여전히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오우거의 간 이야기가 나온 걸로 보아 현재 사부는 자신에게 극심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이 설사 죽기 직전에 보는 환상이라 할지라도 사부의 분노는 두려웠다.

샤인펠터에게 사부는 그런 존재였다.

그의 사부는 대륙에서 살왕(殺王)이라 불리는 이였으니.

“네가 정녕 일 하기 싫어서 꾀를 피운단 말이냐? 내 성질대로 하자면 한 방에 쳐 죽여야 하나, 그럴 수가 없어서 참는다. 한 달에 1000골드는 큰 돈이니까.”

사부에게 처음 맡겨지고 1년 동안, 줄곧 사부가 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이후로 그 말을 다시 들었을 때는 임무를 위해 길드를 떠날 때였다.

‘잠깐만.’

혼란스러운 와중에 들린 말이 샤인펠터로 하여금 주변을 둘러보게 만들었다.

그 말은 이곳에 맡겨지고 처음 1년간만 들었던 말이다. 게다가 아무리 사부라고 하지만, 자신을 이렇게 가뿐히 들지 못한다. 자신도 이제는 삼십대 후반의 성인이지 않은가.

그제야 샤인펠터는 주변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유난히 짧은 자신의 팔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서 밭일이나 해!”

그 때 사부가 자신을 밭의 한 가운데로 휙 던졌다.

본능적으로 낙법을 펼쳤다. 결국 소울을 발현하지 못해 실패한 제자로 낙인 찍혔었지만 체술은 제법 능숙하게 펼치지 않았던가.

“호오.”

날렵하게 착지하는 샤인펠터의 모습에 노인은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낙법을 가르친 지 이제 겨우 사흘이다.

그런데 저렇게 능숙한 낙법이라니. 노인은 어쩌면 제법 괜찮은 제자를 두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샤인펠터의 눈에 호미가 들어왔다.

호미를 들고 밭을 매는 일은 이곳에 와서 딱 일 년 동안만 했던 것이다. 그것을 지금 하라 한다.

‘이게 대체...’

혼란스러웠으나 샤인펠터의 손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부의 무시무시한 기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방을 어둠이 덮은 밤.

샤인펠터는 조잡하게 만들어진 움박에 누워 자신의 몸을 살피고 있었다.

이제 조금 진정이 되었다. 사부의 무시무시한 기세 아래서 밭을 매는 데 집중하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진정하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니 짧았다. 어른의 팔다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았다. 손도 작았다. 낮에 밭을 매면서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찬찬히 살피니 정말 짧았다.

“마치 어린 아이의 그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귀에 들린 자신의 목소리는 너무나 앳되었다.

술에 찌들어 갈라진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설마?”

샤인펠터는 조심스레 일어나 움막을 벗어났다. 마침 루나와 메르, 둘 모두 만월로 뜬 밤이라 무척이나 밝았다.

샤인펠터는 즉시 계곡으로 달렸다. 너무나 익숙한 길이었기에 거침 없었다. 오래지 않아 계곡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절로 숨이 차올랐다.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계곡 물을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허탈한 말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작아진 손을 봤을 때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헛된 꿈이라 생각하고 피식 웃었었다.

움막에서 짧아진 팔다리를 보며, 앳되어진 목소리를 들으며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꿈일까? 꿈이겠지?”

샤일펠터는 그렇게 믿고 싶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것이 꿈이 아님은 안다.

꿈이라기에는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상황들이 너무나 명확했고, 온 몸의 감각들이 너무나 예민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샤인펠터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거늘, 자신은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죽음.

그것을 맞이하는 순간.

삶.

그것이 자신을 맞이했다.

샤인펠터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바 보았다.

루나와 메르가 가득 차 사방을 밝히고 있었다. 그 주변의 별들은 두 달 때문에 빛을 잃고 있다. 하지만 루나와 메르와 멀리 떨어진 별들은 자신들만의 빛깔을 요요히 뿌리고 있다.

“그래. 이건 나의 새 삶이다.”

어느새 샤인펠터의 눈에 어린 망설임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결정하는 순간 지난 생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서 흘러갔다. 지난 생을 곱씹는 순간 순간 샤인펠터의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15년 전 그 날.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거야.”

샤인펠터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 날 알게 된 사실. 스승에 대한 원망. 스스로에 대한 허탈함. 그 모든 감정이 다시 살아났다가 사라졌다.

이제는 그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엇나간 길을 되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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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랑크뤼 2장. 다시 시작(1) +5 10.09.02 1,164 12 7쪽
» 그랑크뤼 1장. 다시 찾은 삶(3) +4 10.08.27 1,359 7 6쪽
2 그랑크뤼 1장. 다시 찾은 삶(2) +3 10.08.25 1,514 9 5쪽
1 그랑크뤼 1장. 다시 찾은 삶(1) +3 10.08.23 2,783 7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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