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새우 배 터짐
수도의 용병 길드를 방문한 호인이 안내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 실례합니다. 편지를 받았는데요.”
“ 어서오세요. 보여 주시겠어요?”
오랜만에 빌려둔 사무실에 들른 호인은 건물주가 보관했던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 잠시만요. 담당자를 불러 드릴테니 저쪽에 앉아계세요.”
- 털썩
‘ 아저씨들 얼굴 봐라. 히익, 눈 마주칠 뻔했네.’
의뢰를 받으려 하는 건지 이곳저곳에 용병들이 앉아 있었고, 하나같이 흉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요 며칠 정보상들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닌 다던데, 무슨 일 났나? 들은 거 있어?”
“ 무슨 물건을 찾는다고 하던데. 무슨 말을 찾는다는 말도 있고, 신성력이 어쩌고 저쩌고 하더라고.”
“ 그럼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인가 보군. 아, 너 그러고 보니 저번에 호위 갔던 거 어떻게 됐냐?”
옆자리에 있던 형님들의 이야기를 옆귀로 듣던 호인에게 직원 한명이 다가왔다.
“ 호인 님이십니까?”
“ 네. 맞습니다.”
“ 안으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직원을 따라 응접실로 들어간 호인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 의뢰가 들어왔었다고요?”
“ 그렇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아 취소 되었습니다만.”
“ 아직 의뢰를 받은 적도 없고, 아직 인원도 적어서 별 생각 안하고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따로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기에 일어난 해프닝이었고, 호인은 당분간 의뢰를 거부로 설정해놨다.
“ 준비가 되면 다시 들리겠습니다. 일을 늘려서 죄송해요.”
“ 아닙니다. 방문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뚜벅뚜벅
‘ 누가 의뢰를 넣었지. 인원도 적은데.’
대충 용무를 마치고 미네트 호텔의 로비에 도착한 호인을 발견하고 입구에서 서성이던 호텔리어가 서둘러 다가왔다..
“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네? 저요?”
“ 그렇습니다. 아, 저기 오네요.”
호인이 돌아보자 두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 뭐야, 뭔데?’
“ 호인 님!! 미네트 경매장에서 왔습니다!”
같이 가주지 않으면 자신들의 모가지가 날아간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당한 호인은 미네트 경매장으로 끌려 갔다.
- 긁적긁적
“ 요점은 알겠는데, 제가 도와 드릴 게 있을까요?”
“ 솔직히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일단 모셨습니다. 죄송합니다.”
“ 사과하실 필요는 없는데, 저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그 두 개만 경매에서 내리시면 어떤가요?”
“저희가 안일하게 두 분께 연락을 해버린 터라 손을 뺄 수가 없습니다...”
옆에서 담당자가 몇 번이고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듣고 있는 호인이 다 미안해졌다.
“ 음. 지금 여러분이 걱정하시는 건 돈이 아니라 백작님들 둘이 싸움이 나지 않을까, 맞죠?”
“ 그렇습니다.”
“ 그럼 제가 괜찮은 방법을 제시하면 제 수익은 보장 해주시나요?”
지점장이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 물론입니다.”
“ 그럼 이건 어때요?”
* * * * * *
『 미네트 상단의 경매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진행을 맡은 레이나입니다.』
- 와그작 와그작
‘ 여기서 먹는 팝콘은 진짜 맛있는 듯.’
강 건너 불구경 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오늘도 저희 미네트 옥션에서 밖에 볼 수 없는 물품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특히 후반엔 새롭게 준비한 기획도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하는 역대급 경매가 시작되었다.
*
“ 자금은 얼마나 준비됐다고 했었지?”
“ 저번 낙찰액이 4500골드였다고 들어서 6천 골드를 준비해 왔습니다.”
다리를 떨며 벌써 세 번째 똑같은 질문을 하는 말콤 백작을 보고 총집사가 빙긋 웃었다.
“ 그리고 준비하신 비상금 4천 골드가 백작님의 아공간에 있습니다.”
“ 후우. 고맙군.”
자리에서 일어난 말콤 백작이 프라이빗 룸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 걱정 마십시오. 백작님의 신용이시라면 공수표도 남발하실 수 있습니다. 낙찰을 받지 못하실 확률은 0% 입니다.”
“ 그렇겠지?”
알고는 있지만 너무나도 불안한 말콤 백작이었다.
*
푸짐한 몸매의 남자가 의자에 걸터 앉아 물었다.
“ 말콤 백작도 왔다고 했지?”
“ 그렇습니다. 역시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하가 두 손을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템들 백작에게 보고했다.
“ 흐음. 이길 수 있겠나?”
“ 자그마치 만 오천 골드입니다. 이길 겁니다.”
“ 그 양반이 돈은 많아서 말이지. 지켜 보자고.”
『8번째 경매품입니다. 저희 옥션의 단골이죠? 글루틴 왕국의 물품입니다. 』
차례대로 경매가 진행되었고, 호인이 출품한 「울부짖는 방패」 는 1300골드, 「마력 회복의 반지」 는 1500골드에 낙찰 되었다.
“ 옛쓰!”
두 물품으로만 900골드의 차익을 낸 호인이 싱글벙글 웃으며 직원에게 음료를 부탁했다.
‘ 개꿀이네.’
『남은 물품도 어느새 2개 뿐이군요. 오늘은 치열한 경매가 많아 벌써 아쉽습니다.』
레이나가 진행자 카드를 내려놓고 말했다.
『다음 경매품을 소개하기 전,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남은 두 물건은 경매이지만 기존의 경매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모든 프라이빗 룸에서 “어?” 라는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레이나가 잠시 뜸을 들이다 손짓을 하자 직원이 작은 상자 하나를 가져왔고, 그 안에서 새하얀 반지 하나와 샛노란 반지 하나씩을 꺼냈다.
『마지막 두 물품은 한 분께서 출품 하셨고, 그 출품자가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 꿀꺽
말콤 백작이 마른침을 삼키며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이 반지들은 소환 아이템입니다. 낙찰가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낙찰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내실 수 있는 가장 비싼 가격을 설정해주십시오.』
“ 이게 무슨?!”
『어떤 소환수가 나오는지는 비밀입니다. 대신 저희 경매장이 상품의 퀄리티는 보증합니다. 10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이름하여 시크릿 옥션,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 * * * *
거대한 알현실의 가장 높은 곳에는 황제가 삐딱하게 앉아있었고, 그 앞으로는 제국내의 모든 공작, 후작들이 모여있었다.
“ 펠릭스 공작, 후작들까지 모일 필요가 있었을까?”
“ 폐하. 뭐든지 기선제압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드래곤이 신경을 쓸 것 같지는 않지만, 중요한 자리니까요.”
“ 그건 그래.”
심심해진 황제가 고위 귀족들과 두런두런 잡담을 나눴고, 시간이 되자 근위기사 한명이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 폐하. 도착했다고 합니다.”
“ 어디쯤 이지?”
“ 곧 알현실에 도달할 겁니다.”
“ 수고했다. 대기하도록.”
잠시후, 분명 작은 소리였지만 선명하게 들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 저벅저벅
9등신은 되어보이는 기럭지에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금발, 새하얀 피부와 반짝이는 노란 눈동자의 남자가 알현실로 걸어 들어왔다.
- 뚜벅뚜벅
“ 어서오시오.”
“ 먼저 말을 걸 줄은 몰랐네.”
황제의 물음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은 남자가 말했다.
“ 오랜만이군. 아저씨 다 됐는데?”
근위기사들이 칼을 빼려하자 펠릭스 공작이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 22년 만이지. 클레옹시온 당신은 역시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 우리야 변할 게 있나 뭐.”
“ 예전부터 궁금했던 점이 있는데 질문 하나만 해도 괜찮겠소?”
“ 안될 거 없지.”
클레옹시온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 위대한 종족들은 수명이 길지. 22년이란 시간은, 당신에겐 찰나였나?”
“ 그렇지 않아. 나에게 22년은 너의 22년과 같아. 게다가 망각을 모르는 몸이라 인간보다도 더욱 더 길게 느껴질테지.”
“ 그랬군. 고맙소.”
“ 갑작스러운 방문을 받아 준 사례라고 생각해. 그나저나 물건은 준비 됐나?”
“ 오르턴 공작.”
“ 네.”
오르턴 공작이 아공간에서 도자기를 꺼냈고, 클레옹시온이 놀랐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 잘도 찾아냈군. 건네 받아도 되나?”
“ 물론입니다.”
- 우우웅
클레옹시온의 손에 들어간 도자기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웅웅댔고, 곧 주변으로 하얀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 허... 이건...”
“ 우리도 입수만 했지, 정보가 없는데 알려줄 수 있소?”
“ 자세한 건 나도 알아봐야겠지만, 이질감이 느껴지는 군. 물론 신성력은 맞아.”
“ 흠.”
금색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눈으로 도자기를 훑던 클레옹시온은 이내 도자기를 아공간에 수납했다.
“ 물건은 잘 받았다. 원하는 게 있나?”
“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소. 무엇을 줄 수 있소?”
“ 글쎄. 솔직하게 말하면, 원하는 걸 듣고 생각하려고 했어. 편하게 말해봐.”
황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으며 말했다.
“ 알겠소. 내가 원하는 것은 왜 신성력이 세상에서 살아졌는지 알려달라는 것이오.”
클레옹시온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입술을 앙다물더니 대답했다.
“ 내입으로는 말하기 싫지만, 거래니 대답할 수 밖에. 모른다.”
“ 모른다고?”
“ 그래. 우리, 아니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해 연구를 하는 중이다.”
“ 다른 드래곤들도 모르는 건가? 그럴 수도 있나?”
“ 그래. 위대한 종족, 이 세상의 조율자라고 불리우는 우리들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지.”
자신들의 치부를 보인다고 생각하는지 불쾌한 얼굴을 하던 클레옹시온이 말했다.
“ 이 질문은 무효로 해주지. 다른 원하는 건 없나?”
“ 그렇다면...”
* * * * * *
말콤 백작이 달달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건네 받았고, 잠시 심호흡을 한 후에 뚜껑을 열었다.
- 딸칵
“ 오오...”
상자 안에는 병아리처럼 샛노란 반지 하나가 살포시 들어있었고, 아무런 문양도 없는 밋밋한 반지가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일 수 없는 말콤 백작이었다.
“ 여기서, 여기서 소환해봐도 괜찮겠나?”
“ 물론입니다.”
VVIP전용 프라이빗 룸은 오우거가 들어가도 문제없을 만큼 넓었다.
- 지잉
말콤 백작은 갓난 아기를 안듯 조심스레 마력을 불어넣었고, 허공에 선이 세로로 그어진 후 그 사이에서 연노란색의 말 한마리가 걸어나왔다.
“ 명칭은 썬더 홀스라고 합니다.”
“ 으허...”
번쩍이는 갈기와 꼬리는 번개 그 자체였고, 우람한 가슴팍, 튼실한 허벅지는 물론 목에 보이는 핏줄까지도 아름다웠다.
- 푸르릉
“ ...아름답군.”
“ 마음에 들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같아.”
한동안 감동에 젖어 싱글벙글 웃으며 갈기를 쓰다듬던 말콤 백작이 부지점장에게 말했다.
“ 정말로 기분이 좋아. 그런데 뭐라고 하는게 아니라 지점장은 어디갔나?”
평소 같으면 바로 옆에 찰싹 달라붙어 귀찮을 때까지 케어를 해주던 지점장이 보이지 않았기에 순수한 궁금증이 든 말콤 백작이었다.
“ 옆에서 축하를 드려야 마땅하나, 오늘은 다른 고객님께 갈 수 밖에 없다고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 공작님이라도 오셨나? 아니지, 오늘은 내가 알기론 후작들 부터는 궁에 모여 있을텐데?”
“ 지점장이 이것 만큼은 절대 비밀로 해주시라고 부탁했습니다. 사실 오늘 역대 사상 최고가의 낙찰이 있었기에 낙찰을 하신 고객께 갔습니다.”
“ 뭐라고? 내가 최고가가 아니야? 8천 골드를 불렀는데?!”
말콤 백작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 그렇습니다.”
“ 허어. 정말 다행이군. 노란색을 골라서 정말 다행이야.”
가슴을 쓸어내리던 말콤 백작이 넌지시 물었다.
“ 그래. 하얀색 반지는 얼마였는가? 내 명예를 걸고 비밀로 하도록 하지.”
“ 그게...”
부지점장이 얼굴을 가까이 하고 속닥였다.
“ 만 사천 골드였습니다.”
* * * * * *
프라이빗 룸에서 특별히 마지막 경매의 입찰액을 볼 수 있었던 호인은, 가득차서 더이상 들어가지 않는 입에 기계처럼 팝콘을 쑤셔 넣고 있었다.
‘ ...디졌다. 더이상 여한이 없다. 씨발.’
- 작가의말
호구가 하나, 호구가 둘, 호구 ㄱ-. (소근 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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