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썼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니 정식으로 내 소개부터 할까?
<만년과장> 때부터 기억하고 있다고 말할까?
정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고 솔직하게 고백부터 할까?
사람들이 글을 안 읽어준다고 징징대는 저에게 이렇게나 큰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는데, 떠오르는 단어라고는 ‘감사하다’, ‘고맙다’ 밖에 없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추천글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감동과 벅찬 감정들을 어떻게 하면 올곧이 그리고 진솔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해서 표현을 찾아보느라 사전도 뒤져보았습니다.
비록 변변한 인기작도 없는 웹소설 작가일망정 최근 드라마에 나온 ‘추앙’이라는 말처럼 참신한 표현을 받치고 싶어 몇 시간째 고민하다, 결국은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글을 시작합니다.
‘고맙다’라는 표현은 ‘존귀하다’, ‘존경한다’라는 뜻의 우리말 ‘고마’에서 유래된 말로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에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독서신문」 2009.01.28. 짜 기사에서 김우영 작가님은,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은혜를 베푼 상대방에게 신과 같이 거룩하고 존귀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뜻을 담아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진눈깨비 님.
*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성공해서 근사한 집도 있고 비싼 외제 차를 모는 그런 삶은 아니었고요.
먹고 싶은 것들 먹을 수 있고, 1년에 가족 여행 한번 갈 수 있을 정도.
아마 계속했으면 두 딸이 컸을 때 결혼식 비용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대로 늙으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은 사그라들었지만, 내 이야기를 영상화하고 싶다는 꿈은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장고 끝에 결정했습니다.
도전해보기로.
제일 먼저 고려한 것은 웹툰이었습니다.
모아둔 돈이 있다고는 하나, 2~3년씩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고, 영화 연출부에 들어갈 용기는 없었습니다.
때마침, 1년 정도 배우면 웹툰에 도전해 볼 수 있다는 광고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웹툰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곳, 저곳을 눈팅하다 알게 된 것이 웹소설 플랫폼이었고,
그림보다는 좀 더 적은 투자로 빨리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장으로서의 기대와 함께 시작하게 된 것이 웹소설 연재였습니다.
*
2019년 4월 3일, 문피아 공모전에 처음으로 제 글을 올렸습니다.
나중에 딸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주인공은 여중생으로 하였고,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어반 판타지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매일 5,000자씩 연재하는 건 제 능력 밖의 일이라서 비축을 40화 가까이 들고 시작했습니다.
읽어본 웹소설은 싱숑 작가님의 「전지적 독자 시점」이 고작이었습니다.
당연히 성적은 처참했습니다.
소재며, 문법이며, 스타일이며 하나도 웹소설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첫 작품이라 누가 읽어준다는 사실 하나에 신기하고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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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연재한 글이 지금 올리고 있는 「천재 부적술사」입니다.
당시에는 다른 제목으로 연재했고, 시작 부분이 달랐습니다.
1화를 읽으면서 상황 파악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시작의 배경을 지문으로 건너뛰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원래는 10회차 분량의 아리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아리가 경험하는 지옥 이야기로.
웹소설적 집필에 있어서는 말도 안 되는 전개였습니다. 조연의 이야기로 시작하다니, 그것도 10화씩이나.
다시 생각해보니 원래 시작대로 했어도 상황 파악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뭣도 몰랐을 때 쓴 글입니다.
“동서고금의 온갖 판타지 소재를 다 끌고 와서 코믹 호러 한국 영화 식”으로 섞었다고 하셨고,
“헐리우드나 충무로에 있다는 ‘몇 년 동안 이 감독 저 감독 사이를 떠돌던 각본’ 같은 느낌”이라고도 하셨는데,
정확하십니다.
십 년 전에 써봤던 영화 시나리오 두 개가 섞여 있고 애초에 영화를 위해 썼던 글이기에 장면 전개나 인물 소개방식이 웹소설로 각색했다고 하더라도 영화 각본의 연출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너무나 감사해서입니다.
사실 제가 제일 들려드리고 싶은 소재의 이야기인데 그걸 알아주셔서요.
그럼 이걸 왜 다시 올리고 있느냐고 물어주신다면,
언젠가 리메이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갖고 있었는데, 거듭되는 실패에 초심을 찾겠다고 다시 읽어보니 리메이크도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도 볼 수 없는 제 컴퓨터 안의 폴더보다는 몇 분이라도 봐주시는 곳에 올려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다시 올리는 중입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언급해주셨습니다.
잘한 결정인 것 같습니다.
*
말씀해주셨듯이, 지난 3년간 네 작품을 유료화했습니다.
반드시 작가연재 자격을 얻겠다고 100화 가까이 무료 연재해서 유료화를 간 「만년과장」부터 운이 좋게 ‘안타’를 칠 수 있었던 「이혼변호사」, 「야매검사」 그리고 도취 되어 또 제멋대로 써버린 「하트브레이커 로펌」까지.
이쯤 되면 감이라는 게 생길 줄 알았는데···
아직도 헤매고 있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대단한 작가님들도 쓰다 접고 하시는데 뭐가 문제야라며 자위도 해봤지만, 그러기에 제 글의 문제는 좀 더 고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의 니드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걸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었던 이야기 푸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은 깨달았지만, 다르게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이 보이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었고요.
추천글에 나열해주신 제 전작들에 대한 분석을 벌써 열 번도 더 읽었습니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써주셔서 제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읽는 순간 이마를 '탁' 쳤습니다.
곧장 아내에게 달려가, ‘그래, 이거야! 이게 내 문제였어!’라고 말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는 <하트브레이커 로펌>을 연재할 때 남겨주신 댓글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때도 지적해주셨죠, 제 글의 문제점을.
수많은 매체에서 다양한 재밋거리들이 매일 같이 쏟아집니다.
수십 편씩 되는 드라마, 몇 초짜리 영상들, 소설, 웹툰···
각 매체에는 해당 매체에 맞는 연출 방식들이 있습니다.
웹소설에도 웹소설에 맞는 연출이 있습니다.
웹소설 독자들은 그걸 보러, 그걸 느끼러 웹소설 플랫폼에 옵니다.
웹소설에 순문 소설을, 끝내주는 각본을 올린다 한들 관심을 끌지 못하겠지요.
명작 소설을 읽고 싶으면 책을 살 것이고, 끝내주는 각본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하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되니까요.
그것을 말씀해주시려고 추천글을 써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삼 년씩이나 붓을 잡고 있으면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요.
*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게 사실입니다.
문제는 파악한 것 같은데,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여전히 깜깜합니다.
직관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웹소설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가.
3년 전 「남홍여중」을 올렸을 때보다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계속해 볼 생각입니다.
‘하다가 안 되면 다시 변호사 하지 뭐’라는 자세로 시작한 도전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나 과분한 추천글까지 써주시는 독자님이 계시는데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추천 한번 누르고, 댓글 하나 남기는 게 얼마나 성가시고 힘든 일인지 너무나 잘 압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렇기에 이 편지를 쓰면서도 .진눈깨비 님의 추천글을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완전히 설득당했습니다.
*
많이 읽겠습니다.
계속 쓰겠습니다.
건강 챙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 죽어가는 이번 글에 산소호흡기를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언해 주신대로 이번 글이 유료화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여기까지가 과분한 독자의 추천글에 대한 부족한 작가의 답변이었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건강 유념하시고, 하시는 일이 항상, 늘, 언제나, 반드시 번창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칸더브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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