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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끝에 천하를 묻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오채지
작품등록일 :
2013.10.15 00:09
최근연재일 :
2013.11.28 04:0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555,811
추천수 :
20,664
글자수 :
40,174

작성
13.10.17 14:52
조회
27,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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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
글자
10쪽

2. 놈이 돌아왔다

DUMMY

“확실히 사득공이 맞는가?”

“틀림없습니다.”

“놈이 어쩌다…….”

“손목과 팔꿈치와 목의 관절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부러졌습니다. 마치 기둥에 묶어 놓고 망치로 가격한 것처럼 말이지요.”

“둔기를 사용했다는 뜻인가?”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외상이 미약한 것에 비해 골절의 강도가 심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암경(暗勁)을 쏜 듯합니다.”

“암경이라면..... 맨손이었단 말인가?”

“등을 가르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홍 노인이 사득공의 사체를 뒤집어 놓았다. 그러자 왼쪽 옆구리에서 시작해 오른쪽 어깨를 향해 벼락처럼 뻗어 있는 상흔이 보였다. 내장이 삐져나오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 바닥에 흥건히 흘러나온 피의 원인이었다.

정리를 하자면 범인은 사득공의 손목과 팔꿈치 그리고 목뼈를 부러뜨린 후 뒤돌아 등을 그었다. 마지막에 사용한 병기는 거리로 미루어 작은 비수였을 것이다.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요.”

“알다시피 상대는 발도살로 불리는 쾌도일세. 맨손으로 싸웠다면 근접전을 펼쳤다는 얘긴데, 감히 누가 발도살의 전권 속에 뛰어들어 손목과 팔을 부러뜨리고 목뼈까지 부술 수 있단 말인가. 그전에 분명 몸이 두 쪽 나고 말았을 것이네.”

“검을 뽑았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요.”

홍 노인이 아래에서 도갑을 집어다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사득공의 것으로 짐작되는 도갑은 주둥이가 반쯤 터져 나간 상태에서 칼이 사선으로 박혀 있었다.

“사득공은 칼을 뽑지 못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구할 정도 뽑았을 때 자신의 손목과 팔에 가해지는 타격으로 말미암아 칼이 갑자기 방향을 꺾으면서 검집을 찢어 버렸습니다. 이후 목을 가격당하고 등을 베이면서 숨통이 끊어진 것이고요.”

“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짐작하시는 것처럼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몸을 비틀고 꺾고 내지르는 것이 한 동작이라고 할 만큼 거의 동시에 일어나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니까요. 저도 쉬이 믿기지는 않지만, 아무튼 시체는 내가 그렇게 죽었다 말하고 있습니다.”

순검질 칠 년에 포염환이 겪은 살인사건만도 수백 건, 깊은 무리(武理)까지는 몰라도 무림인들의 공방이 어떤 식으로 오고 가는지 정도는 알았다.

때문에 지금 홍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포염환은 한참이나 멍한 상태에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떤 무예를 익히면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가?”

“일종의 금나술(擒拿術)인 것 같은데, 암경으로 뼈를 부러뜨린 것을 보면 분근착골술(分筋錯骨術)에 기반을 둔 내가고수의 박투술(搏鬪術) 같기도 하고. 하지만 박투술이라고 보기엔 동선이 지나치게 짧고 파괴적인 것이…….”

“그래서 대체 어떤 유파의 무예라는 건가?”

“모르겠습니다.”

홍 노인이라고 강호 무림의 무예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다만 수사 범위를 좁힐 수 있도록 작은 실마리라도 달라는 얘기다.

한데 모르겠다고 한다. 홍 노인이 모른다면 정말 아무것도 건질 게 없다는 뜻이다. 이래서야 수사를 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할까요?”

육월성이 물었다.

포염환은 대답 대신 홍 노인에게 눈짓을 했다. 나가라는 소리다. 잠시 후 선실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포염환이 말했다.

“무림인들 사이에 일어난 일일세. 끼어들어서 좋을 거 없어. 다른 때처럼 대충 엮어서 종결하게.”

“이번엔 시체가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단서도 없이 무슨 수로 추적을 한단 말인가?”

“수배 방이라도 붙여보면 어떨까요?”

“멍청한 소리! 용모파기에 초립을 그려 넣을 텐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본시 시련과 기회는 함께 오는 법일세. 상황을 굳이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네.”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도 죽기 전에 대포두 자리에는 한번 앉아 보고 죽어야 후손들이 기를 펴고 살 터인데, 안 그런가?”

“아이고, 소인같이 미천한 것이 어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요?”

손사래를 치던 육월성이 슬그머니 물었다.

“그야 자네의 수완에 달렸지.”

포염환이 품속에서 은전 열 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덧붙이기를.

“입을 사려면 돈이 필요할 것이네.”

다음 날 뇌주반도에는 순검 포염환이 평소 친분이 있던 무림고수를 고용, 사득공을 함정에 빠트려 죽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더불어 머지않아 추관의 자리에 오를 거라는 말도 있었다.

돈의 힘은 위대해서 사람들은 그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까맣게 몰랐다. 한데 사람들이 몰랐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포염환과 육월성까지도.


인적이 끊어진 깜깜한 밤.

선주 당개심이 홍 노인의 집을 찾았다.

“이게 뭔가?”

“동생이 정육을 취급합니다. 어린 송아지가 들어왔다기에 몇 근 끊어 와봤지요. 특별히 좋은 부위로 골라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소고기 먹고 입을 닫아라?”

“역시 알고 계셨군요.”

당개심은 그는 놀라지 않았다.

홍 노인과 알고 지낸 세월이 벌써 십수 년, 그가 어떤 재주를 지녔는지 차고 넘치도록 알았다. 그의 앞에서 시체에 장난질을 한다는 건 고양이가 보는 앞에서 생선을 감추는 것과 같았다.

“팔과 목을 부러뜨린 솜씨에 비해 칼질이 형편없었지. 척조구(隻爪鉤)로 찢은 것 맞지?”

척조구는 막대기에 갈고리를 매단 것으로 뱃사람들이 큰 물고기나 짐짝을 찍어 올릴 때 쓰는 물건이다.

“왜 모른 척하셨습니까?”

“큰 녀석이 제법 영특하다지?”

“아비와는 다르지요.”

“잘 키우시게. 상을 보아하니 한 자리는 단단히 해먹을 녀석 같으니.”

“어르신…….”

“죽은 색마놈 따위를 위해 선량한 부자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네. 하지만 눈감아 주는 건 이번 한 번뿐일세. 다시는 살인을 하지 말게!”

마지막 한마디는 살기가 뻗칠 정도로 서늘했다. 당개심은 그 자리에서 허리가 부러지도록 대례를 올렸다.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 얘긴 그쯤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말해 주겠나? 대체 자네같이 선량한 사람이 어쩌다 살인을 한 겐가?”

“짐작하시겠지만 초립인은 단지 그들의 팔과 목을 부러뜨려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놓기만 했습니다. 그러곤 제게 이르길 배가 뭍에 닿거든 관아에 넘기라고 했죠.”

“그랬군.”

“저는 남자들과 함께 갑판에 있는 사득공의 수하들부터 밧줄로 묶었습니다. 한데 갑자기 선실 안에서 비명이 들리지 않겠습니까? 서둘러 달려가 보니 사득공이 등을 찢긴 채 죽어 있고, 여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척조구를 들고 있더군요. 살인의 충격 때문인지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습니다. 배 안에서 사람이 죽었으니 관아에 고하기는 고해야 할 텐데, 그랬다간 그 여자는 옥사를 면치 못할 것이고, 고하지 않자니 본 사람들이 너무 많고. 무엇보다 바깥에 있는 놈의 수하들이 걱정되었습니다. 솔직히 관에 넘긴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잖습니까?”

뇌주 사람들은 도둑과는 제삿밥까지 나눠 먹어도 관리가 지나가면 뒤에서 침을 뱉는다. 사득공의 수하들은 분명 부패한 관리를 구워삶아 한 달도 되지 않아 어떻게든 풀려날 게 분명했다. 돈 앞에서 죄의 경중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사득공의 수하에게 동생을 잃은 사내가 기왕 이렇게 된 거 바깥에 있는 놈들도 모두 죽여 버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어차피 죽어 마땅한 놈들이지 않냐면서.”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단 말인가?”

“휴우,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달이 유난히 밝더라니, 지금 생각하면 꼭 귀신에게 홀린 것도 같고. 아무튼 분위기에 휩쓸린 나머지 저와 남자들은 갑판으로 나와 놈의 수하들을 하나씩 목 졸라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선객들이 놀라지 않던가?”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데 놀란 와중에도 외려 선객들이 앞다투어 나서서 놈들이 버둥거리지 못하도록 사지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놈들이 죄 없는 뱃사람들을 세 명이나 베어 바다에 처넣는 걸 보고 피가 솟구친 것이죠.”

“허어……!”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오십여 명이나 되는 선객들 모두가 살인을 공모하다니. 깜깜한 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범선 위에서 그토록 살벌한 살육이 자행되었다는 말에 홍 노인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이후 제가 나서서 선객들을 설득했습니다. 오늘 배 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열지 말라고. 하면 나머지는 내가 모두 알아서 하겠다고.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죽는 거라고.”

“일이 그렇게 되었던 것이군.”

홍 노인은 조용히 소고기를 끌어당겼다.

굳어 있던 당개심의 표정도 그제야 풀렸다.

“한데 자네가 모르는 것이 한 가지 있네.”

“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득공은 남색(男色일세.”

“하면 왜 여자를……!”

“그거야 나도 알 수 없지. 알 필요도 없고.”

본시 무림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르면 모를수록 좋다. 홍 노인은 지금 간밤에 범선에서 일어났던 일을 무림의 분쟁으로 보고 있었다.

“실은 저도 한가지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음?"

"싸울 때 아주 잠깐이지만 초립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아는 얼굴이더군요. 그는...... 적산(狄狻)이었습니다.”

“뭣!"

홍 노인이 두 눈을 치떴다.

그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물었다.

"틀림없었나?"

"많이 변했지만 분명 적산이었습니다.”

“적산......! 적산이 돌아왔단 말이지. 적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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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6. 마무리를 지어야지 +102 13.11.28 21,489 478 6쪽
11 10. 세상과 싸우는 법 +27 13.10.29 23,848 833 7쪽
10 9. 세상과 싸우는 법 +19 13.10.28 23,332 841 9쪽
9 8. 해신(海神)의 혈육 +34 13.10.25 22,249 843 7쪽
8 7. 해신(海神)의 혈육 +27 13.10.24 22,236 858 7쪽
7 6. 다시 북쪽으로 +27 13.10.23 23,450 869 8쪽
6 5. 다시 북쪽으로 +24 13.10.22 24,900 837 9쪽
5 4. 술 한잔 할래요? +18 13.10.21 25,823 795 10쪽
4 3. 술 한잔 할래요? +26 13.10.18 26,758 827 8쪽
» 2. 놈이 돌아왔다 +21 13.10.17 27,632 903 10쪽
2 1. 놈이 돌아왔다 +27 13.10.16 34,055 929 9쪽
1 0. 서장 +30 13.10.15 33,923 71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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