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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퐁퐁 후 사업 천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2.04.12 19:04
최근연재일 :
2022.05.04 09: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23,432
추천수 :
340
글자수 :
89,424

작성
22.04.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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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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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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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결혼 3년차 숫총각 김상식(3)

DUMMY

황제 바이오케미컬의 연구소장 이홍남이 야심한 시각 회사에 남아 공모전 출품작을 뒤적거렸다.

사업계획서.

프로젝트 제안서.

상품 개발 아이디어.


“어휴.”


한숨이 나온다.

망했다.

모조리 쓰레기다.

그가 투덜거렸다.


“하··· 이 따위 쓰레기 중에서 1등을 어떻게 뽑냐.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뿐인데.”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행사였다. 사내 공모전으로 제약회사의 신상품을 발굴하라니. 이 따위 지시를 내린 놈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없었다.

사내 공모전을 기획한 주동자가 황제 그룹 전략기획본부장 황근철이기 때문이다.


황근철.

황제 그룹 황제성 회장의 첫째 아들.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실무 경험 없이 임원진에 낙하산으로 꽂혔다. 그래서인지 황근철은 부하직원에게 비현실적인 성과를 요구한다.

회사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본인은 모르니까.

자기는 안락한 임원 사무실에 들어앉아 결제 아이콘만 누르면 되니까.

탁상공론.

똥은 전부 아랫사람이 치운다.

이홍남 연구소장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맨들맨들한 대머리에 주름이 잡혔다.


“망할 회사,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이런 뻘짓이 대체 몇 번째야?”


안타깝게도 그가 회사를 그만두겠다며 투덜거리는 행위 또한 몇 번째인지 세기 어렵다.

직장인의 푸념 같은 것이다. 여기를 그만두면 딱히 갈 곳도 없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재취업이 힘들다.

젊은 시절 도전정신과 열정이 넘치던 과학자 이홍남은 어느새 직장생활에 닳고 닳아 무기력한 회사원이 되었다.

그가 공모전 출품작 목록을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어디보자··· 대충 아무 거나 1등 만들고 수상자랑 싸바싸바해서 회식비나 타내야겠··· 엉?”


도전적인 제목이 눈에 띄었다.


[탈모 치료제 개발의 건]

[작성자 : 경영지원팀 김상식 대리]

[첨부파일 : 신약 물질 합성법, 설계도, 독성예측···]


이홍남이 고개를 갸웃했다.

괴상하다.

작성자가 경영지원팀 김상식이다. 경영지원팀 소속이라면 문과 출신이다. 대학교는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혹은 회계학과 정도 졸업했겠지.

문과가 탈모 치료제를?

이런 사람들이 제출하는 아이디어의 수준이야 뻔하다. 각종 미사여구를 총동원해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지만 내실은 텅 비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김상식은 첨부파일에 탈모 치료제 합성법과 설계도까지 담았다. 심지어 머신 러닝과 mRNA 기술을 활용했단다.

미쳤나?

사기꾼인가?

문과 출신이 탈모 치료제를 이렇게 쉽게 개발한다고?

혹시 김상식 대리가 그 유명한 최 비서의 전남편인가? 와이프가 황근철이랑 바람을 피우는 동안 본인은 한 번도 못 해봤다는?

동정심이 일었다.


“이 친구가 퐁퐁 당한 충격 때문에 정신이 나갔구나. 불쌍해라. 읽어는 줘야겠다.”


이홍남 소장이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 이건 진짜야!”


-


나는 회사에 다시 출근했다. 사내 공모전에 참가하려면 직원 신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팀장은 나를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은근히 퇴사를 압박했다.


“상식 대리, 사직서 쓴다고 하지 않았어? 결재 올려. 승인해줄게.”

“조금만 이따가요.”

“왜? 퇴직금 더 받으려고?”

“네.”

“크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알았어. 그렇게 해.”


나는 팀장의 입장을 이해한다. 소속 팀원이 회장의 아들과 소송을 벌였다. 심기가 불편하겠지.

아마 팀장은 황근철에게 매일매일 불려가 조인트를 까일 것이다. 나를 얼른 쫓아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회사원은 도덕보다 권력이 우선이니까.

반면 후배들은 나를 응원해준다. 요즘 신입사원들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대리님, 회사 그만두지 마세요. 그만두면 지는 거예요. 끝까지 버텨서 월급 쪽쪽 빨아먹고 20년 근속 포상금까지 타세요. 그게 진짜 복수예요.”


내가 지그시 미소지었다.


“응원 고맙다. 하지만 여기에 오래는 안 있을 거야. 조만간 그만둬야지. 회사 밖에서 할 일이 많거든.”

“뭐 하시게요? 치킨집? 그러지 마시고 저랑 같이 코인 거래소 창업하실래요? 요즘 그쪽이 돈 겁나 많이 번대요. 미녀 여배우랑 결혼도 하고.”

“미녀 여배우?”

“차연주 아시죠? 모델 출신 배우. 얼마전에 암호화폐 투자사 대표랑 결혼했잖아요. 어때요? 대리님도 저랑 같이 코인으로 인생역전 콜?”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아침에 출근해 저녁까지 농땡이를 피웠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누구도 나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뒤, 드디어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경영지원팀 김상식입니다.”

“아··· 상식 대리? 나는 바이오 연구소의 이홍남 소장입니다. 한번 만나고 싶은데. 시간 되나요?”


-


같은 회사의 직원들이 개인적인 사유로 만날 때는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약속 장소로 잡아야 한다.

혹시라도 다른 직원의 눈에 띄면 소문이 돌 수도 있으니까.

나는 아무 장소나 상관이 없었고, 이홍남은 자기 집 근처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는 9시 이후 퇴근이 일상이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동탄.

서울 근교의 신도시.

늦은 밤, 아파트 상가의 꼬치구이집에서 그를 만났다.

이홍남이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는 배가 나오고 볼살이 퉁퉁했으며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가 모자를 벗었다.

나는 인사치레도 잊고 신음부터 흘렸다.


“헉! 소장님, 머리가···”


이홍남은 머리통 왼쪽 절반에만 모발이 나 있었다. 오른쪽은 대머리였다. 광인 컨셉의 프로레슬링 선수 같았다.

그가 민망한 듯 웃었다.


“발모제 샘플을 발랐어. 일종의 임상 시험이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품을 부하직원에게 시험할 수는 없잖아.”


아아···

살신성인이다. 위염의 발병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헬리코박터균을 직접 섭취했다는 배리 마셜 박사가 떠올랐다.

그래도 발모제를 바를 거면 머리통 전체에 다 바르지. 머리카락이 반쪽만 자라니까 엄청 흉측하네.

그가 모자를 다시 쓰고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능숙했다. 이 술집에 자주 와본 듯했다.

이홍남 소장은 고향이 인천이고 직장은 서울이다. 동탄에 아는 사람은 와이프와 자녀뿐이다.

그렇다면 이 술집에 누구랑 왔을까?

답이 뻔히 보인다.

혼자 왔겠지.

저녁 먹으러.

크흑.

이홍남 소장이 말했다.


“내 머리를 봐서 알겠지만 상식 대리가 보내준 탈모 치료제의 효능은 진짜였어. 나도 눈을 의심했어. 머리카락이 진짜로 자라나다니. 나는 서른 살에 이미 대머리였거든.”

“고생 많으셨습니다.”

“모근이 죽었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의사가 예전에 판정을 내렸지. 모발 사망선고. 그런데도 자네가 개발한 약을 바르고 머리카락이 다시 나왔어. 자네 혹시 천재야?”


내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천재의 어깨에 올라탔을 뿐입니다.”

“겸손하기는. 더는 묻지 않을게. 그쪽 나름대로 비밀이 있을 테니까. 내가 상식 대리를 만나자고 한 이유는 따로 있어.”


이홍남 소장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공모전 참가 취소해.”


내가 물었다.


“예?”

“탈모 치료제 설계도는 상식 대리가 다시 가져가. 그리고 회사 그만둬. 나는 모른 척할 테니까. 우리 사무실에 남아있는 자료도 전부 지울 거야.”

“왜 그런 제안을···”


이홍남이 나를 타일렀다.


“탈모 치료제는 금광이야. 돈 나오는 화수분이라고. 그런 물건을 회사에 넘기겠다는 거야? 겨우 공모전 상금 백만 원을 받고? 황제 그룹이 자네한테 해준 게 뭔데?”

“으음···”

“소문 들었어. 황근철 본부장이 자네 와이프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며? 상식 대리는 아직도 숫총각이고. 그런데도 그 놈 배불리는 짓을 하고 싶어? 대체 왜 공모전에 참가한 거야? 무슨 생각으로 탈모 치료제를 공개했냐고?”


나는 이홍남 소장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공모전에 제출한 자료를 모두 파기할 테니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든 다른 제약회사에 설계도를 넘기든 해서 큰 돈을 벌라는 충고였다.

감동적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타 계열사 직원을 위해 자신이 승진할 기회를 포기하다니.

이홍남 소장은 오랜만에 마주한 성인군자다.

하지만 그래서 의문스럽다. 요즘같이 냉혹한 세상에 이런 성인군자가 존재할 수 있는가?

내가 물었다.


“소장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해가 안 되네요.”

“뭐가?”

“소장님께서 제 설계도를 이용해서 탈모 치료제를 상용화하면 소장님은 황제 바이오의 사장 자리에 오르실 수 있습니다. 연봉 수십 억에 스톡옵션까지 받으실 겁니다. 그런데 왜 기회를 버리려 하십니까?”


이홍남이 눈을 감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소주를 원샷한 뒤 입을 열었다.


“나도 퐁퐁남이야.”

“앗···”


연구소장이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나는 자식이 둘이야. 딸 하나 아들 하나. 딸은 나를 꼭 닮았고, 아들은 근처 스포츠센터의 수영강사를 닮았지.”

“아아...”

“나는 와이프가 바람을 피운 줄 알면서도 딸을 위해 가정을 지켰어. 이혼 가정에서 딸을 키우고 싶지 않았어. 부모의 이혼이 자녀의 정서 발달에 안 좋다고 하니까.”

“저런...”

“딸 때문에 사는 거야. 다른 이유는 없어. 그게 아니라면 나는 삶을 진작에 포기했을 거야.”

“소장님···”


그가 촉촉한 눈길로 나를 보았다.


“상식 대리에게 동질감을 느꼈어. 나도 자네의 고통을 알아. 그래서 탈모 치료제의 존재를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어. 그건 황근철의 몫이 아니야. 자네 몫이야. 그게 정의야. 나는 양심을 버리지 못해.”

“그러셨군요.”

“회사를 떠나 새출발해. 가서 부자가 돼. 나처럼 살지 말라고! 크흐흑···”


그가 안경을 벗고 냅킨으로 눈물을 닦았다. 싸구려 냅킨이 금방 젖었다. 어린 종업원이 무슨 일인가 하며 다가오다가 중년 남성의 눈물을 보고는 뒷걸음질쳤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말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소장님의 충고를 따를 수 없습니다.”


이홍남이 발끈했다.


“어째서?”

“그 또한 제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계획?”


내가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 호구가 아닙니다. 전처에게 병신같이 끌려다니던 김상식은 이혼과 함께 죽었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다 계획이 있습니다.”

“무슨 계획인데?”

“나중에 알게 되실 겁니다. 소장님은 업무를 정상적으로 진행해주세요. 탈모 치료제의 효능을 황근철에게 보고하세요. 그것이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저··· 정말인가?”

“그리고 황근철에게 이 말도 전해주세요.”

“어떤?”


이번에는 내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공모전에 제출한 탈모 치료제보다 상품성이 더 뛰어난 약물이 저한테 있다고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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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두 번째 무기(1) +3 22.04.24 1,202 19 11쪽
12 퐁퐁남이 싸움을 잘함(3) +1 22.04.23 1,217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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