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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거사 님의 서재입니다.

흑도(黑道)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베타거사
작품등록일 :
2014.01.25 00:07
최근연재일 :
2015.01.19 23:43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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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793
추천수 :
38,451
글자수 :
21,493

작성
14.02.01 22:51
조회
37,465
추천
1,269
글자
8쪽

第 一章. 갔던 길을 가다.

DUMMY

“살려, 살려주십쇼. 제발!”

족제비상의 청년이 눈물 콧물을 짜며 애원을 한다. 사지를 묶여 버둥거린다. 손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엽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걸음 성큼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 잘못하면 다 잘린다.”

어디 한 군데를 자른다는 살벌한 말을 하는 것치곤 지나치게 태연하다. 장내에 모인 이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숫제 악귀가 인간의 탈을 쓰고 환생한 것 같았다. 허리춤의 칼을 뽑아 그대로 내려친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고 깔끔한 발도였다.

“으아아악!”

이삼과 기태의 돈을 뺏은 청년, 강권은 불에 데는 화끈한 통증과 심연에서부터 솟구치는 공포에 마을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왼손 약지가 툭 떨어지며 선혈이 물컹물컹 배어나온다. 소년은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발악하는 그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소곤거렸다.

“그러게 왜 내 돈에 손을 대고 그래. 좋은 공부 했다고 생각해라.”

등을 툭툭 토닥여주곤 바짝 주눅이 든 사내들을 일견한다. 청협방 식구 전원, 열셋이다. 방금 손가락이 잘린 강권까지 합치면 열 넷이었다.

“여기 근처에 적당하고 좋은 곳 있나.”

“예? 어, 어디 말씀이신지.”

아직 이름도 잘 모르는 사내가 덜덜 떨며 대답하자 현엽은 피식 웃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기방. 한 식구가 됐는데 술 한 잔 해야지.”

“아, 예. 예에.”

“왜. 싫어?”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원하지도 않았는데 졸지에 현엽의 수하가 된 그들이다. 기녀 기둥서방 하나가 단골 기루로 일행을 이끌었다.


* * *


어색한 광경이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소년이 상석에 앉고 험상궂은 사내들은 눈치를 살피며 젓가락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 아주 잘 생긴 소협이시네. 애들을 부를까요?”

총관이 콧소리를 내며 들러붙자 현엽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나중에.”

여인이 흘끗 기둥서방을 바라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 그녀를 소년이 불러 세웠다.

“가득 채운 술동이 하나. 대접도 가져와.”

이내 식탁 위에는 술동이와 대접이 올려졌다. 현엽은 그의 새 수하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칼을 뽑아 주저 없이 팔뚝을 그었다. 살이 벌어지며 붉은 피가 쪼르륵 술동이로 흘러들어갔다.

“흑도에 몸담은 놈들이 설마 이 정도 배짱도 없는 건 아니겠지?”

“무, 물론입니다.”

다들 애써 호기롭게 외친다. 차례차례 팔을 그어 핏방울을 떨어뜨린다. 마지막 한명까지 끝내자 현엽은 칼집으로 술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 술동이 바닥을 한손으로 잡고 들어 올려 그대로 대접에 들이부었다. 커다란 술동이가 마치 뭔가에 사로잡힌 듯 공중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며 청협방의 사내들은 속으로 감탄을 했다. 무공 고수가 아니면 보일 수 없는 기예였다. 술을 채우고 대접을 든다. 현엽은 눈을 빛내며 비장한 목소리로 결의를 다졌다.

“나 현엽은 청협방의 대형으로서 부하들과 함께 울고 웃는다. 내가 만약 이를 어기면 자라의 새끼요, 고자가 될 것이며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말을 마치고 술을 꿀꺽꿀꺽 들이킨다. 깨끗이 비운 후 다시 채워 옆 사람에게 넘긴다. 본디 그가 의혈방에 입방했을 때 했던 의식이었으나 청협방의 사내들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다만, 삼국지의 도원결의나 과거 몽고족의 칸들이 나눴다는 형제의 연을 자신이 그대로 맺는 것만 같아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 오상호(吳相好)는 청협방의 형제들과 함께 울고 웃는다. 내가 만약 이를 어기면…….”

열네 잔째가 돌아가고 결의가 끝났다. 술동이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술이 약한 자들은 벌써부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청협방의 전 두목, 지금은 부두목이 된 주걱턱의 청년 오상호가 현엽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두목.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선선히 답했다.

“하던 거 그대로 해. 너무 심하게는 말고.”


* * *


근 오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현엽은 무한성에 터를 잡고 앉아 조용히 무공을 갈고 닦으며 웅비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협방은 그새 무한성 제일의 흑도방파로 성장해 방도 숫자만 일백을 넘겼다.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흑도 방파들과 충돌이 있었고 사상자도 제법 나왔으나 결국 약관도 되지 않은 방주가 나서며 말끔히 정리해버렸다. 비록 무한과 호북 일대에서나 어렴풋이 알려진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일문일살(一問一殺)이라는 별호도 얻었다. 사람을 벨 때가 되면 꼭 한 가지 질문을 던지는 특유의 습관 때문이었다.

방주에게서 무공 찌꺼기나마 주워 배운 오상호, 기태 등은 생사결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실력을 온전히 펼쳐낼 수 있는 일류의 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숱한 전투의 경험과 배운 바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이류의 무인이 되어있었다. 현엽은 청협방을 다섯 개의 대(隊)로 구성해 스무 명씩 배치하고 이제 어느 정도 무인의 태가 나는 다섯을 뽑아 대주에 앉혔다. 사업 역시 관아에서 제재를 받을 수 있는 불법적인 인신매매는 가급적 금하고 고리대도 이율을 낮추어 적당한 수준에서 등골을 뽑아먹었다. 짧다면 짧고 길면 긴 시간이었지만 처음의 비루한 파락호 집단이 엄연한 세력과 규율을 갖춘 흑도 방파로 성장한 것이었다.

“흠.”

약관의 청년이 눈을 뜬다. 신광이 안으로 갈무리되며 잔잔한 눈동자가 드러난다. 불과 오륙년 전까지만 해도 유리걸식하던 거지 소년은 무한성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비록 깨끗하게 모은 돈은 아니었지만 더러운 돈도 돈이라고 생각했기에 별로 개의치 않는 그였다. 밋밋한 흑의는 문양 하나 없었으나 상질의 면포를 썼고 뙤약볕에 나가 고된 일을 할 일이 없었기에 피부는 잡티하나 없이 뽀얗다. 반면 산맥처럼 우뚝 솟은 코와 짙은 눈썹, 야무진 눈매는 그의 사내다움을 한껏 강조해주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소주천을 하는 것은 이미 수년 째 이어져온 일상이었다. 앉은 채로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젓가락 하나를 집어 든다. 팔을 슬쩍 휘젓자 파공성이 터지며 병풍이 길게 베어진다. 임독양맥을 타통하고 신물합일의 경지에 이른 절정고수만이 할 수 있는 기예, 외기방사(外氣放射)였다.

“한 육 할쯤 되찾았나. 나쁘지 않아.”

다른 누구도 아닌 강호십대고수의 육 할이다. 그가 비록 십객의 말석이었다곤 하지만 그 정도 실력만으로도 어지간히 이름난 고수쯤은 우습게 데리고 놀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제 더 내공을 쌓고 전생의 짐승 같은 실전 감각만 되돌리면 천하에 그를 대적할 자는 열손가락 이내로 줄어든다.

“그 다음은…….”

반선경(半仙境). 인간이 아니라 반쯤 신선의 경지에 들었다고 하여 붙은 그 이름. 현엽은 신선 같은 걸 좋아하지 않았으나 달리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전생에서 그 경지에 들었던 이는 세 명이 있었고, 강호에서는 그들을 십객 안에서도 따로 분리시켜 무적삼객(無敵三客)이라 불렀다. 일검, 일도, 일선의 이남 일녀.

“지금쯤 어딘가에 있겠군.”

그들을 생각하니 피가 들끓는다. 치욕을 당했지만 갚아주진 못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좀이 쑤신다. 어서 빨리 강호로 나가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봐.”

“예, 방주.”

문이 열리고 건장한 사내가 공손히 부복한다. 이름이 뭐였더라.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의 부하인 것만은 확실하다.

“대주들 집합시켜.”

“존명!”

다시 문이 닫힌다. 청년은 말없이 애도(愛刀) 혈음(血飮)의 도병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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