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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링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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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09 17:59
최근연재일 :
2024.02.20 12:33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03
추천수 :
0
글자수 :
161,628

작성
24.02.2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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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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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우주인

DUMMY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자유낙하를 또다시 당하게 된 정강준이 이를 악문다.


그러나 정강준의 머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내리꽂히기 직전, 시간이 다시 얼어붙는다. 막힌 굴다리 안에 울려 퍼지던 소음들도 일제히 정지된다.


죽음 같은 정적이다. 아니 어쩌면 죽음보다 더한.


첫날 시간이 멈췄을 때 떨어뜨렸던 휴대전화가 계속 공중에 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배2에게 잡혀 허공에 들어 올려져있던 정강준 역시 멈춰 서 있다.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 정강준이 후배2의 그립을 풀고 다시 땅에 발을 딛는다. 사뿐히, 꼭 달에 착륙하던 사람처럼.


뭐냐고.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정강준에게도 이것은 미지의 영역이다. 이름 모를 행성에 도착한 우주인과 마찬가지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시간정지가 풀린다. 마치 악마가 돕고 있는 것처럼. 정지시간이 지난번보다 짧아진 것 같지만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홱!


백스텝을 밟은 정강준이 후방으로 화살처럼 쏘아져 나간다. 거리가 벌어지면서 겨우 스트레이트를 끼워 넣을 간격이 생긴다. 후배 2는 들어 메치려던 정강준의 몸이 갑자기 사라짐에 따라 균형을 잃고 손으로 땅을 짚는다.


투닥! 퍽퍽!


후배2는 정강준의 주먹을 네 차례나 허용하고 완전히 뻗어 버린다.


...결과적으로 제일 많이 맞았어.


오태영이 구상하던 양상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정강준은 도취되지 않는다. 홱 고개를 돌려 다시 이현민을 찾는다. 굴다리 그늘 속에 휘둘러지면서 안광으로 섬뜩한 빛의 선을 그어낸 눈동자의 색은 붉다. 유품상자 속 시험관의 액체처럼.


정강준이 후배1과 2를 정리하던 사이, 이현민은 다시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 하지만 정강준은 뒤에서 사냥감을 덮치는 맹수처럼 이현민에게 올라타며 다시 쓰러뜨린다. 허리를 팔로 끌어안고 자신의 체중을 가해 바닥에 내리 꽂듯이.


이때 이마로 시멘트 바닥을 들이받은 이현민의 무장이 다시 해제된다. 배운 적은 없는데도 정강준은 본능으로 주짓수와 MMA에서 터틀 포지션Turtle Position이라고 하는 자세를 취하고 상대를 찍어 누른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현민의 뒤통수에 체중을 실은 주먹을 꽂아 넣는다.


턱.


그러나 정강준에게서 출발한 주먹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오태영의 손이 정강준의 손목을 단단히 붙들고 있다.


방해를 받은 정강준이 뒤를 돌아본다.


그 순간, 굴다리 밖에서 임정권이 들고 달리던 카메라렌즈에 반사된 햇빛이 어둠 속으로 쏘아져 들어온다.


공교롭게도 그 손바닥만 한 빛살은 개의 혀처럼 정강준의 얼굴을 핥으며 미끄러져 지나간다.


자신이 가르친 선수의 스파링이나 시합이 끝나면 강박적으로 그 동공을 검사해가며 뇌 손상 여부를 체크하던 오태영의 눈에 정강준의 동공이 박혀 들어온다.


마치 운명처럼.


굴속의 어둠을 마음껏 빨아들인 정강준의 동공은 한껏 확장돼 있다.


오태영의 기억에, 사람의 동공을 그렇게 확장시킬 수 있는 감정 상태는...


기쁨 즐거움 희열 쾌락.


물론 오태영은 그것이 오답이기를 바라지만, 고개를 돌려 오태영을 노려보는 정강준의 입꼬리는 명백히 하늘을 향해 올라가 있다. 악마적인 광경이다.


“미친...!”


정강준에게로 달려오던 사이 가빠져있던 숨이 확 튀어나오면서 그 뒤의 말을 집어삼킨다.


그럼에도 정강준은 멈출 마음이 없어 보인다. 오태영이 정강준의 목에 팔을 감고 우악스럽게 잡아당겨 이현민에게서 떼어놓는다.


“작작해! 이 미친 새끼야!”


정강준을 바닥에 굴려 쓰러뜨린 오태영이, 마치 애제자의 비리를 알게 된 파황신군 현재양처럼 포효한다.


정강준의 사악한 본능은 그 소리에도 반응한다. 방해자를 없애야겠다는 일념으로.


오태영보다 2초나 늦게 현장에 도착한 이성규가 신음소리를 낸다.


레슬링만큼은 아니어도 유도의 룰과 경기도 잘 이해하고 있던 이성규는, 정강준이 유도가들로서는 정말 벗어나기 어려운 덫을 쳐놓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유도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만 같던, 끔찍한 트랩.


유도의 반칙인 하반신 태클을 감추기 위해 공중에 던진 동전,

전방낙법을 칠 것을 예상하고 이현민에게 바싹 밀착해 붙던 움직임,

그리고 결론처럼 결행된 싸커킥.


유도 룰의 맹점을 파악하고 대담한 전술을 구상하고 실행함으로써 언뜻 봐도 체급차이가 상당한 강적을 제압했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재능이다.


만일 자신이 유도가였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었을 것 같은 올가미다.


유도가 아닌 레슬링을 하기를 잘했다는 안도와 함께, 언젠가 레슬링이 정강준에게 연구됐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한 상상에 불안해지기도 하는 순간.


그런데 저건 뭐야? 지금 실신한 놈 타고 앉아서 뒤통수를 찍으려던 거야? 죽일... 작정이었나.


오태영이 처음으로 정강준을 체육관에 데리고 왔던 날, 우리 과가 아닌 것 같다며 긴가민가해하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어!?”


이때 이성규의 놀람은 극에 달한다. 정강준이 오태영에게 주먹을 날리며 달려들었기 때문.


동양에서 발원한 무술들은, 사실상 무협지 식의 배분과 서열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선후배 관계가 엄격히 계층화되어있다. 그저 먼저 입문했다는 것만으로도 선배들은 실력여하와 관계없이 지도자적인 지위를 갖는다. 버릇이 없다고 후배를 질책하고 처벌해도 감히 항거하지 못한다.


이에 비해 복싱과 레슬링 등 서양에서 유래한 투기 종목 선수들은, 이러한 동양적 질서와 위계의 영향에서 얼마간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기술을 가르쳐준 사범에게 주먹을 날리는 행위는 복싱에서든 레슬링에서든 공히 패륜을 의미한다.


“이게...!”


정강준에게 원투를 가르친 것은 오태영이다. 완성되지 않은 원투를 어렵지 않게 피한 오태영이


짝!


정강준의 뺨을 때림과 동시에 스텝을 밟아 몸을 주먹간격 밖으로 빼낸다.


그럼에도 정강준은 계속 달려든다. 그런 정강준의 공격을 사이드 스텝으로 홱 따돌리면서


푹퍽!


정강준의 복부 같은 자리에 보디블로를 두 대 연속으로 꽂아 넣는다. 정말 어지간히 기량차가 나지 않는 이상은 구사할 수 없는 기술이다.


사실 복싱의 복부공격은, 시합에서 써먹기 힘든 중급기술이다. 배를 노리고 주먹을 낼 때는, 보디를 치는 쪽 팔로 가드하고 있던 모든 곳을 다 노출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상당한 용기와 경험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런 복부공격은, 맨주먹일 때 더욱 구사하기 어려워진다.


심지어 상대가 두꺼운 상의를 입고 있는 경우에는, 모처럼 날린 주먹이 옷 때문에 무위가 되는 경우까지 있다. 글러브를 끼고 맨몸을 때릴 때와는 간격과 타격면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맨주먹으로 경험을 쌓는 가라데의 복부공격과는 다르다. 복싱의 복부공격을 실전에서 쓰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맨주먹만의 간격을 다시 습득해야 한다.


흔히들 명치라고 하는 곳은 급소가 아니다. 그곳에서 손가락 세 개 만큼 아래에 있는 횡경막이 복부의 급소다. 이곳에 타격을 허용하면 끔찍한 통증이 오는 것은 물론이고 숨도 쉴 수가 없게 된다.


그곳에 연속으로 정확히 주먹을 허용한 정강준이 단박에 배를 끌어안고 주저앉는다. 복싱의 복부공격을 당한 사람은 대체로 비명을 지르지 못한다. 통증이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정강준이 바닥에 쓰러진 시각은 정확히 11시 23분.


고작 2분 사이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이성규가 임정권에게 눈짓을 한다.


만일 정강준이 회복을 하고 일어나서 다시 공격을 감행할 경우, 그래플링으로 제압해 바닥에 눌러 놓으라는 신호다.


그렇지만 임정권은 알았다고 고개까지 끄덕여놓고 엉뚱한 짓을 한다. 아파서 배를 움켜쥐고 굴러다니던 정강준을 자기 무릎에 눕히고 토닥토닥.


“강준아 좀 진정해봐. 너 진짜 왜 그래...?”


애써 보낸 사인이 빗나가자 이성규는 한숨을 쉰다.


아이고 이 멍청한 것아, 아예 부축을 해주지 그러냐. 왜? 사제대결 2차전 시켜보게?


미쳐 날뛰던 정강준에게서 마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감지한 오태영도 거친 숨을 내쉬며 이마에 손을 짚고 한숨을 내쉰다. 발아래 있는 모든 것을 꺼뜨리고 무너뜨릴 것처럼 모든 체중이 실려 있는 한숨이다.


오태영은 작게, 이성규에게만 들리게 중얼거린다.


“...미친 개였어...”


분노와 후회가 가득한 얼굴이다. 유일한 전인에 대한 실망감이 굴다리의 어둠 속으로 숨김없이 쏟아져 나온다. 알바를 해서 유지를 해야 하는, 껍데기만 남은 체육관에서 어렵게 거둔 제자였는데.


그 심사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이성규가 두툼한 손으로 오태영의 목뒤를 주무르고 어깨를 토닥인다.


“누군지 모르고 그랬을 거야. 우리 마스크 끼고 있었잖아.”


그러나 목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 오태영의 생각.


임정권은 임정권대로, 오태영의 내심이 짚인다.


턱은 천국, 복부는 지옥.


복싱에 입문하게 되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격언이다.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당하는 일은, 일반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폭력의 양태 중 하나다. 하지만 복싱선수들은 그것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다.


턱은 천국. 턱을 맞으면 고통이 없다. 대신 뇌에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 손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턱의 맷집에는 한계가 있다. 주먹을 허용할수록 턱이 약해지는 거다. 맷집이 바닥을 드러낸 턱은, 주먹이 살짝 걸쳐지기만 해도 그 소유자의 몸과 의지를 손쉽게 침몰시켜 버린다.


반면 복부를 맞으면 지옥이라고 할 만큼의 고통을 맛보지만, 오래가는 손상은 거의 없다. 장기가 손상당할 정도로 강한 충격이 아니라면, 배는 맞으면 맞을수록 강해지니까.


패륜의 순간에도 오태영은 정강준의 뺨을 쳤을 뿐, 얼굴에는 맨주먹을 날리지 않았다. 또 간장과 신장 쪽의 급소가 더 때리기 좋은 각이었음에도 굳이 중앙의 횡경막으로 주먹을 넣었다.


임정권의 생각에는, 혹 갈빗대 쪽으로 주먹이 미끄러져 골절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체중을 실은 강펀치도 아니었다. 스텝까지 바꿔가면서 중간 정도 위력의 펀치 두 번을 찔러 넣고 주저앉혔던 것.


강준이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서 죄송하다고 해.


하마터면 참극이 일어날 뻔했던 현장에서, 정말로 생명을 잃을 뻔했던 희생자 이현민이 정신을 차린다. 네 발로 기듯이 몸을 일으킨다. 헐떡인다.


굴다리 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기억은 죄다 어렴풋하고 혼란스러워져 있다.


그렇지만 이미 몸 상태가 결과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대결이 패배로 끝났음을 직감한 이현민이 황망한 가운데에서 굴다리 벽에 기대어 선다. 상황을 살핀다.


스키드 마크도 남지 않은, 막막한 자리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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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맹점과 타이밍 24.02.17 10 0 11쪽
31 결전 24.02.17 13 0 11쪽
30 더티 복싱 24.02.16 12 0 10쪽
29 생전 처음 24.02.16 10 0 10쪽
28 달라진 분위기 24.02.15 11 0 10쪽
27 남자 대 남자라서 24.02.15 10 0 10쪽
26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2.15 10 0 10쪽
25 이상한 놈이 나와 24.02.15 14 0 20쪽
24 수상한 회복 24.02.15 15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2.15 13 0 10쪽
22 자퇴하고 싶어요 24.02.14 11 0 10쪽
21 이상하게 엮여 24.02.14 13 0 10쪽
20 피가 붉다 24.02.14 19 0 11쪽
19 첫 다운 24.02.14 14 0 10쪽
18 첫 스파링 24.02.14 11 0 10쪽
17 스파링 세션 24.02.14 17 0 10쪽
16 낙관주의자 24.02.13 11 0 10쪽
15 천원권투체육관 24.02.13 13 0 10쪽
14 무미건조한 24.02.13 15 0 10쪽
13 투명 올가미 24.02.13 18 0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2.11 20 0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2.11 20 0 10쪽
10 똘마니들 24.02.11 12 0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24.02.11 13 0 10쪽
8 살인연습 24.02.11 12 0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2.11 20 0 10쪽
6 아리가또오 24.02.11 15 0 10쪽
5 실험성공 24.02.11 16 0 10쪽
4 책과 사진과 아버지 24.02.11 15 0 10쪽
3 뭐가 들어있는지 24.02.11 18 0 10쪽
2 유산은 백억 24.02.11 18 0 10쪽
1 사라진 아버지 24.02.11 4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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