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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링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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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09 17:59
최근연재일 :
2024.02.20 12:33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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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161,628

작성
24.02.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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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무미건조한

DUMMY

유온이 그러했듯이, 차장검사 역시 처음에는 그 사건이 단순한 싸움 도중 벌어진 사고쯤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사 도중 김명진이 상식 수준을 벗어나는 악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던 것. 물론 여기에는 민다혜의 공이 컸다.


놈이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도리어 고민이 줄었다고 하지만, 정강준은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그저 후견인이 출제할 시험이 걱정이다.


차장검사는 정강준에게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게 용감한 거냐며 웃는다. 그러면서 자신은 애초부터 정강준을 굳게 믿고 있었다고 했지만...


정강준의 입장에서 보면, 문병을 와서 ‘아름다운 일은 아니지만’이라고 말씀하시던 분이 보이는 갑작스런 태도변화가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포주 김명진과 일진 놈들은 물론 그 뒤를 봐주고 있던 폭력배새끼들까지 깔끔하게 정리될 것 같다는 희소식.


그러나 유온은 통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그게 그렇게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라며 걱정을 한다.


깡패들이 버젓이 도박 성매매 마약 등의 불법사업을 벌여 힘없는 사람들을 쥐어짤 수 있는 것은, 깡패들에게 뒷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놈들을 전방위로 엄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치인의 비호를 받는 폭력배들은 절대로 경찰 눈치를 봐가며 장사를 하지 않는다.


고리대금 성매매 장기매매 명함들이 길바닥에 장판처럼 널려 있고,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들이 검색만 하면 불쑥 도처에서 대가리를 들이미는 세상이다. 찾아내라고 하면 일반인들도 다 찾아 낼 수 있다.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거다. 사실 키워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지역 깡패들을 싹 다 잡아넣게 되면, 그 지역 정치인의 돈줄도 잘리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러면 그 돼지는 선거자금을 구할 곳이 막막해지게 되고, 선거에서 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다 자칫 의석이라도 빼앗기게 되면 새끼돼지의 소속 정당에서 보복을 할 것이 자명하다.


차장검사는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 유온의 의견이다. 경찰은 물론이고 검찰 내부에도 적이 생길 것이 분명한 데다, 우리나라 법원은 깡패들을 순식간에 풀어주는 인자함으로 만방에 널리 이름을 떨치고 있으니 훗날 폭력배들에게 보복을 당할 위험까지 있다는 것.


그 얘기까지 듣고 나니 정강준 역시 숙연해진다. 한때 정강준의 아버지게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 아들을 돕고 나선 대가가 그렇게 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온은 이 분이 은퇴 이후에 해외에 나가서 안전하게 노년을 보내실 수 있게 도와야 할 것 같다며 혼잣말을 한다.


유온은 원래 내심을 잘 털어놓는 타입이 아니었고, (정강준의 생각에는) 정말 가식적인 여자지만, 같은 업계 선배라 그런지 차장검사에게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일에 돈 쓰는 건 나도 불만 없어요. 그런데 해외에 주택을 사주게 되면 내가 상속 받을 돈이 얼마 남을지는 알려줘야 될 것 같은데.”


예상치 못했던 반응인지 유온이 입을 헤 벌린다. 그리고는 대답도 없이 코웃음을 친다.


또 정강준의 이마를 찰싹! 때리며 공부나 하라는 잔소리를 한다.


지은 죄 없이 손찌검을 당한 정강준은 당연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꾹 눌러 참고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보답할 수 있도록 그 검사님 인적사항을 잘 기록해달라고 의젓하게 요청한다.


그러자 이제 유온은 아예 소리 내어 웃어젖힌다. 차장검사라는 사람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또 이마를 때린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정강준이 이를 간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아니 후견인이면 내가 고용주 아니야? 그런데 하는 짓을 보면 지가 갑이야? 나는 이제 어른인데! 아니 조금 더 있으면...


조그마한 우리에 갇혀 농락당하게 된 분노가 소년을 뒤흔든다. 그런데 그 분노 끝자락에서, 분노보다 더 위험한 감정이 난데없이 불쑥 고개를 든다.


두고 봐. 짓이겨버릴 테니까...


유온에 대한, 아주 공격적인 욕구다. 정강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사악하고 결이 거친 욕망이다. 그간 김명진이 저질러왔던 범죄들과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아래에 깔려 비명을 지르는 유온을 상상한 정강준은 망상을 쫓아내기 위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 왜 이러지? 이런 적 없었는데.


유온의 눈길은 그런 소년의 표정 변화를 조심스럽게 뒤따라가고 있다.


잠깐만. 그럼 누구 돈으로 그 차장검사라는 사람을 도와준단 얘기야? 내 돈 쓰겠다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았는데. 아빠 돈? 나 말고 다른 유족들한테 준다는 돈? 아니면 저 여자 개인 돈?


그렇게 돈이 많은가? 뭐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그 동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텔레비전뉴스가 요즘은 가장 재미있다.


당사자인 정강준이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에도, 일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세상은 제멋대로 돌아간다.


지상파 특집방송의 여파일까.


일진, 조직폭력배, 경찰, 유력한 사업가, 사학재단 이사장은 물론 현직 국회의원까지 얽히고설킨 카르텔이 연일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저 하나만 가지고는 존속할 수 없어서 서로 뭉치고 유착해 있던 악의 덩굴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들으면서도, 아직 어린 정강준은 그 소식을 보도하는 기자들과 PD들이 용감하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선거가 며칠 안 남은 시점에 한 국회의원이 도덕성 면에서 치명타를 입었다는 기사들을 읽고 참 고소하다는 생각까지는 한다.


대통령도 임기가 5년밖에 안 되는데 국회의원들은 왜 몇 십 년씩이나 해 처먹어? 말이 되나 그게.


한 번만 당선돼도 평생 연금을 받아먹는 것도 괴상하기만 하다.


아니 4년짜리 비정규직 한 번 해먹었다고 늙어죽을 때까지 연금 주는 나라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냐고?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확실히 세상은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


도대체 이게 뭐야? 너무 허술하고 엉성하잖아.


*


어느덧 4월도 중순이다.


사방에는 봄빛이 찬연한데 병상에 누운 정강준의 눈에는 자꾸 인생의 허무가 차오른다.


사람은 자기가 죽을 날을 알 수 없다. 소년의 엄마가 갑작스레 소년을 떠나버렸던 것처럼.


김명진 그 새끼도 자기가 뇌사상태에 빠질 줄은 몰랐겠지. 그렇게 자빠져놓고 난 뒤에 지금까지 저질러왔던 악행들이 전부 다 언론에 까발려질 줄 생각이나 했을까.


다른 놈 욕만 할 게 아니라 나도 조심해야겠어. 하드에 받아놨던 야동은... 다 지워야겠지? 내가 사고라도 당하게 되면 저 변호사 같은 인간이 내 하드를 뒤질지도 모르잖아. 벌써부터 소름 끼치네.


한숨만 나온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지? 뭘 해야 할까?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죽을 위기를 한 번 겪고 나니 세상만사가 다 대수롭지 않고 싱겁기만 하다. 계속 무료하고 내내 공허할 뿐. 망할 변호사 겸 후견인이 엄마인 양 자꾸 인생에 개입하고 있는데 화도 안 날 지경이다.


아니. 생각해 보니 그건 진짜 킹 받네.


그렇지만 현재 정강준의 일상에서 그 4가지 없는 후견인 외에는 자극적인 게 아무것도 없다.


소년은 해면체조직이 뻐근해질 때까지 수음을 하고난 뒤에 찾아오는 그 현자타ㅇㅣ...


아 이거 아니다. 여러분 미안.


더럽게 매운 볶음라면을 먹고 나면 웬만큼 매운 건 매운 음식 같지도 않게 느껴지는 시간이 온다. 그런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밍밍해. 아무 맛도 안 나.


인생이 맛을 잃었다.


싸우던 날의 일들만 자꾸 떠오른다. 깨어있을 때도, 꿈속에서도.


돌이켜 볼수록 흥미롭고 맛있는 시간이어서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민다혜가 보내준 싸움 동영상을 수백 번은 돌려본 것 같은데, 그래도 계속 재생을 시키게 된다.


정강준에게는 큰 도움이 되어준 자료다.


일진들이 체육관 뒤에 모여 정강준을 기다리고 있었고,

비겁하게 뒤에서 공격을 해 싸움이 시작됐으며,

여러 놈이 둘러싼 가운데 일기토를 뜨고 있었지만 어쨌든 밀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멈춘 틈을 타 결정타를 날리는 부분은 녹화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행운에 감사하기 위해 그 동영상을 보는 건 아니다.


이상한 갈증 같은 게 영 사라지질 않는다. 사람을 때려서 망가뜨리는 일이 퍽 즐거운 일이었던 것처럼, 그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다.


김명진의 부러진 코에서 흘러내리던 피의 색깔이 당시보다 더 선명해져 기억과 꿈속에서 자꾸 되살아난다.


마치 이제까지 항상 흑백이었던 정강준의 인생에서, 오직 그 시간만 총천연색이었던 것처럼.


*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던 정강준의 손이 우뚝 멈춘다.


복싱세계챔피언 줄라이웨더의 시합사진과 기사에 눈길이 묶인다.


프로복싱시합에서 평생 한 번도 진 적 없는 무패선수다. 계속 체급을 올려 끝내 다섯 체급 세계타이틀을 차지한 복싱챔피언.


현재 복싱은 은퇴하고 격투기선수들이랑 복싱 룰로 이벤트경기를 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이번 이벤트에서 일본 격투기 신성과 대결했던 줄라이웨더는, 1라운드에만 세 차례 다운을 뺏고 2분 5초 만에 KO로 승리했다. 시합시간은 총 125초. 대전료를 125로 나누면 1초에 7억 원 넘게 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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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달라진 분위기 24.02.15 11 0 10쪽
27 남자 대 남자라서 24.02.15 1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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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수상한 회복 24.02.15 14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2.15 12 0 10쪽
22 자퇴하고 싶어요 24.02.14 11 0 10쪽
21 이상하게 엮여 24.02.14 13 0 10쪽
20 피가 붉다 24.02.14 19 0 11쪽
19 첫 다운 24.02.14 14 0 10쪽
18 첫 스파링 24.02.14 11 0 10쪽
17 스파링 세션 24.02.14 17 0 10쪽
16 낙관주의자 24.02.13 11 0 10쪽
15 천원권투체육관 24.02.13 13 0 10쪽
» 무미건조한 24.02.13 15 0 10쪽
13 투명 올가미 24.02.13 18 0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2.11 20 0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2.11 20 0 10쪽
10 똘마니들 24.02.11 12 0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24.02.11 13 0 10쪽
8 살인연습 24.02.11 12 0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2.11 20 0 10쪽
6 아리가또오 24.02.11 15 0 10쪽
5 실험성공 24.02.11 16 0 10쪽
4 책과 사진과 아버지 24.02.11 15 0 10쪽
3 뭐가 들어있는지 24.02.11 18 0 10쪽
2 유산은 백억 24.02.11 18 0 10쪽
1 사라진 아버지 24.02.11 4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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