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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링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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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09 17:59
최근연재일 :
2024.02.20 12:33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02
추천수 :
0
글자수 :
161,628

작성
24.02.1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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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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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수상한 회복

DUMMY

*


그날 오후다. 포근한 토요일.


알이 밴 다리로 힘겹게 체육관 계단을 걸어 올라온 정강준이 옷을 갈아입고 바로 줄넘기를 잡는다.


오태영은 사무실 밖으로 고개만 쏙 내민다.


“아이고오, 체조도 안 하고 그냥 시작하시게? 그래, 잘한다. 선수생명 짧게 만들고 싶으면 몸 풀지 마. 죽을 때까지 체조 같은 거 안 해도 돼. 그냥 기분 나는 대로 운동해. 이십대 중반만 돼도 관절 삭아서 아작 날 테니까.”


잠이 덜 깬 목소리다. 정강준은 발끈한다.


나는 새벽부터 그렇게 굴려놓고 자기는 늘어지게 잤다 이거지?


그렇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하릴없이 천천히 체조를 시작한다. 어제 딱 한 번 시켰던 체조를 거의 그대로 따라한다.


오호. 기억력이 좋은 편이네?


오태영은 무관심을 가장해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다.


고집이 셀 줄 알았는데 시키는 건 다 하잖아? 고집 센 놈들이 운동 배우는 게 더 늦지. 코치 말 안 듣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결국 시행착오 겪게 되니까. 저렇게 눈으로 직접 보고 흉내 내다가 동작을 훔치는 놈들이 습득속도가 더 빨라.


정강준의 리듬은 일정하다. 이제 줄넘기 줄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잘 된 거지. 빨리 배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줄넘기의 줄이 바닥을 들이받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린다. 탁탁 좋은 소리가 나고 있다. 사무실 안에서 들으면 타는 장작에서 불꽃이 튀는 소리 같기도 하다.


오태영은 싱긋 웃는다.


좀 늦어져도 상관없고. 어차피 시합 상대가 신나게 두들겨 패가면서 가르쳐 줄 건데 뭘.


한편 정강준은 오태영이 말한 대로 요령을 부리면서 건성으로 줄넘기를 하는 중이다.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 이상한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


지금 내 상태... 너무 말짱한 거 아닌가?


김명진과 싸운 뒤에 한참 병원놀이를 해봤던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불안해질 정도로 수상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쌩쌩해 놓으니까.


알이 배기고 물집이 생긴 하반신 때문이 아니다. 머리 때문이다. 맑고 상쾌한 기분. 임정권의 주먹 역시 정강준에게 손상을 입혔을 것이 분명한데도.


입원해 있었을 때에는, 주위에서 큰 소리가 나기만 해도 골이 흔들리거나, 목과 머리에 자그마한 충격만 가해져도 저릿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잠깐 열나고 앓았을 뿐인데 두통이 사라졌어. 말끔해졌다고.


뇌에는 원래 감각이 없기 때문에 두개골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본인이 알 수는 없다. 상대방의 펀치를 맞게 되면 두개골 전체가 크게 흔들리게 되고, 이때 뇌가 단단한 두개골을 들이받게 되어 손상을 입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지 두개골 속에서 스멀스멀, 뭔가 간지럽게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다. 개가 물어뜯은 것처럼 너덜너덜해진 뇌에서 새 살이 돋아나는 듯한 느낌.


정강준이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촉이다. 소름이 끼칠 정도. 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괴상한 촉감이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약한 빈혈 증상이 나타난다.


손상에 적응이 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병에 걸린 건가? 그렇지만 그런 것 치고는 상태가 너무 좋은데. 일단은 운동을 하다가 정말 아파지면 병원에 가보는 게 낫겠어. 그냥 괜찮아지면 좋은 거고.


오태영이 마음 놓고 낮잠을 자는 동안, 세 시간 내내 줄넘기만 한 정강준이 씻고 집으로 간다.


오태영은 사무실 밖으로 나와 보지도 않은 채다.


쳇. 게으르기는.


정강준은 오태영에게 안 들리게 구시렁대지만, 줄넘기를 시작한지 겨우 이틀 만에 몸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계단 내려가는 발소리가 작아지고 충격도 줄어든다.


*


일요일 새벽. 알람소리에 겨우 잠에서 깨어난다.



유온이 정하고 관리하는 학습량과 진도는 대강 놀면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학생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공부를 잘 했었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몰라도, 유온은 고등학교 학과내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건성으로 확인하는 것 같아도 이곳저곳에 쳐놓은 그물눈들이 꽤 촘촘하다.


어제도 정강준은 꼼짝없이 붙들려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잠이 들었다.


물론 그런 생활이 기꺼울 리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마녀의 관리도 느슨해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오태영이다.


정강준은 일부러 헛기침을 해서 잠긴 목소리를 걷어내고 전화를 받는다.


“예. 지금 나가요.”

“오긴 어딜 와? 오늘 로드웍 없다. 오지 마.”


잠이 달아난다. 아니 이게 뭔 소리야. 꿈인가?


잠결이라 한 박자 늦게 분노가 차오른다.


“아 장난해요 지금? 왜요? 왜요? 왜 때문에?”

“너는 어린놈이 미세먼지정보도 확인 안하고 다니냐? 오늘 미세먼지 심해 인마.”

“몰라요 그게 뭔 상관이에요?”

“어허. 이렇게 먼지 심한 날은 그냥 집에 콕 박혀 있는 거야. 이런 날 억지로 운동하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하아...”


그래도... 운동시키기 귀찮아서 만들어낸 구실 같지는 않은데.


“내가 미세먼지 정보 확인하는 사이트 링크 보내줄 테니까 너도 하루에 한 번씩은 들어가 봐. 백 프로 다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틀 후 것까지 미리 예측할 수 있거든? 운동 스케줄 짜는데 참고하면 좋지.”


그래도 기껏 일찍 일어났는데 억울하잖아!


“아니 나는! 하아... 그놈의 운동 스케줄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요. 내가 공부해야 되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주말에 집중해서 운동을 하고, 주중에 이틀 쉬는 쪽으로 가려고 했더니만...”

“조급하게 굴지 마라. 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얘기니까 새겨들어. 초미세먼지는 사실상 공업먼지야. 입자가 너무 미세해서 사람 체세포에 바로 침투할 수도 있고, 한 번 침투하고 나면 절대 체외로 배출 안 된다고. 운동선수는 몸이 재산인데 무슨 엉뚱한 소리야?”

“아니 그렇게 날을 고르고 거르면 체력훈련은 언제 해요? 엘리트 체육인은 다르다면서? 다들 잠자고 있을 때 운동해야 되는 거랬잖아요?”


오태영은 느긋하다.


“성적 내자고 몸 망가뜨리면서 하는 운동은 운동이 아니야. 노동이지. 노동이랑 운동이랑 다른 점이 뭔 줄 알아?”

“몰라요. 그딴 걸 어떻게 알아요?”

“막노동을 해도 근력은 향상돼. 지구력도 좋아지고. 그런데 왜 내가 너한테 노동을 안 시키겠냐. 일이라는 건 하루 종일 해야 하는 거니까 그런 거야. 운동이란 건, 몸을 안 망가뜨리면서 최단시간만 훈련해서 신체기능을 극도로 향상시키는 예술이고. 노동은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쓰고 장시간 몸을 굴려서 신체를 소모시키고 대신 돈을 받는 거고. 잊지 마라. 사람 관절이라는 건, 다 1회용이야. 한 번 망가지면 끝난다.”

“아하. 그래요? 그게 나한테는 말도 않고 다다음주에 스파링 잡아놨다던 사람이 할 소리예요?”

“인터벌 취소돼서 정 조바심이 나면 트레드밀을 하나 사보는 건 어때?”

“트레드밀? 먹는 거예요?”

“...런닝머신을 원래 트레드밀이라고들 해. 집에 공기청정기 있지? 그럼 집안에서 달려도 되잖아. 하루에 몇 킬로씩.”

“...그게 운동이 돼요?”

“물론 안 되지. 그럼 다 트레드밀 뛰지 누가 밖에 나가서 험하게 로드웍 하겠냐?”

“야이 쓰ㄹㅔㄱ... 하아... 그럼 뭐하러 사요 그걸?”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비가 와서 아침운동 못 나가는 날에는 다른 방법이 없거든. 따지고 보면, 트레드밀도 절반 정도는 기계가 대신 뛰어주는 셈이지만, 훈련 빼먹고 마음이 안 놓인다면 그거라도 해야 될 거 아니냐. 안 그래?”

“흐음... 알았어요.”

“초미세먼지 그거 무시할 게 아니...”


뚝. 정강준이 듣지도 않고 통화를 끊는다. 지난번의 복수. 오태영은 분노에 온몸을 떤다.


초미세먼지가 심해 인터벌을 포함한 새벽훈련은 취소됐다.


사실 피로에 절여져있던 정강준에게는 나쁠 것 없는 소식이다. 운동복을 홱 벗어던진 정강준이 다시 침대 위로 풀썩 쏟아진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잠이나 더 잘래.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일이다. 입원해 있었던 때처럼 늘어지게 한숨 자려고 했더니만, 고작 삼십분 정도 푹 자고 나니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불안 때문이다. 정강준은 강자와의 대결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알고 있다.


더군다나 오태영은 아직 스파링 상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상태.


엊그제 그놈보다 더 잘하는 놈이랑 붙일 거 아니야?


토스트를 구워 대강 아침을 때우고 애써 참고서를 보려고 하지만, 이쪽도 마음대로 안 된다. 스파링 상대에 신경이 쓰여 도통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느 것에도 좀체 집중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결국 정강준은 아무렇게나 벗어던져놨던 체육복을 다시 주워 입고 무턱대고 밖으로 나가고 만다.


어떤 운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않은 채, 집에서 가까운 우성고 운동장을 향해 걷는다.


이것은 운명의 인도.


*


일요일. 늦은 아침.


정말 오태영의 말처럼 온 세상이 뿌옇다. 그럼에도 미세먼지 같은 걸 개의치않는 사람들이 운동장에 나와 걷거나 뛰고 있다.


정강준은 체조를 하고 우레탄트랙 위를 달리려고 한다. 그러나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전날 아침 오태영과 함께 달렸을 때처럼, 숨이 차서 허리도 펴지 못할 만큼 격렬하게 전력질주를 해볼 생각이었지만,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운동장에 사람들이 많아서 집중도 안 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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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남자 대 남자라서 24.02.15 10 0 10쪽
26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2.15 10 0 10쪽
25 이상한 놈이 나와 24.02.15 14 0 20쪽
» 수상한 회복 24.02.15 15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2.15 13 0 10쪽
22 자퇴하고 싶어요 24.02.14 11 0 10쪽
21 이상하게 엮여 24.02.14 13 0 10쪽
20 피가 붉다 24.02.14 19 0 11쪽
19 첫 다운 24.02.14 14 0 10쪽
18 첫 스파링 24.02.14 11 0 10쪽
17 스파링 세션 24.02.14 17 0 10쪽
16 낙관주의자 24.02.13 11 0 10쪽
15 천원권투체육관 24.02.13 13 0 10쪽
14 무미건조한 24.02.13 15 0 10쪽
13 투명 올가미 24.02.13 18 0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2.11 20 0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2.11 20 0 10쪽
10 똘마니들 24.02.11 12 0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24.02.11 13 0 10쪽
8 살인연습 24.02.11 12 0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2.11 20 0 10쪽
6 아리가또오 24.02.11 15 0 10쪽
5 실험성공 24.02.11 16 0 10쪽
4 책과 사진과 아버지 24.02.11 15 0 10쪽
3 뭐가 들어있는지 24.02.11 18 0 10쪽
2 유산은 백억 24.02.11 18 0 10쪽
1 사라진 아버지 24.02.11 4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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