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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몬스터 처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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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09 13:53
최근연재일 :
2024.03.11 18:45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714
추천수 :
0
글자수 :
123,604

작성
24.03.0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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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현상금 벌이

DUMMY

카무드라블에게도, 어린 시절 평민 아이들 틈에 섞여 체면치레 없이 뛰어놀던 시간은 꽤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어디 멀리 좀 다녀올 데가 있어서... 나중에 조용해지면 돌아오려고 했지.”

“야. 암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이거 완전 골치 아파질 각이거든? 물론 그놈들이 이 지역 밖으로까지 영향력 행사할 수준은 안 되는 잔챙이들이긴 한데... 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지금 이 길로 여기를 떠. 그래야 돼. 잘못하면 칼부림 난다니까? 그리고 나중에 시간 날 때 치안관 사무실로 와라. 돈 받아가야지.”

“돈? 무슨 돈?”


카무드라블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영문을 모르고 당황한 건 아라타루아 뿐만이 아니라 토바나스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너 그것도 모르고 쟤들 줘팼던 거야?”

“아니 나는... 저 술집 주인장이랑 잘 아는 사인데, 새파란 놈이 너무 버릇없게 굴길래.”

“아까 네 마리 중에, 덩치 큰 놈 둘 있었지? 걔들, 모가지에 현상금 걸려있던 놈들이었어. 너는 벽보도 안 보고 다니냐?”


아라타루아는 심히 억울해졌다. 어떻게 현상금이라도 좀 벌어서 인면어 잡을 경비를 마련해볼까 하는 생각에 진작 벽보를 살펴보기는 했던 터였다.


“아니 현상수배 그거 완전 발로 그려놓은 것 같던데? 누가 그 그림 보고 그게 저놈들인 줄 알겠냐?”


아라타루아가 포박되던 그 길지 않은 시간에 그게 그놈들인 줄을 알아봤던 카무드라블이 또


크크크,


하고 웃었다.


“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현상수배 초상화 그리던 화가가 그놈들한테 보복을 당해가지고 칼 맞고 죽었거든. 그래서 요즘 수배전단 그리는 사람은 일부러 그림을 개판으로 그리고 있는 거지. 보복 당할까봐. 나도 그냥 눈 감아 주고 있고.”

“허. 현상금은 얼만데?”


현상금 얘기를 들은 토바나스가 미간을 찌푸리고 턱 근육을 딱딱하게 부풀렸다. 그날 아라타루아가 일없이 술에 취해 남의 영업장에서 소동을 피우고 참전자 망신을 시킨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게 뒤늦게 미안해진 기색이었다.


“왜? 돈 얘기 들으니까 욕심 나냐? 그래도 너 지금은 도망부터 가야 돼. 나중에 처리하자.”

“어 나도 아는데, 도망갈 돈이 없어.”


카무드라블은 아예 허리를 꺾어가면서 웃었다. 어린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웃음이 많았다.


“그러면 일단 내 돈을 줄 테니까, 도피자금으로 써. 나는 저것들 서류 다 정리한 다음에 현상금을 대신 가질 테니까.”


그 엉뚱한 현상금 저글링 계획을 들은 토바나스가 다시 인상을 썼다. 덕분에 아라타루아는 또 옛 기억 하나를 되찾았다.


아 맞아. 이것도 기억났다. 이래서 저 새끼가 싫었었지. 융통성 없는 새끼라서.


“서명은 내가 위조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공문서를 위조하겠다는 말에 놀란 토바나스는 이제 카무드라블을 한 대 칠 것처럼 노려보았다.


어쨌거나 아라타루아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야 그런데 이거 수수료 있다?”

“뭐야? 얼마나 떼 갈려고?”

“글쎄다? 한 삼분의 일 정도만 가져가기로 할까...?”

“야이 도둑놈아. 그게 사람새끼가 할 짓이야?”


욕을 들어먹고도 카무드라블은 계속 웃는 얼굴이었다. 일부러 딱딱하게 굴고 있던 아라타루아도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여기로는 왜 온 거야? 살기 좋은 데도 아니고, 전망도 시원찮았을 텐데. 도시에서 사는 게 승진하기 훨씬 좋았을 거 아니야?”

“...날만 괜찮았으면 술이라도 한 잔 하는 건데. 오늘은 날이 더럽네, 실적은 올렸지만? 흐하하.”


카무드라블은 아라타루아의 말을 다 알아듣고도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말버릇도 어릴 때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것들은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이런 시골구석에 뜯어먹을 게 뭐가 있다고?”

“아 그거? 안 그래도 설명을 해줄까 했었는데, 그거 요즘 틈새시장 노리는 놈들이야.”

“틈새시장?”

“응. 골치 아픈 놈들이더라고. 기본적으로 폭력배 새끼들이 하는 짓이 원래 다 더럽지만, 이것들은 그 중에서도 더 추잡한 것들이라. 진작부터 고리대금은 기본으로 하면서 매음굴까지 하나 굴리고 있었는데, 여기서 그런 게 돈이 될 리 없잖아.”

“그렇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떠났는데.”

“그래. 덕분에 이놈들도 망해나가기 직전이었거든? 그런데 전쟁 때문에 노예가 된 야만족들 있잖아? 이것들이 그걸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던 거야. 그런데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게 노가 난 모양이더라고.”

“노예무역을 한다고? 저놈들이? 그럴 주제가 되나?”


카무드라블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버젓이 노예무역 같은 거 할 정도 능력도 없는 놈들이야. 너도 알겠지만, 요즘 그쪽도 견제가 심해서. 그렇지만 도망노예들이 있잖아.”

“아하.”

“도망노예들은 법적으로는 불법체류자가 되는데, 불체자들은 임금이 싸잖아? 그래서 이것들이 불체자들 숨겨주고 굴려가면서 돈을 쓸어담고 있나 봐. 여기 사람들 일자리 없어진 게 다 저놈들 때문이라고 하더라고. 완전 노나는 장사지 뭐. 불체자들 부려먹고 그 임금 갈취하고, 고용주한테는 돈 따로 뜯어내고.”

“그래서 여기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가?”

“그렇다고 봐야지.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문제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악순환인 거잖아. 저놈들이 불체자 굴려서 일자리 없어지면 고향사람들은 도시로 빠져나가고, 그럼 또 빈집 생길 거 아니야? 그러면 거기에다가 저놈들이 불체자를 더 숨기고 그러면 또 일자리 없어지고.”

“아주 족 같은 새끼들이었네...?”

“그렇지. 그리고 저 깡패새끼들이 빈집 주인들한테 집세 주겠냐? 처음에 꼬드길 때는 좀 주다가, 시간 지나면 슬슬 집세 끊고 협박도 해가면서 억지로 굴려. 그러다 결국에는 아예 집을 뺏는다는 것 같더라고. 집주인들은 억울해도 처음에 범법자들이랑 동업을 하긴 했었으니까 신고도 못하고. 내가 조사해본 바로는 그래.”

“환장하겠네.”

“내가 여기 오고 나서 바로 일망타진해보려고도 했었는데, 요즘은 이것들도 약아져가지고 점조직으로 운영을 한단 말이야.”

“점조직이 뭐야?”

“쉽게 말하자면, 애들이 한 군데에 성 쌓고 죄다 우르르 모여서 나쁜 짓 하는 게 아니고, 여기저기 분산돼 있는 거지.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쳐 패기 어렵게?”

“그래. 개고생 해서 문짝 부수고 들어가 봐야 잡히는 놈은 몇 마리 안 되는 거야. 간단한 일이 아니더라고. 이것들 머리를 암만 쳐봤자 꼬리가 남아서 보복을 하는 식으로 가게 되는데, 우리 인력은 제한돼 있으니까. 나야 귀족이니까 못 건드리겠지만, 부하들이 자꾸 보복을 당하다 보면 나중에는 결국 내 팔다리가 다 잘리게 될 거 아니야. 그렇게 되면 어떻게 일을 하겠냐고?”

“그런데 그렇게 해서 돈을 버는데 노예상인들이 가만히 있어? 그놈들이 얼마나 악독한 놈들인데?”

“그렇지. 나도 그게 이상해. 칼질을 했어도 한참 전에 했어야 정상이잖아. 나도 저 새끼들 저러다가 언제 한 번 경을 치겠지, 더 나쁜 놈들한테 금방 줘터지고 분해되겠지, 이러고 있었는데 여태까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야? 뭘 믿고 저렇게 해먹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무슨 어마어마한 흑막 같은 게 뒤를 봐주고 있지 않은 이상은... 요즘 노예상인들이 쟤들 조지려고 벼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는 있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여기는 지금 변두리 폭력배들하고 도시 노예상인들하고 전쟁 터지기 일보직전일 거야.”

“그냥 그것들끼리 싸우게 놔두고 다 죽어나가기 기다리면 안 돼?”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는 그게 제일 좋은 결말이지. 그래서 나는 요즘 이것들을 이간질시켜가지고 싸움 한 번 붙여볼까 궁리 중이었어. 그러던 와중에 네가 사고 쳐준 거고.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싶어서 골치 깨나 썩고 있었는데 잘 됐지 뭐. 오늘 일 빌미로 삼아서 이것들 좀 달달 볶아볼까 하고.”

“그런데 이것들 때려잡을 거면, 나도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토바나스의 눈이 이채를 내뿜었다. 말은 안 해도 눈으로는 반기는 기색이었지만, 카무드라블은 고민도 안 해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웃기고 있네. 큰일 나 인마! 우리도 섣불리 못 건드리고 있는데 네가 끼어들었다가 일 더럽게 돌아가면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카무드라블은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더니 세어보지도 않고 아라타루아에게 던졌다. 툭, 가슴팍으로 날아와 꽂히는 돈주머니의 감촉은 숲에서와 같았지만, 그 느낌은 완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러더니 싱긋 웃으면서 빨리 꺼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익히 알고 있는 손짓이었다.


“야 빨리 가! 우리가 너 묶어서 끌고 가다가 놓친 걸로 할 테니까, 토끼기도 편할 거다. 빨리 여기 뜨라고. 알았지? 당분간 돌아올 생각하지 말고.”


어린 시절 해가 떨어질 때까지 뛰어놀다가 놀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카무드라블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던 모습과 그 실루엣이 아라타루아의 뇌리에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아라타루아는 잠시 먹먹해졌다. 고마운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서였다.


물론 이러한 아라타루아의 감동은, 카무드라블이 지나가듯 툭 던진


“...누님 잘 계시지?”


라는 말 한 마디에 산산이 박살나고 말았다.


...성욕 때문이었구나. 이 간나새끼. 아직 단념을 못했나봐? 변한 게 없네, 여자 밝히는 건?


*


쩔그럭!


늦은 아침 치안관 사무실. 치안관 책상 위로 돈주머니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치안관은 슬쩍 의자를 돌려놓고 비스듬히 앉아서 몰래 한 숨 때리고 있던 참. 그렇게 지난밤 야간출동의 피로를 풀던 치안관은 그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허우적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너머에는 아라타루아가 서 있었다.


카무드라블은 아라타루아를 보자마마 당장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는 것 같더니 그러지 못하고 조용히 뒷목을 잡았다. 그러더니 아루타루아에게 바싹 다가섰다.


“야이 시발 너 어쩌려고 이래? 튀라고 했잖아 이 등신아!”


남들이 들을 것이 겁나는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돈이 모자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아예 저것들 다 잡아 조지고 현상금 좀 더 벌어서 가볼까 하고.”

“야이 씨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현상금에 목숨을 걸어? 미쳤냐 너!?”


카무드라블의 언성이 점점 올라갔다.


“그리고 누나가...”

“누나!? 누나가 뭐?”


카무드라블은 이미 의자에서 일어나 있었지만 거기서 한 번 더 벌떡 일어났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심정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라타루아는 일부러 뜸을 들였다. 카무드라블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왜왜왜 뭐 왜? 아니 내가... 숲 속에 숨어사신다는 얘기는 진작 들었는데!”

“누나가...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이대로 나 혼자서만 도망가면.”

“아 뭔 소리야? 잘 숨어계시기만 하면 별 일 없을 건데? 사람들도 거기가 어딘지 아무도 모르더만. 정 불안하시면 우리가 그쪽 순찰도 좀 하고...”


역시. 누나 사는 곳을 열심히 캐고 다녔던 모양이지. 이게 공과 사를 구분 못하네?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는 주변정리부터 해야 되잖아. 이렇게 성가신 것들을 놔두고는 도저히...”


아라타루아로서는, 인면어를 잡는 데 돈이 얼마만큼 들어갈지 종잡을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쫓기는 몸이 되어 멀리 떠나봤자, 집 걱정 때문에 일을 그르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본디 사냥이라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으니까.


그리하여 아라타루아는, 그놈들을 다 잡아 조져놓고 개운하게 고향을 떠나는 편이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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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점에서 24.02.28 10 0 11쪽
16 약기운 24.02.27 13 0 11쪽
15 먹으라고 24.02.24 13 0 10쪽
14 메힐리나 24.02.23 18 0 10쪽
13 약값 내라 24.02.22 31 0 10쪽
12 이상하게 서운하네 24.02.22 20 0 11쪽
11 식빵과 솥 24.02.20 18 0 10쪽
10 살인 24.02.19 19 0 11쪽
9 베테랑 24.02.18 98 0 11쪽
8 내 눈 24.02.18 4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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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추격자 24.02.10 34 0 11쪽
5 불의 깃 24.02.10 76 0 11쪽
4 호기심 때문에 24.02.10 3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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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늘의 별을 따오라 그래 24.02.09 60 0 11쪽
1 피가 멎는다 24.02.09 8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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