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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몬스터 처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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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09 13:53
최근연재일 :
2024.03.11 18:45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713
추천수 :
0
글자수 :
123,604

작성
24.02.23 19:33
조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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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0쪽

메힐리나

DUMMY

‘정말 원하는 거지?’


진심인지 아닌지를 묻는 여자의 목소리에는 항상 남자의 가슴을 섬찟하게 하는 울림이 섞이게 마련이다.


최초의 여자와 보냈던 시간의 여운이, 꿈속의 목소리로 되살아나 추억만 앙상하게 남겨진 남자의 늑골을 문지르고 지나갔다.


으음...


아라타루아는 작게 신음했다. 목소리와 울림이 쓸고 지나간 흉곽이 아니라 다른 곳이 아파서였다.


뭐야 이거? 왜 이러지?


아라타루아의 뿔은 꼿꼿이 서 있었다. 뻐근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강직했다. 원래 아침 기상 시에 흔히 겪는 일이었지만, 평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아니 내가 아무리 애 키우느라고 여러 해 수도사처럼 지내긴 했어도... 이 정도로 왕성하진 않았는데? 이거 내 거 맞나?


더군다나 간밤에 정확한 횟수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여러 차례 마법사를 즐겁게 해준 뒤였다. 지쳐서 퍼질 법도 한데 평소보다 훨씬 쌩쌩했다. 아니, 생애 어느 때보다 더 원기 왕성해져 있었다.


어휴, 이건 뭐... 사슴뿔을 약에 넣은 게 아니라 여기다가 그대로 박아 넣은 것 같잖아? 나한테 뭘 먹인 거야 도대체? 이 요망한 것이 자기 재미 보려고 이상한 약 만들어 먹인 건 아닌가...?


팔베개를 벤 채 아라타루아의 품에 안겨 깊이 잠들어 있는 메힐리나에게 꿀밤이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정말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만약 뿔이 크기가 더 커져있는 것 같지 않았더라면 한 대쯤 쥐어박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상한 약인 것 같기는 해도, 약효가 확실한 약이라는 사실 역시 자명해져 있었다.


고생한 보람아 있기는 한데... 뒤탈이 없을 것이냐 그게 문제지.


그리고 아들을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이런 걸 애한테 먹여도 되나? 이걸 먹였다가 이 나이에 할아버지 소리 듣게 되는 건 아니고?


십대 시절 멋모르고 저지른 일 때문에 이후 십년 가까이 강제육아에 시달려온 아버지가 소리 죽여 한숨을 내쉬었다.


잠기운이 걷히고 정신이 맑아졌다. 살에 맞대어진 맨살의 감촉이 다시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이건 뭐 꺼지지를 않네?


간밤의 즐거움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니면 약을 만드느라 피곤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메힐리나는 정말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아무리 이상한 약을 먹였다고 해도, 자고 있는 여자를 깨워 다시 욕망을 채우는 일은 미안한 일이 될 것 같았다.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메힐리나의 얼굴은 소녀처럼 순하고 선해보였다. 그런 미녀를 품에 안고서도 첫 여자의 꿈을 꾸었던 아라타루아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슬며시 메힐리나의 목을 살폈다.


세상에 목을 졸라달라는 여자가 있을 줄은... 혹시 멍들었을까? 조르는 시늉만 했으니까 별일 없겠지만...


다행히도 멍은 안 든 것 같았다.


어쩌면 처음에 내가 화가 나서 목을 졸랐을 때 이게 나쁜 마음을 먹었던 걸 수도 있어.


연하랑은 처음이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연상과의 경험이 기본이 되다보니 메힐리나와의 관계 중에는 당혹스러운 순간들이 꽤 있었다.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여자는 그 몸이 주는 즐거움 면에서는 한 가지였지만, 정신적인 놀이 면에서는 차이점이 있었다.


연상에게는 수치스러워하는 체위와 행위들이 있었다. 물론 아라타루아가 해달라는 대로 순순히 몸을 내주기는 했지만, 아라타루아가 연하이다 보니 나중에 몸이 많이 익숙해진 뒤에도 선을 넘나드는 요구에는 수치심을 느끼고 얼굴을 찡그릴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아라타루아는 즐거움을 억지로 강탈하는 듯한 쾌감에 빠져 과도하게 흥분하곤 했는데, 메힐리나의 경우에는 딱히 그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 부끄러움이라는 선이 정해지지 않은 아이들끼리의 놀이 같았다고 할까. 메힐리나는 생각나는 게 있으면 당장 해달라고 요구를 하는 편이었고, 그걸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건 메힐리나의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게 아니라 워낙 담백한 성정을 가져서 그런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라타루아는 불현듯 나이 먹은 사람들처럼 ‘요즘 어린 것들은 정말이지...’ 같은 소리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고 싶어졌다.


아라타루아는 마법사가 깨지 않도록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리고 소리죽여 옷을 주워 입었다. 그렇지만 애 쓴 보람도 없이 메힐리나는 깨어나고 말았다.


“...흐응... 어딜 가려고요? 나한테 말도 없이?”


나무라는 말투이기는 했지만, 웃는 낯이었다. 밤이 새도록 사랑받은 여자는 기쁨에 겨워 있었다.


신비의 세계를 누비는 마법사였지만 몸은 다르지 않았다. 도리어 미숙하고 서투르기도 했다. 그래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자꾸 무너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라타루아는 그러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자신에게 아들을 선물해 준 첫 여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약솥에 머리가 찍혔을 때는 너무 화가 나서 언젠가 저걸 죽여 버릴 거라고 마음먹었지만, 잠에서 깨어나 눈을 부비는 모습을 보니 귀엽고 사랑스럽기가 한이 없었다.


...가난한 사냥꾼한테는 과분한 미인이 아닌가.


누나 집에 데려다놓은 아들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만일 메힐리나를 닮은 아이를 얻게 된다면 그건 신이 내린 축복이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라타루아는 애써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애 약 먹이러 가야지.”


지난밤의 난리법석을 기억하고 어색해하며 눈을 피하는 아라타루아와는 달리, 메힐리나는 오래 알고 지내온 사람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일이 정말 그렇게 된다고 해도... 애 병만 고쳐놓으면 일을 더 할 수 있을 테니까... 열심히 벌어오면 되겠지. 육아도 두 번째부터는 좀 할 만 해질 거고.


메힐리나는 탐스러운 육체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옆으로 기울였다. 그렇게 비스듬히 누워서 뭘 어떻게 하라는 말도 없이 조그맣게 콧노래를 부르며 아라타루아가 옷 입는 모습을 구경했다.


연상과 사귈 때에는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잔소리가 꽤 많았었지...


바지를 입을 때 문제가 생겼다. 잔뜩 화가 나서 고개를 쳐들고 있는 사슴뿔을 옷 안에 어떻게 들여놔야 할지의 문제였다.


메힐리나는 그걸 기다리기라도 했던 양 푸힛, 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발끈한 아라타루아는 바로 항의를 시작했다.


“야 이거 이상하잖아? 그거 무슨 약이야 도대체?”


메힐리나가 또 히힛, 하고 웃었다.


“튜토리얼이라는 약이에요.”

“약 이름을 물어본 게 아니잖아!”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속여서 약을 먹였으니까 그렇지!”

“뭐래? 나는 거짓말한 거 없는데? 내가 말한 대로잖아요? 원기 왕성해졌고, 안 지치게 됐고, 그 뭐냐... 그것도 쑥쑥 자랄 거고! 손해 본 거 없으면서 뭘?”

“아 이 쪼끄만 게 말하는 것 좀 보소? 이상한 약 먹여놓고 욕정 채웠으면서!”


메힐리나는 대답 없이 웃므녀 혀를 쏙 내밀어 보였다. 그리고는 아라타루아가 간신히 바지 안에 쑤셔 넣은 그 부분을 흘깃거리며 살짝 볼을 붉혔다.


메힐리나가 커다란 솥에 약을 끓이는 동안 그 불 옆에서 말린 활과 전통은 다시 말짱해져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아라타루아는 신경질적으로 활과 화살을 등에 둘러맸다.


튜토리얼? 괴상한 이름을 가진 약이네.


어디선가 들어본 듯도 한 그 괴상한 이름 때문에 아라타루아는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요 며칠 사이 그에게 일어났던 불행(?)한 사건들이 어쩐지 계속 반복될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메힐리나는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 앉았다. 매끈하게 잘 벋은 두 다리를 꼬고 허리를 묘하게 뒤틀면서도 몸의 중심만큼은 은근히 내보이는, 복잡미묘요염한 자세였다.


아라타루아는 이를 악물고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어젯밤 저질렀던 일들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물론 약발 때문인지 기운이 달리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아들 생각을 하면 거기서 또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아라타루아가 반응이 없자 메힐리나는 뾰로통해져서 볼을 부풀렸다.


“...흐응... 인면어의 살이 있으면... 상처가 아예 안 생기게 만들 수 있다던데.”

“뭐라고? 몸에 상처가 아예 안 생기게 된다는 거야? 그럼 피가 날 일도 없겠네?”


당장 솔깃해하며 돌아서는 아라타루아를 보고, 메힐리나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완치되는 거잖아? 맞지?”

“아니요? 병을 완치시켜서 완전히 정상인으로 만들려면 트롤의 피가 필요하다고 내가 말했잖아요. 이건 그냥 피부가 단단해지게만 해주는 거라고요.”

“갑옷 입은 것처럼 단단해지는 건가? 창칼도 막을 수 있게 되는 거야?”


이번에는 메힐리나가 고개를 옆으로 꼬고 아라타루아를 외면했다.


“몰라요. 나도 책으로만 본 거라서.”


그래도 이 눈치 없는 아라타루아는 당장 활에 낚싯줄을 묶어 낚시를 시작할 것처럼 흥분했다.


“인면어? 사람 얼굴을 한 물고기 말하는 거지?”

“글쎄요? 일단 그렇게는 나와 있는데...”

“그거 어디 가면 잡을 수 있지? 책에는 뭐라고 나와?”

“모르겠네요~ 눈이 침침해서?”


시큰둥하게 구는 메힐리나를 보고도 아라타루아는 메힐리나의 내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혼자서 고민을 시작했다.


물론 메힐리나의 본심은, ‘네가 지금 나랑 놀아주면 알아봐줄 수도 있거든?’이었지만, 이 눈치 없는 남자는 메힐리나에게 매달리기는커녕 집을 나서는 걸음을 더 서두를 뿐이었다.


“알았어. 나도 나가서 좀 알아보고 올게.”


눈 깜짝한 사이에 홀로 남겨진 메힐리나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을 깜빡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으이그 이 등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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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소한 시비 24.02.29 29 0 11쪽
17 주점에서 24.02.28 10 0 11쪽
16 약기운 24.02.27 13 0 11쪽
15 먹으라고 24.02.24 13 0 10쪽
» 메힐리나 24.02.23 18 0 10쪽
13 약값 내라 24.02.22 31 0 10쪽
12 이상하게 서운하네 24.02.22 20 0 11쪽
11 식빵과 솥 24.02.20 18 0 10쪽
10 살인 24.02.19 19 0 11쪽
9 베테랑 24.02.18 98 0 11쪽
8 내 눈 24.02.18 46 0 11쪽
7 만남 24.02.10 21 0 12쪽
6 추격자 24.02.10 34 0 11쪽
5 불의 깃 24.02.10 76 0 11쪽
4 호기심 때문에 24.02.10 35 0 11쪽
3 뿔과 진흙의 시간 24.02.09 22 0 12쪽
2 하늘의 별을 따오라 그래 24.02.09 60 0 11쪽
1 피가 멎는다 24.02.09 8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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