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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몬스터 처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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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09 13:53
최근연재일 :
2024.03.11 18:45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712
추천수 :
0
글자수 :
123,604

작성
24.02.29 18:37
조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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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사소한 시비

DUMMY

아라타루아는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 없이 자랐다. 당연히 형편이 어려웠겠지만 페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라타루아에게 앵벌이 같은 걸 시킨 적은 없었다.


아라타루아가 아들의 병을 낫게 할 마음으로 벌인 일들을 이해하지 못해 독하고 매몰차게 굴기는 했어도, 페이는 아라타루아에게 있어 늘 좋은 보호자였고 누이였으며 엄마이기도 했다.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자, 내심 페이를 원망하고 있던 마음도 술에 넣은 얼음처럼 녹아 사라져 버렸다.


그렇지만 아라타루아의 마음은 평정을 되찾지 못했다. 시그나스와, 옛 기억이 가라앉혀놓은 마음은 다시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아라타루아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개새끼가 진짜 존나 거들먹거리네.


그야 다 큰 놈이 몸에 문신이나 새기고 돌아다니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앵벌이를 빙자해 삥을 뜯는 꼬락서니를 보게 된다면, 사람이면 누구든 화를 내게 돼 있었다. 그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라타루아는 할 일이 많았다. 인면어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차 있었고, 괜히 개입했다가는 뒷일이 성가셔질 것 같아 꾹 참기로 했다. 그런 마음 역시 모두가 같았을 터였다.


그러나 그 새파란 놈이 시그나스에게 시비조로


“주인장! 회장님이 인사 좀 오라시던데?”


라고 소리를 지르는 걸 들은 뒤로는 더 참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물론 아라타루아 역시 평소 시그나스에게 반말로 친구 대하듯 해오기는 했던 터여서 사실은 그 폭력배 놈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봐야 했지만, 그건 시그나스와의 친분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아라타루아보다 나이를 한참 더 먹고도 격의 없이 대해주던 시그나스가 하대를 받는 광경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나는 친한 사이니까 반말을 하고 장난도 치지만 너는 하면 안 되지 이 새끼야, 라는 심리에 폭발하고 말았던 것.


“야이 시발놈아 너 이리 와봐.”


자신을 꺼리는 사람들의 눈빛을, 자신을 두려워해서인 것으로 오인한 끝에 우쭐대고 있었던 과일팔이였다. 갑자기 쌍욕이 박히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여기 과일 좀 가져와보라고.”


과일 파는 놈에게 과일 가져오라는 게 이상한 소리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놈은 어쩐지 주저하고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촉이 좀 발달한 놈인 것 같았다.


“...”


허세를 부리면서 테이블로 와가지고는 사라는 말도 없이 과일을 턱 올려놓더니만, 뭘 어쩌란 말도 없이 인상만 찌푸릴 뿐이었다. 아라타루아와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꼭 땅꾼을 만난 뱀처럼.


뭐야 이 새끼 사람 봐가면서 삥을 뜯네?


금방이라도 뭔가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아라타루아는 일부러 껍질이 가장 단단한 과일을 골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문신한 놈 머리 위로 과일을 가져갔다.


손아귀에 힘을 꽉 줘봤다. 원하는 대로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일이 마음처럼 되기를 기대하면서.


퍽석!


단단한 과일은 단숨에 즙이 되어 놈의 머리 위로 후두둑 쏟아졌다. 내색은 안 해도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몇 터져 나왔다.


늘 할 수 있었던 일이었던 양 태연을 가장하기는 했지만, 사실 놀란 건 아라타루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우. 이게 되네?


훈계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람 먹을 만한 걸 가지고 와서 팔아야 할 거 아니야? 손만 갖다 대도 이렇게 문드러지는데 이런 걸 어떻게 먹으라고? 개도 안 먹겠다 새끼야.”


졸지에 망신을 당한 폭력배가 인상을 팍 구겼다.


“이런 시발...! 이 새끼가 미쳤나 진짜...!”


그렇지만 그 목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다.


갑각류를 닮은 그 과일은, 칼로도 껍데기를 까기가 어려워서 껍데기 부수는 도구를 따로 대장간에서 만들어야 할 정도로 단단한 것이었다. 악력만 가지고 그걸 한 순간에 즙으로 만드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앵벌이 놈이 모를 리 없었다.


아라타루아는 놈을 더 자극하기 위해 손에 남은 찌꺼기를 녀석의 입과 얼굴에 문질러줬다.


“집에 가서 너나 많이 처먹어. 어른들 노는 데 오지 말고.”

“새끼가!”


도발에 넘어간 어린놈은 1초도 참지 않고 바로 응수했다. 물론 아주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손에 들린 칼을 놔두고 얼굴에 주먹을 날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아라타루아는 하마터면 그 주먹에 맞을 뻔했다. 어린 것들이 흥분하게 되면 상상도 못한 일을 저지른다는 말을 그제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아라타루아는 몸을 낮춰 주먹을 홱 피했다. 그런 뒤 칼을 거꾸로 쥐고 있던 놈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 상태로 드잡이가 시작됐다. 그러나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냐고. 도대체 왜 손에 칼을 쥐고도 주먹질을 한 거지?


참전자는 위협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장에서는 겁을 주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오직 상대를 죽여서 아군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기계적인 동작의 연속이었다.


불륜남은 여자 앞에서 허영심을 부리다가 아라타루아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건 젊은 혈기 때문이었지만, 이번에는 혈기라고 해주기도 민망한 치기였다.


바로 며칠 전 호숫가에서 칼부림을 했던 경험 때문인지 몸이 전보다 훨씬 잘 놀았다.


서로를 쓰러뜨리려는 드잡이 도중이었다. 놈의 손을 움켜쥔 아라타루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으적!


“끄아아악!”


폭력배는 갑자기 애가 된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사람 손이 그렇게 쉽게 으스러질 줄 몰랐던 아라타루아는 크게 당황했다. 아마도 이빨이 뭉툭한 맹수에게 물린 느낌이었을 터였다.


아루타루아의 것과 똑같이 생겨먹은 손이, 손바닥 안에서 으스러지는 감촉은 생각보다 섬뜩한 것이었다.


그 감촉 때문에 어지간히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했지만, 워낙 크게 터져 나온 놈의 비명소리에 놀라기도 했던 아라타루아는 그 손을 놓치고 말았다.


챙강!


놈이 들고 있던 단검이 바닥에 떨어져 빙글 돌았다. 놈은 가지고 들어온 과일도 내버린 채 한 순간에 도망쳐 버렸다.


아라타루아는 멍해졌다.


아니 이게 돼? 아귀힘만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고? 뭐야 나 짐승이야? 이 법사 년 도대체 나한테 뭘 먹인 거야?


놈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홀은 조용했다. 그래서 묘하게 현실감이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드륵!


의자가 밀리는 소리를 기화로, 술 마시던 사람들이 전부 일어나 우르르 주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핏기가 싹 걷힌 시그나스가 카운터에서 걸어 나왔다.


“야 너 어쩌려고 이래? 저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뒤늦게 아차 싶었다. 그렇지만 그건 밖으로 놈을 끌고나가서 조용히 조져놓지 못한 데 대한 후회였지, 놈들이 두려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시그나스까지 말려드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잠깐 어디 가서 좀 숨어 있어. 몇 놈이나 오는지 보게.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나 모르는 놈이라고 하면 되잖아.”


시그나스는 정말 할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그보다는 겁이 더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말없이 잽싸게 사라져줬다. 과일앵벌이를 상회하는 속도였다.


조금 전 숲에서처럼 다시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아라타루아가 또 잔을 채웠다.


그 상태로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병이 비어가고 있었다.


그 빔처럼 마음은 평온해졌다. 스스로도 조금 놀라울 정도로.


나중에 불시에 보복을 당해 다치거나 죽을지언정, 그날 그 자리에서 누군가와 싸워서 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위가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지자 오히려 인면어 생각을 하기 좋았다.


인면어를 어디서 잡지? 여기서 얘기가 없으면 이 근방에서는 소문도 들을 수 없다다는 건데 멀리 가야 할 거 아니야. 많이 비싼 건가? 돈 주고 살 수는 없나?


혹시 사슴뿔처럼 양이 모자라서 문제가 생기면? 먼 거리를 또 왕복해야 될 수도 있잖아. 도대체 몇 마리나 구해 와야 하는 거야? 이건 메힐리나밖에 모를 텐데.


돌연 메힐리나가 간절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큰 싸움이 벌어지기 직전인데 간밤에 맛봤던 맨살의 감촉만 자꾸 떠올랐다. 그건 전쟁터에서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가 놈들을 조져놔야 한다면 자신이 최고의 적임자가 아닌가 싶었다. 아라타루아는 어차피 인면어를 구하기 위해 멀리 떠나있어야 할 몸이었고, 아이와 누나는 숲 속에 숨어사는 중이었으니까.


물론 뱃속에 허겁지겁 술을 부어넣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었으나, 이제 와서 되돌릴 길은 없어보였다.


어떻게 되겠지. 정 일이 잘못돼서 죽게 되면, 지옥구경 같이 할 놈들을 최대한 많이 데려가면 되는 거고.


그렇게 생각이 정해지자 문득 밖으로 나가서 싸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솔직히 그 생각은 좀 늦은 감이 있었다. 시그나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괜히 주점 안에서 버티다가는 기물이 부서지는 건 물론이고 시그나스까지 보복에 휘말릴 위험까지 있었다.


그런데 하필 아라타루아가 홀에서 걸어 나가려던 그때, 도망간 놈과 그 한 패거리가 도착을 했다. 시그나스에게는 슬픈 일이었다.


참전자 입장에서 보자면 그놈들의 대응속도는 꽤 늦은 감이 있었다. 이렇게 늦게 올 거였으면 조금 더 놀다 오지 그랬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점 문짝 앞에서 아라타루아를 막아선 놈들은 모두 넷이었다. 그 패거리 중, 문가에 서 있던 아라타루아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놈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아라타루아가 겁을 먹고 도망치려던 걸로 오해를 하는 것 같았다.


아라타루아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전쟁터에서는 오판을 하는 쪽이 먼저 위기에 빠지게 마련이었으니까.


놈들은 사람 키만 한 참나무봉과 속이 빈 쇠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품속에 감추고 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일단 날붙이는 보이지 않았다. 조직원의 손을 완전히 망가뜨리기는 했지만, 일단 놈을 살려서 보내기는 했으니 아라타루아를 죽일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다.


태평한 놈들이네?


혹시 폭력배들에게 자기들이 받은 대로만 되갚는 규율 같은 게 있는가 싶었다. 하여간 아라타루아는 그렇게 허술한 놈들이 마을사람들을 겁주고 돈을 뜯어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지간히 순박하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었을 일이었다.


전쟁터에서는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겁을 주는 일이 없었다. 알고 보니 위협이라는 것은, 약자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아라타루아는 그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다.


그 중 제일 서열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 놈이 앞으로 나서더니 인상을 험하게 일그러뜨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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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또 만났네요 24.03.01 20 0 11쪽
» 사소한 시비 24.02.29 29 0 11쪽
17 주점에서 24.02.28 10 0 11쪽
16 약기운 24.02.27 13 0 11쪽
15 먹으라고 24.02.24 13 0 10쪽
14 메힐리나 24.02.23 17 0 10쪽
13 약값 내라 24.02.22 31 0 10쪽
12 이상하게 서운하네 24.02.22 20 0 11쪽
11 식빵과 솥 24.02.20 18 0 10쪽
10 살인 24.02.19 19 0 11쪽
9 베테랑 24.02.18 98 0 11쪽
8 내 눈 24.02.18 46 0 11쪽
7 만남 24.02.10 21 0 12쪽
6 추격자 24.02.10 34 0 11쪽
5 불의 깃 24.02.10 76 0 11쪽
4 호기심 때문에 24.02.10 35 0 11쪽
3 뿔과 진흙의 시간 24.02.09 22 0 12쪽
2 하늘의 별을 따오라 그래 24.02.09 6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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