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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몬스터 먹고 독자 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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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3.07.22 18:31
최근연재일 :
2023.08.13 19:48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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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10,253

작성
23.08.0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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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전역자의 재무장

DUMMY

“내가 여기 오고 나서 바로 일망타진해보려고도 했었는데, 요즘은 이것들도 약아져가지고 점조직으로 운영을 한단 말이야.”

“점조직이 뭐야?”

“쉽게 말하자면, 애들이 한 군데에 성 쌓고 죄다 우르르 모여서 나쁜 짓 하는 게 아니고, 여기저기 분산돼 있는 거지. 이곳저곳 옮겨대면서.”

“쳐 패기 어렵게?”

“그래. 개고생 해서 문짝 부수고 들어가 봐야 잡히는 놈은 몇 마리 안 되는 거야. 간단한 일이 아니더라고. 이것들 머리를 쳐봤자 꼬리가 남아서 보복을 하는 식으로 돌아가는데, 우리 인력은 제한돼 있으니까. 나야 귀족이니까 못 건드리겠지만, 부하들이 자꾸 보복을 당하다 보면 나중에는 결국 팔다리가 다 잘리게 될 거 아니야. 그렇게 되면 어떻게 일을 하겠냐고?”

“그런데 그렇게 해서 돈을 버는데 노예상인들이 가만히 있어? 그놈들이 얼마나 악질인데.”

“그렇지. 나도 그게 이상해. 칼질을 했어도 한참 전에 했어야 정상이잖아. 나도 저 새끼들 저러다가 언제 한 번 경을 치겠지, 더 나쁜 놈들한테 금방 줘터지고 분해되겠지, 이러고 있었는데 막상 보면 아무 일이 없단 말이야? 뭘 믿고 저렇게 해먹고 있는 건지를 모르겠어. 무슨 어마어마한 흑막 같은 게 뒤를 봐주고 있지 않은 이상은... 요즘 노예상인들이 벼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는 있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여기는 변두리 폭력배들하고 도시 노예상인들하고 전쟁 터지기 직전일 거야.”

“그냥 그것들끼리 싸우게 놔두고 다 죽어나가기 기다리면 안 돼?”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는 그게 제일 좋은 결말이지. 그래서 나는 요즘 이것들을 이간질시켜가지고 싸움 한 번 붙여볼까 생각 중이었어. 그러던 와중에 네가 사고 쳐준 거고.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싶어서 골치 깨나 썩고 있었는데 잘 됐지 뭐. 오늘 일 빌미로 삼아서 이것들 좀 달달 볶아볼까 하고.”

“그런데 이것들 때려잡을 거면, 나도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토바나스의 눈이 이채를 내뿜었다. 말은 안 해도 눈으로는 반기는 기색이었지만, 카무드라블은 고민도 안 해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웃기고 있네. 큰일 나 인마! 우리도 섣불리 못 건드리고 있는데 네가 끼어들었다가 일 더럽게 돌아가면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카무드라블은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더니 세어보지도 않고 아르달하에게 던졌다. 툭, 가슴팍으로 날아와 꽂히는 돈주머니의 감촉이 숲에서와는 완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러더니 싱긋 웃으면서 빨리 꺼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익히 알고 있는 손짓이었다.


“야 빨리 가. 우리가 너 묶어서 끌고 가다가 놓친 걸로 할 테니까, 토끼기도 편할 걸? 빨리 여기 뜨라고. 알았지? 당분간 돌아올 생각하지 말고.”


어린 시절 해가 떨어질 때까지 뛰어놀다가 놀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카무드라블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던 모습과 그 실루엣이 아르달하의 뇌리에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아르달하는 잠시 먹먹해졌다. 고마운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서였다. 물론 이러한 아르달하의 감동은 카무드라블의


“...누님 잘 계시지?”


라는 말 한 마디에 산산이 박살나고 말았다.


...성욕 때문이었구나. 이 간나새끼. 아직 단념을 못했나봐? 변한 게 없어 여자 밝히는 건.


*


쩔그럭!


아침 치안관 사무실, 책상 위로 돈주머니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사무실에서 몰래 빠져나와 구석진 곳의 의자를 슬쩍 돌려놓고 비스듬히 앉아서 지난밤 야간출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몰래 한 숨 때리려던 치안관이 깜짝 놀라 허우적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너머에는 아르달하가 서 있었다.


카무드라블은 아르달하를 보자마마 당장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는 것 같더니 그러지 못하고 조용히 뒷목을 잡았다. 그러더니 남들이 들을 것이 겁나는지 목소리를 낮췄다.


“야이 시발 너 어쩌려고 이래? 튀라고 했잖아 이 등신아!”

“돈이 모자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아예 저것들 다 잡아 조지고 현상금 좀 더 벌어서 가볼까 하고.”

“야이 씨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현상금에 목숨을 걸어? 아 미쳤냐고!?”


카무드라블의 언성이 점점 올라갔다.


“그리고 누나가...”

“누나!? 누나가?”


카무드라블은 이미 의자에서 일어나 있었지만 거기서 한 번 더 벌떡 일어났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심정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르달하는 일부러 뜸을 들였다. 카무드라블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왜왜왜 뭐 왜? 아니 내가... 숲 속에 숨어사신다는 얘기는 진작 들었는데!”

“누나가...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이대로 나 혼자서만 도망가면.”

“아 뭔 소리야. 거기 잘 숨어계시면 별일 없을 거 아니야? 사람들도 거기 어딘지 아무도 모르더만? 정 불안하시면 우리가 그쪽 순찰도 좀 하고...”


역시. 누나 있는 곳을 열심히 캐고 다녔던 모양이지. 이게 공과 사를 구분 못하고?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는 주변정리부터 해야 돼. 저렇게 성가신 것들을 놔두고는 도저히...”


아르달하의 입장에서는, 인면어를 잡을 때 드는 경비가 어느 정도일지 종잡을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쫓기는 몸이 되어 멀리 떠나봤자 집 걱정 때문에 일을 그르칠 가능성도 무시할 정도가 아니었다. 사냥이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리하여 아르달하는, 그놈들을 다 잡아 조져놓고 개운하게 떠나는 편이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어처구니가 없어진 카무드라블이 입을 떡 벌렸다.


“...마음대로 해라. 난 모른다 이제.”


카무드라블이 돌아앉은 뒤에 알아보니 아직 현상금 처리는 하지 않은 채였다. 서명을 위조해서 수수료를 떼 가겠다는 건 말뿐이었던 건가 싶어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순찰을 마치고 복귀한 토바나스가 아르달하를 발견했다. 반가워하는 듯한 얼굴로 인사를 하려는 것 같았지만, 냉정하게 쌩까기로 했다.


저 새끼는 왠지 마음에 안 들어.


넋이 나가 있는 카무드라블에게 순찰결과가 보고됐다.


“사고현장에 불온한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점주가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었고, 기마순찰과 도보순찰을 모두 강화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토바나스의 보고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카무드라블이 느닷없이 물었다.


“치자고? 진짜로?”


토바나스에게 묻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아르달하가 대답했다.


“좋은 기회 아니야? 나는 참전자였고, 지금도 열 사람 몫을 할 수 있으니까 내가 도와준다고 할 때...”

“지랄 마 이 새끼야. 같이 나이 먹어 가는 처지에.”


말은 장난스럽게 해놓고도, 진지한 얼굴로 고심하던 카무드라블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빛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재미있는 놀이를 하기 전에 으레 그러했듯이.


“알았어. 어차피 어젯밤에는 아무런 보복도 못하고 그냥 지나갔으니까, 아마 오늘부터 보복하려고 들겠지. 아무래도 보복하기 전에 밟아놓는 게 더 효율적일 테니까.”


카무드라블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토바나스에게 눈짓을 했다.


“일단 계획부터 수립하자고.”


의외로 토바나스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설명이 없었는데도 상황을 다 파악하고 고개를 한 번 끄덕여보이더니 바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카무드라블과 토바나스의 뒤를 이어 연차가 좀 있어 뵈는 대원들이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사무실 문이 잠기자, 아르달하도 혹여 누가 볼까봐 자루 속에 숨겨 가지고 간 갑옷과 창, 활을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 그때 계획수립에 필요한 서류를 가지러 나왔던 토바나스가 그 모양을 보고 잔소리를 했다.


“창 자루. 좀 짧게 자르는 게 좋을 거야. 투창으로도 쓸 수 있을 정도 길이로.”


아오 짜증나.


“나도 알거든?”


동시에 빈정이 상한 아르달하와 토바나스가 동시에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었다.


장창 날은 전역 이후에도 멧돼지 사냥 등에 들고 나갔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상태가 괜찮았다. 하지만 갑옷은 정말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나이어린 보조들이 아르달하의 갑옷 상태를 보고 기겁을 했다.


“저기... 이거 제대로 갑옷구실 못할 것 같은데요? 녹슬면 갑옷이 깨져요 아저씨.”

“나도 알거든?”


그래도 갑옷 없이 아예 맨몸으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터였다.


뭐, 칼질 한 번 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


딱 한 번이라고 해도 그 차이는 절대적이다. 참전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화살을 확인하는 동안, 아르달하는 야간에 몰래 숨어들어가 왕의 사슴뿔을 부러뜨린 자신의 무용을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그렇지만 역시 말할 수 없었다. 다른 데도 아니고 치안관 사무실에서 멍청하게 그딴 소리를 자랑삼아 지껄였다간 바로 체포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르달하가, 전날 범행현장에서 압수된 참나무장봉을 꺾고 깎아서 창날을 다 끼웠을 때쯤 치안대의 작전계획도 완성되었다.


“뭐? 병력이 이거밖에 안 됐어?”


비번인 대원들과 취사병, 거기다 카무드라블의 개인 인력인 종자와 시종까지 총동원해도 24명 뿐이었다. 거기에 깍두기 +1을 해서 25번째 용사님이 된 아르달하가 절절히 신음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점조직은 한 곳을 쑤시면 다른 놈들이 도망을 가게 마련이었다. 일망타진하려면 병력을 분산시켜 급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수적으로 열세일 텐데 이 병력을 또 분산시킨다고?


아무리 갑사들을 데려가는 거라고 해도 위험이 컸다. 놈들은 주로 둔기를 사용해 힘없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본거지에는 습격에 대응할 날붙이들을 숨겨놓고 있을 것이 거의 확실했기 때문이다.


아르달하는 내심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어 이 시발 도망가랄 때 그냥 갈 걸 그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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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꼬일게요 23.08.12 10 0 10쪽
22 검은 매의 순간 23.08.11 10 0 10쪽
» 전역자의 재무장 23.08.08 13 0 10쪽
20 뒷거래 23.08.06 9 0 10쪽
19 또 만났네 23.08.05 12 0 9쪽
18 사소한 시비 23.08.04 13 0 10쪽
17 시그나스 23.08.03 14 0 10쪽
16 약기운 23.08.01 13 0 10쪽
15 먹으라고 23.07.29 15 0 10쪽
14 두 번째 약 23.07.27 17 0 10쪽
13 약값 23.07.26 15 0 10쪽
12 이상하게 서운하네 23.07.25 15 0 10쪽
11 식빵과 약솥 23.07.24 14 0 10쪽
10 살인마 23.07.23 13 0 10쪽
9 베테랑 23.07.23 12 0 11쪽
8 내 눈 23.07.23 9 0 11쪽
7 만남 23.07.23 11 0 11쪽
6 추격자 23.07.23 11 0 10쪽
5 날개 23.07.23 11 0 11쪽
4 호기심이 사냥꾼을 23.07.23 10 0 11쪽
3 뿔과 흙의 시간 23.07.23 13 0 12쪽
2 하늘의 별을 따오라 그래 23.07.23 20 0 11쪽
1 피가 멈춰 +2 23.07.23 5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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