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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몬스터 먹고 독자 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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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3.07.22 18:31
최근연재일 :
2023.08.13 19:48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349
추천수 :
1
글자수 :
110,253

작성
23.07.23 17:31
조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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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추격자

DUMMY

소름끼치는 소리에 이어 참혹한 고통이 찾아왔다. 격심한 통증에 아르달하는 눈을 부릅떴다.


날개를 편 짐승은 어느덧 아르달하가 평생 봐온 나무들 중 가장 높았던 것의 높이까지 다가와 있었다. 지상의 모든 것을 불태우려는 것처럼.


아르달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비명을 지르는 일 말고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으아아악!


*


“끄아악!”


아르달하는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어두워서 눈앞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였다. 아르달하는 크게 당황해 허둥대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슴목장의 진흙 위였다. 사냥을 시작하기 전, 젖은 땅위에 엎드려 있던 그대로였다.


아르달하의 기척을 느낀 사슴들이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족히 이백 마리가 넘을 사슴들이 한꺼번에 각자의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마치 아르달하가 쏘았던 화살처럼.


우두두두두!


사슴들의 발굽이 만든 진동이 땅을 통해 전해져왔다. 그 진동에 현실로 끌려 들어온 아르달하의 잠이 확 달아났다.


뭐지? 졸다가 헛꿈을 꾼 건가?


머리가 멍했다. 평소 같지 않았다.


도망치잖아! 어서 잡아! 저 망할 사슴새끼들을 잡아야 해!


아르달하는 자신이 원래 원했던 것이 사슴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슴뿔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몸이 무거웠다. 목덜미와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꿈속에서 전력질주라도 했던 듯 호흡도 거칠었다.


아르달하는 활을 빼들고 비척비척 일어섰다. 그렇지만 사냥은 이미 끝나 있었다.


어? 뭐야 이건?


끈에 묶인 사슴뿔이 바로 한 걸음 앞에 놓여있었다. 꿈에서와 같은 세 개. 줄이 묶인 모양도 아르달하가 묶은 그대로였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제야 잠들기 전의 일들이 기억났다.


그럼 그 망할 놈의 일들이 꿈이 아니었다는 거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아르달하가 꿈을 꾸었던 거라면 그 사슴뿔은 사슴대가리에 달려있어야 했고, 꿈이 아니었다면 그 장검과 날개에 불붙은 새새끼는...


어느 쪽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삐이이이익!


컹! 컹컹컹컹! 컹컹!


소리가 가까워져 있었다. 아르달하는 사슴들이 그러했듯 정신 못 차리고 뛰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지만 아르달하 역시 약자였다. 발각됐다간 사슴처럼 사냥당할 처지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튀고 봐야겠는데!


아르달하는 진흙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진흙은 아르달하의 발을 삼키고 다리와 옷에 들러붙었다.


처벅! 처벅! 처벅! 처덕!


숲은 멀지 않았다. 그러나 발자국이 남을 터였다. 추적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렇지만 아르달하에게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날이 밝고 나면, 감시인들은 사슴들의 수를 헤아려 볼 것이었다. 그 사실 역시 분명했다.


아무리 왕의 사슴이라고 해도, 알고 보면 뿔 세 개가 없어진 것뿐이었다. 아르달하가 아는 한, 관료들은 그런 일을 가지고 공연히 난리를 피울 종자들이 아니었다. 비록 침입자가 왔다갔다고 해도, 사슴 수가 변함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즉시 추격을 멈출 것이 분명했다. 아르달하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자기들이 대단한 벼슬아치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거기서 더 움직이려고 할 리 없었다. 절대로.


관료제라는 건 그런 것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자들이 움직이는 자들을 통치하고 간섭하고 지배하는 것.


그러니 아르달하는 밤이 샐 때까지만 붙잡히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 모든 것이 끝이었다.


컹컹컹컹!


생각보다 개들이 많이 동원된 것 같았다. 그것이 변수라면 변수였다.


아르달하는 개를 좋아했다. 배신을 모르는 짐승이어서였다. 개는 사람처럼 마음을 덜어낼 줄 몰랐다. 항상 온전히 제 마음을 다 주었다.


그러나 개는 배신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역으로 자신이 속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아르달하는 극도로 지쳐 있었다. 맨땅에서든 숲속에서든 추격전이 벌어지게 된다면 금세 따라잡힐 터였다. 게다가 땀으로 젖어 있기까지 했으니, 개들의 예민한 후각이 아르달하를 놓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아르달하는 미친 사람처럼 숲의 나무 사이를 가로질렀다. 시위를 걸어놓은 활과 사슴뿔이 나뭇가지에 걸리고 튀었다. 추격자들을 불러들이려는 것처럼 자꾸 소리를 만들어냈다.


아르달하가 승부를 걸어볼 만한 곳이 있었다.


물속이었다. 바로 전날 쏟아져 대지를 흠뻑 적셨던 폭우는, 공평하게도 시냇물까지도 한참 불려 놓은 뒤였다. 그 결과 시내라고 하기에는 꽤나 거창하고 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그런 애매하고도 강력한 물줄기가 머잖은 곳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개들은 물 속에 들어간 사람의 냄새까지는 맡을 수 없었다. 사실 아르달하 입장에서는 물 속으로 들어가 숨는 것 말고는, 추격자들을 따돌릴 다른 어떤 방법도 생각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아르달하는 이후로는 두 번 다시 달리지 않을 사람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헉! 헉! 허헉!


컹컹! 컹컹컹!


그래도 사냥개들과의 거리는 착실히 줄어들고 있었다.


아르달하를 잡지 못한 채로 다음날 사슴의 머릿수를 세어본다면 당장 사건을 덮어 없애겠지만, 거기서 침입자가 잡히면 일을 부풀려 자기 공적으로 삼을 것이었다. 그것이 관료제의 방식이었다.


쫓기는 입장이었지만 아르달하는 찬찬히 물에 앉았려고 애를 썼다. 절대로 물에 들어가는 소리가 나서는 안 됐다.


물의 흐름은 생각보다 거셌다. 그러나 돌아나갈 길을 없었다. 손으로 더듬고 몸으로 짚어가며 물 속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냄새를 숨기다가, 숨을 참고 머리까지를 쑤욱 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내친김에 잠수까지 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물 속 위치가 안정되기도 전이었다. 성급하고 섣부른 행동이었다. 아르달하는 금방이라도 물살에 쓸려나갈 듯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양팔을 내저었는데, 다행히 손에 나무뿌리 하나가 잡혀줬다. 그마저도 없었더라면 바로 떠내려갔을 터였다.


물 속에 귀를 잠그고 있어도 소리는 들린다.


아르달하는 기다렸다. 추격자들이 자신을 지나치기를.


컹컹컹!


개 짖는 소리가 어슴푸레하게 물에 실려와 귓전을 간지럽혔다. 그렇지만 눈도 제대로 뜨지 힘든 물 속이었다.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 까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컹컹컹!


아르달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들이 멀어지는 중이기를 바라는 것 뿐이었다.


추격자들이 아르달하를 앞질러 나갔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숨이 차서 더 이상 잠수할 수가 없었다. 아르달하는 조심스럽게 물 위로 머리만 내밀고 눈을 떴다.


푸헢! 헉!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여간 애를 쓴 게 아니었는데도, 숨소리마저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사람은 숨을 쉬어야만 살 수 있으니까.


추격자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급히 달려오던 그대로 시내를 지나쳐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아르달하가 죽을힘을 다해 속도를 낸 덕도 있었지만, 어두워서 발자국을 잘 살피지 않고 개의 후각에만 의존했던 것이 실수가 된 듯싶었다.


아르달하는 안도했다.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고 자리를 뜨면 상황은 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르달하가 실수를 했다. 꼭 움켜쥐고 있던 나무뿌리를 놓치고 말았다. 손 안에 있던 뿌리가 쑥 미끄러져나갔다. 물에 들어가기 전부터 저리던 손이었다. 꿈에서 팔 속으로 칼이 박혀 들어갔던 손.


아르달하의 몸이 물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푸 그 르 르 르 르 워 어 엎!!!


아르달하가 가지고 있던 모든 선택지는 한 순간에 다 날아가 버렸다.


아르달하는 급류에 휩쓸렸다. 그대로 물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했다.


살려달라 소리 지를 수도 없었다. 불어난 물은 아르달하의 소리를 모두 집어삼켰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아르달하는 크게 당혹했다.


그 위기가 딱히 치명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아르달하는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침착하고 냉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몸 상태가 좋았다. 밤에 흐르는 물은 더 차가운 법이어서 금세 추위가 찾아올 줄 알았지만,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상하게 몸이 뜨거웠다. 먹은 것도 없이 움직이다가 기력을 다 소진하고 말았으니 몸이 차가워지는 것이 정상이었으나, 몸에는 이상한 열이 넘치고 있었다.


무리한 끝에 혹시 몸살이나 열병에라도 걸린 건가 싶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몸이 가뿐했다.


뭐지 이게?


휩쓸려 내려가던 아르달하는 그리 어려운 느낌 없이 물 속에서 균형을 잡았다. 크고 둥그런 돌과 쓰러진 나무 등을 붙들거나 의지해가며 물 위로 머리를 내미는 데 성공했다.


숨통이 트이고 난 뒤부터는 상황도 점차 안정되어 갔다. 아르달하는 두 다리로 물밑 바닥을 딛고 휘청거리며 걷게 되었다. 자다 깬 사슴들이 그러했듯 미끄러지고 나자빠져가면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하류를 향해 유유히 걷고 헤엄치다가 또 걷기를 반복했다. 물이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어느덧 아르달하는 물 속이 아닌, 어린 시절 누나와 물장난을 치던 기억 속을 흐르게 되었다.


하류에 당도하면서부터는 점점 기분이 나아졌다.


아르달하는 한참 불어나서 이제는 아예 호수 같아 보일 정도까지 커진 개울에 당도했다. 개울은 넓고 얕았다. 아르달하의 하반신만 물에 잠기고 상반신은 물 위로 나왔다.


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몸은 다친 곳 없이 말짱했다. 꿈속에서 장검이 파고 들어갔던 팔이 계속 저리는 것 말고는 불편한 게 없었다.


아르달하는 귀를 기울였다.


개 짖는 소리와 호각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았다. 물에 휩쓸려 떠내려 오기는 했으되, 그렇다고 아주 멀리까지 흘러온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아르달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추격이 종료된 것 같아서였다.


왜지? 왜 벌써 추격을 멈춘 거야? 벌써 사슴 수를 확인해 본 건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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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시그나스 23.08.03 14 0 10쪽
16 약기운 23.08.01 13 0 10쪽
15 먹으라고 23.07.29 15 0 10쪽
14 두 번째 약 23.07.27 17 0 10쪽
13 약값 23.07.26 15 0 10쪽
12 이상하게 서운하네 23.07.25 15 0 10쪽
11 식빵과 약솥 23.07.24 14 0 10쪽
10 살인마 23.07.23 13 0 10쪽
9 베테랑 23.07.23 12 0 11쪽
8 내 눈 23.07.23 9 0 11쪽
7 만남 23.07.23 11 0 11쪽
» 추격자 23.07.23 11 0 10쪽
5 날개 23.07.23 11 0 11쪽
4 호기심이 사냥꾼을 23.07.23 10 0 11쪽
3 뿔과 흙의 시간 23.07.23 13 0 12쪽
2 하늘의 별을 따오라 그래 23.07.23 20 0 11쪽
1 피가 멈춰 +2 23.07.23 5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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