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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몬스터 먹고 독자 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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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3.07.22 18:31
최근연재일 :
2023.08.13 19:48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348
추천수 :
1
글자수 :
110,253

작성
23.08.0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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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시그나스

DUMMY

인근에서 술을 파는 곳은 한 곳 뿐이었다. 예전에는 두 군데인가가 더 있었다고 들었으나 인구가 줄어들면서 망해나갔다는 것 같았다.


‘시그나스 여관’


이름은 여관이었지만 생필품 상점이기도 하고 선술집이기도 한, 잡다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없는, 그런 시골구석까지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감소하면서 여관은 거의 폐업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간판을 내리지는 않고 있었다.


그 여관 겸 상점 겸 선술집의 주인은 시그나스였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였고, 아르달하보다 나이가 열 살 정도 많았다.


아르달하가 어렸을 때에는 대대로 물려받은 과수원농사를 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풍년이 들었던 해에 돈을 끌어 모아 망해가는 여관을 인수했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빠져나가기만 하는 자리에서도 꾸역꾸역 가게를 꾸려가는 걸 보면 장사 수완은 있는 사람이었다.


덩치가 크지도 않았고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워낙 살이 통통하게 꽉 들어찬 체형이어서 사람들 눈에 잘 띄었다. 성별과 연령을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호감과 안도감을 주는 유형이었지만, 매력적인 용모를 가진 건 아니었다.


그런 자격지심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마을 청년들 중에서 아르달하의 누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적이 없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어쩌다 어린 시절의 아르달하를 만나면 알은체를 하며 낙과 하나씩을 던져주곤 했을 뿐, 뭘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 덕분인지 뒤숭숭한 시기에 이단심판관에게 끌려가지도 않았었고, 따라서 아르달하와도 원한을 질 일이 없었다.


가만 보면 아르달하하고만 은원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을의 모든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둥글둥글하게 사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는 사실을 아르달하가 깨달았던 것은 세월이 더 흐른 뒤였다.


눈이 크면 겁이 많다는 속설처럼, 시그나스는 겁이 굉장히 많았고 그래서인지 평생 싸움판에 휘말려들었던 적이 없었다. 다툼이 벌어질 각이 보이면 남들의 비웃음을 사건 말건 냅다 자리를 피하고 보는 순한 인물이었다.


농사와 주점을 함께 굴리며 돈을 꽤 만지는 것 같았는데도, 고향 떠날 생각을 안 하고 산다는 것도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이유였다.


아르달하가 홀에 들어서자마자 시그나스가 소리를 질렀다.


“아르달하! 이 새끼 외상값 안 갚고 잠수 타더니 어디서 돈 좀 벌었냐?”


말은 그렇게 해도 입가에는 반가움을 담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너 새 애인 생겼다며?”


그 미친 시골마을은 무슨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소문이 빨랐다.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막상 소문의 당사자가 되고 보니 아르달하도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술 먹던 놈들이 낄낄거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우여곡절 끝에 메를리나와 몸을 섞게 되었던 아르달하는 내심 뜨끔했다. 바로 발끈해 마주 소리를 질렀다.


“뭔 헛소문을 그렇게 퍼뜨리고 다녀? 애는 어쩌고 여자를 만난다는 거야 내가?”

“야 애 입장에서도 새엄마 들어오는 게 낫지! 그동안 네가 사람구실 제대로 못해서 그 쪼끄만 놈을 얼마나 고생시켰냐?”

“웃기네. 생사람 잡지 마.”

“근데 저 새끼 저거 애 아빠 노릇은 제대로 못하는 것 같더니 정력은 좋은 모양이네? 어디서 몸 좋아지는 약이라도 먹은 거야? 여기 와서 비결 좀 알려줘 봐.”


약발(?)로 여자를 즐겁게 했던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었다. 아르달하는 또다시 뜨끔했다. 말대답도 못하고 얼굴만 벌겋게 붉히며 빈 테이블에 앉았다.


아 이 저 인간이 진짜... 어떻게 알았지? 내일쯤 되면 새장가 든다는 소문 돌겠네?


“너 또 누나 집에다가 애 떠맡기고 온 거지? 어떻게 된 게 그 모양이냐, 너는?”


아르달하의 누나 얘기가 나오자 눈을 빛내며 아르달하를 돌아보는 놈들이 있었다. 숲에 숨어산 지가 오래되었으니 페이의 얼굴을 실제로 본 사람은 별로 없을 터였고 그저 소문으로만 들었을 텐데도, 페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아니 신비감이 더해져서 그런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끈적끈적해진 느낌이었다.


정보수집 겸 기분전환을 하러 왔다가 또 강제로 누나 생각을 하게 된 아르달하가 이를 악물었다.


“네 누나는 뭐 죄졌냐? 그게 뭔 고생이냐고?”

“아 시끄러워! 그만 해 좀. 다 해서 얼만데? 이걸로 외상값 털고 술이나 가져와.”


페이가 내던졌던 돈주머니가 그대로 시그나스에게 던져졌다.


전 재산이라고 하면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술값으로 날려버리기에는 큰돈이었다.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고, 아르달하도 내심 후회를 했지만 그래도 뱉은 말을 도로 주워 담지는 않았다. 그날은 어쩐지 술이 당겼다.


외상값을 달라고 하면 늘 다음에 준다고 뭉개며 뺑소니를 치기 일쑤였던 아르달하가 카운터에 돈주머니를 던지자, 시그나스는 입을 헤 벌리고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술병과 잔을 꺼내더니, 아예 의자까지 가져다 놓고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야 너 집에 무슨 일 있냐?”


시그나스는 가져온 잔에 술을 따라줬지만, 아르달하는 술잔을 그대로 놔둔 채 잠시 고민을 했다.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날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렇지만 시그나스가 단골손님에게 따라주는 첫 잔은 계산에 안 들어가는 공짜 술이었다. 다른 경쟁주점들이 사라지고 난 뒤 오래도록 독과점을 하고 있었지만, 그냥 사람이 좋아서 그렇게 하는 중이었다.


아르달하는 그냥 들이키기로 했다. 그래도 시그나스에게 인면어에 대해서 묻는 걸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인면어? 인면어가 뭔데? 생선 같은 건가? 먹을 수 있는 거야? 몰라. 내가 장사 시작한 뒤로는... 글쎄다? 여기 와서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은 못 봤는데.”


술이 달았다. 아르달하는 연거푸 두 잔을 더 들이켰다.


“야 그... 사람 얼굴을 한 물고기 같은 건 잊어버려. 엉뚱한 데 찾아가서 고생만 하다가 돈 날릴 생각 말고, 일 열심히 다녀서 조금씩이라도 더 벌어보란 말이야. 아니면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든지. 내가 알아봐줘? 지금 너 상황 어려운 거 나도 아는데, 애가 열 살만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고생 끝이라더라. 삼 년만, 아니 이 년만 더 참아봐. 아무리 막막해도, 꾹 참고 억지로 살면 다 살아지는 건데 왜 못 살아? 이렇게 젊고 팔팔한데?”


그즈음 아르달하가 들었던 말들 중 가장 울림 있는 말들이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맙다 말도 못하고 그저 술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게 또 미안해졌다.


아르달하가 진정하는 기미를 보고 안심한 시그나스는, 아르달하가 던진 돈주머니를 가져와 툭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야. 않던 짓하면 죽는다고 하니까, 외상은 갚지 말고 그냥 놔둬라. 나중에 팔아먹기 좀 애매한 고기 남는 거 있으면 가게로 갖다 줘. 그걸로 퉁 치면 되지 뭐. 천천히 마시다 가.”


시그나스는 다시 일을 보기 위해 휑하니 카운터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게 안의 다른 손놈들에게도 아르달하를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마음씀씀이가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아르달하는 시키는 대로 얌전히 집에 가기로 했다. 정말 두어 잔만 더 마시고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필 막잔을 쭉 넘기고 술맛을 음미하던 그때, 여관 겸 상점 겸 주점 문이 벌컥 열리고 앵벌이가 들어왔다.


가지고 들어온 걸 보니 아마 과일을 팔아먹으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과일장수의 모양새가 이상했다.


얼룩덜룩한 문신이 새겨진 팔뚝을 감추지 않고 버젓이 내놓은 채였다. 폭력단의 조직원들이 새기는 양식과 문양의 문신이었다. 술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살이 거의 동시에 찌푸려졌다.


문신은 아르달하로 하여금 전쟁 중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야만인들, 특히 야만인 보병들은 문신을 새긴 놈들이 많았다. 전투 중에 상대 몸에 문신이 새겨져 있음을 확인한다는 것은, 상대가 갑옷을 입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는 말과 같다.


무슨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 문양이어서 그랬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야만인들은 문신이 새겨진 맨몸을 훤히 드러낸 채 칼과 방패 혹은 창과 도끼 한 자루씩만 들고 달려들었다.


전투 시작 전에는 못내 가소로웠지만, 전투 중에는 사뭇 두려워졌으며, 전투가 끝난 뒤에는 경이롭고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했던 자들이었다. 모두 훌륭한 전사들이었다.


폭력단의 문신은, 그런 야만인 전사들의 문신과는 성격이 달랐다. 그건 자기들이 너무 겁이 많아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사실을 내보이는 표식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에게 붙이는 푯말 같은 것일 뿐.


시그나스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새파란 놈인데 뭘 어쩐다고 저러는 거지? 좀 지켜보기로 할까.


아르달하는 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보아하니 별로 신선하지도 않은 과일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강매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도매를 한 건지 어디서 훔쳐온 건지 아리송해지는 품질의 물건들이었다.


폭력배들은 원래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게 마련이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더 사람을 쥐어짜는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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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숲과 야만 23.08.13 17 0 10쪽
23 꼬일게요 23.08.12 10 0 10쪽
22 검은 매의 순간 23.08.11 10 0 10쪽
21 전역자의 재무장 23.08.08 12 0 10쪽
20 뒷거래 23.08.06 9 0 10쪽
19 또 만났네 23.08.05 12 0 9쪽
18 사소한 시비 23.08.04 13 0 10쪽
» 시그나스 23.08.03 14 0 10쪽
16 약기운 23.08.01 13 0 10쪽
15 먹으라고 23.07.29 15 0 10쪽
14 두 번째 약 23.07.27 17 0 10쪽
13 약값 23.07.26 15 0 10쪽
12 이상하게 서운하네 23.07.25 15 0 10쪽
11 식빵과 약솥 23.07.24 14 0 10쪽
10 살인마 23.07.23 13 0 10쪽
9 베테랑 23.07.23 12 0 11쪽
8 내 눈 23.07.23 9 0 11쪽
7 만남 23.07.23 11 0 11쪽
6 추격자 23.07.23 10 0 10쪽
5 날개 23.07.23 11 0 11쪽
4 호기심이 사냥꾼을 23.07.23 10 0 11쪽
3 뿔과 흙의 시간 23.07.23 13 0 12쪽
2 하늘의 별을 따오라 그래 23.07.23 20 0 11쪽
1 피가 멈춰 +2 23.07.23 5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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