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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마음껏 써보는 아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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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3.02.24 11:31
최근연재일 :
2023.03.10 22:42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400
추천수 :
1
글자수 :
75,967

작성
23.02.25 18:42
조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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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싸움 남

DUMMY

폭력단의 수괴는, 이 미망인을 데리고 질릴 때까지 놀다가 사창가에 굴려 큰돈을 벌어볼 작정이었다. 부하들을 보내 대놓고 미망인을 납치해 오게 했다.


놈들은 한밤중에 들이닥쳐 미망인과 그 아이를 강제로 떼어놓았다. 미망인은 구슬프게 울며 도움을 청했지만 어느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처지였다. 졸지에 엄마를 빼앗기게 된 아이 울음소리에 발걸음을 멈춘 행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모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수괴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다. 만일 그 날이 축제의 마지막 날이 아니었더라면 정말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미망인은 어떻게든 놈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아무거나 되는 대로 붙잡고 늘어지게 되었는데, 일이 꼬이려고 보니 하필 엄살쟁이의 옷자락이 그 손에 잡히게 되었다.


엄살쟁이는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누가 갑자기 자기 옷을 죽어라 잡고 늘어지는 통에 옷이 홀랑 찢어져버렸다는 사실도 두 박자 늦게 깨달았을 정도였다.


정확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하여간 엄살쟁이는 축제 기간 내내 행방이 묘연했던 차였고, 그래서 시합을 하나도 뛰지 못해 기운이 남아 돌던 참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자마자 바로 주먹을 날렸다.


사람들의 이목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행패를 부리던 깡패들은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지거나 모래바닥에 얼굴이 처박혔다. 한 방에 턱을 제대로 맞고 기절한 놈까지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본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놈들이었다.


운 좋게 도망친 한 놈이 자기 패거리들을 데리고 돌아와 엄살쟁이를 찾아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그 자리는 내기권투선수들은 물론 씨름꾼들까지 전부 무여 축하연을 벌이던 노천식당이었다.


같이 있던 씨름꾼들과 내기권투선수들 역시 거나하게 취해가던 중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엄살쟁이를 돕고 나섰다.


큰 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민망할 정도로 순식간에 갈렸다. 술에 취해 있기는 했어도 매일 고된 훈련으로 단련된 사람들이었다. 깡패들은 땅바닥에 던져져 기절해 버리거나 얼굴이 엉망이 될 때까지 얻어터졌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모두 꽁지가 빠져라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그 사이에 미망인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다. 그녀의 아이와 함께.


엄살쟁이와 그 친구들의 완벽한 승리였다. 항구의 사람들도 함께 환호성을 올렸다.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고래고래 그날의 축제를 기념하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다 같이 섞이고 엮이고 뒤엉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술통을 비웠다.


광란의 밤이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술에서 깼던 것은 아흐마드였다. 그때까지도 기절해 땅바닥에 나자빠져 있던 깡패새끼들을 발로 차고 굴려가며 길옆으로 치우던 도중, 놈들의 몸에서 폭력단을 상징하는 문신을 발견했던 것.


술기운은 한 순간에 다 날아가 버렸다.


그제야 큰일이 터졌다는 것을 깨달은 아흐마드는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이미 다들 걸음을 옮기기도 어려울 만큼 취해 있었다. 결국 그들은 무방비 상태로 습격당하고 말았다.


그 자리에는 항구에서 기운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죄다 모여 있었지만, 몽둥이와 단검으로 무장한 채 아예 죽일 작정으로 공격해오는 폭력배들을 대적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칼에 찔린 동료들의 비명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각기 식탁과 의자를 들고 대항해 보았지만, 놈들의 수는 너무 많았다.


습격을 미리 예감하고 집으로 내달렸던 아흐마드는, 벌목용 도끼를 들고 나와 격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술에 취해있던 터라 공격이 정교하지 않았고, 벌목용 도끼는 전투용 도끼보다 날이 두껍고 무거워 공격을 하고 난 뒤 병기를 회수하는 동작에서 상당한 빈틈을 드러냈다.


아흐마드는 놈들의 칼에 무릎을 찔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천만다행으로 길옆으로 굴러 떨어져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반면 다른 씨름꾼들과 내기권투선수들은 하나둘 칼에 찔려 쓰러져갔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모두의 눈앞에 사신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죽음의 예감이 찾아왔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어느 구석에선가 비명과도 같은 고함소리가 터져 나와 항구의 밤하늘을 비통하게 찢어발겼다.


“칼! 칼! 장검 한 자루를 가져오는 자에게 성 하나를 주겠다!”


*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장검을 제대로 쓸 줄 사람은 흔치 않았다.


우선 장검이라는 물건 자체가 흔하지를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이슬람 문화권에서 주로 쓰이던 검은, 칼자루가 짧아 한 손으로 다루어야만 하는 기병용 군도 형태가 가장 많았다. 칼날이 칼등 방향으로 휘어있는 외날 곡도였는데, 칼의 곡률이 꽤 크다 보니 베기 공격은 하기 좋아도 찌르기 공격은 다소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검신이 쭉 곧은 직검하고가 아니라, 같은 곡도인 일본도와만 비교해 봐도 그랬다. 그래서 한 손으로는 칼자루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칼날 등을 잡은 상태로 양손의 힘을 모아서 찌르거나 밀어붙이는 등의 변칙적인 기술도 사용되곤 했다.


어쨌거나 장검은 그 존재 자체로 실용성을 배반하게 되어있는 요물이다. 허영심의 결정체나 다름없는 장식용 무기.


검의 사용자가 말을 타고 있든 땅에서 걷고 있든 간에, 실용성은 창보다 한참 떨어지는데 가격은 창의 두 배 이상이다.


게다가 사용하기도 더럽게 어렵다. 실용성이 높지도 않은 그 기술들을 연마하는 데는 시간이 꽤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기량을 쌓아봤자, 자신과 동등한 수준으로 숙련된 적이 더 긴 병기를 들고 오면 또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


장검의 위력이 발생하는 부분은 칼끝이다. 그런데 장검의 칼자루에서부터 칼날 허리 부분까지는 얼마든지 맨손으로도 붙잡고 늘어질 수 있다.


장검 사용자의 적이 손에 보호장갑 등을 끼지 않은 맨손이라고 해도 위험은 여전하다. 만일 적이 손을 베일 각오를 하고 달려들어 초근접전을 펼친다거나 하면, 장검은 반드시 거추장스럽고 불리한 지팡이가 되고 만다.


물론 그런 육탄전을 실행할 만한 용기와 경험을 가진 적은 장검만큼이나 흔치 않다. 하지만 어쨌든 장검이 말 위에서 중력의 도움을 받아 말 밑의 적들을 치고 벨 때 외에는 별로 쓸 데가 없는 건 사실이다.


*


그렇지만 장검 사용자가 단검을 든 적을 상대할 시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아무리 짧은 단도일지라도, 일단 칼을 손에 잡게 된 자들은 대체로 자기 칼을 놓으려 들지 않는다. 단도를 내던지고 드잡이를 벌여 손으로 장검을 붙잡고 늘어질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단검 사용자들은, 상대방의 간격 안으로 들어가 주요 부위를 찔러 즉각적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때문에 자기 손목을 다 노출시킨 상태로 장검 사용자에게 맞서려 드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 장검을 든 자의 입장에서 가장 쉽게 노릴 수 있는 부위는 손목이다. 가깝기 때문이다.


*


이날 엄살쟁이의 손에 어떻게 장검이 들어갔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손에 기병용 군도 한 자루가 들어간 뒤부터 싸움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주로 단검으로 무장하고 있던 폭력배들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생지옥이 펼쳐졌다. 자비로운 신이 엄살쟁이에게 은총을 베풀지 않았던 이상 어떻게 하필 그때 엄살쟁이가 장검을 손에 넣었겠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삽시간에 잘려나간 손목들이 땅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싸우는 자들의 발에 차이고 치이며 이곳저곳으로 굴러다녔다. 엄살쟁이는 악귀와 같은 형상이 되어 쉼 없이 적들을 베고 찔렀다. 대담하면서도 정련된 동작이었다.


내기권투와 검술은 자세가 정반대다.


강한 오른 주먹을 뒤에 숨기고 왼 주먹을 앞에 내놓는 권투의 기본전술을 쓰려면, 왼발이 앞에 가고 오른발이 뒤로 가게끔 서야 한다. 하지만 칼을 든 오른손을 주로 써야 하는 검술에서는 이와 반대로 오른발이 앞, 왼발이 뒤로 가게 된다.


눈이 밝은 사람 몇이 알아차렸다. 엄살쟁이가 처음 내기권투를 시작했을 때 자세가 왜 그렇게 거꾸로 돼 있었는지를.


이슬람의 검술은, 같은 기병용 칼을 사용하는 서양의 펜싱에 비할 때 베는 기술의 비중이 더 크다. 그러면서도 일본 고류검술이 지닌 간결함과는 또 거리가 있는 독창적인 기술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기술체계는, 화려한 베기 기술들이 많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상대의 무기가 닿는 간격 밖에서 자신의 칼을 빙글빙글 돌리거나 손을 바꿔 쥐면서 적을 현혹시키는 동작들을 정당한 기술로 인정하는 경향도 있다.


그렇지만 이때 엄살쟁이는 그런 검술체계와는 다른, 자신만의 기술들을 주로 사용했다. 칼을 돌려가며 현혹시키고 견제하는 기술들 대신, 주먹과 팔꿈치로 적을 가격하거나 술병과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의 변칙기술을 되는대로 접목시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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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피와 바람 23.03.06 18 0 9쪽
13 집권 원년 23.03.05 18 0 10쪽
12 낙마 23.03.04 18 0 10쪽
11 신분상승 23.03.03 20 0 9쪽
10 꽃비 내리는 항구 23.03.02 24 0 10쪽
9 생사 23.02.28 19 0 10쪽
8 메르시하 23.02.27 18 0 9쪽
7 갑사들 23.02.26 21 0 10쪽
» 싸움 남 23.02.25 23 0 9쪽
5 사건사고 23.02.25 22 0 9쪽
4 엄살쟁이 23.02.25 20 0 9쪽
3 내기권투가 시작 23.02.24 26 0 10쪽
2 두 아들 23.02.24 35 1 9쪽
1 무적의 군주 23.02.24 6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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