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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마음껏 써보는 아라비안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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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3.02.24 11:31
최근연재일 :
2023.03.10 22:42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403
추천수 :
1
글자수 :
75,967

작성
23.02.25 18:42
조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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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9쪽

사건사고

DUMMY

게다가 엄살쟁이는 발재간이 대단히 좋아서 간격 싸움에도 능했다. 씨름기술을 걸 수 있는 거리 밖으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가 다시 잽싸게 거리를 좁히면서 주먹을 꽂아 넣는 그 필승패턴을 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뒤끝은 없었다. 머리가 터질 때까지 싸우다가도 얼굴의 피를 닦고 바지의 흙을 털고 나면 처음과 똑같이 돌아갔다.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놈 주먹에 맞아 쓰러지거나 엉덩방아를 찧는 것만 해도 개망신이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가 가르친 씨름기술에 넘어가 나자빠진다는 것은 씨름꾼들에게는 대단히 큰 치욕이었다. 더군다나 엄살쟁이에게 털리고 난 뒤 사람들의 구설에 올라 웃음거리가 되는 것 역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씨름꾼들은 좌장 격으로 대표 한 사람을 뽑아 자신들의 입과 귀를 대신하게 하고 있었는데, 대를 이어 씨름을 해온 명문(?)의 후손이어서 그런지 날 때부터 체구가 남달랐다.


시합 성적과 승률도 아주 좋았지만, 이 사람은 평생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만큼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해당 인물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의 험담을 하는 사람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엄살쟁이에 관해 불만 섞인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와도 그냥 “그놈 성격이 원래 그렇게 되어먹은 걸 뭐 어쩌겠나.”라고 하면서 점잖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엄살쟁이의 성질머리가 대단히 괴팍하다는 것쯤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술값 밥값을 쓰는 일을 아까워하지 않는 데다 행동거지에 특유의 호방한 면이 있어 정말 원한을 품은 사람은 잘 없었다.


더군다나 괜히 엄살쟁이에게 서운하게 굴었다가 다른 내기권투선수들과 대립각을 세우게 될 우려도 있었다.


이 씨름꾼들의 대표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와 형처럼 훌륭한 씨름꾼이 되고 싶어 했지만 불행히도 체구가 그만큼까지 자라지를 않았다.


자기보다 무거운 씨름꾼을 공식시합에서 이긴 적도 있었지만, 1류 상대들과 붙게 되면 체급의 한계에 직면하기 마련이었다. 그리하여 당시에는 씨름에 대한 미련을 접고 벌목 일을 배우며 생계를 꾸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동생과 엄살쟁이는 묘하게도 처음부터 죽이 대단히 잘 맞았다. 둘의 관심사가 완전히 같았던 덕분인데, 둘은 공히 싸움에 써먹을 수 있는 기술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둘은 서로가 서로의 스승과 제자가 되어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며 공유했다. 씨름꾼들 중에서야 작은 체구였다고는 해도 일반인들로 치면 상당한 거구였지만, 그래도 엄살쟁이와 가장 체급 차이가 덜 나는 편이었기 둘은 서로에게 아주 좋은 연습상대가 되어줄 수 있었다.


성질대로 아무나 들이받는 것을 사실상의 직업(?)으로 삼고 있었던 엄살쟁이였지만, 이상하게도 이 둘은 다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비위를 잘 맞췄기 때문이 아니라, 둘의 의견이 거의 언제나 같았기 때문이다.


이 사내의 이름은 아흐마드였다. 기억해 두는 편이 좋겠다.


*


항구의 축제가 다가오고 있었다. 해마다 그때쯤이 되면 내기권투선수들과 씨름꾼들은 서로 행사장을 어디 길목에 여느냐의 문제를 가지고 설왕설래하게 마련이었다. 이렇게 수입과 직결되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듣기 좋은 얘기들만 오고 갈 순 없었고, 때로는 거친 언사들도 꽤 등장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 해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엄살쟁이는 통 크게 연합행사를 제안했다. 경기장을 하나로 합쳐 객석 면적을 늘리면 더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거라는 말에 모두 쌍수를 들고 기꺼워했다.


중간에서 양측의 이해대립을 잘 중재한 공으로 엄살쟁이의 발언권이 점점 강해졌다. 내친 김에 엄살쟁이는 내기권투선수들이 씨름시합에 출전하거나, 씨름꾼들이 내기권투시합에 나가는 일까지 허용하는 쪽으로 변화를 모색하기까지 했다.


물론 불만을 가진 자들은 있었지만 대놓고 해대는 이는 없었다. 엄살쟁이는 설득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고, 따라서 반대의사를 표명하다가는 주먹질을 당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


축제 당일, 시합장은 아수라장이었다. 관중 소요사태 같은 대형사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뜻밖의 결과들이 속출했기 때문이었다. 선수들이 서로 뒤섞이면서 승부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었고, 돈 내기는 더 다이내믹해졌다.


엄살쟁이의 강권으로 마치 씨름과 내기권투의 중간 정도 될 법한 기묘한 룰의 시합들도 진행되었는데, 아쉽게도 이 부문의 수익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어쨌건 이날 아흐마드는 생애 처음으로 내기권투 시합에도 출전했다. 엄살쟁이와 절름발이노인에게서 배운 재주들을 마음껏 펼쳐 꽤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을 배후에서 조율했던 엄살쟁이는 정작 시합에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 때문인지 말도 없이 사라져서 축제 기간 내내 얼굴도 드러내지 않았고, 예정되어있던 엄살쟁이의 시합은 모두 불발이 되고 말았다.


항구에서 손꼽히는 인기인이었던 엄살쟁이의 결장에 사람들은 아쉬워했지만, 다음 해를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살쟁이의 말대로 축제는 대성공이었다. 당연히 요란뻑적지근한 축하연이 벌어졌다.


이슬람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하게 금주의 계율을 실천하고 있는 종교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관습으로 마셔오던 전통술이나 낙타 혹은 양이나 염소젖을 발효시킨 술에는 그리 엄격히 계율을 적용하지 않는 경향도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당시 항구에는 밀주를 만들어 파는 범죄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술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엄살쟁이는 해가 다 떨어지고 어둠이 항구에 깔린 뒤에야 어디선가 나타나 술자리에 합류했다. 그와 함께 자정을 넘겨서까지 술을 마신 시합참가자들은 모두 대취했다.


*


평소 엄살쟁이가 아끼지 않았던 것은 술값뿐만이 아니었다. 엄살쟁이는 너무나 게을러서 자기가 직접 해도 될 일을 굳이 애들에게 심부름시키는 안 좋은 버릇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이런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는, 대체로 물건을 배달시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몰래 술을 받아오는 심부름이라든지.


하지만 엄살쟁이는 거지아이들에게 어디어디에 가서 뭘 좀 보고 오라든지, 아니면 어느 집 누가 이렇다는데 정말인지 확인 좀 하고 와서 말해달라는 식의 일을 시키곤 했다. 앵벌이들 같은 경우에는 어디 짐을 들려 보내지도 않고 그냥 이것저것 물어보기만 하고 돈을 줬다. 고생스러운 일도 아니었거니와 별 쓸데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엄살쟁이는 일을 시키고 나면 손에 잡히는 대로 돈을 던져준 뒤


“잔돈은 너 가져라.”


라고 하는, 안 좋은 버릇이 있었다. 그 꼴을 보게 되면 아흐마드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엄살쟁이가 나타나면 앵벌이들이나 거지아이들이 늘 따라붙었다. 하지만 엄살쟁이가 소매치기를 당하는 일은 잘 없었다.


워낙 허투루 돈을 써대는 통에 주머니가 두둑한 날이 별로 없기도 했지만, 어디서 사정을 모르는 뜨내기가 엄살쟁이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간 거지아이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아이들은 누군가 자기를 좋아해주는 눈치를 용케 잘 알아차리는 습성이 있다. 항구에 사는 아이들은 엄살쟁이를 참 좋아했다.


*


항구 일대를 주름잡는 폭력조직이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깡패들은 어디서든 고리대금과 인신매매로 부를 축적하기 마련이다.


항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범죄의 배후에 이들이 있었다. 만악의 근원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들이었다.


*


항구에는 미색이 뛰어나기로 이름 높았던 미망인이 하나 살았다. 온갖 시끄러운 소동을 다 벌이고 돌아다녔던 엄살쟁이에게는 다소 억울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미망인 쪽이 엄살쟁이보다 조금 더 유명했다.


미모 하나만 가지고도 엄살쟁이보다 더한 유명세를 누렸던 이 미망인을 첩으로 들이기 위해 공을 들이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부호들도 있었지만, 미망인은 정숙했던 데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를 할 때가 있는 법. 몸이 약한 아이가 갑자기 열병으로 앓아눕는 바람에 치료비를 대기 위해 고리대를 쓰고 말았다. 폭력단의 돈이었다.


돈이야 갚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폭력배들의 일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가 않다. 놈들은 이미 갚은 돈을 가지고 되지도 않는 트집을 잡아 말도 안 되는 이자를 붙였고, 그 이자를 갚으면 또다시 이상한 구실을 들어가며 계속 미망인을 함정에 빠뜨렸다.


오늘날에도 어디에서건 흔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악의 속성은 언제 어디서건 같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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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격리되어 23.03.08 16 0 10쪽
15 전쟁의 시작 23.03.07 16 0 9쪽
14 피와 바람 23.03.06 18 0 9쪽
13 집권 원년 23.03.05 18 0 10쪽
12 낙마 23.03.04 18 0 10쪽
11 신분상승 23.03.03 20 0 9쪽
10 꽃비 내리는 항구 23.03.02 24 0 10쪽
9 생사 23.02.28 20 0 10쪽
8 메르시하 23.02.27 18 0 9쪽
7 갑사들 23.02.26 21 0 10쪽
6 싸움 남 23.02.25 23 0 9쪽
» 사건사고 23.02.25 23 0 9쪽
4 엄살쟁이 23.02.25 20 0 9쪽
3 내기권투가 시작 23.02.24 26 0 10쪽
2 두 아들 23.02.24 35 1 9쪽
1 무적의 군주 23.02.24 6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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