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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두 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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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2.12.02 16:49
최근연재일 :
2022.12.27 21:28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492
추천수 :
26
글자수 :
136,013

작성
22.12.03 14:59
조회
76
추천
2
글자
10쪽

아버지가 전하는 책

DUMMY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데도 꼭 몸을 막 써서 무리하게 움직였을 때처럼 팔다리 관절에서 뚜두둑, 소리가 울린다.


다시 출혈이 시작됐을 때도 호들갑을 떨지 않았던 소년이지만, 그런 일 앞에서까지 냉정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졸음기가 확 달아난다.


소년의 세상에는 완벽한 적막이 흐르고 있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없다. 마치 지구의 모든 소음을 한 번에 차단할 수 있는 차단기를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어떤 소리도 없다. 놀람 정도가 아니라 공포까지 느껴지는 상황.


갑자기 가슴을 세게 맞은 것처럼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으... 헉...!”


소년은 가슴을 터뜨릴 것처럼 숨을 내쉰다. 그러자 마치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된 것처럼 세상에 소리가 돌아온다.


다시 새들이 지저귀고, 일찍 출근해야 하는 어느 가장의 차에 시동이 걸리고, 행인의 발이 보도블록을 스치는 마찰음이 피어난다.


수선스럽게 바스락거리고 웅성대는 소음들이 그렇게까지 반갑고 고마웠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싶다.


놀라서 부릅뜬 두 눈이 뻑뻑하다. 거울 속 소년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다. 마치 밤을 새기라도 한 사람처럼.


다 합해봐야 고작 10초 정도 되지 않는 정도의 멈춤이었음에도.


뭐지? 세상이 다... 멈춘 것 같았는데.


*


등굣길 버스 안에서 수초처럼 흔들리는 와중에도 정투호는 애써 검색을 해본다.


모든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방음설비 안에 들어간 사람은, 한 시간도 못 버티고 뛰쳐나오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액정에 떠있다.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을 때 어째서 공포를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알게 되었지만, 어째서 시간이 멈췄는지에 대해서는 알아낼 수 없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일으킨 힘의 근원이 주술인지 과학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다.


“분명히... 시간이 멈췄었는데. 모든 게 다.”


지구의 자전이 멈춘 것 같은 시간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소년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


정투호가 담임에게 불려간다.


장례 끝나고도 이틀을 무단결석했던지라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 정작 결석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설교 대신인지 담임은 책 한권을 내민다.


정투호의 눈이 아침 욕실에서처럼 홉떠졌다. 영정사진으로만 봤던 아버지가 책 표지에 떡하니 박혀 있다.


밀림속이다. 계급장이 없는 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으로 소총을 들고 선 아버지가, 역시 무장을 한 흑인들과 어우러져 환하게 웃고 있다.


“그 분이 네 아버님이셨을 줄은 정말이지...”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책을 받아든 정투호에게 담임이 한 마디를 덧댄다.


“아버님은 정말 훌륭한 분이셨어. 너도 곧 알게 되겠지만.”


*


금요일 오후. 집이다. 야간자습은 가지 않을 생각이다.


아버지가 썼다는 책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는다. 신기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역시 그보다는 그 멈춤의 순간을 다시 불러오는 일에 더 관심이 간다.


깨진 시험관의 모양대로 손바닥 중앙에 남은 상처를 어루만진다. 상처는 생각보다 더 깊다.


“엄마. 아예 손금이 달라진 것 같은데?”


손바닥의 상처는 금세 소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소년은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아침의 그 순간을 다시 돌이켜본다.


그거, 다시 해보고 싶어. 그 순간. 그 멈춤.


혹시 한 번 쓰면 다시 쓸 수 없는 1회용이 아니었을까 싶어 정투호는 불안해진다.


역시 그 액체랑 관련이 있는 거겠지? 그리고... 상처? 피? 어떤 게 그걸 만들어냈을까.


*


끝내 핏줄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아들이 마침내 아버지의 책 첫 장을 연다. 마지못해 그러듯이.


아버지가 낸 책이다. 아버지는, 천연자원에 눈이 뒤집힌 군벌들이 죄 없는 사람들의 손에 총을 쥐여 주고 서로를 향해 총질을 해대게 만들어놓은 생지옥 한복판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귀국해서는 책을 냈다.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책날개에는 아버지가 아프리카의 내전지역만을 골라 다녔던 여행자였던 것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여행자, 라는 팔자 좋은 말로 수식하기에는 너무 험하고 처절한 세계를 거쳐 온 것이 아닌가 싶어져 소년은 욱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어쩌면 사람이라는 것은 다 이승을 스쳐지나가는 여행자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책장을 넘긴다.


“엄마. 왜 말 안 했어? 내가 너무 어려서? 놀랄까봐?”


큰돈을 가진 자산가라는 것은 이미 유온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런 일을 해서 돈을 벌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아들이 차츰 책에 빠져든다.


부동산 투기 혹은 주식투자로 거금을 벌어들였을 것이리라는 지레짐작이 멋쩍어질 정도로, 책에는 소년의 상상을 뛰어넘는 사건들만 기록돼 있다.


민간인 학살 현장을 잠입 취재해 그 참상을 고발하고,

현지 레지스탕스들과 연대해 실제로 군부세력과 수차례 교전했던 것은 물론,

궤멸의 위험에 직면한 반군부대의 부상자를 구출해 1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부대에 인계했던 일들이 적혀 있다.


헛웃음만 나오는 꿈같은 이야기다.


“말도 안 돼.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이런 식으로 살 수 있다고?”


그렇지만 책의 내용은 분명히 소년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데 충분한 것이었다. 몸이 들뜨고 마음은 달아오른다.


책의 내용이 정말인지 알아보고 싶어 검색을 해본다.


의견들이 분분하다.


마치 아버지가 거쳐 왔던 내전들처럼, 아버지의 독자들 역시 둘로 나뉘어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다들 불필요하게 날이 서 있다. 한국에서는 익숙한 댓글환경이다. 아들은 그들이 남긴 논쟁을 조용히 뒤따라간다.


여행 작가들 중에는, 책을 팔아먹기 위해 거짓말을 많이 섞어 넣는 부류가 있다. 이동거리와 시간을 계산해 보면 도저히 들를 수 없을 곳에 가봤다고 뻥을 치거나, 위험지역에 들어갔다가 테러리스트들한테 붙들렸었는데 그들이 몸값도 받지 않고 그냥 풀어줬다는 식의 구라를 치는 게 대표적.


하지만 아무리 소년의 아버지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아버지의 행적에 거짓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문부호를 붙일 수는 없다고 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언제나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어 가져왔으니까.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에는 규칙이 있었다.


이정표, 지도와 나침반, 현지인.

이 셋 중 하나가 반드시 앵글 안에 등장한다.


행적의 진위여부와 관련해서는, 일부러 그런 사진을 찍어 증거로 삼을 필요도 없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그만큼 목격자와 증인들이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실제로 레지스탕스들을 도와 함께 작전을 하고 총을 쏘고 사람을 죽였다고 하니까.


사실 해외에서는 아버지를 ‘제2의 체 게바라’ 정도의 위상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하지만 여정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의심받지 않는 대신, 그 동기와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돈벌이에 이용했던 게 아니냐는 비판. 말로는 국제사회에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본인 스스로의 부와 명성을 위해서 했던 일이 아니었느냐는 질문들이다.


게다가 현지에서 아버지를 도왔던 사람들 중에는, 적에게 편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공개처형을 당한 희생자들도 꽤 있다는 것 같았다. 그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 아버지를 싫어하는 세력의 골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의견들에는 반론도 달려 있다.


정투호의 아버지를 도왔다가 불운을 겪은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면 도움을 받아 대통령까지 된 사람도 있다는 것. 학살현장의 참상이 알려지게 되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아 휴전을 하고 사실상 전쟁을 끝낸 나라도 있는데, 이때에는 어떤 식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는 반문도.


어지러운 의견들 사이에서 정투호는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했다.


아버지가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생명을 내걸고 전쟁지역을 종횡무진했던 것이리라는 의견은 어쩐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것은 아들 된 입장에서 아버지의 행적을 차마 나쁘게 평가할 수 없어 그런 것이 아니라, 책에 실린 아버지의 사진들을 본 뒤였기 때문이다.


무장한 현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아버지는 이를 다 드러낸 채 푸근하게 웃고 있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정장을 입고 있는 영정사진 속의 아버지보다 훨씬 생기 있고 젊어 보였다. 심지어 책 속의 사진을 촬영한 시점은, 영정사진을 찍었을 때보다 더 나중이었는데도.


정투호의 생각에, 아버지의 삶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소수의견이다.


아버지는 스스로를 정의로운 고발자로 여기고 있었고, 대외에 그렇게 알려지는 것을 선호했지만, 사실은 무임으로 용병 역할을 했을 뿐이며 스스로 그 배역을 사랑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리라는 주장.


양쪽 모두의 무시와 조롱을 받고 있는 가설이기는 했지만.


소년은 자문해 본다. 배다른 동생들한테 큰돈을 물려줘서 생긴 악감정 때문에 고의로 아버지의 삶을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야.


이내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어쩐지 정투호는 아버지의 속마음을 알 것만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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