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民國人. 이준혁이 사기를 친 결과로 백성들만 모여 사는 나라라 하여 민국인이라 칭했다.
2) 사할린은 쌀의 재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3) 이준혁의 농간으로 조선으로 귀순하게 된 대한민국 사람들은 민국에서 온 사람들이 되었고, 그들의 조국인 대한민국은 민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4) 왕이 직접 목을 따 버린다는 것은 체통에 어긋나는 일이나, 영조가 금주령을 어긴 신하의 목을 따 버린 일이 있다 하여 반영했다.
5) 이자는 일본말이고, 원래 우리말은 이식이라고 한다.(현재는 표준어이며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여 변리, 길미, 이식, 이전, 이조, 이문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6) 곡식을 빌려 주고 1년에 이자를 50% 받는 것.
7) 환곡에서 이식을 50%로 한 것은 춘궁기와 수확기의 쌀값의 가격의 차이와 이식으로 불어난 쌀로 환곡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합당하다고 하는 일부 의견도 있다.
8) 사실, 서얼에 대한 제한적인 허통은 중종 때부터 있었다. 영조, 정조 때에도 제한적인 허통이 있었고 완전한 철폐는 고종 때 갑오경장에 의해서였다.
9) 조선 건국 시 남녀 균분 상속제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도입되었기에 양성 평등을 목적으로 도입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견해도 있다. 유학을 기본으로 건국이 된 조선에서 중국과는 달리 이렇게 상속제가 정해진 것은 토지를 기반으로 하여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이 나올 것을 염려하여 상속을 통해 토지를 쪼갬으로서 자연스럽게 왕권을 위협하는 건국 초기의 대토호(大土豪) 세력을 견제를 하려는 목적에서 도입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10) 이전 학력고사 시절과 수능에서 필수 교과목이었던 국사는 2005년 선택 교과목이 되었다. 그 결과 입시생들이 국사를 선택하지 않아 국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꽤 있다.
11) 국사는 사관학교 입시 과목에서 제외되었지만 입학 후 교양과목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나 암기 위주의 학과별 시험에서 탈피한다는 목적으로 각종 고등 고시에서 2007년을 전후로 국사 시험은 폐지되었다.
12) 태조 이성계를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레골라스에 빗댄 은어.
13) 이산보가 인조반정 때까지 산 것은 아니다. 아계 이산해가 졸했을 때 친분 관계가 있었던 인사들이 조문을 하고 문장을 지어 그를 추모했다. 그중에는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서인의 거두 윤두수도 있었다. 이를 감안한다면 이경전의 실무적인 능력과 서인들과의 친분 관계, 그리고 그와 그의 아버지인 아계 이산해의 위치와 연관 지어 본다면 선별적 숙청 작업의 대상에서 살아남았으리라고 추정된다. 이경전의 행장록에서 보면 반정이 일어났을 때, 단순한 역모인 줄 알았다고 한다. 또 광해군이 이미 죽은 줄 알고 광해군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러 소복을 입고 궁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정이 일어난 것임을 알았다고 한다. 오늘날 그에 대한 언급한 글들을 보면 인조반정 세력에 목숨을 구걸하여 살아남은 소인배로 묘사를 한 글들을 보게 되는데 인조반정 이후 명나라에 책봉을 요구하는 주청사의 정사로 이경전이 뽑힌 것과 그의 행장록에서 인조반정에 관하여 적혀진 글과 반정 이후 그의 행적을 보면 아마도 반정 세력의 선택적인 북인 세력의 숙청 작업에서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14) 우리 역사에서 근대 교육이라 할 만한 제도가 도입된 것은 '갑오경장(1894)'에 의해서였다. 예조의 폐지와 더불어 학무아문(學務衙門, 후에 학부(學部)로 개편)을 마련했다. 법령의 반포로 인한 소학교의 설립은 교원의 수급에 의해 지어진 한성 사범학교의 설립 후인 1895년이었다. 소학교 설립 첫해에는 서울에서 장동, 정동, 계동, 주동과 한성 사범학교부속소학교 등 다섯 곳이 설립되었다. 이곳의 총 학생수는 장동소학교가 23명, 정동소학교가 76명, 계동소학교가 40명, 주동소학교가 48명, 한성 사범학교부속소학교가 136명이었다. 지방에 소학교가 개교된 것은 이듬해인 1896년이었다.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당할 때까지 소학교는 꾸준히 증가하였지만, 그 증가율은 저조하였다. ‘서울6백년사’ 참조.
15) 원 역사에서도 김좌근은 화양서원이 벌이는 행패를 제한하는 일을 하였다.
16) 원래 이 말은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하면서 한 말이다.
17) 원래는 ‘천리를 지척으로 삼고, 태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남문을 3층으로 높이겠다’라는 말로 흥선대원군이 집권 후에 한 말이다. 천리를 지척으로 삼는다는 것은 종친 세력의 강화를, 태산을 깎아 평지를 만든다는 것은 권문세도가의 숙청을, 남문을 3층으로 높인다는 것은 남인의 등용을 의미한다.
18) 법 개정으로 2010년부터는 당해 입학연도에 만7세가 되는 아동으로 바뀌었다.
19) 이준혁의 관점에서는 5.16 쿠데타는 군사혁명이었다.
20) cheat key. 스타크래프트에서 ‘show me the money'와 같은 게임을 손쉽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 혹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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