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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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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19.06.26 04:57
최근연재일 :
2020.05.21 09:20
연재수 :
285 회
조회수 :
39,839
추천수 :
935
글자수 :
1,689,669

작성
20.05.1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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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9

DUMMY

기억하기 싫은 자신의 과거 이름을 누군가 크게 외치자, 다크 스컬은 의아했다. 다크 스컬의 눈앞에는 서지터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절뚝거리고 걸어왔다. 처참한 몰골이었다. 울크 두 마리와 싸우며 죽지 않은 것만도 기적이었다.


“너는 누구지? 쥐새끼 한 마리가 남아있었나?”


“하아아. 하아. 더럽게 아프네. 야! 쥐새끼가 아니라 지옥에서 널 데리러 온 검은 늑대 새끼다.”


“크크큭! 패기 하나는 인정해주지. 그래. 지옥을 지키는 문지기 늑대라 이건가? 내 본명은 어찌 알고 있나? 재미난 놈이로군.”


“대가리 박아! 해골바가지 새끼야!”


“크학! 크크큭! 크큭!”


구석에 엎어져 기절했던 벨크가 꿈틀거리며 웃었다. 대가리 박으라는 말은 서지터가 검은 늑대가 되어 처음 막사에 왔을 때 벨크가 내뱉었던 말이었다.


“미친놈아. 넌 이 상황이 웃기니?”


반대편에선 루시가 힘없이 누운 채로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웃고 있는 벨크에게 욕을 해댔다.


“몰라아. 나 더는 못 움직여. 지터 네가 끝내라. 못 끝내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크하핫! 끝내? 누가? 누굴? 농담도 신선하게 하는군.”


다크 스컬이 비웃었다. 하지만 서지터는 장난기도 없이 진지한 얼굴이었다.


- 털썩.


더 걸을 힘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서지터는 등 뒤에서 하얀 해골 하나를 앞으로 꺼내 들어 무릎 사이에다 끼워 놓았다.


“하아아. 너 이거 뭔지 알지? 네가 모를 리가 없는데 괜히 물어봤나? 네 어머니 유골이잖아. 그렇지?”


“뭐? 너 도대체 뭐지? 어제도 본 기억이 없는데? 그리고 그딴 해골 따위가 뭐?”


“당연히 못 봤겠지. 병신아! 난 검은 늑대 비밀 병기니까. 그리고 그딴 해골? 허세 부리지 마. 바로 부숴버리려니까.”


서지터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들어 해골 위에 올려놓았다. 그 행동에 다크 스컬은 움찔하며 움직였다.


“뭐냐 너! 대체 뭔데! 뭔데 내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냔 말이다!”


“이제 좀 똥줄이 타시나? 울크들 잡고 바로 부술까 하다가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지.”


“끄으으. 망할 자식. 너 이따 죽었어어.”


벨크가 다시 꿈틀거리며 서지터를 죽이겠다 협박했다.


“참 퍼슨(Charm Person)!”


다크 스컬은 자신의 목숨줄인 성물함을 가진 서지터에게 다급하게 참 퍼슨 주문을 썼다. 하지만 대마법사 페이먼스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최면계열 마법들이 서지터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병신아. 안 먹히는데? 다른 거 또 써봐. 최면계열 마법들 하나도 안 먹힐 테니까. 네 정신력보다 내 정신력이 더 높아. 최면계열 시험도 간신히 통과한 새끼가 까불지 마.”


“뭐냐! 너 도대체 뭐냔 말이야!”


“통성명은 무슨! 궁금해 미치겠지? 처음 등장했던 다크 스컬을 죽인 사람이랑 같은 핏줄인 것만 알아둬라.”


“뭐?”


“이번엔 내가 물어볼게. 성실히 대답해. 안 그러면 바로 단검 꽂아버릴 거니까. 손 하나 까딱해도 꽂아버릴 거야. 안 먹히는 마법을 써도 꽂아버릴 거고.”


협박에는 타고난 재능이 가진 서지터다웠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무릎 사이에 끼워 놓은 유골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넌 왜 네 어머니 죽음에서 못 벗어났냐? 치료 안 해준 타락한 아이돈 성직자 하나 죽였으면 됐잖아. 도대체 왜 이 꼴로 구차하게 살아가는 거야.”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 거지? 똑바로 말해!”


“전부. 네 어머니가 나병으로 돌아가신 것도 알고, 그 일로 네가 미쳐버린 것도 알아. 그 후에 너도 똑같은 병에 걸린 것도, 훗날 핀 신전의 성직자를 죽이고 레저렉션 스크롤까지 가져간 것까지. 뒤지고 싶지 않으면 대답이나 해.”


서지터는 단검을 세워 금방이라도 부서질 거 같은 해골에 살짝 힘을 주었다.


“하지 마! 하지 마!”


조금 전까지 당당하던 다크 스컬은 비굴하게 사정을 하는 모습이었다.


“질문한 거나 대답해. 해골바가지 새끼야.”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 궁금하면 말해주지! 대의를 위해서다! 썩어빠진 세상을 뒤집어 버리기 위해 죽고 싶어도 이런 흉측한 몰골로 살아 있는 거지! 너희 용병단이나 왕국 놈들도 오로지 개인의 이득을 위해 나와 싸우고 있지. 내 말이 틀렸는가? 너희도 돈 때문에 이 짓거리를 하고 있어. 돈이 세상을 썩게 만든다. 썩은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것뿐이지!”


“지랄하지 마. 네 말은 다 궤변이고 거짓이야. 넌 오로지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을 죽여서 다크 스컬이 됐지. 다크 스컬이 되고 나서도 계속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또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어. 그것도 30년 가까이. 대의? 웃기지 마. 너한테 대의란 게 있기나 하냐? 네 어머니가 죽기 전에 했던 말 기억이라도 했으면 이러지 못해.”


“뭐?”


“기억도 못 하고 있겠지. 넌 그때 눈이 뒤집혀 미쳐버렸으니까. 네 어머니는 너더러 착한 아들이라며 바르게 살아달라고 부탁하고 돌아가셨어. 고작 빈민촌 출신인 네가 마법학교에 다니는 걸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했고, 자신의 흉한 몰골을 너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죽고 싶다고 말하던 분이야. 그런 어머니의 유언도 제대로 못 지키는 놈이 대의? 착각하지 마. 넌 그냥 살고 싶어 괴물이 된 쓰레기일 뿐이니까.”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내 고통을 겪어봤냔 말이다! 내가 얼마나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죽고 싶었는지 알기나 하냔 말이야!”


“나는 너보다 더 어릴 때 어머니를 잃었어. 넌 그래도 곁에서 임종을 지켜드리기라도 했지. 나는 돌아가셨단 소식도 1년이나 뒤에 알았어. 덕분에 나도 너처럼 아버지란 사람 탓으로 돌리고 삐뚤어졌지. 하지만 거기까지야. 너처럼 괴물은 안 돼. 절대로.”


“왜! 왜! 나에게 그런 소릴 하는 거냐. 아무것도 아닌 네가! 고작 하찮은 용병 따위가 내 삶을 부정하냔 말이야! 난 살고 싶었어! 내 어머니도 살리고 싶었어! 하지만 아무도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았지! 너 따위가 뭔데! 대체 뭔데!”


- 콰가가가가가가각!!


밖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다크 스컬은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자 순식간에 하얀 물체가 지나간 걸 보았다. 서지터 역시 눈에 하얀 물체의 모습이 들어오자 피식 웃어버렸다.


“하! 결국, 라이자가 깨어났네. 다 죽겠구나. 이제.”


“라이자?”


“누구보다 잘 알잖아. 여기 트리스미스는 라이자 영역인 거. 그런데 1주일 동안 이 난리를 피웠으니 시끄러워 잠에서 깰 수밖에 없겠지. 그 정도도 예상 못 한 거야? 머릿수만 믿고 여유만 부리다 결국 너도 끝장나게 생겼잖아.”


- 뿌가가가가각! 빠가가가가각!!


밖에서 냉기 브레스를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지터도 다크 스컬도 갑자기 등장한 라이자 때문에 대화가 끊기고 가만히 라이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 누가 나의 잠을 깨우는가.


잠시 후 라이자의 목소리가 성안까지 가득 채워졌다. 그 소리에 다크 스컬이 주저앉았다. 지금껏 이뤄놓은 일들이 단 한 번, 두려운 방해꾼이 등장하며 망가지게 생겨 버렸다.


- 감히! 나의 영역에서 더러운 피비린내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찮은 인간들과 몬스터들이여. 싸움을 멈추어라. 나의 영역에서 또다시 싸운다면 모두 몰살시킬 것이다. 너희의 주인이 명하노니 하찮은 몬스터들은 모두 산으로 돌아가라.


“안 돼······.”


다크 스컬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해골뿐이었기에 정확한 표정을 지을 수 없었지만 서지터는 안 된다는 한 마디로 그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 느꼈다.


- 인간들이여. 다크 스컬이란 하찮은 존재 또한 알고 있다. 인간들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겠다. 다만 나의 단잠을 깨운 대가는 지불해야 할 것이다. 겨울이 올 때까지 깨어있겠다. 전하라. 너희의 왕에게 5백만 골드와 그에 상응하는 보석을 가져오라고.


더는 라이자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공포스럽고 묵직한 분위기 또한 사라졌다.


“너희 때문에! 모두 너희 때문에!”


발악하는 다크 스컬을 향해 서지터가 소리쳤다.


“다크 스컬! 내가 왜 그걸 물어봤는지 궁금해? 적어도 죽기 직전 마지막 순간만큼은 인간다워졌으면 했다. 네 어머니에게 사죄하고 네가 죽이고 취한 생명들에 대해 사죄한다면 최소한 죽어서라도 다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까.”


“개소리하지 마! 네가 뭘 알아!”


다크 스컬의 외침에 서지터가 소리쳤다.


“나도 잠시였지만 어릴 때 너랑 똑같은 생각을 했었으니까! 다 죽여 버리고, 가문도 나라도 싹 다 갈아엎고 싶었으니까! 뭘 아냐고? 누구보다 잘 알아. 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자신과 닮아있는 다크 스컬과 이야기를 하며 서지터는 난생처음 남몰래 생각했던 걸 고백하듯 외쳤다. 그토록 가까웠던 한스조차 몰랐다. 서지터가 마법을 포기하기 전에 다크 스컬과 같은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미친 세상 탓이라며 오로지 복수심만 남아 모두 죽이고 끝장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친구가 있었기에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자신도 이겨냈고 버텨냈던 서지터는 마지막으로 다크 스컬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비록 끔찍한 괴물이 되어 있었지만, 그에게도 조금이나마 죄책감과 인간다운 마음이 있으리라 믿었고, 마지막 순간만큼은 달라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크 스컬이 달라지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으아아아! 죽여 버릴 거야!”


“끝까지······. 넌 바뀌지 않는구나. 바뀌었으면 했는데······.”


달려드는 다크 스컬을 보며 서지터는 씁쓸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단검을 아르반두스의 어머니 백골에 찔러 넣었다.


- 콰직!


“안 돼!!”


- 츠스스스스!


검푸른 연기가 서지터의 팔을 감싸고 올라왔다. 단검은 중간에 걸린 것처럼 반쯤 박힌 채 더는 들어가지 않았다.


“흐아아아압!”


서지터는 죽을힘을 다해 체중을 실어 끝까지 밀어 넣었다.


- 빠직!


드디어 백골은 다섯 조각이 나며 박살이 나버렸고, 검푸른 연기가 서지터의 몸을 완전히 감싸버렸다. 전장에서 죽어가며 다크 스컬에게 생명력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의 고통과 아픔이 서지터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모든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며 자신도 죽는다고 생각이 들 때 즈음, 힘없이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 퍼어엉! 츄하아아아아!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구치며 쓰러져있던 모두를 날려버렸다. 루시는 파이어볼로 인해 구멍이 난 곳으로 밀려나며 떨어지던 순간, 아더 대장이 왼손을 날려 그녀를 구해냈다.


“으으으, 대장.”


“크흑! 이제 겨우 끝났는데 죽으면 안 되지 않나. 아트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아트는······.”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크 스컬과의 처절했던 마지막 싸움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결국, 수십 년간 지속하여 온 팔라고스 전쟁은 검은 늑대로 시작해 검은 늑대로 끝이 났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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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5 20.05.21 80 2 15쪽
284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4 20.05.20 57 2 15쪽
283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3 20.05.19 54 2 12쪽
282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2 20.05.18 52 2 15쪽
281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1 20.05.16 56 2 11쪽
280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0 20.05.15 59 2 13쪽
»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9 20.05.14 56 3 11쪽
278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8 20.05.13 58 2 12쪽
277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7 20.05.12 58 2 11쪽
276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6 20.05.11 56 2 14쪽
275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5 20.05.09 68 1 11쪽
274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4 20.05.08 60 3 11쪽
273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3 20.05.07 59 2 12쪽
272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2 20.05.06 67 2 11쪽
271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1 20.05.05 57 1 12쪽
270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0 20.05.04 57 2 12쪽
269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9 20.05.02 64 1 13쪽
268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8 20.05.01 57 1 12쪽
267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7 20.04.30 60 1 11쪽
266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6 20.04.29 58 2 14쪽
265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5 20.04.28 65 2 11쪽
264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4 20.04.27 64 2 12쪽
263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3 20.04.25 68 1 19쪽
262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 20.04.24 79 2 11쪽
261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 20.04.23 75 2 14쪽
260 13화 거짓된 역사 - 21 20.04.22 59 2 14쪽
259 13화 거짓된 역사 - 20 20.04.21 6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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