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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진 님의 서재입니다.

원데이(One day)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19.04.01 11:35
최근연재일 :
2019.06.18 01:29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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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85
추천수 :
641
글자수 :
759,256

작성
19.06.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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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추천
8
글자
22쪽

섬지기 2

DUMMY

<3월 26일>


하루는 조용히 다가가 최대림의 뒤에 섰다. 놀래려던 하루가 최대림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둔탁한 소리와 다급히 토해지는 숨소리가 들렸다. 일이 벌어졌다 여긴 순간 최대림이 앞으로 달려갔다. 뒤따라 달려간 하루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정치가를 향해 내리치는 스틱과 그 주인을 볼 수 있었다.


-예, 그렇긴 한데... 실은 산에 가면 그분을 뵐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있어서...


그는 사실을 말했다. 목적이 있어 산으로 올라가려다 자신을 만났다는 것을 하루는 깨달았다.


-봉수대야 금방 가죠. 그리고.... 오늘 일출 6시 30분 넘어야 한다고 보고 왔는데?


해 뜨는 시간을 보고 왔다기에 정말 해돋이를 보러왔다 여겼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멀리 봉수대로 가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봉수대로 간다던 등산객이 살벌한 눈빛으로 사람을 해하고 있었다. 존경하는 이가 비틀거리는 모습에 하루의 이성이 끊어졌다. 무얼 하는지 스스로 모른 채 몸을 움직였다.


“당신...!”


남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루는 그가 떠밀려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어?”


급히 손을 뻗어보지만 쥔 것은 남자가 내민 스틱뿐이었다. 급히 절벽으로 다가간 하루는 남자가 떨어져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이 급히 옆으로 옮겨졌다. 최대림이 줄을 풀려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하루는 망설이지 않고 행동했다. 수백번 생각했던 대로, 본래 자신이 하려던 역할을 하는 최대림을 풀어주기 위해 나무에 묶어 둔 줄을 풀었다.


아래로 올빼미바위를 돌아 뛰어 내려간 하루가 절벽아래에 도착했을 때, 최대림은 이미 정치가를 업고 달리고 있었다. 하루는 급히 전화를 눌렀다.


“시작하세요!”


하루의 말에 김갑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일어난 것에 담이 큰 그도 놀란 것이다.


“....애들 내보내.”


“형?”


“....하루동생 연락이다.”


“젠장. 젠장!”


운전대에 화를 풀던 김남수가 급히 뛰어내렸다. 곧 차에 있던 건장한 남성들이 내려서 사저에서 내려오는 길로 다급히 걸어갔다.


*


“헉...헉...”


최대림이 차에 도착했을 때, 하루는 사람을 업고 달리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이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기 위해 봉우리를 넘어 왔던 길로 내려갔다. 시신을 유기하려던 목적은 아니다. 등산객으로 위장한 남자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살인자가 되기 싫었던 하루는 정신없이 달렸다. 차에 도착해 남자를 짐칸에 올린 후, 하루는 남자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포장을 덮었다. 그리고 머리에 기억해둔 병원을 향해 달렸다.


달리던 도중 최대림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루야, 하루야?


“아... 형. 예.”


-너, 정말...


“어떠세요.”


-병원이다. 두라씨 덕에 치료도 빨랐고, 뇌진탕 증상이 있지만 위험한 것은 아니란다. 지금 이송준비하고 전 비서실장님 불렀다. 나 혼자선 해결하기 힘들어서.


“예....”


최대림은 하루가 기뻐하지 않는 것에 의아함이 들었다. 그때 하루의 말이 들렸다.


-형... 저 사람을 밀었어요.


“....아!”


최대림은 그제야 정치가를 시해하려던 등산객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래로 떨어진 모습과 뒤늦게 절벽에서 내려다보던 하루의 얼굴도 떠올릴 수 있었다. 순간 그는 힘이 풀려 벽에 손을 짚고 섰다.


“하루야...”


-형, 지금 병원으로 가는 중이에요. 그 사람... 데리고 가고 있어요.


“....알았다. 형이 준비할 테니까.”


최대림은 급히 입술을 깨물었다. 정신 차려야 한다고, 지금 힘든 사람은 하루라고 자신을 다독인 후 그는 말했다.


“지하로 들어와.”

-네.


최대림은 최대한 모르게 하는 것이 좋다 여겼기에 정치가의 주변인들이 속속 도착해 수습하는 동안 하루가 데리고 온 남자를 정치가를 담당한 의사와 함께 옮겼다. 수습의도 함께였다. 그때까지 남자는 살아 있었다.


“아... 다행이다.”


하루의 죄질이 무거워질까 걱정했던 최대림은 한숨을 내쉬며 남자를 잘 돌봐 달라 말했다.


“준비됐어요.”


김두라는 최대림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져온 구급대원복장을 입고 나타났다. 그녀는 병원 구급차에 올라탔고, 그런 그녀를 이상하게 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급해서 함께 탔다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최대림도 그녀와 함께 이송하는 병원으로 갔고, 하루는 병원 밖으로 차를 몰고 나와 있었다.


“아아...”


하루의 전신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남자의 피가 묻은 손을 옷에 문질렀다.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아 그는 거칠게 손을 비볐다.


*


“숨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 비서실장의 말에 정치가는 쓴 웃음을 지었다.


“죄 없는 내가 숨어야 하나.”

“지금은 너무 위험합니다. 밝혀질까 봐 더 위험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후우... 담배 있나.”


주머니를 더듬던 비서실장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피시면 안돼요.”


곁에 붙어 있던 김두라의 말에 정치가는 입맛을 다셨다.


“숨으면 뭐하나. 언제까지... 어디서, 또 어떻게.... 피하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네.”

“잠시만 피하십시오.”


간곡한 그 말에 정치가의 표정이 장난스럽게 변했다.


“그럼 자네가 나서주게.”

“제가...”

“자넨 깜냥이 된다니까. 한다고 약속하면 나도 숨어 있겠네. 자네가 날 꺼내주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고집스런 정치가가 약속하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병실을 박차고 나갈 것을 비서실장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방되시고, 저는 그곳으로 끌고 가시는군요.”

“크하하하...아이고. 아프네, 아프군... 그게 운명이란 것이겠지.”


갑작스런 일이라 정치가의 조력자들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또 눈에 띄기에 행동하기도 어려웠다. 전 비서실장은 일선에서 물러나 다시 변호사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눈에 띄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의 도움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정치가와 병원장은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병원에서의 입막음은 어렵지 않았지만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는 미리 준비한 큰 여행 가방을 끌고 나타났다. 하루는 병실에 가득한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여행 가방을 열었다.


“이거 영 불편하네?”


안에 있던 김남수가 나오며 말하자 하루는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주고 정치가를 보았다.


“들어가세요.”


정치가는 졸지에 트렁크에 들어가는 신세가 된 자신의 처지에 한탄하면서도 결심했기에 거부하지 않았다.


“목포에서 만나요.”


하루가 나가버리자 정치가의 가족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전 비서실장을 보았다.


“저 사람이 구한 거랍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미리 준비하고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건 이 일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정치가의 아들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자, 정치가의 흔적을 지우려 들어온 최대림이 인상을 굳히며 그를 보았다.


“꼭 찍어 먹어봐야 장맛을 아나...쯧!”


김남수도 벽에 등을 기대고 차가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김남수가 욕이라도 할까봐 최대림이 급히 입을 열었다.


“그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루가 없었다면.... 변호사님, 경호실장과 이운성, 신정석을 데리고 가야겠습니다.”


“이운성은 누군가? 처음 듣는 이름이군.”


“....어제 갑자기 바뀐 경호관입니다. 아침에 어르신과 함께 둘만 산에 올라갔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왜 둘만?”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세 사람을 데려가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미 잡아 두었고...”


“누가 그들을 잡았다는 건가?”


김갑수를 떠올리며 최대림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갑수가 없었다면 경호실장과 이운성이 돌출행동을 해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경호관 중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최대림은 그와 그가 데리고 온 경호원들에게 두 사람을 맡겼다.


“사저에 있었다는 신정석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그를 찾아주십시오.”

“아... 알겠네. 난 이곳 일을 처리하고 따라가겠네.”

“예. 먼저 가겠습니다.”


최대림이 나가자 김남수가 팔을 휘휘 돌리다 환자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 주변을 살피다 정치가의 옛 보좌관에게 주었다.


“꼭 돌려주십시오.”

“.....예? 왜 이걸 저에게.”

“보면 모릅니까? 거 참 머리 안돌아가는 분들이 어찌 저분을 모시고 있었을까. 그러니 이런 일이 생기지. 쯧!”


사실이라 할 말이 없었던 전 보좌관은 멍하니 신발을 받아들고 전 비서실장을 보았다. 김남수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서실장은 왜 그가 왔는지 깨달았다.


“그렇군... 가서 병원장을 모셔오게.”


김남수를 영안실로 옮긴 후, 전 비서실장은 밖으로 나와 인터뷰에 응했다.


“6시 40분쯤에 동화산 바위 위에서 뛰어내리신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경호관 한명이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즉시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을 했습니다만, 상태가 위독해서 이곳으로 옮겼고, 조금 전 9시 30분경 돌아가셨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최대림은 처음 치료받으러 갔던 병원의 수습의에게 전화를 받았다.


-가족이 찾아와서 아산병원으로 이송한다고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 사망했다고 합니다.


“아아... 알겠습니다.”


등산객으로 위장한 암살범을 지켜볼 사람이 없었다. 하루가 동원한 사람들은 모두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최대림도 정신이 없어 그를 잊고 있었다.


‘내 실수다. 범인을 그냥 두다니...’


최대림은 하루가 저지른 일을 조용히 수습할 생각을 했다. 정당방위를 주장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남자가 살아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의 행동은 과한 것으로 여겨지고, 실형을 받게 될 것이라 여겼기에 치료받아 연명하기를 최대림은 바랐다. 그런 마음에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않았더니 누군가 나타나 환자를 빼돌렸다. 그리고 결국 남자는 죽어버렸다. 이제 누구에게 사주 받았는지 물을 방법도 없는 것이다. 하루의 행위가 발각되면, 살인누명을 벗기도 힘들어졌다.


“아아... 아아...”


앞서가는 트럭에 실린 옷장을 보며 최대림은 연신 괴로운 신음을 내뱉었다.


“왜 그러는가.”


뒤에 탄 정치가의 질문에 최대림은 룸미러를 보았다. 김갑수와 함께 온 경호원들이 타고 온 승합차에는 김두라가 있었고, 김갑수와 경호원 둘, 그리고 그들이 잡아두고 있던 경호실장과 이운성이 함께였다. 그들이 없다면 최대림은 말을 했겠지만, 암살자와 공모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호실장과 이운성이 있었기에 입을 열 수 없었다.


목포에 있는 임대 창고에 모였을 때 최대림은 암살범의 사망소식을 하루와 정치가를 보호하는 이들에게 전했다.


“....죽었군요.”


담담한척 말하지만 하루의 몸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최대림이 다가서 위로하려 하자 하루는 급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식사거리를 사오겠습니다.”


*

*

*


<4월 1일>


하루는 가족에게 섬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에는 자신의 일을, 현실을 직시하려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자. 법의 잣대로 공정하게 자신을 심판하게 하자. 그렇게 마음먹자 하루는 담담해질 수 있었다. 그건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정치가가 당장 나올 수 없는 사정 때문이기도 했다. 적어도 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는 자신의 재판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루는 생각했다.


*


“아빠? 왜 산을 빙 돌아가요?”

“산을 통하는 길이 없어.”

“아아... 그런데 산이 예뻐요. 봉우리가 하애요.”


세포항은 만 안쪽에 자리한 어항으로, 만의 앞에는 섬 하나가 버티고 있어 예로부터 파도가 잔잔해 어항으로 이점이 많은 곳이었다. 진도의 서쪽에 위치한 세포항에 가려면 130~283미터높이의 여덟개의 봉우리가 솟은 동석산과 석적막산 일대를 빙 돌아가야 한다.


동석산 동과 서에는 성동저수지와 봉암저수지가 있고, 낮지만 정상과 바다까지의 거리가 먼 곳도 2km안쪽이라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산행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이어진 산봉우리들도 대체로 큰 바위로 이뤄져 있어, 아래는 푸르고 위는 흰 독특한 풍경을 그려낸다. 산 주변을 따라 돌아가는 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스윌리와 스완도 창을 열고 산과 바다가 만드는 경관에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었다.


‘이런 곳이었구나.’


하루는 몇 번이나 왔지만 아침 일찍 왔다 밤이 되어 돌아가곤 했었고, 주변을 감상할 여유도 없었기에 새삼스럽게 풍경을 보며 감탄을 했다.


“잠시 멈춰서 볼까?”


운전을 하느라 감상하기 힘들었던 마루가 말했다.


“바꾸자. 운전 내가 할께.”

“....그래. 다 왔으니까.”


지산면 가치리 삼거리에서 차를 세운 후, 하루가 운전대를 잡고 세방낙조로를 따라 달렸다. 늘 아래쪽 지산로를 따라 움직였지만, 오늘은 가족을 위해 해안 가까이에 있는 도로로 움직이는 것이다.


수확시기가 다가온 보리가 익어가는 들판은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과 어우러져 있고, 멀리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감탄이 터져 나왔다. 통신주에 달라붙어 자라는 덩굴이 무성한 모습에 담미는 덩굴식물이 전기도 먹는지 물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파도 심고, 많이 심었어.”

“양파야.”


하루가 힐끔 보고 지나간 밭에 심은 작물을 알려주자 아는 척했던 스윌리가 슬쩍 눈을 흘기다 웃었다. 그 순간 바다가 나타났다.


“우와! 아빠 바다야!”

“빠다! 빠다!”


담미와 엔젤의 즐거운 비명소리에 하루도 흐뭇하게 웃으며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 농막이 선, 만의 끝에서 차를 세웠다.


“여기야?”

“아니, 더 가야해. 여기 경치가 괜찮아서.”


하루는 낮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기지개를 켰다.


“아, 날씨 좋다.”

“그러게 쌀쌀했는데 해가 따뜻하네. 바람도 적고.”

“바람은... 산이 다 막아주는 것 같아. 거기에 여긴 만이고 건너편 봐봐.”


-아빠, 물고기 있어요!


“어? 어디? 아빠가 잡아줄까?”


30분 정도 물 구경을 하다 하루일행은 다시 차에 올라탔다.


“배고프다.”

“가면 좋은 식당 있어. 해물탕 먹자.”

“해물탕!”


스완이 가장 좋아했다.


좌측에는 산의 끝이고 우측은 바다인 이차선 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하루일행 모두 조용해졌다. 통행이 거의 없는 곳이라 뒤따라오는 차도 없었기에 되도록 천천히 가지만, 그럼에도 풍경이 빠르게 변해갔다. 그것이 아쉬워 모두 입을 다물고 지나쳐간 무언가를 잡으려 고개를 돌렸다 앞을 보곤 했다.


“여긴 서해가 아닌가.”

“황해라고 해야지. 남쪽이라 물이 맑은 것 같아.”

“좋다.... 색도 좋고, 잔잔하고 물에 풍덩하고 싶다.”

“원하면.”


또 조용해졌다 담미가 입을 열었다.


“아빠, 집 있어. 바다에 붙어 있어!”


좌측엔 계속 산의 암벽과 풀과 나무, 그걸 막는 경계석과 낮은 벽만 보였고, 반대쪽은 푸른 바다와 땅 끝을 잡고 살아가는 식물들이 무성하던 풍경이었다. 그것이 잠시 변했다. 열두 집이 모여 있는 작은 어촌은 바닷물이 들이칠 것처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세 걸음 걸으면 바다에 닿는 곳도 있었다.


“겁나서 난 저기서 못 살 거야. 엔젤도 무섭지?”


담미는 자신 혼자 겁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 엔젤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엔젤의 관심은 만 너머에 있는 경망산에 가 있었다.


“빠빠! 솜타탕!”


산보다는 그 위에 뜬 구름에 관심을 보였다.


“어구, 엔젤 솜사탕 먹고 싶어요?”

“솜타탕! 타두테요?”

“오, 사줘야지. 저 구름만큼 큰 걸로?”

“꺄아! 조아요.”


손뼉을 짝짝 치며 기뻐하는 엔젤에게 어른들의 관심이 쏠리자 담미가 작게 말했다.


“아빠랑 엄마랑 같이 살면 살 수 있어...”

“나도 그래.”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들어준 하루에게 다가가려던 담미는 안전벨트에 걸려있다는 것을 깨닫고 팔다리를 휘적거리다 이내 포기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그 한숨은 곧 나타난 마을을 보고 탄성으로 바뀌었다.


“아빠? 왜 다 따로 살아? 그리고 왜 위험하게 바다에 살아?”


“음, 여긴 물이 잔잔해.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을 거야. 그리고.... 저기에 사는 사람은 얼마 없어. 자세히 보면 펜션이라고 써 있는 간판 보일거야.”

“어...어! 보여!”

“여기에 쉬러 오는 사람들이 주로 머물고, 그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자리 잡았다고 해. 옛날에는 여기에도 어선이 가득했다던데....”


도로 아래에 펜션과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드문드문 나타났다 사라지다, 그것마저 없는 곳이 쭉 이어졌다. 그러다 드디어 산 쪽으로도 펜션이 나타나고, 주차한 차들이 두 대 있는 곳이 나왔다. 도로는 점점 바다에서 멀어지며, 바닷가 쪽에 밭을 만들어 살게 된 주민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제법 땅이 많이 보이는 안쪽으로 푹 들어간 곳에서는 좁은 길을 따라 늘어선 마을도 나타났다.


“저긴 세마을인가?”

“새마을?”

“아, 셋할 때 세마을. 어민 대부분이 여기에 살아.”

“많이 사나? 집은 제법 보이던데.”

“50호가 안된다고 들었어.”

“허....그럼 한 이백명 사나?”

“아니, 백명이 안 돼. 빈집이 많다더라.”


밖으로 툭 튀어나간 곶을 따라 도로가 만들어지지 않고, 남으로 뻗어갔기에 곶이 있는 곳에선 바다가 멀어지고, 그곳엔 밭이 가득 보였다. 그러다 가학선착장을 지나 더 이상 아이들이 찾지 않는 가학초등학교가 나타나면, 주변에 선 산봉우리에 가려져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민가와 밭과 논이 뒤엉킨 전형적인 시골마을의 풍경이 나타났다.


“여긴 더 많이 살겠네?”


“어어...”


100여 채가 넘는 집이 주변에 넓게 흩어져 있었다. 하루는 어민들이 이곳에 더 많이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폐교한 가학초등학교를 등지고 삼거리를 지나면 길의 이름이 바뀌며 지산로가 된다. 그렇게 남서로 계속 내려가다 보면 낮은 봉우리가 우측에 서 있어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짧게 나타난다. 그러다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멈춰서면, 환영문구가 쓰여 있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어서 오십시오. 기산면 세포마을. 아빠? 세포는 몸에 붙어있지?”


표지석의 문구를 따라 읽고 담미가 물었다.


“응, 그 세포는 아니고... 한자로 뭔지 나중에 알아봐줄게.”


“네에!”


달리는 중에는 몰랐지만 세포항으로 통하는 세포길로 들어서자 차가 아래를 향해 움직이며 타고 달리던 도로가 위로 올라간다. 그를 보고 신기해하는 담미의 재잘거림과 엔젤의 웅얼거림을 듣다보니 하루일행은 세포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이미 길을 따라 뚝뚝 떨어져 서 있던 집들도 세포마을에 속한 집이지만, 노인복지회관 앞에 있는 정자를 보고나서야 이곳도 마을이라는 것을 마루와 스완, 스윌리는 확연히 깨달았다.


“여긴 사람이 살긴 해?”

“보면 모르냐. 주변 밭에다... 개 짖는 소리도 들리잖아.”

“아아... 정말 적막한 마을이다. 개소리 빼면.”


길은 남서로 천천히 구부러지다 정서로 쭉 이어진다. 길을 따라 없을만하면 하나씩 선 집들이 있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다 좌우로 있던 집이 좌측에만 놓이게 된다. 우측에는 바다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세포항은 길고 좁은 만 안쪽에 자리한 어항이다. 어구들이 여기저기 놓여있고, 산을 따라 올라가는 길옆에는 비닐하우스가 서 있고, 창고로 쓰는 가건물이 여기저기 대충 늘어서 있는 풍경 속에서 그래도 사람이 사는구나 싶은 것은 부둣가를 바라보는 위치에 선 세 채의 빌딩 덕이었다.


거기에 더해 최근 찾아오기 시작한 이들과 하루의 부탁과 스스로의 선택으로 머무는 이들이 세포마을에서 유일한 상가건물들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 덕에 이전보다 항구는 깔끔해졌지만, 차가 많이 주차된 상가들 앞으로 차를 몰아가는 하루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사람들이 이리 많아? 다 여기서 지내나? 농사보다 어업에 종사하는 분이 많나?”

“으음...”


어항이지만 하루가 소유한 배가 가장 큰 배일 정도고 그 수도 많지 않다. 어민의 수도 20명 안 밖이고 그 중 반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인근 섬들에 리조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땅을 사고, 건물을 지은 이들은 나중에 분통을 터트리다 팔거나 멀리 이사를 가버릴 정도로 실망을 금치 못한 곳이기도 했다. 낙후된 마을.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마을이지만, 하루는 그곳에 정취를 그대로 가족에게 전하고 싶었다. 현재의 분위기는 하루에게도 낯선 것이었다.


차가 멈추자 건장한 청장년들이 다가왔다. 하루는 슬쩍 차창을 내려 그들에게 얼굴을 보였다. 다가오던 이들은 급히 물러났고, 하루는 그들이 식당 앞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던 이들과 함께 상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차문을 열고 내렸다.


“다 왔어.”

“어... 여기야?”


마루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말하자 하루는 살짝 미소를 감추며 돌아섰다. 그리고 다가오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형님.”

“왔군... 왔어.”

“남수 형님은요?”

“남수는 섬에. 요즘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한마디 하겠다고 영진이랑 같이 들어갔지...아, 오셨습니까.”


정중한 갑수의 인사에 차에서 내려 주변을 보던 마루와 스완, 스윌리가 다가오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만드레 김?”


“에?”


하루가 놀라 스완에게 다가갈 때, 스완은 하루를 지나쳐 갑수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오! 만드레 김선쉥님. 반가워. 아, 반가워요.”

“하하, 나도 반갑습니다. 부인.”

“오! 선쉥님 턱분에 나 이제 바늘 잘해. 잘해요.”

“그게 왜 제 덕이겠습니까. 본인의 노력과 타고난 실력 덕이지.”


가족을 맡기고 바쁘게 움직였던 하루는 갑수의 다른 면을 오늘 처음 보았다. 그래서 익숙한 듯 보는 마루와 달리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드레 김?’


작가의말

선추코!!!!


오타 수정은 자고 일어나서 하지요.


앞서 세포항에 대한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 부분은 제대로 수정했습니다. 


그런 실수가 벌어진 이유는 여수의 세포항에 대한 일화를 떠올려 두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리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쓰지 않을 것이라 이렇게 알려드립니다. 여수의 세포항에 사는 진도 세포항에 건물을 가진 건물주와 얽힌 이야기였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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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시공돌이
    작성일
    19.06.17 12:35
    No. 1

    다른 사람이 죽였겠내요. 빨리 밝혀져서 심적 부담이 줄어 들었으면 좀더 재미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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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꼭 필요한 사람 4 +2 19.06.02 245 9 31쪽
62 꼭 필요한 사람 3 +4 19.05.29 304 11 21쪽
61 꼭 필요한 사람 2 19.05.25 296 8 28쪽
60 꼭 필요한 사람 1 +2 19.05.23 318 10 16쪽
59 취미생활 2 19.05.22 309 9 32쪽
58 취미생활 1 19.05.20 313 9 24쪽
57 평범한 사람 3 +1 19.05.20 327 9 28쪽
56 평범한 사람 2 19.05.19 297 6 23쪽
55 평범한 사람 1 19.05.18 295 4 25쪽
54 핸드폰 7 19.05.17 307 8 21쪽
53 핸드폰 6 19.05.11 334 7 17쪽
52 핸드폰 5 19.05.11 289 6 21쪽
51 핸드폰 4 +3 19.05.09 317 5 11쪽
50 핸드폰 3 +2 19.05.07 313 9 22쪽
49 핸드폰 2 19.05.06 311 5 26쪽
48 핸드폰 1 19.05.05 355 7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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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미래 고정하기 1 19.05.04 311 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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