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연어진 님의 서재입니다.

원데이(One day)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19.04.01 11:35
최근연재일 :
2019.06.18 01:29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30,224
추천수 :
641
글자수 :
759,256

작성
19.06.14 20:45
조회
244
추천
11
글자
23쪽

섬지기 1

DUMMY

넓고 단단한 바위가 안정감을 주지만, 그 아래에 몰아치는 파도를 보고 있자면 빨려 들것 같은 기분에 절로 물러나게 된다. 파도에 밀려 바위 위로 솟는 물줄기도 걱정이 되기에 보통은 다가서지 않고 멀리서 바라본다.


그런 상식을 잊은 듯 그는 바위 끝에 앉아 물을 맞고 있었다.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작은 생물들은 그가 빨리 가주길 바라며 조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뿐 그를 걱정해 주지 않는다.


한참을 궁상을 떨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던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뻑 젖은 옷을 당겨 짜내며 그는 자신이 소유한 섬을 둘러보았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안식의 공간. 그런 곳을 꿈꾸며 만든 곳이지만 지금 그에겐 낯설고 떠나고 싶은 곳으로 느껴졌다. 그의 눈은 곧 섬으로 다가오는 배로 향했다. 절로 찌푸려진 얼굴로 하루는 푸념을 내뱉었다.


“왜 저리 자주 오는 거야.”


한숨을 내쉬며 그는 선착장을 향해 움직였다.


*


<4월 1일>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가학리에 있는 세포항에 낯선 이들이 자주 들어오자 주민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다른 지역과 달리 가까운 리조트로 들어가는 여객선도 오지 않는 곳이라 더 그렇다.


“또 왔네?”


어구를 손질하던 손을 멈추고 한 씨가 말하자, 인근에 앉아 작업하던 어부들의 시선이 그의 시선을 쫓아 움직였다. 그곳에는 묵직해 보이는 검은 승용차 한대가 멈춰서고 있었다. 곧 차에서 내린 건장한 신체를 가진 이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한씨와 어부들은 안 좋은 상상을 하며 다가오는 이를 보았다.


“여기 주먹코섬에 들어가는 배가 있다 들었습니다.”


행색과 달리 정중한 말투였고, 말하며 선글라스를 벗으며 미소까지 짓자 한씨의 걱정도 잦아들었다.


“섬에는 무슨 일로...”

“아, 그곳 경치가 좋다기에 구경을 할까 해서요.”

“놀러 온 행색은 아닌데....”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모습을 보며 한씨가 작게 말하자 남자는 어색한 미소로 답했다.


“제가 아니라 제가 모시는 분이 오고 싶어 하셔서요.”


‘운전사구만.’


한씨는 사정을 꿰뚫어 본 경험 많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가 바라는 말을 해주었다.


“주먹코섬은 개인이 소유한 섬이오. 허락 없이 가는 것은 좀 그렇지. 안 그래?”


한씨가 동조를 바라며 말하자 어부들은 왜 날 보냐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피했다. 한씨는 더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괜히 그들을 노려보았고, 운전기사로 여겨지는 이는 답을 찾지 못해 한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장씨 왔네.


한 어부의 말에 한씨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기 오토바이 타고 오는 사람 보이시나?”

“예? 아, 예.”

“그 사람이 섬주인 없을 때 관리해주고 그러면서 수고비도 받고 하니까, 가서 물어봐...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고개 숙여 인사하며 남자가 돌아서자 급히 고개를 까딱이던 한씨가 작게 말했다.


“리조트 안한다더니... 하려는 건가?”

“그런 걸까요?”

“....아깐 도둑놈맹키로 입 쩍 붙어 가꼬있더만, 어째 그려?”

“누가 입 딱 붙었다고... 아따, 참말로...”

“뭐? 할 말 있어?”


뒤늦게 화가 터져 한씨의 목소리가 커지자 지켜보던 박씨가 말했다.


“성님, 그라지말고 장씨 오믄 뭐땀시 사람들이 댕기는지 물어보소.”

“...그란가? 이이, 그것이 참이지.”


하지만 그들이 물어볼 사이도 없이 장씨는 배에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을 태우고 떠나버렸다.


“으미... 뭐가 저리 급해부러서 인사도 없당가.”

“장씨 멀리 일 댕긴다더만. 때리치었나?”


이런저런 말을 나누던 어부들은 이내 입을 다물고 작업에 집중했다. 그러다 또 차가 들어오자 그들은 다시 그곳에 화제를 두고 대화를 시작했다.


“리조트 할라나벼.”

“그라게요.”

“하문 좋지.”

“아, 성님이야 슈퍼하니께 좋겄지만, 나는 뭐가 좋다요?”

“너그 형수가 저짝에서 장사 안허냐?”

“허. 그라네요잉?”

“푸푸푸.”


찾는 이가 없는 어항이라 누가 오면 낯설고 걱정도 들게 하지만, 죽은듯 고용한 동네가 활기넘치는 것도 이들이 바라는 일이었다.


‘적당히 오면 좋은디.’


다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남들이 자신의 삶속에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한씨는 근심했다.


*

*

*


<3월 26일>


밤늦게 도착한 하루는 혼자가 아니었다. 장씨는 서른이 넘는 남녀를 보고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그 중 여덟만 배에 올라탔지만 의문은 여전했다.


“이게 뭐여?”


하루가 가져온 것은 낡은 옷장이었다. 다섯 채 모두 붙박이장이 있었고, 다른 생활도구도 모두 갖춰져 있다. 하루가 가져온 옷장은 고급스러운 원목이라 무겁고 그래서 여덟명이 달라붙어 옮겨야 했다. 고풍스러운 느낌은 있지만 새로 꾸민 별장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뭐가 들었나. 엄청 무겁더만.”


장씨가 봉해진 테이프를 뜯으려 손을 뻗을 때,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았다. 돌아본 그는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를 보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 형님. 그냥 두세요.”


그를 본 하루가 달려와 말하자 장씨는 한발 물러났다.


“뭐가 들었어?”

“예...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하루야.”


장씨는 자신의 손을 잡은 남자가 하루와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는 그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를 소개해 주었다.


“영진형님. 여긴 최대림...경사님이에요. 제가 잘 아는 형이고요. 대림형. 이쪽은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시고 계신 장영진 형님이에요. 대림형보다 네살 정도 많아요.”


“하루야... 후우, 최대림입니다.”


망설이던 최대림이 억지로 자신을 소개하는 듯해 장씨는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배에 올라탄 이들이 풍기는 분위기에 말 못할 사정이 있다 여기며 장씨는 최대림을 마주보고 자신을 소개했다.


“장영진입니다.”


하루가 소개시켜 준 이는 최대림의 약혼자라는 김두라까지였다. 어디서 본듯한 나이 든 이와 주변 눈치를 심하게 보는 두 사람, 그리고 그런 둘을 노려보는 두 사람을 하루는 소개해 주지 않았다.


주먹코 섬의 항구에는 원격조정이 가능한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다. 밤에 올지 모를 배를 위해 하루가 주문해 만든 일종의 등대였다. 그 불빛에 기대어 배를 선착장에 댄 후, 다시 옷장을 옮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물 들어오면 옮기지?”


물이 빠진 때라 배도 완전히 붙이지 못한 상태였고, 높낮이 차로 인해 쉬운 일도 아니라 장씨가 제한했지만 하루는 지금 옮겨야한다고 짧게 말하고, 배와 선착장 사이에 발판을 깔았다. 열 명이 달라붙어 겨우 선착장에 옮겼을 때 모두 지쳐 주저앉아 버렸다.


“가서... 차 가져올게.”

“차로... 어떻게 옮기려...고요. 아이고 죽겠다.”


축 늘어지며 하루가 묻자 장씨는 떠오른 생각을 전했다.


“수레 있잖아. 그거 매달고 끌고 가야지. 언덕 올라야 하니.”

“아... 그럼 두 대 끌고 와요. 저도 갈게요.”


전동차 한대의 힘으로 무리라 생각했기에 장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루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그리 지쳤어? 잠도 안 잔 사람처럼 얼굴도 푸석하고.”

“예리하시다니까....”


손을 잡고 일어난 하루와 장씨가 휘적휘적 멀어져가자, 옷장에 딱 붙어 서 있던 이가 옷장을 살짝 두드렸다. 그 모습을 본 최대림이 경계하듯 주변을 보았다. 다시 옷장에 붙은 이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모두가 숨죽인 순간 안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담배 있나.


“허...”


기막혀 한숨을 내쉰 그는 이내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만 깨달았다. 그런 그에게 다가서 담배를 내미는 이는 최대림이었다.


“...피는가.”

“자주 요구하셔서, 가지고 다닙니다.”

“...여전하군. 그런데 펴도 되겠나?”


옷장을 본 최대림은 곧 옷장 주변을 따라 돌았다. 그리곤 고개를 흔들었다.


“공기구멍이 없군요.”

“그렇겠지.”

-괜찮네. 주게.


안에서 들린 말에 그는 표정을 굳혔다. 그때 도움을 주는 이가 나타났다.


“피시면 안돼요. 이참에 끊으세요.”


두라의 말에 옷장 안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대림씨, 니코틴패치를 구해야 할 것 같아요.”

“아.. 예. 또 다른 것은요?”

“다른 건 하루씨가 다 구해놓아서 괜찮아요. 수액에 봉합도구까지... 정말 하루씨 아니었다면...”


최대림이 고개를 흔들며 떨어져 앉아 있는 이들을 보자 김두라도 입을 다물었다.


“정리를 해야겠지. 대림이 자네는 여기에 있게. 난 움직여야 하니.”

“예. 그런데....”

“알아서 하겠네.... 배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을 잊었군.”

“....옮기고 제가 하루에게 말하겠습니다.”


하루가 간 방향을 보며 그는 말했다.


“고마운 사람이야.”

“예....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세.”

“...알겠습니다.”


대화가 사라진 후 5분이 지나 하루와 장씨가 돌아왔다. 연결된 수레에 가구를 올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최대림이 옷장을 잡고 움직였다. 장씨는 그 모습을 보며 나란히 움직이던 하루에게 말했다.


“경호원같네?”

“아...”


하루는 최대림을 돌아보고 실소하고 말았다. 최대림은 요인의 차량을 경호하듯 붙어 움직이고 있었다. 고개를 흔들며 다시 앞을 본 하루는 조금 속도를 높였다. 장씨도 그에 맞춰 속도를 높였다. 곧 언덕이 나오고 길을 따라 좌우로 선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나타났다. 길을 따라 낮은 안내등이 켜져 있었고, 현관에도 색이 다른 불빛이 켜 있어 보기 좋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를 보고 감탄한 사람은 김두라 뿐이었다.


“예쁜 집들이네요.”

“아침에는 더 예뻐요. 꽃이 펴서.”

“아...”


봉오리를 오므린 화단의 꽃을 보며 김두라는 꿈꾸는 소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최대림은 그런 김두라의 모습을 보지 못할 정도로 여전히 긴장해 있었다.


하루는 가장 위쪽에 있는 해바라기 집에 멈춰 섰다. 언덕을 오르며 옷장이 쓰러질까 모두 달라붙어 밀고 있었기에 땀이 식은 하루와 장씨와 달리 나머지 사람들은 선착장에서보다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하루가 말했다.


“어차피 말할 것인데... 그랬으면 고생 안했을 것을.”


하루가 최대림을 보며 말하자, 최대림은 옷장에 손을 대고 있던 이를 보았다.


“말해야 하는가.”

“이제 와서 어떻게 숨기시려고요?”


반문하자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군.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겠지.”

“예. 제가 계속 붙어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영진형님?”

“무슨 의미인데? 겁나는데... 모르면 안 될까?”


장씨는 말처럼 겁을 내고 있었다. 최대림이 움직이다 차고 있던 권총을 보였기 때문이고, 나이 많은 이가 누군지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하루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장씨도 지지하는 쪽이었기에 일을 중단하고 돌아와 집에서 쓰라린 가슴을 달래던 중이었다.


“그러실래요?”


하루는 장씨가 원하면 알리지 않을 생각으로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장씨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그가 옷장에 다가서자, 곁에 있던 이가 물러났다. 장씨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최대림과 남자 넷이 동시에 그에게 다가오려다 하루의 눈초리에 멈춰 섰다.


찌익.


문을 봉한 테이프를 가르고, 잠긴 문의 열쇠를 하루에게 건네받아 열며 장씨는 주머니칼을 하루에게 주었다.


“후우.”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 문을 연 그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곧 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며 주저앉고 말았다. 안에 있던 그는 담담히 그런 장씨를 보며 스스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쓰러진 장씨의 어깨를 다독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좋은 곳이군.”

“뭐가 보이세요?”


하루의 말에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그를 보았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런데 자네... 아, 그래. 대림이하고 같이 왔었지.”

“기억하시네요.”

“기억하지. 같은 농사꾼 아닌가. 거기에 추구하는 길도 같고. 그럼 동지지.”

“어후... 농담인 줄 알지만 지금 받아들일 심정이 아니네요.”

“....그런가. 아, 여기가 내가 쉴 곳이군. 저건 국화인가?”

“색맹...은 아니시겠고. 빛 때문에 그렇지 노란색이에요.”

“노란 국화도 있는데?”

“....들어가세요. 할 일이 많은 분들이 많아요. 저도 그렇고.”


미소를 지어주고 그는 안으로 들어가며 곁에선 이의 손을 잡았다.


“들어가세.”


둘이 들어간 후 하루는 최대림을 보았다.


“형은 어떻게 할래요?”

“난 여기에 있어야지. 두라씨도 있어야 하니까.”

“아... 형수님 괜찮아요? 근무...”

“빠지기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네요. 그래도 제가 없으면 티오도 없는데...”

“변호사님에게 말해서 어떻게 해 보겠습니다.”


최대림의 말에 두라는 고개를 끄덕이곤 하루를 보았다.


“집에 연락해도 될까요?”

“음, 왜요?”

“걱정하시니까. 또, 집에서 옷도 가져오고 싶고...”

“당분간은 참으세요. 그래도 구급대원복도 가져오셨으니까...아, 속옷이 필요하시...음, 대림형? 때릴 것처럼 보시네요.”

“아무리 너라도 형수에게 그런 말을...”

“그럼 형이 사다주시던가요. 수영 잘하시죠?”


날카로운 하루의 반응에 최대림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하루가 침착한 것이 더 이상하다는 것을 최대림은 알고 있다.


“상황보고 구해다 줄 수 있으면 그래줘.”

“예... 당장 먹을 것도 없으니.”


하루는 여전히 주저앉아 우는 장씨를 보다 고개를 돌렸다.


“형님들. 그만 노려보고 이제 가요.”

“이 사람들 그냥 둬도 되는 건가? 아까 보니 뭔가 수상하던데.”

“그래, 이놈들이 범인 아냐?”

“그건 함께 온 분들과 대림형이 알아서 하겠죠. 계속 협조해주었으니 뭐 그리 나쁜... 쯧. 남 걱정 할 때가 아니지. 아, 인사를 드리고 가야겠죠. 잠시 들어갔다 올게요.”


하루가 들어갔다 나오는 동안 장씨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는 하루와 김남수, 김갑수와 함께 배를 타고 세포항으로 돌아가는 동안 두 사람을 소개받았고, 간단하게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암살시도라고?”

“예. 등산객으로 위장한 사람이 갑자기 그분의 머리를 내리쳤어요. 저랑 대림형이 목격했고요. 그 후에 아래로 떨어지셨는데, 대림형이 구했고요.”

“그 놈은?”


하루는 그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영진형님이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월급을 드릴게요.”

“월급은 무슨.”

“형님. 그래야 편해요. 저도.”

“....알아서 해.”

“예, 형님 면허부터 따세요. 운전도 잘하시면서.”

“알았어... 뭐 하면 되는 거야?”

“모르겠어요. 제가 없는 동안 섬 오가는 사람들 봐주시고... 아아, 사람들 모르게 해야 하는데.”

“손님이라고 하지 뭐. 내가 설득해서 리조트처럼 운영하기로 했다고 말하지.”

“그럴까요? 아... 임시개장이라고 해야겠네요. 허가도 안 받았는데.”

“그런 거 하면 감리 들어와.”

“그건 곤란하군요.... 아, 우선 먹을 것하고 필요한 것들부터 사야겠네요. 이 시간에 연 마트가 있을까...”

“목포에 가면 24시간 하는 곳 많아.”

“그럼 거기 다녀와야겠네요.”


-우린 뭐 도울 거 없어?


김남수의 말에 하루가 그와 갑수를 보았다.


“형님들... 당분간 세포항 인근에 머물 수 있나요.”

“이미 그렇게 시켜뒀어. 그런데 숙소가 적어서 흩어져 있다는데. 그래서 돌아가며 순찰하듯 항구 살피라고 했어.”

“항구 바로 보이는 곳이 좋은데...”

“박씨형님 형수님이 하는 식당알지?”


장씨가 끼어들자 모두 그를 보았다.


“예.”

“거기 이층 비었어.”

“아, 주인은 누구에요?”

“몰라. 여수 사는 사람인데.... 사려고?”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마음대로 쓰려면.”

“아냐. 거기 임대로 나와 있어. 본래 태권도장 하던 곳인데...아, 간판 그대로라 봤지?”

“...본 것 같아요.”

“보증금 2천에 월 40인가? 그럴 거야. 한때는 보증금 150만원까지 하던 곳이야. 여기 개발된다고 뷰가 좋은 카페를 만든다 어쩐다... 말만 그랬지 누가 오기나 하나. 내가 잘 말해서 월세도 깎을게. 그런데 뭐라고 하고 빌리지?”

“그런 것이면, 운동학원이 좋겠군요.”


김갑수의 말에 장씨가 움찔 몸을 떨었다. 말투와 행동거지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가까이 할수록 더 느껴졌기에 보이는 반응이었다.


“그분들 운동 잘하니까요?”

“잘됐네! 거기 모여서 운동도 하고.... 오산에 있는 기구들 옮겨야겠어.”

“그런 것이면...”


김남수의 말에 하루가 입을 열려했다.


“됐어. 동생? 그렇게 돈만 쓰다가는 언젠가 거덜나. 그 놈들도 처음엔 돈 잘 주니 좋아서 온 거였지만, 지금은 달라. 더는 동생이 부탁한 일이 아니게 되었어. 나도 그분 참 좋아했는데... 당시엔 엄청 욕했지만... 그런데 그런... 참 나, 양아치나 하는 짓을 하는 놈들이 여전히 있다니.”


“그 수법... 아니다.”


김갑수가 뭔가 말하려다 멈추자 장씨가 슬쩍 그에게서 떨어지며 하루에게 속삭였다.


“뭐하시던 분이야?”

“아... 그...”


하루가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김갑수가 말했다.


“깡패짓 하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양장점 주인이고. 양복필요하시면 찾아오십시오. 지인할인 해드릴 테니.”


“흐으... 예.”


*


며칠사이 종합격투기도장이 항구를 바라보는 건물에 들어서고, 덩치는 크지만 늘 환하게 웃으며 예의바르게 인사하는 남자들이 그곳을 오가자 세포항의 분위기는 조금씩 변해갔다. 새벽에 조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어부들은 자주 만나지 못해 낯설어하지만 자주 보는 이들, 특히 뭔가를 파는 이들에게 새로운 이들은 고마운 고객이며 웃게 해주는 이들이었다.


유통기한이 넘어서도 나가지 않아 폐기하는 제품이 많던 구멍가게의 주인도 격투기학원이 생긴 이후 유통기한을 넘기는 식품이 더는 생기지 않아 좋아했다. 매일 세끼를 꼬박 먹으로 오는 격투기학원의 사범이며 학원생들이기도 한 이들을 맞이하는 식당주인도 연신 반가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하루는 3월의 마지막 날까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는 하루 대부분을 산위에 있는 정자에서 보냈다. 마루는 그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다. 하루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그에게 약속대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마루는 그 진실이 너무 무거워 크게 놀라고 말았다. 하루가 정자에서 시간을 보낼 때, 마루는 일에 몰두했다. 위로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는 하루를 피했다.


“뭘 하는 건지.”


그런 자신을 돌아보고 마루는 하루가 있는 정자로 올라갔다. 멍하니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는 하루에게 다가간 그는 찬 맥주 캔을 하루의 뺨에 붙였다.


“....왔어?”

“마셔라.”


치익. 탁.


둘은 동시에 맥주 캔을 입에 대고 마셨다. 경쟁하듯 쉼 없이 마신 둘은 동시에 캔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캬아.”

“꺼억.”


마주본 둘은 이내 웃었다.


“정당방위잖아.”


마루의 말에 하루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만은 피하고 말했으면 했었기에. 그러나 양심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하루는 현실에서 도망가 봐야 잠깐의 휴식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건 아닐 거야. 날 공격한 것은 아니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했는데? 그 상황에서.”

“그냥... 두면....”

“두면? 그 놈이 그냥 갔겠어? 로프 자르고 떨어트렸겠지? 아니면! 쫓아 내려가서 다시 공격 안할까?”

“흥분하지 마.... 내가 흥분해야지 네가 왜....”

“하루야. 너 잘했어. 난... 난 네가 잘못했다 생각하지 않아.”

“....아아. 고맙다.”


하루는 사람을 죽게 했다. 하루는 범죄자다. 정치가를 섬으로 옮기는 동안에는 그런 생각을 밀어낼 수 있었지만, 집에 돌아 온 후 그는 현실을 자각했다. 자신이 살인자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는 가족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이전처럼 따로 잤고, 담미와 엔젤을 안아주지도 않았다. 안을 수 없었다.


“난 죄인이야.”

“하루!”

“...마루야, 그게 사실이야.”

“....크윽.”


마루는 빈 캔을 구겨 던지고 새 캔을 꺼냈다. 그러나 그는 마시지 못하고 좁은 입구를 멍하니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떤 말이든, 부정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길 기대했지만 떠오르는 것은 양심적인 것들뿐이었다.


“...젠장.”


찾지 못한 말 대신 답답한 속내를 내뱉고 그는 취해버리길 원하며 술을 마셨다. 그러나 아무리 마셔도 술기운은 올라오지 않았다.


“당장은 아닐 거야.”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듯 말없던 하루가 입을 열자 그는 세번째 캔을 든 채 하루를 보았다. 하루는 짙어져가는 노을을 눈에 담고서 담담히 말했다.


“그 사건을 꺼내기 위해서는 그 분이 살아계신 것을 밝혀야 하잖아. 당장에는 그게 어려워. 그게 날 힘들게 해.... 차라리 다 밝히고 당당히 죄 값을 치르고 싶어.”

“그렇게 감방에 가고 싶어?”

“음... 당연히 아니지. 아니지만 이대로 살면 난 내가 원망하고 미워한 이들하고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해.”

“어휴...답답한 소리를.”


그러나 그게 바른 삶이라고, 지금까지 보아온 하루의 모습이라는 것을 마루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양심 버리고, 모른 척 살면 안 돼?”


마루의 말에 하루가 그를 보았다. 이내 웃으며 고개를 돌린 하루는 붉게 변한 하늘과 지상이 맞닿은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때문에 그분까지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아아, 고민했어. 네가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숨기고 살면 되지 않나... 그런데 아니야. 마루야...”


하루가 마루를 보았다.


“왜...”


떠날 것처럼 보는 것이 싫어, 마루는 하루의 손을 잡았다.


“....너 나 좋아하냐?”

“몰랐냐? 이 자식...”


끌어안으려는 마루를 밀며 하루는 웃었다.


“마루야, 나 양심적으로 살고 싶다. 담미랑 엔젤에게도 당당하게 난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애들이 뭘 안다고. 아아... 그래, 마음대로 해. 어차피 넌 항상 네 마음대로 하며 살았잖아.”

“고맙다...친구.”


하루의 말에 마루는 그의 가슴을 툭 치고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슬퍼 울게 될까봐.


*


하루는 현실과 마주하기 싫어 김갑수와 김남수, 장영진을 통해 섬에 있는 이들을 돌봤다. 세상이 애도의 물결을 몰아 동화마을로 향할 때, 하루는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 섬으로 향했다.


“아빠, 우리 바다 보는 거야?”


그런 그의 곁에는 그의 가족이 있었다.


“응, 바다.”

“거기에 할아버지 두는 거야?”

“응, 그리고 낚시도 하고 수영은.... 위험하고.”

“수영은 집에서 하면 돼. 아! 아빠 우리 물고기 잡아와서 수영장에 넣을까?”

“흐. 바다 물고기는 민물에서 못 살아.”

“연어는?”

“어....”

“장어는?”

“으음....”

“숭어도 있어. 아빠.”

“으응... 그래 그런 거 사다 키울까?”

“안 돼.”


가만히 듣고 있던 스윌리의 말에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활짝 웃었다. 룸미러로 그를 본 마루도 오랜만에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원데이(One da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1 섬지기 3 19.06.18 248 9 23쪽
70 섬지기 2 +1 19.06.17 225 8 22쪽
» 섬지기 1 +3 19.06.14 245 11 23쪽
68 11시간 4 19.06.08 257 7 17쪽
67 11시간 3 19.06.07 245 9 20쪽
66 11시간 2 +2 19.06.05 261 8 27쪽
65 11시간 1 +1 19.06.04 251 10 32쪽
64 꼭 필요한 사람 5 +2 19.06.03 248 9 24쪽
63 꼭 필요한 사람 4 +2 19.06.02 248 9 31쪽
62 꼭 필요한 사람 3 +4 19.05.29 305 11 21쪽
61 꼭 필요한 사람 2 19.05.25 296 8 28쪽
60 꼭 필요한 사람 1 +2 19.05.23 319 10 16쪽
59 취미생활 2 19.05.22 310 9 32쪽
58 취미생활 1 19.05.20 313 9 24쪽
57 평범한 사람 3 +1 19.05.20 327 9 28쪽
56 평범한 사람 2 19.05.19 297 6 23쪽
55 평범한 사람 1 19.05.18 295 4 25쪽
54 핸드폰 7 19.05.17 308 8 21쪽
53 핸드폰 6 19.05.11 335 7 17쪽
52 핸드폰 5 19.05.11 290 6 21쪽
51 핸드폰 4 +3 19.05.09 318 5 11쪽
50 핸드폰 3 +2 19.05.07 313 9 22쪽
49 핸드폰 2 19.05.06 312 5 26쪽
48 핸드폰 1 19.05.05 355 7 29쪽
47 미래 고정하기 2 +4 19.05.04 313 7 25쪽
46 미래 고정하기 1 19.05.04 312 5 23쪽
45 미래는 시작되지 않는다 2 +1 19.05.03 321 7 23쪽
44 미래는 시작되지 않는다 1 19.05.02 315 5 16쪽
43 실종 +8 19.05.02 332 8 19쪽
42 추락 7 19.05.01 330 7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