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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나눠요


[☆을 나눠요] 銀飛鈴의 〈잠자는 공주님〉 을 읽고. (1)

※ 편의상 평어로 작성되었습니다.

※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풍자투로 작성되어 다소 불량스럽게 보일 수도 있으나 작품에 악의는 한 치도 없습니다.

※ 1달 전부터 틈틈히 준비했음에도 결국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곧 나가봐야 해서 일단 반절만 올리고 나머지도 새벽에 돌아와서 마저 쓸 게요. 제게 자비를!

 

 

 

 

킹콩 같지만

킹콩은 될 수 없는 퀸디스

-〈잠자는 공주님〉을 읽고-

 

 

 

 

 

〈잠자는 공주님〉을 읽은 내 감상은 저 제목에 고스란히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 알디스는 주관적인 소견으로 킹콩과 환경이 일치한다. 해골섬이라는 미지의 섬에 최고 포식자로 존재하며 사람을 제 장난감 취급하는 둥 높고 외딴 곳에 홀로 지낸다는 것이 스키치아 제국의 금지옥엽 황녀님으로 존재하며 남주들을 저능아로 만드는 둥 제대로 된 친구나 보호자 없이 혼자 지낸다는 점과 똑 닮아서다. 한 번 날뛰면 도시와 섬이 파괴되어 그 피해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에서도 알디스와 킹콩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QueenDis는 주인공의 여왕 성향을 이름에 빗대어 디스한 것이니 곡해 말도록. 감상은 독자 개개의 고유한 영역이고 필자는 알디스가 여제의 권좌에 부적격이라 생각함으로 저렇게 정리되었다. 덧붙이는데 나는 〈잠자는 공주님〉이란 작품을 좋아한다.

〈잠자는 공주님〉은 에필로그와 사이드 스토리를 제외한 6장의 소제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문서를 어떤 기준으로 작성해갈까 고민하다가 딱히 맞춤형 형식이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소제를 기준 삼기로 했다. 도움이 되는 서평이라는 조건이 걸려 감상만 줄줄이 못 쓰게 되었다. 개그 감각이 훼손 될 거야!

 

 

◈ 한초록과 알디스

 

1) 소제목에 대해

첫 번째 장의 소제목은 「한초록과 알디스」이다. 소제목은 해당 장의 전체적인 얘기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고로 첫 번째 장은 한초록이란 명사와 알디스란 명사의 어떠한 상관관계를 논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으나, 어지간한 독자는 그런 거 신경은커녕 소제목조차 제대로 읽지 않겠G. But 작가는 보조사 하나하나까지 조정할 수밖에 없는 예민한 짐승이다.

 

2) 서문에 대해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여름날, 꿈에 흠뻑 취한 소녀에게 한 소년이 찾아왔다.

-〈잠자는 공주님〉 1편 中에서 발췌

 

작품 〈잠자는 공주님〉과 첫 번째 장 「한초록과 알디스」를 통틀어 서문은 이러하다. 아마추어건 프로건 작품의 첫 글은 작가가 자기 감성에 도취되어 있기 마련인데 그렇기에 글쓴이가 당시 무얼 쓰고자 했는지 가장 잘 담겨져 있다고 본다.

저 문구에 담긴 메시지를 가볍게 해석해보자면, ‘잠만보 여주가 미소년 남주를 만나 땀띠 나는 그 불볕 같은 여름날에 흠뻑 젖도록 취하게 되는 뭔가를 시작할 것이다!’라고 독자에게 열렬히 어필하고 있다. 이 해석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임을 밝힌다.

 

3) 전개에 대해

한초록과 알디스는 이명동인이다. 한초록은 우리가 잘 아는 한반도의 여아이며 알디스는 스키치아 제국의 금지옥엽, 당대 유일무이한 황녀 전하되시겠다. 몸뚱이는 비록 둘이지만 그 몸을 주체하는 혼백은 하나며, 그렇기에 두 육체가 동시에 의식을 차리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잠자는 공주님〉은 그중 한초록에게 정체불명의 소년(이하 휘페리온)이 접근함으로써 양쪽 육체를 누비고 다니던 여태까지의 삶과는 다른 전개가 펼쳐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주인님은 날 주워온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잠자는 공주님〉 5편 中에서 발췌

 

길거리에서 저가 먼저 데려가라고 해놓고는 쭈뼛거린 휘페리온이 한초록에게 한 대사다. 스스로가 문제 요인이라고 아주 광고를 하고 있다. 독자는 이 대사를 통해 주인공에게 후회할 만한 시련이 닥칠 것을 짐작하고 남주와 여주가 어떻게 극복(혹은 패배)해갈 것인지를 무의식중에 기대할 것이다. ‘무의식중에’가 중요하다, 밑줄 그어라. 이 문서를 읽는 당신이 독자라면 당신은 무의식중에 그리 생각했다. 자아, 레드썬!

의미심장한 대사를 치는 휘페리온을 지켜본 한초록은 소년에게서 ‘날개를 다친 새’라는 인상을 받는다. 날개는 보통 자유나 이상, 꿈 등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 순간적으로 지나치는 인물묘사도 유의해 보면, 독자는 휘페리온이란 캐릭터의 어떤 것이 억압받고 있거나 훼손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가볍게 읽고 넘긴다 해도 동정표를 사기에 적절한 묘사다.

 

“쉬… 괜찮아. 크게 울어도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항상… 앞으로 항상 네 곁에 있어줄게.”

-〈잠자는 공주님〉 6편 中에서 발췌

 

본문에서 한초록도 독백으로 시인하듯이 여주는 휘페리온에게 어떤 운명적인 예감을 받고 있었다. 생면부지의 타인을 무작정 원룸에 데려와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심지어 애완인으로서 미래도 약속해준다. 자아, 또 중요한 거 나왔다. ‘애완인’에 밑줄 그어라. 이 표현을 통해 우리는 한초록이 얼마나 킹콩 같은 녀자인지를 알 수가 있다.

한초록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으니 이번엔 알디스에 대해 진도를 빼보자. 「한초록과 알디스」의 배경은 한초록이 사는 세상과 알디스가 사는 세상으로 나눌 수 있다. 대한민국의 흔하디흔한 인문학도 여대생에 불과한 한초록과 달리 알디스는 스키치아 제국의 황녀 전하시다. 그런 그녀의 별명은 ‘잠자는 공주님’인데 이는 이 작품의 제목과도 일치한다. 육체가 두 개라는 특이성 덕분에 어느 한 쪽이 깨어 있으면 다른 한 쪽은 잠들어 있을 수밖에 없고, 대한민국의 인문계열 평범한 고딩이라면 새벽 6시부터 새벽2시까지 자유로울 수 없었을 한초록 때문인지 알디스는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 우려와 애정으로 그런 별칭이 붙은 것이라 한다.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잠자는 공주님’도 중요하다. 밑줄로는 부족하다! 형광펜 긋자! 별명과 제목으로 눈치 빠른 독자라면 작품 〈잠자는 공주님〉은 한초록보다는 알디스의 얘기에 편파적으로 쏠려 있겠구나, 를 알아챌 것이다.

자아, 한초록에게 휘페리온이 붙었다면 알디스에게 주어진 남캐는 오라버니다. 같은 대한민국에 산다면 알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고소하고픈 이 오라비의 이름은 작품 〈잠자는 공주님〉이 완결 날 때까지 안 나오니까 ‘태자’라는 명칭으로 기억해두자. 물론 오라버니로 칭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켜보다보면 오빠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아질 걸?

스키치아 제국에서는 황족끼리 근친혼을 치루는 풍습이 있다. 고로 알디스와 태자는 친남매임에도 불구하고 정식 약혼 사이다. 본디 근친을 권장하는 사회에서 자라났기 때문인지 알디스는 둘째 치고 태자는 그것에 반감이 없으며 도리어 여동생과 맺어지지 못해서 안달이 나있다. 그는 알디스가 갓난쟁이일 시절부터 깊이 사모해온 순정남이엇떤 거시다! 태자에 동그라미 치고 아래에 유아 성 집착증 or 롤리타 콤플렉스라 필기해도 좋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나 따위는 내버려두고 사라질 듯이 얘기해.”

-〈잠자는 공주님〉 6편 中에서 발췌

 

대사 하나만 추려냈을 뿐인데도 이 남자가 알디스에게 품은 감정이 절절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 따위는’이라는 표현은 겸손하게 그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장차 제국을 물려받을 존귀한 황태자 자리를 꾀어 차고 있음에도 이 오라비는 진심으로 알디스 앞에서 본인이 추풍낙엽에 흩날리는 먼지보다 못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 대사를 통해 우리가 무의식중에 알아두어야 할 것은 태자의 자기비하가 심각하구나 or 알디스에 대한 우상화가 중증이구나, 겠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여주 찬양, 절대적인 애정만 인식해도 된다.

이런 태자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은 알디스는 그의 눈동자를 보며 ‘빛을 삼키기만 하는 우물 같은 검은 눈동자’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제 이 패턴에 적응해서 알겠지만 밑줄 긋자. 허투루 묘사되는 표현은 없다. 쓸 데 없겠지만 저 문장에 관해 심층 해석으로 들어가자면 ‘빛’은 ‘알디스’를 상징한다. 대비되는 ‘우물’은 ‘태자’를 뜻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삼키기만 하는’이란 무슨 뜻일까? ‘─만 하는’이라는 부정적인 보조형용사에서 해갈(만족)할 줄 모르는 태자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좀 더 나아가서 ‘우물’이라는 속성까지 연관시켜 보자. ‘우물’이란 지하수를 괴게 하는 시설이다. 지상과 지하를 잇는다는 점에서 또 무엇인가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상징적 요소를 갖고 있다. 필자는 ‘우물’이 무엇인가를 품는다는 속성에 주목했는데, ‘우물’로 빗대어진 태자란 인물은 과연 메마른 or 텅 빈 ‘우물’이었을까? 주인공 알디스가 말했듯이 ‘삼키기만 하는’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태자는 이미 물이 차든 우물이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서, 그 한 사람만이 마실 수 있도록 준비된 우물이다. 그 물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물의 색깔이 빨간색일지 투명색일지 핑크색일지 등은 후에 차츰 알아가기로 하고 다시 ‘빛을 삼키기만 하는 우물’이란 묘사를 보자. 우물이 왜 빛을 삼키게만 되었는가? 시린 물이 가득 고인 우물물을 데우기에 빛의 양이 너무 적었던가, 일조량이 풍부했음에도 지하에 뿌리박았다는 속성상 데워질 수 없을 정도로 우물이 너무 깊었다던가, 하는 답이 나올 거다. 그리고 그것이 태자다. 쓸 데 없는 과장해석 읽느라 수고 많아따!

 

“날 좋아한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지?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리지? 난 오라버니한테 아무것도 아닌 거지?”

“알디스가 틀렸어.”

-〈잠자는 공주님〉 10편 中에서 발췌

 

수많은 연인들이 별 것 아닌 걸로 사랑싸움하듯 알디스도 식사 메뉴에서 사랑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서운해 하는데 필자는 이때 태자가 한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알디스가 틀렸어.”란다. 왜 하필 틀렸다는 부정적 사실 확인형인 것일까? 채근하는 어린 연인에게 답할 수 있는 말은 그 이외에도 많다. 그렇지 않다든지, 근거를 제시한다든지, 다시 생각해보라든지, 무엇보다 이 태자의 행동 패턴으로는 무조건 자기가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 가장 잘 떠오른다. 헌데도 태자의 답변은 ‘너님이 틀렸음.’이다. 이 대사에는 특별히 주석을 달 게 없다. 있는 그대로만 뇌리에 각인하면 된다. 알디스는 감정적으로 태자의 진심을 의심했고 태자는 그것에 확고한 부정 의사를 밝혔다.

「한초록과 알디스」에서 알디스 파트는 이 정도로만 알아두고 다시 한초록 파트로 넘어가자.

 

내가 아니라 알디스가 주웠더라면 나았을 텐데. 스키치아에서 볼드모트를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잠자는 공주님〉 6편 中에서 발췌

 

한초록이 휘페리온(위 인용문에서는 볼드모트로 기입되어 있다)을 보며 자주 받는 감상이다. 이외에도 스키치아에서 만났다면 주인님과 펫이 아니라 친구가 될 거라는 둥의 지문이 있다. 얼핏 읽으면 재정적 상황이 새내기 대학생보다는 황녀님이 더 풍족할 테니까 독자는 무의식중에 공감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 들어봤을 행복지수 1위 국가가 방글라데시나 파라과이 같은 가난한 나라임을 잊지 말자. 저러한 지문에서 여주인공 스스로도 한초록보다는 알디스의 인생에 더 가치를 두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난 욕심쟁이라 알디스의 삶도, 한초록의 삶도 포기할 수 없다. 결국, 난 어정쩡한 인생을 택한 비겁자다. 어느 한 곳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평생 이렇게 살지도 모른다. 이렇게 붕 떠버린 채로…….

-〈잠자는 공주님〉 14편 中에서 발췌

 

14편에서 발췌한 인용문에 따르면 여주인공 스스로도 어느 곳의 삶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어정쩡한 인생을 택한 비겁자다.’는 자평을 절대적으로 긍정한다. 여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어느 한 쪽의 인생을 포기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조차 안 보여서다. 그 노력을 하지 않는 이유가 비겁해서다. 노력하지 않아도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여주인공은 붕 떠버린 채로 ‘어, 뭔가 좀 부족한 거 같지만 그래도 손해 본 건 없으니 그냥 이렇게 살래.’가 된 것으로 본다. 해서 필자는 후반에 여주인공이 노력하지 않으면 잃어버리는 상황이 닥친 것을 열렬히 환영했다. 배후의 이야기가 있지만 만약 그런 열악한 과거가 없었다면 여주인공은 지금과 다른 삶의 태도를 보였을까? 필자는 그것에 부정적이다. 여주인공은 저렇게 생겨먹은 캐릭터다.

 

“그거 알아? 서로 다른 세계에서 두 개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잠자는 공주님〉 17편 中에서 발췌

 

그런 한초록에게 파란을 일으키는 것은 휘페리온이었다. 휘페리온은 여주인공이 두 인생을 살아도 삶에 지장은 없을 테지만 스키치아만을 택해주지 않으면 저가 죽는다고 고백한다.

한초록은 이미 휘페리온에게 알 수 없는 어떤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고 휘페리온이 직접적으로 사실을 밝히기 전에도 내심 자발적으로 스키치아에서 황녀로서 소년과 살아가길 바랐으므로 슬프고 아쉽지만 한초록의 삶을 끝내기로 한다.

사람 人자가 인간 둘이 기대는 모습이라는 해설이 있는데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필자는 ‘어울려’에서 서로 의견을 조정, 절충해서 살아야지만 인간 둘 이상 있을 때 배설물과 함께 생겨나는 불만에서 덜 악취가 난다고 본다. 똥도 잘 쓰면 퇴비가 되고 모닥불의 연료가 된다.

휘페리온은 밑져도 본전 아니면 시도조차 하기 싫어하는 여주인공에서 어느 정도 밑지면 손해인 선택지를 택하게 한 남주인공이다. 뜬금없이 위 문단에서 사람 人 운운하며 의견 조율을 논했는데 휘페리온이 이에 걸맞는 행동을 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휘페리온이 알디스의 행복을 바랐다면 나타나지 말고 죽어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한초록의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휘페리온 본인이 알디스를 사랑하고 싶은 욕망을 현실로 이루려는 것과 알디스를 사랑함으로써 저 자신도 행복해지는 보상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휘페리온은 중간중간 과거를 묻는 한초록에게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답했었다. 휘페리온이 알디스의 계획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미지수지만 어느 정도 본인의 부활과 이후 알디스가 차지할 부, 명예, 권력, 사랑에 욕심이 있었기에 정보를 차단, 그릇 된 길을 방조하고 한초록을 죽게 함으로써 알디스에게 배수의 진을 치도록 부추겼다.

저때 휘페리온이 키워드를 말해서 여주인공이 모든 것을 안 상태에서 결정하도록 했어도 한초록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선택지를 택했을 거지만, 결과는 제쳐두고 가정과 과정을 보자. 침묵했다는 상황을 통해서 필자는 휘페리온도 심계가 장난 아닌 캐릭터라고 본다.

한 가지 더 사족을 붙이자면 이 작품의 진노말엔딩 루트는 한초록 사망으로 끝났다고 본다. 탈피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휘페리온을 하이네스는 의식체로 만들어 알디스에게 보내야 했다. 휘페리온이 완전체로 거듭나기 위해 여주의 심장이 필요했다면 한초록보다는 알디스의 심장을 내주도록 하고, 비술 차원이동 술법을 가르쳐주어 휘페리온이 한초록이 사는 세상으로 찾아가게끔 했다면 십중팔구 태자는 자살할 테고 스키치아 제국과 투오넬라 왕국, 중앙 대륙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맞이했을 거다. 이로써 세계 평화가 지켜졌을 테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겠G.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깨끗하게 놓아버리는 것이 좋아.”

“모든 것을 쥘 수는 없어. 놓을 때를 알아야 해.”

-〈잠자는 공주님〉 26편 中에서 발췌

 

이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몇 번이나 같은 글을 다시 읽으면서 휘페리온의 저 대사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주인공에게는 ‘떠나는 것’이나 ‘놓아야 하는 게’ 중요치 않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것은 ‘어디로 떠날 것인가’와 ‘무엇을 놓아야 편안해지는지’였을 거다. 헌데 여주인공은 한초록과 알디스 중 한초록을 놓았다.

주관적인 해석으로 ‘한초록’은 현대인 그 자체였다. 과학을 통한 물질만능의 맛을 알아버려 게으르고 잘 살고 싶은데 힘든 일은 하기 싫고 배운 건 많지만 정작 쓸 데는 없는, 무기력한 인간. 하지만 소시민으로서 한계를 알고 평등사상의 겉수박 핥기 의식을 갖고 있었다. 헌데 여주인공은 그런 ‘한초록’을 버리고 ‘알디스’를 택했다. 출신 성분을 통한 물질만능의 맛을 알아버리고 주변에 미남이 많고 뇌물도 많아 받아 챙기는데 바쁘고 잘 살 걱정 없이 가진 거 많고 밑져도 황녀로서 쌓아놓은 기반은 사라지지 않고 배운 건 많지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오라버니가 있고, 아직 세속물정에 권태를 맛보지 못한 어린 인간. 게다가 황족으로서의 프라이드가 높고 본인이 귀족층이므로 평등사상 따위는 크게 중요치 않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이 행복이라 하는데 여주인공은 ‘한초록’을 죽였다.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깨끗하게 놓아버리는 것이 좋아.” 이제 여주인공은 ‘알디스’일 뿐이다. 평범함을 깨끗하게 놓아버린 알디스에게 남은 미래는 99%의 쪽박 아니면 1%의 대박만이 남았음을 뜻하는 게 아닐까.

 

4) 「한초록과 알디스」 결말에 대해서

 

손안에서 단검이 뜨겁게 펄떡거리고, 시린 바람이 머리를 파고들어와 꿈을 깨워 보낸다. 이제 초록이는 없어. 한국으로 돌아가도 초록이는 없다. 여기 있는 나는 알디스일 뿐.

이곳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계다.

-〈잠자는 공주님〉 26편 中에서 발췌

 

Welcome to the world.

Welcome to the hell.

 

5) 등장인물에 대해서

「한초록과 알디스」의 장에서 주요 인물은 한초록, 알디스, 휘페리온, 태자다. 이외에 황제나 황후, 루카스 경, 라나, 카시우스 공 등이 의미 있게 나오지만 알아둘지 말지는 타독자의 고유 선택 권한이다.

슬슬 불안하다, 디스하려고 이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닌데 좋은 점으로 적어둔 것이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작품 〈잠자는 공주님〉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죄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쁜 얘기를 들었으면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는 게 당연하다. 이 글을 좋아하지만 인물성에 대해서 그들이 주연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감싸고돌지 않아 이런 감상이 적히는 것을 양해해 달라.

주요인물 네 명에 대해서는 3) 전개에 대해서 부분에서 다루었으므로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6) 소제목+전개에 대해서

「한초록과 알디스」란 소제목은 이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되는 운명의 갈림길을 뜻했다. 그에 자극 요소가 휘페리온이었고 말이다.

여주인공은 알디스가 가지고 있는 것을 휘페리온에게 줄 생각을 했지, 그로 인해 알디스 주변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한초록은 20살, 알디스는 16살, 태자는 20살, 휘페리온은 16살이다.

전개에서 여주인공에게 ‘한초록’보다는 ‘알디스’의 삶이 더 구미에 당기는 것이 잘 드러나 있다. 약속 된 땅, 대학에서는 술자리로 인해 뱃살만 뒤룩뒤룩 찌우고 이상형과는 바이바이한 남대생들이 가득한데 비하여 스키치아 황궁에서는 본인이 어여쁜 황녀 전하이고 알디스 맞춤형 이상형으로 재단 된 태자가 애정을 구걸하고 있다. 이기적이니 욕심쟁이니를 떠나 인간이라면 지극히 저가 더 특별하고 사랑받는 곳에서 살고 싶을 거다.

 

그렇게 잠시 얕은 잠을 만끽한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도 참 대담하다. 생전 처음 보는 남정네 품에 안겨서 자다니. (중략)

그럼 장난이나 더 쳐볼까? 나는 슬그머니 풀어주려던 팔을 더 꼭 감았다. 자세를 바꾸어 얼굴을 맞대고 다리도 허리에 칭칭 감았다. 온몸으로 볼드모트를 옥죄는 내 자세는 고목나무에 달라붙은 매미와도 같았다.

-〈잠자는 공주님〉 6편 中에서 발췌

 

생면부지의 이성의 품에서 잠을 청하고 상대의 허리에 다리를 감는 등, 이것은 단순히 휘페리온에게 알 수 없는 운명적 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로 포장하지 않는다. 여주인공은 이런 인물이다.

비록 알디스라는 여분의 생명이 있긴 했지만 어찌 됐건 휘페리온은 여주인공에게 목숨도 지불하게 한 남주1 캐릭터다.

스키치아에서는 함부로 이름을 밝히지 않는 풍속이 있는데, 휘페리온은 한초록에게 제 본명을 가르쳐준다. 목숨과 영혼을 내어준 것과 같은 의미다.

참고로 태자의 진명을 알디스는 모른다.

「한초록과 알디스」의 시작과 끝은 휘페리온과 연관된다.

 

7) 제시에 대하여

① 마냥의 쓰임 잘못.

마냥3[마냥]

마냥2

[조사] ‘처럼(모양이 서로 비슷하거나 같음을 나타내는 격 조사)’의 잘못.

[부사]

1.언제까지나 줄곧.

2.부족함이 없이 실컷.

3.보통의 정도를 넘어 몹시.

해당 편

잘못 쓰인 문장

6

어부마냥

‘마냥’은 ‘처럼’이나 ‘인 양’으로 바꾸어 쓰는 게 표준법에 맞습니다. 어서 개정되어서 ‘마냥’도 ‘처럼’처럼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② 배경적으로 드는 의문.

8편에서 한눈을 파는 알디스에게 루카스 경이 앞에 돌부리가 있음을 경고한다. 황성에서 마차를 쓰는 도로이기에 분명 깔끔하게 포장되었을 텐데 어디서 굴러와 박힌 돌부리일까? 돌부리라 함은 지하에까지 박혀 있는 거대한 돌이라는 뜻인데 제철 꽃을 보기 위해 사계절마다 화단을 뒤집어엎는 스키치아 황실에서 그 돌부리를 인력, 재력 부족으로 냅뒀을 거란 생각은 안 든다.

 

 

◈ 붉은 꽃이 피어난 날

 

1) 소제목에 대해

두 번째 장은 「붉은 꽃이 피어난 날」이다. 은유성이 강해 여섯 개의 소제목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붉은 꽃’이라고 하면 보통 생화를 떠올리게 될 거다. 어쩌면 붉은 장미나 붉은 카네이션 같이 구체적으로 연상할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처음 소제목을 봤을 때 피를 연상했다. 그 피가 그 피일 줄은 몰랐지만. ‘~이 피어난 날’을 통해서 무언가가 확정되는 에피소드임을 살짝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럼 이제 ‘붉은 꽃’이 상징한 게 뭔지 아래 내용을 통해 확인해 보자.

 

2) 서문에 대해

 

이번엔 효과가 있었는지 온통 어두운 곳에 혼자 외롭게 앉아있는 남자 꿈을 꾸었다.

-〈잠자는 공주님〉 27편 中에서 발췌

 

첫 문단의 일부만 발췌했다. 「붉은 꽃이 피어난 날」은 「한초록과 알디스」와 달리 서문이 상징적이지 않아서다. 언제나 그렇듯 새 챕터, 새 파트, 새 에피소드, 새 플롯 등 첫 시작 문구에는 전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할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붉은 꽃이 피어난 날」도 그렇다고 하면 억지겠지만 어느 정도 대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용문을 든 것이다.

〈잠자는 공주님〉의 주인공답게 알디스는 꿈속에서 꿈속임에도 어두운 곳에서 외로운 남정네와 단둘이 무언가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알디스, 너란 여주, 그런 여주.

 

3) 전개에 대해

자기 자신을 죽이고 새롭게 태어난 알디스는 정신적 후유증 때문인지 침대 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꿈속에서 투오넬라로 날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투오넬라의 왕, 로엔그린과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꿈은 언젠가 깨어지게 되어 있는 법, 둘은 스키치아 수정궁에서 취침하고 계시던 알디스의 육체가 의식을 차림으로써 이별하게 되었다. 「한초록과 알디스」에서도 그랬지만 잠자는 알디스를 깨우는 건 늘 태자다. 〈잠자는 공주님〉이 일반적인 공주물이었다면 참 의미심장했을 텐데 아쉽게도 여기 황녀님은 〈종이봉투 공주〉를 읽고 자라서 의존형 여성성을 기대치 말자. 알디스는 잠자는 킹콩 정도로 봐야 한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거보다 무서울 걸?

알디스와 태자는 한 침대 위에서 평소와는 다른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문장이 의미심장하다고? 의도한 거니까 괜찮다. 하얀 시트를 붉게 적신 그것의 정체는 피였다. 알디스가 마법에 걸린 거시어따!

여동생에게 목 매인 한 남자가 기뻐 남다른 세레모니를 보이는 것은 넘기고 알디스의 초경은 제국의 기쁨인고로 황실에서는 축하연이 열린다. 그 연회에서 알디스는 태자에게 진주 귀걸이 한 쌍을, 모파트 백작가에게 드래곤의 알을 선물 받는다.

저 귀걸이는 언젠가 버려지거나 부셔지거나 태워지거나 어쨌든 훼손될 것 같아 보이므로 뒤로 넘기고 태자의 부추김에 드래곤 계란찜 요리를 해먹으려던 알디스는 요리 실패로 부화한 삼두룡 새끼를 얻게 된다. 각색이 너무 심한가?

갓 태어난 생명을 보고도 속물적인 황녀와 태자는 마음이 좋지 않다. 스키치아 제국의 시조는 영물로 블랙 삼두룡을 부렸고 이것에 근거하여 화이트 삼두룡의 탄생은 알디스가 태자보다도 정통 후계자에 가깝게 되기 때문이다. 〈잠자는 공주님〉이란 제목도 그렇고 사연도 그렇고 훼이크가 많은 작품이다. 제시 된 것을 전부 다 믿지 말자.

이래저래 골치가 아팠던 알디스는 차라리 실속 있는 고민을 하기로 한 듯 휘페리온을 찾아 신전으로 향한다. 신전에서 알디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스스로를 티아레:작은새라 소개하는 대신관이었다. 그와 생면부지였던 알디스는 저를 아는 체 하는 작태를 불쾌히 여겨 용건만 마치고 신전을 등진다. 그런 알디스의 귓등에 못내 한 서린 티아레의 한마디가 던져졌다.

 

“이제 괴물의 손에서 벗어나신 건가요?”

-〈잠자는 공주님〉 37편 中에서 발췌

 

티아레가 무슨 말을 하건 자신의 얘기가 아니라 생각했으나 결국 작은새:티아레라는 것이 마음에 걸려 알디스는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티아레에게서 분명 아는 사이였다는, 그러나 제 기억에는 없는 물증들을 확인하게 된다.

 

“전하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맞이하신 열두 번째 여름, 전 잊지 않아요.”

-〈잠자는 공주님〉 38편 中에서 발췌

 

현재 16살인 알디스가 12살일 때 티아레를 만났다 했으니 4년 동안의 기억에 무언가 이상이 생긴 것이다. 필자는 사이드 스토리를 그렇게 일찍 밝혀야 했는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이 문서를 작성하면서 느끼는 건데 사이드 스토리는 탄크레디의 편처럼 1부 완결 후에 넣는 것이 더 긴장감 있지 않았을까.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주어진 실마리는 ‘괴물에게서 벗어났나?’이다. 즉 벗어나다는 것은 지난 4년간 알디스의 주변에 있던 누군가가 괴물일 확률이 높다. 앞서 「한초록과 알디스」의 장에서 한초록이 휘페리온을 보고 ‘날개를 다친 새’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해보자.

 

잊으셨어도 상관없어요, 다시는 잊지 말아주세요.

-〈잠자는 공주님〉 38편 中에서 발췌

 

이젠 진짜로 떠나가는 알디스의 등 뒤로 또 한 번 티아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필자에게는 음성지원까지 들리는 느낌이라 참 순정소녀 돋네, 손발이 오글오글. 이렇게 따로 차출해야 할 만큼 의의 있는 대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태자라는 존재가 진심으로 부딪쳐 오기에 절절하다는 평을 듣듯이 필자도 저 지문(본문에서는 큰따옴표 안에가 아닌 지문에 꼽사리로 끼어져 있는 문구다)에서 진정성을 느껴서 이 문서를 읽는 누군가에게 소개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내 사랑하는 님이기에 자신을 잊은 것조차 원망할 수 없다. 그것은 미련하고 한심하다는 평을 듣기에 부족하지 않겠지만 그리 아둔해질 만큼 사랑해서다. 깊은 사랑이다. 자~알 보면 〈잠자는 공주님〉의 등장인물들은 넓은 사랑은 못하지만 깊은 사랑은 많이 보인다. 너무 깊어서 지구 반대편까지 뚫고 들어갈 그런 사랑 얘기다.

자아, 현재의 알디스에 대해서 얘기했으니 이제 잠자는 공주 꿈속의 알디스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복수의 일환으로 그린의 발목을 붙잡고 눈 위로 엎어졌다.

“…이런 게, 눈 장난인가?”

“응… 이런 게 눈 장난이야.”

그대로 몸이 포개어진 채, 한참 동안 눈을 맞았다.

-〈잠자는 공주님〉 32편 中에서 발췌

무방비한 그린의 몸을 밀쳐 잔디 위로 눕힌 뒤 그 위로 올라탔다. (중략) 돌머리인 그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얼굴을 맞대 오려한다. (중략) 축축한 입술이 내 정수리에 닿는다. 호 해준다고 낫는 거 아니거든?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어 몸을 털고 일어났더니 또 다시 시야가 가물가물하다.

-〈잠자는 공주님〉 39편 中에서 발췌

무릎에 얼굴은 묻은 채, 웅얼거렸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그린의 양팔이 나를 꼭 감싸 안았다. 한 쪽 뺨을 내 목덜미에 지그시 누르며 체온을 나눠준다. 내 목에 흩어진 짧은 머리칼에서 그린의 냄새가 난다. 허리를 안고 손을 잡아오는 곰발바닥 같이 큰 손이 신기해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곤 그린의 손을 붙잡았다.

-〈잠자는 공주님〉 44 中에서 발췌

그린의 숨결이 바로 앞에서 느껴졌다. 조금만 더 거리를 좁힌다면 입술이 맞부딪칠 것도 같다. 하지만 내가 원치 않기에 더 다가오지 않는다. 그는 신사니까. 여자를 강제로 취하지 않는 신사니까. (중략) 부드러운 뭔가가 내 입술에 가볍게 닿았다가 순식간에 떨어졌다. 설마, 이거… 입술? (중략) 오라버니랑 뽀뽀한지 하루나 지났을까? 근데… 나 또 꿈에서 오라버니도 아니고 다른 남자랑 뽀뽀한 거야 나, 너무 가벼운 거 아니야?

-〈잠자는 공주님〉 47편 中에서 발췌

 

ㅇㅇ, 너 가벼움. 알디스는 필자가 본 로맨스 판타지의 여주인공들 중에서도 즐긴다는 느낌으로 스킨십을 극도로 잘 활용하는 여주이다. 단점이거나 경멸스럽다고 여기진 않는다. 그저 이성에게 너무 쉽게 곁을 내주는 무방비한 캐릭터라고 생각. 이 점에 대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어린 얼굴에 깃든 상념은 커서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대와 슬픔은 어울리지 않는 동반자다.”

-〈잠자는 공주님〉 39편 中에서 발췌

 

개인적으로 〈잠자는 공주님〉에서 등장하는 남주(글쓴이曰 남조가 아니라 하셨다!)들 중에서는 로엔그린을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위에 인용 된 대사처럼 언행에서 느껴지는 그의 품성 때문이다. 고심하는 알디스에게 차분히, 지혜롭게 조언해줄 수 있는 것은 인생을 먼저 살아본 연상자라서일수도 있겠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다 정도를 지키고 신사인 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로엔그린은 정말 참한 남편감이다. 스토리상 휘펠리온 아니면 글쓴이가 도중 감정이 치우쳐서 태자가 진남주로 등극할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 알디스에겐 아까운 남자다. 깔끔하게 죽여주자.

현대(지구)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 매체를 통해 자기 생각이 아닌 것을 자기 것처럼 얘기하지만 보통 말이라는 것은 자기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뱉어지기 마련이다. “어린 얼굴에 깃든 상념은 커서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 대사를 통해 로엔그린은 어릴 때의 상념이 남은 누구의 얼굴을 보았기에 저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생각해보자.

 

소설인데 너무 까탈스럽게 구는 게 아니냐고 태클을 걸었더니, 사람은 자기 주제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주제로 설교를 해왔다.

-〈잠자는 공주님〉 51편 中에서 발췌

 

다시 말하지만 대사는 그 인물의 사고(가치관)나 과거,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글쓴이는 인물을 통해 저가 하고 싶은 얘기를 독자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자기 주제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로엔그린만의 대사일까? 그의 대사는 신분에 한정되어 있지만 읽는 필자는 그보다 더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알디스, 이 아이가 행복해지려면 로엔그린의 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내면화해주기를 바라는 생각이 든 거다. ‘자기 주제에 맞춰’라는 것은 얼핏하면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못나다는 부정적 의미로 해석될 수가 있다. 허나 저 개념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격언 ‘너 자신을 알라’가 된다. 스스로가 짊어질 수 있는 짐의 무게를 아는 것이, 무엇이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지 아는 것은 알디스를 넘어서 모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기억만큼 믿기 어려운 것도 없다.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할 수 없는 타인의 기억을 그대는 가감 없이 믿을 수 있는가? 그대는 그대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 믿으면 된다.”

-〈잠자는 공주님〉 39편 中에서 발췌

 

이 인용문은 그냥 발췌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위와 같은 이유로 결국 제시를 해본다. 말이란 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것이라서 알디스의 상황에 있어 저 대사는 상당히 이중적이다. 일부 기억이 없는 알디스의 눈과 귀엔 누군가가 애절하게만 보일 테니까. 하지만 번지르르한 거짓보다는 더럽더라도 진실인 것이 낫다는 알디스의 아집처럼, 필자는 그녀가 그렇게 태자를 보아주길 바란다. 복수를 하더라도 이름 없던 소년이 진심인 것만은 알아주어라. 부디. 부디.

다시 현재의 알디스에게로 돌아가자. 알디스는 제 기억에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타인에게서 확인을 해보려고 했다. 대신관을 만난 적이 있냐는 알디스의 질문에 호위 기사인 루카스 경은 대신관을 만나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답한다. 뭐어, 그게 거짓말은 아니다. 그때 당시 티아레는 대신관이 아니었을 테니카! 하지만 이미 저가 신전에 머물렀다는 흔적을 고스란히 본 알디스는 바로 위증임을 알아채고 분노한다. 심지어 뒤로 넘어간다, 막장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고혈압으로 뒤로 넘어가는 대기업 사장 아빠엄마도 아니신데 자주 쓰러지는 황녀 전하. 그녀가 정말 무서운 건 기절한 순간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있다는 거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는 알디스에게 사죄를 구하는 건 태자였다. 티아레에게 관심을 빼앗길까봐 루카스 경을 함구하게 했다고 제 입으로 실토하는 것이다. 여기서 티아레가 말한 4년 전 알디스를 억압하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괴물’의 후보자에 태자가 들 수 있다고 추리한다면 헐, 천잰데?

잘못했어, 알디스. 내게는 네가 전부야. 내가 원하는 것은 너 하나뿐이야. …날 떠나지 마, 제발.’ 그렇게 빌고 비는 태자의 뺨과 이마에 입 맞추는 것으로 모자라 알디스는 입술에까지 도장을 찍어준다. 그리해 감격한 한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벅차고 행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알디스가 현실 속에서 태자와 진도를 빼고 있을 때 꿈속의 알디스도 못지않게 로엔그린과 진도가 나가 있었다. 꿈이라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즐겼던 알디스와 달리 점차 진심이 되어버린 로엔그린은 여주가 환상이 아니길 바랐고 그것은 언약의 모습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4) 「붉은 꽃이 피어난 날」 결말에 대해서

 

“그대에게 맹세한다. 꿈이 현실로 바뀌는 날, 나는 그대에게 청혼할 것이다.”

-〈잠자는 공주님〉 52편 中에서 발췌

 

꿈을 꿈으로만 두지 않겠다고 말하는 로엔그린이다. 이로써 알디스&태자&휘펠리온&로엔그린까지 사각관계가 성립된다. 결말에 대해서 논해본 것치고는 허무한 정리. 두 번째 장을 통해 세 인물의 가슴 속에 붉은 꽃이 피었다고도 감상할 수 있을 거다.

 

5) 등장인물에 대해서

주요인물로 알디스와 태자인 것은 변함없으나 휘펠리온이 빠져나간 자리에 로엔그린이 들어섰다. 엘카르트, 데카르트, 샤르트르 등의 투오넬라 인물들이 스키치아에 입성했으며 조지 루카스 경의 큰형인 윌리엄 루카스 경도 출현했다. 대신관 티아레도 빠트려선 안 되겠지.

 

부모님 생각이 나니 우울해졌다. 그냥 생각하지 말자. 놓아버리려면 완전히 놓아버려야 한다. 그 점에선 휘페리온이 옳았다.

-〈잠자는 공주님〉 28편 中에서 발췌

 

알디스에 대해 소개하자면 본문에 나오는 것만 적어도 성격적 결함을 보이는 것들뿐이다. 본인 입으로 퉁명스럽다는 평을 듣는다는 둥 야멸차다는 둥이라고 말하니 필자는 말 다한 셈. 그러니 본문에 나오지 않은 것을 얘기하자면 이 캐릭터는 너무 극단적이다. 어리고 경험이 없기 때문일 거다. 밑져서 손해인 것을 싫어하고 저 아픈 것을 꺼려하기 때문일 거다. 때론 아픔을 감내해야지만 아름답고 어여쁘고 사랑스럽고 애잔한 것들이 있다. 부모나 친구라는 것이 그렇다. 함께 살며 서로의 추악한 모습까지 보기에 밉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뒤돌아서면 결국 챙기게 되는 그런 존재들이다. 잃어버렸으니까,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으니까 아픈 것은 당연하다. 헌데 알디스의 저런 논리는 부모님이 죽었으니까 이제 생각하지 말아야쥥, 완전 놓아버려야쥥. 이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알디스는 자기가 다치거나 꺾이는 것에선 극단적으로 반응하고 남이 다치는 것에선 무심하거나 도리어 즐긴다. 이런 여제 따위는 정말 사절인데. 연애놀음은 둘이 하는 거지만 여왕은 무수한 생명의 삶이 걸린 일이다.

휘페리온이 옳다고 두둔하는 부분에서는 그저 웃음만 나온다. 제게 죽음을 권장한 연인을 비호하려는 걸 보면 정말 딸자식 키워서 소용없다는 말이 생각나기도. 놓아버려야 한다는 것. 그건 휘페리온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데 말이지. 알디스와 휘페리온은 초록동색,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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